이정현목사설교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재림이 가까이 왔으니 더욱 힘써야 할 일(히10:24-25)
이정현목사 2017-03-26 추천 0 댓글 0 조회 1122
[성경본문] 히브리서10:24-25 개역한글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제공: 대한성서공회

 

 

3월 26일 주일 1, 2부 

히10:24-25, 재림이 가까이 왔으니 더욱 힘써야 할 일​

 

성경에는 종말을 얘기합니다. 종말(終末)이라는 단어는, ‘계속된 일이나 현상의 맨 끝’을 말합니다. 유사한 말로는 ‘끝판, 멸망, 최후’ 등이 있습니다. 이 종말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개인의 종말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적인 종말입니다.

 

개인의 종말은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하지요. 육체 속에 있던 영혼이 빠져 나감으로 인하여 분리가 되면, 우리는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육체는 땅 속에 묻히게 되거나 화장을 하여, 한 줌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영혼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 믿는 영혼은 천국(낙원)에 가게 되고, 믿지 않은 영혼은 지옥(하데스, 스올)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이것과 함께 우주적인 종말도 말합니다. 이 날을 심판의 날이다, 대유성지구의 종말의 날이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다-이런 말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우주적 종말의 날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날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주님의 초림이 역사적으로 있었던 것처럼, 주님의 재림도 역사적으로 반드시 있게 됩니다. 

 

재림 전에는 또한 반드시 재림의 징조가 있는 것입니다. 재림의 징조들이 이 세상에 나타날 때에, 우리는 그것을 보고 ‘아, 주의 재림이 가까이 왔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세가 가까워 오면,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이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게 될 것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믿는 자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고,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입니다.’  

‘그 날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이 같이 주님은 친히, 재림 이전의 다양한 재림의 징조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미혹을 받는 것과, 난리와 전쟁의 소문이 무성하고요, 기근과 지진도 그 범위와 강도가 점점 더 심하여 가고 있고요,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났고 또 일어 날 것이고요,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져서 더욱더 삭막한 세상이 되고 있고요, 하늘의 일월성신이 흔들리어 불안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세상의 지식이 얼마나 빨리 왕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생명을 경시하며 점점 더 잔인해 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재림의 징조들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오늘 본문 마지막에 보면,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은 재림의 때를 말하고,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심판의 날이 임박해 졌다는 것입니다. 재림의 날이 언제 인지는 몰라도, 주님이 말씀하신 징후들을 볼 때에, 그 날이 가까이 왔음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때가 가까이 왔다는 말을 영어 성경에서는 ‘the time is at hand'-’그 시간이 손에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이 재림하실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십니까? 예수님 재림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십니까?  

 

이럴 때 일수록, ‘더욱 그리하자’(so much the more)는 말은, 더 많이 힘쓰자, 애쓰자, 더 열심히 하자는 뜻입니다. 재림이 가까이 왔으니 더욱 힘쓰자, 애쓰자는 말입니다. 

 

그러면 더 힘쓰고 애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24절과 25절에서 각각 한 가지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은, 마땅히 이 두 가지 말씀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대 유성 지구의 종말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면, 이 말씀에 집중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여기의 ‘서로 돌아보아’라는 말은,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에게 관심을 쓰자’라는 말입니다. 또는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를 자세히 살피자.’라는 말입니다. 결국 히브리서 저자는, 성도들이 서로에게 주목하는 일에 힘쓸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주위에 넘어지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에 관심을 가져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너무 무관심 한 것은 아닙니까? 아니면 잘 아는 사람에게, 또는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에게는 약간 관심을 보이기는 합니까?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는 조금 신경을 쓰고 있는 편입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의 요구는 그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에게 *관심을 쓰자고 하고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의 가족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듯이,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이듯이, 그런 마음을 옆에 앉은 성도들에게도, 지속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병사가 나이팅게일을 처다 보며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요’라고 말하고서 숨졌다고 합니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부상병들의 필요를 알고, 그들을 치료해 주며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힘과 용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가는 병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무슨 목적으로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까? 사생활을 감시하고 간섭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반절에서 말씀하시듯이, 성도들의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사랑하고 있는 것, 저들이 선행에 힘쓰고 있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24절 한 구절 말씀 전체를 해석해 보면, 성도들은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왜냐하면 성도들이 하고 있는 사랑과 선한 일을 격려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앙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입니다. 성도는 몸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서로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한 것입니다. 

 

지체가 지금 힘들어 하고 잘못되는데도 ‘나와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는 바른 기독교인의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서로 지체된 성도들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자들과 함께 웃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고, 한 공동체에 속하였고, 몸의 지체라고 한다면, 이웃들과 한 마음 한 뜻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구역에 우리 교구에, 우리 부서에, 우리 이웃이 슬퍼하고 아파하면, 같이 슬퍼하고 아파해야 합니다.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면, 함께 그 고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침체의 늪에 빠져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다면, 우리도 그 절망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심적으로 육적으로 고통 속에 있다면, 우리도 아파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힘들어 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영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면, 기도하며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 문제로 남편 문제로 마음 깊은 곳에서 울고 있다면, 우리도 함께 마음으로 울어 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좋은 일이 있고, 기쁜 일,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회사에서 진급하고,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가족들이 건강하다면 그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 집 손자 손녀들이 잘 되었다고 하면, 박수 쳐주고 칭찬해 주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입니다.

 

구역장과 인도자로 세워 놓았더니, 너무너무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구역 식구들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고, 말씀 잘 준비해서 가르치고, 애경사를 쫓아다니며, 맛있는 거 있으면 같이 나누어 먹고, 집회가 있으면 권면해서 같이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은혜 받은 말씀을 나누면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구역 일을 잘하는 것입니까?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지요. 자기 시간 들이고, 자기 물질 드리고, 자기 열정 드리고, 자기 달란트 드리고, 자기 몸 드려 봉사하는 것입니다. 

 

교회 제직회의 전도부 부장과 봉사부 부장과 차량관리부장을 비롯하여 여러 부서의 부장들은, 자기 일보다 교회 일에 우선하며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수고하십니다. 1부 찬양대는 새벽같이 나와서 연습해서 찬양합니다. 주일 아침 8시까지 오려면 동탄에서는 6시에는 나와야 합니다. 그것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잘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안수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도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잘 세워 가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맡은 일에 헌신적으로 충성하고 있습니다. 모범적으로 자기의 위치에서 열심히 섬기고 있습니다. 

 

중직자들은 주위 사람들의 형편과 처지를 잘 살펴보되, 힘들어도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관심을 끊임없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점이 보이면,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안아주고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혹 성도들이 잘하는 것을 보면, 더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24절의 ‘격려하다’는 말은, ‘자극하다, 불러일으키다.’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사람, 자기 위치에서 최선으로 충성 봉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자극을 주고 열심을 불러일으키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적극적으로 자극제 역할을 하라는 뜻입니다. 

 

다 같이 한 번 따라 하겠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우리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더욱 더 힘쓰고 애썼으면 좋겠습니다. 왜 그래야 되지요?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힘쓰고 애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이 말은, 어떤 자들에게 습관이 된 것처럼, 스스로 모이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당시 히브리서의 독자들 중에는 예배 모임에 참석하는 일을 포기한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배에 불참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공동체, 즉 교회의 존재에 해를 입히는 것으로 강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신자들에게는 어려움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외부의 박해도 있었고, 유대인들의 핍박도 있었고, 또 믿기는 믿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면서 예배참석을 포기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 신자 중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다 배웠다고 생각하고 교회 모임에 참여하지 않기도 하고, 또한 박해가 두려워서 교회를 떠난 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는 유기체적인 각 지체의 부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각 지체들이 교회의 예배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예배는 영적 양식을 공급 받을 수 있는 참으로 가치 있는 시간입니다. 이런 예배에 나오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영적인 태만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비단 예배 모임뿐만 아니라, 교회에는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여려 모임이 있습니다. 기도 모임, 성경공부 모임, 전도 모임, 봉사 모임, 친교 모임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모임들이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모임이고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어떤이들은 습관이 된 것처럼 모이기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교회를 무력화 시키고, 개인의 신앙생활을 망치기 위하여, 예배 모임을 비롯하여 각종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고 하는 놈입니다. 우리가 은혜 받고 변화되는 것을 사탄은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고 기뻐 뛰며 기도, 전도, 봉사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사탄은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임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로 하여금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을 포기하게 만들고, 교회를 떠나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우리의 모임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바쁜 일 때문에, 가족들이 갑자기 아픈 바람에, 시댁이나 친정에 애경사가 생기게 됨으로, 시험을 치거나 공부하는 것 때문에, 게으름 때문에, 토요일에 술을 잔득 먹고 숙취 때문에, 기타 등등 갖은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여러분들을 예배당에 모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이기를 힘썼던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에 힘썼다고 했습니다. 모여서 그들은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교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주께서 믿는 자들을 덧붙여 주셨습니다. 날마다 모였더니 날마다 믿는 자가 늘어났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도 모이기를 힘쓴 교회였습니다. 평양교회는 주일만 되면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농어촌 교회들도 주일에 일하러 나가지 않고, 전부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하루를 안식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부흥회를 한다고 하면 몇 십리 떨어진 동네에서도 와서, 부흥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이불과 솥단지를 싣고 와서 숙식을 하면서,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년 초의 기도원마다 만원을 이루었고요, 여의도에서 집회를 하면 수천 수백만 명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당시 모이는 열정은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국의 지하 교회에도 엄청나게 모이고 있습니다. 교통수단도 좋지 않고 모이는 장소의 환경도 좋지 않은데도 수십킬로 떨어진 곳에서 이불 보따리 싸서 찾아옵니다. 이들은 또한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보통 4-5시간 정도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저녁 집회를 7시부터 시작하면 보통 12시에 끝납니다. 그들도 모이는데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21세기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가, ‘이기주의’인데 곧 ‘자기 본위’의 삶이라는 겁니다. 자기에게 유리하고 자기에게 유익점이 있으면 모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모이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합할 줄을 모르고 이타적인 마음을 갖지 못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모이지 못하고 연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 동물의 왕국을 보면 수많은 누우 떼가 지나가는데, 이것을 노리는 사자 무리가 있습니다. 사자는 누우를 공격하는데 그들이 떼 지어 있을 때는 공격하지 않고, 한두 마리가 무리 중에서 떨어져 있을 때 그 놈을 공격합니다. 아니면 그들이 똘똘 뭉쳐 있으면 한 번 공격을 했다가, 그 중에서 처지는 놈이나 이탈한 놈이 있으면 그 놈을 재차 공격해서, 잡아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는 전쟁 중에 군대의 대열에서 낙오하면, 적의 손쉬운 표적이 되어, 그 병사는 십중팔구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됩니다. 공동체의 결집력, 하나의 모임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모이지 않고 개인행동을 하게 되면, 그들의 신앙은 타락하고 문란해지고, 생명력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가 되고, 이 시대의 징조를 깨닫는 자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시고, 모이기에 더욱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평생 동안 교회출석에 빠진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주의 재림이 가까이 온 이 시즘에서, 우리교회는 성도들의 형편을 열심히 돌아보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교회는 사랑과 선행을 격려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교회는 모든 모임에,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교회에 맡기신 사명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는, 건강한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눅 23:26~28) 사진 운영자 2017.04.02 1 2073
다음글 에바다(막 7:31~37) 사진 운영자 2017.03.17 0 1646

15010 경기 시흥시 배곧4로 42 (정왕동, 소망교회) 소망교회 TEL : 031-431-4817 지도보기

Copyright © 소망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63
  • Total356,223
  • rss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