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막 7:31~37)
이정현목사
2017-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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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마가복음7:31-37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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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36.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막7:31-37, 에바다
주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주로 말미암아 만물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가 없이는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만물 가운데 있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만드신 주님이십니다.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만드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합하여 잉태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중에 정자와 난자가 결함을 했다면,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영혼을 창조하셔서 그 속에 불어 넣으심으로, 육체와 영혼이 결합되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자와 난자는 물질이기 때문에, 그것이 결함된다할지라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영혼과 결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만 있다고 사람이라고 부리지 않고, 또한 영혼만 있다고 그 존재를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영혼과 육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지금도 하나님은 창조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인간이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로 인하여 다치거나 사고로 인하여 고장 날 때가 있습니다. 자기 몸을 잘 못 관리하면 고장이 날 수 있습니다. 요새 TV 광고에 흡연자에게 경고하는 금연광고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참으로 끔직한 모습을 보여주며 금연하라고 광고합니다. 저는 그 광고만 나오면 속이 울렁거려서 보지를 않습니다. 또한 자기 몸을 혹사하거나, 너무 많이 먹음으로 고도 비만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몸을 잘 못 관리하는 것에 해당이 됩니다. 자기의 몸을 잘 못 관리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고장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죄로 말미암아 몸이 고장 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몸을 세속적이고 정욕적이며 음란한 곳에 마음대로 내 던지고 돌리는 것입니다. 수간이나 동성애로 인하여 결국 에이즈나 기타 질병이 온 것 아닙니까? 이런 것들은 죄로 말미암아 몸이 고장 난 경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몸이 고장 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사람의 소경을 보고, ‘저 사람이 소경 된 것이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 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그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요9: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즉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몸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뿐만 아니라, 고장 난 인생을 고쳐주시기도 하십니다. 어떤 이유에서 고장이 났던 주님이 하시고자 하시면 그 인생을 고치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치료자 하나님, 여호와 라파이시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신 것처럼, 주님은 병든자의 대 의사가 되십니다. 연약하고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에 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스스로 주님께 나올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남을 의존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귀먹은 사람입니다. 듣지 못한다는 것은 참 답답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말을 더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런 사람을 ‘벙어리’(사35:6)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완전히 말을 못하는 사람일 수 있고, 아니면 말을 심하게 더듬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이 사람은 의사표시가 제대로 안 되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보통 듣지 못하면 말하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정상적으로 교제할 수 없는, 교제가 단절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육체 부분 부분이 고장 난 것은 분명합니다. 육체적 결함으로 인하여 자기도 고통과 좌절과 절망 가운데 보내겠지만, 그 부모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지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지요, 자식이 말하는 것을 부모가 잘 알아들을 수도 없었으니, 오죽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행여나 이 아이와 함께 다른 사람들 앞에 섰을 때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사람들이 예수께 데리고 나와서, 안수해 주시기를 바랬습니다. 이 사람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참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습니다. 현대도 이런 장애인들은 주위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외면을 당하는 입장인데, 그 당시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이 이 불쌍한 사람을 주님께로 데리고 와서, 안수 받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자기에게 나온 사람이라 하지라도 주님은, 그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무리를 떠나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냥 여기서 낫게 하시면 될 것인데, 주님은 이 사람만 따로 데려 가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라고 봅니다. 만약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이적을 행하면, 이것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께 또 다른 이적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 사람을 따로, 한 곳으로 데려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고쳐주시는 방법도 조금 특이하셨습니다. 다른 때는 보통 안수해 주셔서 낫게 하시거나, 손을 잡아 일으키시거나, 말씀만으로 낫게 하시거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시거나, 자기의 옷자락을 만지게 하시는 방법으로 병자를 낫게 하셨는데, 여기서는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하심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었다.’는 것은, 이 병자가 귀머거리여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손가락이 몸에 와 닿음을 느끼므로, 주님의 구체적인 사랑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의미로 예수님이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었다.’는 것도, 더럽고 지저분한 행위가 아니라, 그를 사랑한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자상함에 대한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탄식은 주님이 인간의 처지를 마음 속 깊이 동정하시며 기도하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신적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모습과, 인류를 향한 지극한 애정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탄식의 기도를 마치신 주님이 그에게 ‘에바다’(열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이 그 병자에게 이렇게 하셨더니, 그 즉시로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분명히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열려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즉시로 귀가 열리고 말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귀머거리의 귀가 온전히 정상이 되어 듣게 되었다는 말이고, 말 더듬이의 혀가 언어장애에서 온전히 정상이 되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35절에,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또는 ‘즉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역시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이 분명해 졌다는 것은, 말이 어눌하지 않고 정확했다는 것이고, 또한 그가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말을 정확히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감격스러워서, 몇 번이고 말을 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35장 5절에 보면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메시야에 대한 이 예언이 본문에서 그대로 성취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님에 의해 대단한 이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병 나은 당사자와 이적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도 보면, 어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찾아 나왔을 때, 주님이 그에게 손을 얹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을 때, 나병이 떠나가고 곧 깨끗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때에도 주님이 그에게 삼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막1:40).
왜 그랬을까요? 이적을 행하시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퍼뜨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로 와서 은혜를 입을 수 있을 것인데, 왜 그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단지 주님 자신이 이적을 행하는 자로 잘 못 알려지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단지 이적을 행하시는 분으로 알고 그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참된 메시야,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믿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단순히 능력을 행하는 자로 알면 안 되기 때문에, 그리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부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이적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일단 병 나은 사람은, 걸어 다니는 주님의 능력을 말하는 광고판이기 때문에, 그 소식이 전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 못하던 벙어리가 말을 하고 다니니까, 주님이 나를 낫게 하셨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고, 듣지 못하던 자가 사람의 소리를 들으니, 나의 귀를 에바다라고 하시며 열어주신 분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계속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 사람들은 주님의 역사를 계속적으로 전파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보기 보다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본 사람들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전파하는 말로 인하여,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본문 말씀과 병행구절이 마태복음 15장에(29-31)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주님이 당신에게 찾아 나온 더 많은 병자를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러 종류의 병자가 찾아왔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그들 모두를 고쳐 주심으로,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그에 의해서,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저는 자가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가 노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주님은 한 가련한 사람, 타인에게 의존적인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불안하고 절망적인 한 사람을 고쳐주심으로, 평안하고 희망이 넘치는 사람으로 고쳐주셨습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듣게 하시고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데가볼리 사람들은 예수에 대하여 한 마디로 평가하기를 ‘그가 다 잘하였도다.’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가 행한 일은 모두 훌륭하다는 말입니다. 칭찬할 만하다, 좋다는 뜻입니다. 달리 말하면 주님이 하신 모든 일은 다 좋다는 뜻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바로 같은 의미로 예수님께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열려라(에바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이 사람의 고장 난 부분을 고쳐 새롭게 만들어 주심으로 그 기능이 정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가 하신 일은 다 좋다.’고 말한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은 건강하십니까? 듣는 귀가 고장 나지는 않았습니까? 들어야 할 것을 못 듣고, 안 들어도 될 말을 귀담아 듣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진리는 안 듣고 세상 말만 듣고, 권면과 책망의 말은 안 듣고,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있지 않습니까? 성령이 깨우쳐주는 말씀을 안 듣고, 사탄의 달콤한 유혹의 말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진실하고 덕이 되는 말은 안 듣고, 허탄한 말만 듣고 거짓된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편은 아닙니까?
주님이 ‘열려라.’라고 말씀하심으로, 귀가 열려야 됩니다. 막힌 것이 뚫려야 됩니다. 들을 것을 듣지 못하는 이 귀를 열어 주실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이 시간 우리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고 열리라고 말씀하심으로 막힌 것을 뚫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듣는 귀는 작아져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는 열려서 커져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말하는 혀가 고장이 나지는 않았습니까? 혀가 고장이 나면 기도하지도 못하고 찬양하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고 복음을 전하지도 못합니다. 이것 또한 영적인 불구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바가 없으니 당연한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반응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열려라.’라고 말씀하심으로 혀가 풀려야 합니다. 우리의 혀도 풀어 줄 분은 예수님 뿐이십니다.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 말 못하는 우리의 혀가 풀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음에 대하여 반응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나의 혀를 풀어주신 주님을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가 풀려졌을 때, 우리는 그 큰 은혜와 사랑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계속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들을 것을 듣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하는 사람으로, 재창조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에바다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병들어 고장 난 육체와 영혼이, 열리는 역사로 말미암아 고침을 받아, 제 역할을 감당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성가; 에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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