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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3 2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
이정현 목사 2025-03-02 추천 0 댓글 0 조회 285
[성경본문] 요한복음3:22-36 개역개정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32일 요 3:22-36, 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

요한복음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만남을 몇 번 기록을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요한이 예수님이 어두운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다고 증언합니다(1:4-8). 두 번째로 요한이 이사야의 예언을 따라 그리스도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1:19-28). 이제 세 번째로 본문에서 요한이 탁월하고 우월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증언하게 됩니다. 이 단락에서 요한은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임으로 자신의 겸손한 신앙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본문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서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특히 예수님에 대하여 세례요한이 무엇이라고 증거하는지에 초첨을 맞추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를 대조하여 진술합니다(22-24).


요한은 에논에서 세례를 베풀었고 예수님은 유대 땅에서 세례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다른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이 직접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베푼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4:2).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유대 땅에서 세례를 주었고 요한은 물이 많은 에논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사람들이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세례도 요한의 회개의 세례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 사역이 그의 공생애 기간 중 주 사역이 아니었던 것은 아마도 유대의 정결의식을 완성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백성들을 온전히 정결케 하는 것이 그 어떤 사역보다 중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물 세례는 그의 주 사역이었으나 예수님은 세례 주는 것이 주 사역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주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도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세례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

 

24절에서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는데 이는 아직 그가 해야 할 사역이 남았음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의 사역은 죄인을 회개시켜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길을 좀 더 곧게 만드는 것인데 아직은 그 일을 할 때가 남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가 옥에 갇히게 되면 그의 사역은 곧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사역이 그치면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25절 이하에서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다룹니다(25-30).

 

요한의 제자가 정결의식에 관하여 한 유대인과 변론을 하게 됩니다(25). 그리고 난 후 그 제자가 요한에게 와서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26)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증언하던 분이 세례를 베풀매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오지 않고 다 그 분에게 가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시기하는 제자들을 진정시키며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사람이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다(27)고 말합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는 이 말은 하늘에서 사람들을 예수님께 보내 주셨다’(6:37)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것은 곧 하늘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며 나는 주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이제 이 사실을 전할 자는 너희라고 말합니다. 사실 요한이 죽고 난 이후에도 요한의 추종자가 있었다고 하니까 그의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은 신랑이고, 예수님께 가는 사람들은 신부이며, 자신은 신랑의 친구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자기의 사역에 대하여 말했지만 여기에서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기는 신랑의 친구이지, 자기가 신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친구는 결혼식 때 다양한 일들을 담당했지만 특히 신부를 신랑에게 데리고 가는 역할이 주 임무입니다. 그 역할이 끝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신랑과 신부 중심의 예식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랑의 친구는 신부를 신랑에게 데리고 가는 데 만족하며 신랑의 소리를 들을 때 매우 기뻐합니다. 요한은 자신도 그와 같은 일에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이 구절의 원문에서는 기쁨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타납니다. 그만큼 신랑의 친구가 크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조는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신 것을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 주목받는 것이 요한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기쁨이었습니다. 신랑의 친구로서 신부를 그분에게로 안내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근거가 3가지로 제시됩니다. 예수님이 높아지실 때, 예수님과 만남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인다운 신앙의 삶을 살 때 기쁨이 있습니다. 이 신앙의 삶은 복음을 전하는 것, 계명을 지키는 것, 기도하는 삶입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기쁨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높아지심으로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해 주시옵소서.

 

30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여기서의 는 예수님을 말하고 흥하다’(아웈사노)는 말은 식물이나 사람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 단어가 주로 교회의 부흥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그리고 바울과 베드로는 이 단어를 개인의 영장 성장을 가리키기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정리를 하면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아웈사노)1)개인의 자연적 성정, 2)교회의 부흥, 3)개인의 영적 성장 등으로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의 흥하다는 예수님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도 당위 동사가 사용이 되어서 예수님은 반드시 그 명성이 높아져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쇠하다는 예수님이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다(2:7, 9)라고 할 때, 나라의 국력이 약해질 때, 양식이 없어 궁핍한 상황을 묘사할 때 이 단어가 사용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여기서 예수님의 명성은 높아지셔야 하고 자기는 낮아져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의 낮아지심은 결국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요한의 평생 사역은 자기의 낮아지심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겸손을 통하여 그리스도만 높아지시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3.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부분입니다(31-36).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여기의 위로부터 오시는 이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가 만물 위에 계시다는 말은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통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땅에서 난 이는 요한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곧 자기는 육으로 난 자고 죄 아래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셔서 천지 만물을 통치하시는 분이시지만 자기는 땅으로부터 와서 죄인이며 땅에 속한 말만 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자기를 딱 대조하여 천지로 구분을 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 차이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셨는데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다’(32)고 하십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몰려갔지만 그분의 가르침과 증언을 받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증언을 받는 자(33), 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인쳤다는 말은 증명하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메시지 곧 예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은 참되시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이로 표현을 하고 그분의 사역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은 성령을 한량없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34).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고 가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성령과 만물을 주셨습니다(35). 분만아니라 하나님이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28:18)와 세상을 심판할 수 있는 권세까지 주셨습니다(5:22). 아울러 성령을 물 붓듯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게 하시며 만물을 주셔서 그에게 오는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신 것입니다.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여기서 믿음과 순종치 않는 것을 대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믿음과 삶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다시말해서 믿음과 순종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믿음은 순종하는 사람으로 들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은 믿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에게와 불순종하는 자에게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생은 없고 진노만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결론

 

1.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높아지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주목 받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주목 받으시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높아지고 영광을 받으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예수님을 높이는 것으로부터 옵니다. 비록 내 마음대로 안되고 내 계획대로 안되도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면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입니다. 나는 쇠하여도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만 합니다. 나는 언제나 조연이고 그분만이 항상 주연으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겸손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 받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 고난의 삶을 살므로 예수님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항상 낮추어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3.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과 순종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순종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온전히 말씀에 통치를 받으며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인 것입니다.

 

소망교회 식구들은 예수님을 높임으로 기뻐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 항상 겸손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통치를 받으며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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