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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29 <멜리데를 지나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는 바울> 이정현 목사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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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8:1-31절 개역개정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29. (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1222일 사도행전 28:1-31 멜리데 섬을 지나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는 바울

 

바울 일행은 그레데의 미항에서 같은 섬의 뵈닉스에서 과동을 하려고 떠났지만 그만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서 14일 동안 바다에 표류하게 됩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고자 발버둥을 쳐 보지만 오랫동안 해와 달을 보지 못하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바람 부는 대로 떠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배가 파선되면서 가까스로 육지에 도착을 했는데 276명 중에 한 사람도 상하지 않고 무사히 육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무사히 도착한 곳이 멜리데 섬이라고 했는데 이 섬은 로마 남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멜리데라는 이름의 뜻은 피난처라는 의미입니다. 말 그대로 바울과 그 일행의 피난처가 되었던 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레데 항구에서 이곳까지는 적어도 880km가 넘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정확히 맞아서 배가 바람에 밀려 로마에 가까운 이곳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만약 바람의 방향이 서쪽으로 불지 않고 지중해의 남쪽으로 불었다면 아마도 로마하고 먼 아프리카 북부에 도달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바울의 사역에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광풍 속에서도 그 뱃머리를 로마 쪽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람으로 사역자를 삼으셔서 이 배를 로마에 가까운 멜리데 섬에 도착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튼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한 사람도 상하지 않고 이곳까지 오게 된 것과 다른 곳이 아닌 로마 가까이로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이 무사히 섬에 도착 했을 때 겨울이 다가왔기 때문에 비가 오고 날이 추워졌습니다’(2). 비가 오고 추우니까 원주민들이 모닥불을 피워 준 것입니다. 바울은 감사한 마음으로 불을 쪼이며 자기도 나무 한 단을 불 속에 집어 넣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 단 속에 독사가 있어서 뜨거우니까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뱀이 바울의 손에 매달려 있을 정도로 단단히 물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원주민들이 말합니다.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4). 바울을 살인자로 몰아버립니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공의라는 말입니다. 공의’(디케, δίκη)KJV에서는 복수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는 복수의 여신 헤 디케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저 사람이 바다에서는 건짐을 받았는지 모르나 복수의 여신인 헤 디케가 살인에 대해 복수를 함으로 그를 살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뱀 독이 퍼져서 죽게 될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렸고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쓰러져 죽을 줄로 생각했으나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 저 사람은 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살인자라고 말했다가 이제는 신이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한 것처럼(14:11-15) 여기서도 신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하시고 지키셨던 하나님께서 독사의 독으로부터도 해 받지 않도록 바울을 지켜 주셨습니다.

 

이 멜리데 섬의 추장은 보블리오라는 사람인데 그는 바울 일행을 영접하여 3일 동안이나 친절히 대접을 합니다. 그러다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던 보블리오의 부친이 바울의 안수 기도를 통하여 나음을 받게 됩니다. 열병과 이질은 염소의 우유 속에 있는 미생물에 의해 감염되는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로는 열병과 이질에 걸리면 길게는 2년 동안이나 고생을 하다가 심지어 죽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런데 보블리오의 부친은 바울에 의해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소문나는 바람에 그 섬 가운데 있는 모든 병자들이 다 나와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섬 전체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섬 역사 가운데 이런 역사가 예전에는 없었습니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 누가복음 4장에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을 때 많은 병자가 찾아와서 나음을 받은 것과 비슷합니다. 본문에서는 바울에 의해 추장의 부친이 낫게 되자 그 지역의 많은 환자가 바울에게 찾아와서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바울의 역사가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꾸짖어 낫게 하시지만 바울은 그 주님께 기도함으로 낫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바울의 기도를 들으사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병고침의 역사는 바울의 역사가 아닌 주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누가가 의사이니까 누가가 고쳤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분명 바울의 기도로, 주님의 역사로 병자가 낫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블리오를 비롯한 모든 원주민들은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는 우리의 쓸 것을 배에 실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 섬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276명이 하루도 아니고 3개월을 먹은 것입니다. 한끼 1,000원을 잡아도 74,500,000원입니다. 엄청난 양식입니다. 이 정도를 대접하고 또 배 타고 가면서 먹으라고 필요를 채워주었다는 것입니다.

 

10절의 후한 예는 문자 그대로는 많은 존경을 뜻합니다. 원주민들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울 일행을 대접하고 필요를 채워주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0:7, 고전 9:14). 다시 말해 복음 전파자를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바울이 이 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거나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다는 말은 없으나 적어도 추장의 아버지와 많은 환자들이 고침을 받은 것을 보고 또한 그들이 후하게 대접하는 것을 볼 때에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복음을 들은 그들은 예수를 믿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바울을 로마로 곧장 보내지 않으시고 우여곡절 속에 멜리데 섬에 도착하게 하신 것은 바로 이런 목적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치 2차 전도 여행 때 빌립보에서 죄를 짓지도 않았던 바울이 단지 점치는 귀신들린 여인을 낫게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얻어맞아서 피투성이가 되어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간수 가족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멜리데 섬에서의 부흥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이 섬에서 석 달을 보내는데 이유인즉 겨울에는 배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동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1절입니다.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이 배 이름을 정확히 이야기하고 그 배의 머리 장식까지 이야기합니다. ‘디오스구로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 두 아들 중 하나는 카스토르(Castor)이고 다른 하나는 폴룩스(Pollux)인데 이들은 기병대의 전투를 돕는 신이었고 또는 곤경에 처한 선원들을 돕는 신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배를 타고 전쟁을 하거나 여행을 하면 두 신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바울을 풍랑 속에서도 지켜 주시고 안전하게 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11절에 우리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 여기에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누가가 이 모든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식량 수송선 알렉산드리아호를 타고 멜리데 섬을 떠나 140km를 항해해서 수라구사로 갑니다. 당시의 수라구사는 시칠리아 섬의 수도였고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인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로마의 병정들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아르키메데스를 무참히 죽인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림 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45_로마까지 지도.jpg

 

그리고 수라구사에서 이탈리아 최남단 항구인 레기온으로 갑니다(113km). 거기에서 다시 보디올로 올라갑니다(325km). 이 보디올은 상당히 큰 도시로 그 당시 로마에서 세 번째로 큰 원형경기장이 있었는데 약 6만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보디올의 전체 인구가 65천명이니까 거의 전 인구가 이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디올에서 예수 믿는 형제들과 함께 1주일을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보디올에서 로마까지는 이제 육로로 가는데 거리는 240km 정도이고 약 10일 정도 걸린답니다.

 

이어 걸어서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올라갑니다. 여기 압비오 광장은 외국의 사신을 영접하거나 개선장군이 이곳에서부터 잘 뚫린 도로를 따라서 로마까지 행진하는 출발지입니다. 그리고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문자 그대로 삼관, 세 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일종의 휴게소인데 외국 귀빈들이 와서 로마로 올라가기 전에 머물기도 했던,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곳까지 올라갔을 때 로마의 형제들이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하러 나왔습니다. 이 형제들은 이방인 형제들로 여겨집니다. 3년 전에 고린도에서 로마로 보낸 편지를 통하여 예수를 믿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 편지를 통하여 믿음이 확고해 진 사람들이라고 보여집니다. 너무너무 귀한 형제들이었습니다.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믿음의 사람을 마중하러 나온 것이고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끌려온 바울을 환영하러 나온 것입니다. 바울은 개선장군도 아니었고 외국의 귀빈도 아니었는데 이처럼 믿는 형제들로부터 마치 귀빈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제 누가는 로마에 들어간 바울의 사역에 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16-31). 바울은 주후 60년 봄에 로마에 도착해서 적어도 62년까지 로마에서 죄수로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죄수 아닌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입성하여 군인의 감시와 보호를 받으며 조금은 자유롭게 옥중 생활을 합니다(16).

 

며칠 쉬었다가 그곳의 유대인 중에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자신에 대하여 설명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세 가지를 말합니다. 1)나는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2)로마 사람들이 나를 심문했으나 죄목을 찾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23:29, 25:25, 26:31) 3)유대인들이 반대하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20).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메시아를 대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의 통치 아래서부터 그리스와 로마가 지배할 때까지 수천년 동안이나 열국의 속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낼 것이니 메시아가 오시면 너희를 모든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대 시대마다 모두가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 이스라엘의 소망, 즉 메시아로 인하여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의 이같은 이야기를 들은 유대 지도자들은 다음에 시간을 내서 너의 사상이 어떠한지를 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 그들이 날짜를 정하여 바울이 유숙하는 집에 모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구약 성경을 근거로 예수를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였고 사도들의 증거 핵심도 하나님의 나라였는데 여기 바울도 하나님 나라를 중점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오신 분, 주인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 것입니다.

 

그랬을 때 그 중에서 믿는 자도 생기고 믿지 않는 자도 있었는데 믿지 않은 자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완악함과 교만함을 알게 된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을 책망합니다(26-27). 한마디로 유대인들의 완악함과 교만을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마음이 우둔하고 듣는 게 둔하고 눈은 감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안다는 유대인들이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교만함을 본 바울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28).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넘어갔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사도행전에서만 4번이나 사용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거부함으로 그 구원이 이방인에게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의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0-31). 사도는 2년 동안이나 로마 옥중에 있으면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로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거침없이 전파하며 보냅니다.

 

누가는 복음의 확산과 바울의 생애를 여기서 갑자기 그치는데 사실은 이 이후에도 복음은 확산되고 바울의 생애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5-6년 정도는 더 복음전파 사역을 하게 되다가 네로 황제의 핍박으로 인하여 길거리에서 참수를 당하게 됩니다.

 

결론

 

하나님은 바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몇 번이나 이것을 약속하셨고(23:11, 27:24) 바울 자신도 이것을 원했으며 확신했습니다(19:21, 1:11, 15:23). 이제 드디어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바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울은 드디어 세계의 수도 로마에 도착을 했습니다. 바울이 이곳에 온 것은 여행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높은 건물들과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의 신변안전을 위해 피신해 온 것도 아니고 사업차 이곳에 온 것도 아닙니다. 물론 자기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하여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왔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기 위한 복음 전파 때문입니다. 자신은 비록 매인 몸이지만 복음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체포한 로마를 바울은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구약 성경에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 전역에 퍼져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평생 동안 복음을 위하여 아름답게 쓰임 받았던 바울처럼 우리와 이 땅의 교회도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뒤를 이어 오늘 우리가 계속 복음을 확장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왕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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