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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7 <여호와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정현 목사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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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136:1-26절 개역개정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241117일 시136:1-26 여호와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시편 136편은 전체 26절로 되어 있는데 각 구절마다 한 번씩 감사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성경 한 장에 26번이나 감사하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감사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말 성경에는 26번이나 나오지만 히브리어 원문 성경에는 1, 2, 3절과 마지막 26절에만 감사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글 성경의 나머지 구절은 전부 의미상 들어가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하여 의역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틀린 번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문에는 없으나 의역해 놓은 부분은 보다 작은 글씨체로 표기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성경을 읽을 때 아 이 부분은 원문에는 없지만 뜻이 잘 통하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번역해 놓은 것이구나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시편 136편은 전형적인 감사 예배시입니다. 감사 예배시라는 말은 예배 때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 내용의 노래를 불렀다는 뜻입니다. 주로 유대인들의 3대 절기인 유월절,오순절, 장막절 예배 시 불리워졌던 찬송이며 시입니다.

 

이 시의 형식은 너무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단순하지만 26번이나 이런 형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조금은 지루하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루한 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대적인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인자하신 하나님을 강조,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격스러운 시입니다.

 

이 시와 찬송을 자세히 살펴보면 혼자 부른 것이 아니고 또한 한 그룹이 다 부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앞부분 즉,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부분은 찬양대가 불렀고 뒷부분 즉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부분은 예배하는 회중이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앞부분 한 소절을 찬양대가 부르면, 뒷부분 한 소절 후렴은 회중이 불렀는데 이것을 가리켜 교송또는 교창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말하면 Antiponally song이라고 합니다. 시편 136편은 예배 시 교창이었습니다. 이 찬송시의 내용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것이고 그리고 찬송해야 할 이유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11월 둘째 주일이고 추수감사절입니다. 오늘도 감사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들을 근거로 하여 1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깊고 넓고 많은 은혜와 사랑을 회상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시면서 왜냐하면 그 분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인자(헤세드)라는 말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하고 변치 않는 사랑을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그 인자하심 또는 그 헤세드가 본문에서는 몇 가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셨던 영원하고 변치 않는 사랑 몇 가지를 살펴봄으로 은혜받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 내려가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합니다. 수 많은 고통과 억압과 착취와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런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사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하여 내십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으로 가게 하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기리라고 외치면서 각종 이적을 행합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은 왕궁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맷돌 뒤에 숨어 있는 여인의 장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태생을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를 치심으로 바로의 항복을 받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출애굽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장자를 치셨고 이스라엘을 애굽의 속박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입니다. 그 분은 강한 손과 편 팔로, 당신의 귀한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시편 78편에도 보시면, 애굽에 내린 여러 가지 재앙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다가 마지막 재앙과 출애굽을 연결시켜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초태생을 치심으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10, 11, 12).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압제하는 애굽을 치사 그들을 그 가운데서 이끌어 내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로 말미암아 될 일이 아닙니다. 모세로 말미암아 된 것도 아닙니다. 또 다른 특별한 사람이나 특별한 민족으로 인하여 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인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역사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후에 하나님이 자주 그들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 “나는 너희를 종 되었던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인자,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의 말씀을 좇아 강한 손으로 애굽을 치사 우리를 그 손아귀에서 구출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애굽은 신학적으로 말하면 사단을 말하고 출애굽은 구원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단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첫 번째로 감사해야 할 이유는 유월절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인하여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 그리스도를 주신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자비와 사랑입니다. 영원하고 변치 않는 헤세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지옥가야 할 우리들을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께 이 시간에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다른 사람들이 전부 물로써 멸망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비참한 심판 중에서 자기의 가족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물이 빠지고 방주 밖으로 나오자마자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렸습니다. 심판과 멸망 중에 나를 건져주시고 가족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8).

 

구약의 선지자 하박국은 환상을 통하여, 앞으로 닥칠 환란과 핍박의 상황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입술이 떨렸고 자기 뼈가 저릴 정도였고 힘이 다 빠져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내 주위 환경이 거지같이 변하고 고난과 환란이 있어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라, 그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날을 맞이하여 구원의 은총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감사는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깊어만 가야하는 것이고 더 감격스러운 감사여야 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감사여야 합니다. 구속의 은총에 대한 이 감사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이후에 광야 길로 그들을 인도해 가십니다.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시고 메마른 사막과 황량한 광야를 지나게 하십니다. 마라의 고통의 장소를 지나게 하시고 엘림을 거쳐 신광야를 거쳐 르비딤을 거쳐 시내산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 다베라를 거쳐 기브롯 핫다아와를 지나서, 가데스바네아까지 올라갑니다. 여기서 곧장 광야 생활을 끝내고 약속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만 불신을 보이고 원망과 불평을 함으로, 앞으로 장장 약 40년 동안의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걸어가는 광야 40년 길은 험난했고 삭막했고 위험했고 어려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이 없었고 마실 것도 없었고 잠잘 것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다 때때로 적들의 침략도 많았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길에 방해꾼과 태클과 위험한 요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마시우고 재우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물이 필요할 때면 쓴 물을 달게 하여 먹게 하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면 하늘을 열어 하늘의 양식 만나를 주어 먹게 하셨습니다. 고기가 필요하면 동풍을 불게 하여 메추라기를 몰아 주셔서 코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실컷 먹게 하셨습니다. 적들이 공격할 때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적들을 물리치사 이스라엘을 안보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사 이런 일을 행하셨다는 증표가 바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고 이것은 출애굽 초기, 에담 지역에서 나타났습니다. 에담 지역에서부터 시작하여 광야 생활 끝날 때까지,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고 또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사실들을 기억하며 시편 기자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13-17).

 

한마디로 짧게 말하면 어렵고 힘든 광야 생활에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도 동일한 감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오늘 우리의 교회 생활과 같습니다. 앞에서 출애굽을 구원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교회 생활로 보아도 틀림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도 그때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교회에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교회 생활을 광야 생활에 비유한 것은 교회 생활이 그처럼 어렵고 힘든 것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광야 같은 교회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가는 길이 험난하고요, 적들의 공격 즉 사탄의 시험도 많고요, 먹을 것이나 마실 물이나 쉴만한 곳이 없어서 고통을 당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강이 가로막혀 있을 때가 있고요, 산이 가로막혀 있기도 하고요, 적들의 매복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낮에는 태양의 열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고요, 밤에는 추위 때문에 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광야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사 하나님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셔서 살게 됩니다. 어렵고 힘든 광야길이지만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시고 은혜와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심으로 살아가는 게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낮의 해가 상치 않도록 구름기둥으로 보호해 주시고 밤의 달이 해치 못하도록 불기둥으로 안보해 주셔서,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을 생활할 때 신발이 닳아서 맨발로 걸어간 적이 없고 옷이 헤어져서 헐벗고 다닌 적이 없고 농사를 짓거나 목축업을 하지 않았지만 굶은 적이 없고 창, 칼이 없었어도 전쟁에 져 본 적이 없고 우물이나 샘을 판 적이 없어도 갈증 때문에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때 그때마다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적당히 공급해 주셔서 살게 하셨듯이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자비가 변치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해 주십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신앙생활을 뒤돌아보면 펜데믹 상황 속에서도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가 아닌 게 없었습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이며 복입니다.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지난 10개월 동안의 생활만 회고해 보더라도 그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인자가 아닌 게 없습니다. 많은 고난과 고통 어려움 중에서도 우리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고 우리를 지금 이 자리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임마누엘의 하나님, 그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비천한데서 기념하셔서 땅을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의 비천하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신분이 낮고 천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본문 속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압제에서 천하게 취급되었다는 뜻입니다. 기념하다는 말은 기억하다또는 회상하다는 뜻으로,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고통을 기억하여 곧바로 구원하여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21절의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비천하고 멸시받고 살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기억하셔서 그들을 구속하여 주시고 광야 생활을 인도하시고 복 주셨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축복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옮겨와서 가나안 땅에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비천한 데서 끌어 올려 자유와 축복의 땅,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살아갈 수 있는 땅으로 옮겨 주신 것입니다. 억압, 착취, 살인, 시기, 모함, 억울함, 고통의 땅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사 평안, 자유, 은혜, 감사, 찬양이 있는 곳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지옥의 비천한 데서 끌어내어 천국과 같은 가나안 땅으로 이전시켜 주셨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예수 믿는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들이며, 비록 이 땅에 살지만 천국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시민이기도 하지만 천국의 시민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중 시민권자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단한 자들입니다. 땅에서 하늘의 감격과 영화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과거에는 진노의 자식이었고 마귀의 비천한 자식들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우리를 인도하여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23, 21). 천국을 누리며 또 한편의 온전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됨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적 천국을 살면서 영화로운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땅을 살지만 저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게 해 주신 여호와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은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25절에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고 하셨는데 여기서의 모든 육체는 사람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동식물을 다 포함해서 모든 육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도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당한 때에 적당한 식물을 주시고 동물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시고 식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살 수 있는 햇빛과 물과 영양분을 주십니다.

 

시편 104편의 말씀을 보시면 이 땅에는 무수히 많은 동물들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그 종류가 많고 바다의 어족 또한 숱하게 많은데 이 모든 것이 때를 따라 양식주시기를 주께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8절에 가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주신 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 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한다.” 결국 세상의 모든 동식물들은 주께서 그 식물을 주시매 그것을 취하여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그들은 40년 동안이나 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해서 창고에 모아두는 농사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소, , 염소를 기르는 목축업을 한 것도 아니었고 바닷가에 다니며 고기를 잡아먹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3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살았습니다.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나는 물로, 생명을 부지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한 사람도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고 못 먹어서 병약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하늘의 양식을 주심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처럼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고 한 달을 지내고 1년을 사는 것도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인하여 사는 것입니다. 손으로 수고한 대로 먹을 수 있게 해 주셨고 굶주리거나 일용할 양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 주셨고, 빌어먹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 분명,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매일 매일 필요한 양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풀을 입히시듯 저와 여러분에게도 1년을 먹여 주시고 입혀주셨으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해야 합니다.

 

없는 것 가지고 없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마세요. 더 많이 못 가졌다고 안타까워 하지 마세요. 성공하지 못했다고 부자 되지 못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올해도 더 나아진 것이 없다고 비관하지 마세요. 주어진 현실에 감사하십시오.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나와 내 가족들을 먹여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영원히 하고, 끝없이 계속해도 다 하지 못할 구속의 은총을 깊이 감사하십시오. 애굽의 장자를 치사 그 속박에서 건져주신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로 하여금 광야를 통과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선하게 인도해 주시고 위험에서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 중심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비천한데서 기억하사 축복의 땅 가나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무엇보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분에게 머리 숙여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감사해야 합니까?

1)마음으로/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119:7).

 

2)입으로/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109:30).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5:4).

 

3)물질로/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감사하면 됩니다. 있는 대로, 받은 대로 감사하면 됩니다. 파종의 법칙과 감사의 법칙은 동일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듯이 감사하는 대로 감사거리가 생깁니다. 심은 만큼 거두듯이 감사한 만큼 많은 복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4)나눔으로/ 내가 받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인 줄 안다면,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은혜와 복은 이웃에게 흘려 보내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이웃들과 함께 나눔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과 복을 헤아려 보면 우리에게는 감사할 이유가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빼놓지 말고 조목조목 들어서 입술로 감사하시고 마음으로 감사하시고 몸으로 물질로 감사하시고 나눔으로 감사한다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고등과학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기초과학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만든 연구원입니다. 이곳의 교수들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사람도 있고 필즈상을 수상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곳에 유일하게 목발을 집고 다니는 김인강 교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충만 논산군 연무읍 마전리라고 하는 농촌 마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은 너무나 가난하였습니다. 2살 때는 소아마비를 알았는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여 그 만 그때 이후로 걷지를 못하고 기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걷지 못하고 기어 다니는 그를 보면서 재는 나중에 커서 거지밖에 될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과수원에 나가서 일을 했고 형과 누나들도 학교에 가면 그는 혼자 어두운 방에 누워있었습니다. 누워서 밀려오는 외로움과 고독함 속에서 그는 그져 먼 하늘만 바라보았고 또 병아리들이 모이를 쪼아먹는 것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불구여도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어서 그가 9살 때 그를 업고 학교에 갔는데 걷지 못하는 애는 받을 수 없다라며 학교에서 거절했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다 보니 밤마다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와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막내를 보면서 아버지는 이렇게 소리를 쳤습니다. ‘어찌 너 같은 것이 태어나서 이렇게 날 괴롭히냐?’ ‘저런 쓸모없는 놈 밖에 갔다 버리라당장 땅에 묻어 버리라고 했답니다. 이런 말은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학교도 갈 수 없어 집에서 형과 누나들이 공부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공부하다가 내가 여기 있다가 평생 기어다니며 거지로 살 수 밖에 없구나, 홀로 서기를 해야 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11살 때 결심을 하고 재활원에 들어갔습니다.

 

재활원에 들어가 그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내가 일어나는 훈련을 해야 하니까 저를 좀 도와 주세요.’ 그러자 건장한 치료사 둘이 와서 그의 다리를 잡아 펴는데 11년 동안 기어만 다니던 굳어 있는 다리를 펴서 잡아 당기니까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는 2년 동안 계속 다리를 잡아 당기고 누르기를 반복하여 마침내 그는 목발을 짚고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의를 다해 공부에 매진하여 대전중학교, 충남고등학고 시절 전교 1등을 했고 그 결과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늦게 나왔는데 비고 온 것입니다. 목발을 짚고 가방을 메니 우산을 쓸 수가 없어 비를 홀딱 맞으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누나가 다가와서 우산을 씌워주고 데려다주면서 예수를 믿으라는 전도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저주 받은 인생으로 태워 났는데 하나님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고 예수님이 내게 도움이 되느냐고 반발했지만 그 누나의 간절한 권유로 그는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캠퍼스 선교단의 활동을 하면서 신앙을 키워갔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목발을 짚고 무거운 가방을 맨 채 많이 걷다 보니까 폐가 갈비뼈에 계속 부딛히면서 구멍이 났습니다. 의사가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곧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고 하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너무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이런 원망이 터저 나왔습니다. ‘하나님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신가요? 항상 아프기만 하고 아무 쓸모 없는 나같은 자가 살아있는 게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이것으로 족합니다. 나를 데려가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 있는데 뒤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이 찬송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온 몸이 전율하면서 그는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합니다.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십시오라고 울며 울며 기도하다가 그의 자아는 완전히 깨지고 말았답니다.

 

그러는 가운데 로마서 9:20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그날 이후 그는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폐 수술을 받고 병원에 1년 동안 누워 있었는데 그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 성경 읽는 법, 고난 중에 찬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받는 자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서울대 전체 차석으로 졸업한 김인강 씨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귀국해서 카이스트와 서울대 수학과 교수를 거쳐서 현재 고등과학원(KIAS)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같이 이렇게 천하고 가장 낮은 자를 이렇게 높여주시고 귀하게 사용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입에 달고 살아간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예수)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찬송/ 날 구원하신 주 감사

기도 제목/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복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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