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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0<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 이정현 목사 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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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17:11-19절 개역개정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1110일 눅 17:11-19,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가 감사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경우의 감사를 말합니다. 첫째는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좋습니다. 자라온 환경도 좋고 지금 일하는 환경도 좋고 살고 있는 주거지의 환경도 참 좋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겁니다.

 

둘째는 소유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많은 물질을 소유했습니다. 집도 있고 차도 생겼습니다. 깊은 학문을 탐구했고 높은 명예를 얻었습니다. 맨손으로 시작했는데 사업체가 커졌어요. 부유해졌어요. 그래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신앙에서 나오는 감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나 소유에서 나오는 감사하고는 좀 다릅니다. 환경과도 상관없고 소유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감사하라고 하시니,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니 환경은 좋지 않고 소유가 넉넉지 못해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 여름, 가을, 겨울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좋은 환경으로 인하여 오는 감사를 넘어서고 또한 소유에서 오는 감사를 넘어서서 신앙에서 오는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감사가 아니라 어떤 때는 환경이나 소유에서 오는 감사도 못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감사 거리가 없어서 감사를 못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한 일이 넘쳐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신앙적 선택인 것 같습니다. 감사를 감사로 알고 의도적으로 감사를 선택해야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어느 마을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나병환자 10명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성경에는 나병환자 10명이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주님이 의도를 가지고 그들에게 보여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둥병자들이 스스로 주님을 찾아서 만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그들에게 보여주심으로 만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시고 먼저 불쌍한 존재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이 먼저 찾아오심으로 우리는 그분을 뵙고 그분께 아뢰며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10명의 나환자들이 우연히, 지나가시는 주님을 만났지만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의도와 섭리 가운데 그들을 만나주시기 위하여 이 동네를 지나가시게 된 것입니다.

 

문둥병자들은 한 마디로 비참합니다. 나병은 무서운 전염병이며 저주받은 병이었습니다. 괴로움과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가족들과 동거할 수 없어 분리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풀고 부정하다고 외치며 마을에서 격리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부정한 병으로 규정했고 접근을 막았던 것입니다.

 

본문에도 보면, 이들이 주님을 만나기는 만났지만 멀리 서 있었던 것은 환자로써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규정에 의하면 적어도 이들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들이 멀리 서서 주님께 간청을 하였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짧은 한 마디의 말이지만 자기들의 모든 소원과 한을 담아서 주님께 요청을 한 것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큰 소리로 말해야 했겠지만 여기에는 그들의 간절함과 열망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이 해야 할 임무 중 하나가 나병을 예방하는 일이고 나병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것이 나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자이며 그런 나환자들을 돌보아야 하고 그들의 병이 치유되었을 때에는 정결 의식을 드려서 그들이 문둥병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환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너희들이 환부가 치유되었으니 제사장들에게 가서 확인하라는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즉시로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너희들의 몸이 나았으니 너희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여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열 사람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로 갑니다. 말씀을 믿고 가는 것 말씀에 순종하는 것 믿음에 행위가 동반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귀한 역사를 가져옵니다. 그들은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스스로 나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깨끗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나은 것은 이들이 고침받은 것은 이들이 깨끗함을 받은 것은 주님의 역사이며 우리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치료자이십니다. 주님은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부르짖는 자의 응답자이십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 찾아나온다 할지라도, 당신에게 찾아 나오기만 한다면 주님은 그들의 애처로운 손을 잡아 주시고 일으켜 주십니다. 비참한 환경 속에 있는 자를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절망 속에 있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주님은 당신에게 나병환자처럼 이런 심정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결코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병이든, 어떤 약자든, 어떤 불쌍한 사람들이든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문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죽음의 문제, 재정문제, 인간관계의 문제, 질병의 문제, 모든 문제를 안고 주님 앞에 와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큰 소리로 내 심정을 토해 놓으면, 주님이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만남은 축복입니다. 10명은 주님을 이곳에서 만남으로 일생일대의 대단한 복을 받았습니다. 그처럼 지긋지긋하고 그처럼 암울하고 그처럼 비참하고 그처럼 고통스럽고 그처럼 저주스럽고 그처럼 억울하고 그처럼 낙심스럽고 그처럼 절망스러운 나병에서 고침을 받은 이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자신의 몸을 만지며 기뻐 어찌할 줄을 몰랐을 것입니다. ‘, 내 몸이 나았다고 고함을 쳤는지도 모릅니다. 펄쩍 펄쩍 뛰었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며 감격해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씁쓸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5-16)

 

10명이 나음을 받았는데 그 중의 한사람 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10명이 다 주님의 은혜를 받았는데 그 중의 한사람 만이 주님께 달려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이며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몸의 나은 것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 한 사람의 감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의 이방인은 개별적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자기는 감사를 드렸습니다. 안하는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안 해도(다수가 안 해도) 나는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개별적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또 본문의 뉘앙스를 보면 그는 즉시로 감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방인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을 지체하거나 다음으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사장과 가족들에게 갔다가 나중에 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몸이 나은 것을 안 즉시로 그는 자기를 낫게 해 주신 분께 영광과 감사를 돌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열정적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큰 소리로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응답받은 후, 역시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미온적이거나 소극적으로 작은 목소리로 영광과 감사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감격에 벅찬 소리로 열정적으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또한 그는 중심으로 진심으로 겸손히 감사하였습니다. 형식적으로, 위선적으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발아래에 엎드렸다는 표현은 지극한 존경과 겸손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는 그런 태도와 마음으로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반복적으로 감사하였습니다. 한두 번 영광을 돌리거나 한두 번 감사하고 중단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라는 말과 엎드려 감사하니라는 말에는 전부 반복적인 행위가 들어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음을 받은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다는 말이고 또한 예수님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계속하여 연거푸 감사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감사했으면 갔던 거리를 다시 뛰어 오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영광을 돌립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연거푸 그 입에서 감사와 경배가 나왔고 드디어 예수님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연이어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입니까?

 

이 한사람 이방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개별적으로 즉시로 감사를 했고요, 열정적으로 했고요, 중심으로 했고 뿐만 아니라, 반복적으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음 한구석에 은혜 입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과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17-18).

 

당신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맛본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이 이방인만 홀로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려 왔는가? 10명 모두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10명 다 주님께 경배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만남과 치유는 마땅히 경배와 감사가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단한 역사가 자기들의 몸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적이 자기에게 일어났는데도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자들이 9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남과 치유는 있었지만 경배와 감사가 없었던 사람이, 무려 90%나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감사를 모르는 자들이 더 많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편과 감사한 편은 91이었습니다. 이 비율은 어쩌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비율이기도 합니다.

 

유대인은 온갖 축복을 많이 받은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에게 좋은 은사를 모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사랑과 은혜와 복과 능력과 지혜와 지식을 풍성히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선민의식에 빠져서 이방인들을 멸시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더 큰 은혜와 사랑과 복을 많이 받은 유대인들 9명은 한 사람도 영광과 감사를 돌리지 않는데 오히려 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이방인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감사해야 할 유대인들은 감사를 잊어버렸고 기대하지 못한 이방인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주님은 엎드려 감사하고 있는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믿음과 감사의 결과는 영혼의 구원이었습니다. 다른 9명은 육체적 구원인 치유와 회복은 되었으나 영적 구원인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은 받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병환자는 육체적 구원뿐만 아니라 영적 구원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나환자는 문둥병에서 나음을 받았고 또한 그 영혼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추수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우리는 감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하여 이런 것을 한 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10명의 나병환자들보다 덜 은혜와 사랑을 받았는가 아니면 더 큰 은혜와 사랑과 복을 받았는가?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보다 덜 은혜를 받았습니까? 아니면 더 은혜를 받았습니까?

 

어느 분이 쓴 감사의 글을 들어보고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겨 살지 못하는 이 세상의 백만 명보다 더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한 번도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의 외로움이나 고문의 고통이나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5억 명의 사람들보다 더 나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체포, 협박, 학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를 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30억의 사람들보다 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의 냉장고 안에 음식이 있다거나 당신의 몸에 옷이 걸쳐져 있다거나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잠잘 장소가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인구의 75퍼센트보다 더 부유한 사람입니다. 통장이나 지갑에 돈이 있거나 집 어디인가 작은 그릇 안에 남는 동전들이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8% 상위권 안에 드는 부유층이며 두 부모가 아직 살아계시고 아직 이혼하지 않으셨다면 보기 드문 축복을 입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고개를 들고 얼굴에 미소를 띠고 감사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야말로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그렇게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10명의 문둥병자들보다 더 많은 은혜와 사랑과 복을 받은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병에서의 나음과 십자가의 은혜를 비교해 보십시오. 어느 은혜가 더 중요하고 큽니까? 십자가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더 큰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그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와 복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더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입술과 손에 감사가 메말라 있지 않습니까? 9명을 욕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아홉에 속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라인홀드 니이버 박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넣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 감사는 우리 안에 항상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글러라는 사람이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사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행복의 열매가 된다고 하면서 감사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감사로 행복에 이르는 길은 큰 것에 감동하고 놀라기보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라. 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감사를 찾아내라. 기적적인 일에 감사하기보다 매일의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라. 감사를 계속하다 보면 불평과 불만이 치료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감사는 감사를 불러일으키므로 감사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된다. 감사하는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지고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며 모든 일에 좋은 관계를 이루게 된다. 감사하는 순간 축복이 임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을 만방에 선포하는 감사의 선교사가 된다.”

 

사랑하는 소망교회 여러분들은 환경 때문에 감사하시고 소유 때문에 감사하시고 더 나아가서 신앙 때문에 감사하는 전천후 감사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으로 감사해야 될까요? 하나님이 지난 1년 동안 베풀어 주신 그 큰 은혜에 마음으로 감사하시고 입술로 감사하시고 물질로 감사하시고 나눔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더 큰 감사 거리, 더 좋은 감사 거리를 주십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있어도 감사거리가 없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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