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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03 <총독 벨렉스 앞에서의 바울> 이정현 목사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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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24:1-27절 개역개정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하반 없음)

7. 없음

8. (8상반 없음)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113일 사도행전 24:1-27 총독 벨릭스 앞에서의 바울

 

사도행전 24장부터 26장까지는 바울의 가이사랴 감옥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 흥미로운 정치인 세 명, 즉 벨릭스,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중요한 관직을 맡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동일하게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전해 들었지만 세 사람 모두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내려 온 바울은 줄곧 이곳에서 2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면서 이들 앞에서 재판을 받기도 하고 서로 교제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그의 이런 생활을 예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실 때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고 하신 말씀을 이곳 가이사랴에서 성취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곳으로 내려온 지 5일 만에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때 유대인들의 대변인은 더둘로였고 바울 편의 변호는 바울 자신이 맡아서 했습니다. 바울의 변호는 이번이 세 번째였습니다.

 

본 장은 유대 지도자들의 전문 변호인 더둘로를 통한 바울 고소(1-9)와 여기에 대한 바울의 자기변호(10-21), 그리고 총독의 재판 유예와 바울과의 대화(22-27)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순서대로 그 내용을 살펴봄으로 은혜받고자 합니다.

 

먼저 유대인들이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는 내용입니다(1-9).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1). 1절의 아나니아는 바울로부터 회칠한 담이여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이며 천부장으로부터 바울을 빼앗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가 난 아나니아가 장로들과 변호사(레토로스-rhetoros, 공술인-public speaker)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때 함께 온 더둘로는 직업적 변호사로 로마법이나 유대법을 꿰뚫고 있는 유능한 법관이었을 것입니다. 이가 앞장서서 바울을 총독에게 정식으로 고발한 것입니다. 더둘로가 고소를 제기하자 총독은 이를 수락했고 이제 바울은 소환이 되었습니다.

 

먼저 고소자가 고발 내용을 말합니다.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3-4). 더둘로는 각하로 말미암은 태평성대와 개선에 관하여 아첨하는 말을 합니다. 벨릭스는 애굽인의 반란을 진압했고 도적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입니다. 오히려 잔인무도했고 뇌물과 여색을 즐겼던 인물입니다. 역대 총독들 중에 가장 악독한 총독이었습니다. 그의 치세 기간 중 많은 폭동이 일어나서 치안이 불안했습니다. 그런데도 더둘로는 총독의 덕스러운 치세를 격찬하는 말로 서론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진술로 바울은 전염병이요 천하의 유대인들을 선동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요 성전을 더럽힌 자라고 고소한 것입니다(5-6). 여기의 염병은 삽시간에 다른 사람에게 옮겨져 모두가 죽음을 맛보는 병입니다. 더둘로는 바울의 복음 전파를 전염병으로 보고 바울을 그 전파자로 보아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가장 나쁜욕이 염병할 놈이었습니다. 결국 더둘로 변호사는 바울을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로 보아 첫 번째 죄목은 소요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로마의 관원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죄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결코 소요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킨 것입니다. 두 번째 죄목은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것으로 정통교리와 다른 교리를 붙잡는 파, 즉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죄목은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결코 바울이 그렇게 한 일이 없음에도 사실무근의 이야기로 고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둘로는 총독이 친히 심문하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옆에서 이 말이 옳다고 맞장구치고 있습니다.

 

다음은 더둘로의 고소에 대하여 바울이 변호하는 내용입니다(10-21).

 

바울은 벨릭스의 허락을 받아 변호를 시작합니다. 그는 간단히 총독에 대한 예의를 갖춘 후 몇 가지 내용으로 변호를 합니다. 먼저 바울은 소요에 대하여 전적으로 부인합니다. 나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갔으며 그리고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밖에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도착부터(21:17) 시작해서 벨릭스 앞에서의 재판까지가 13일이기 때문에 어제까지로 봐서 12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말은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가 12일밖에 안 되었는데 백성들을 선동할 시간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은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고소 내용에 대한 바울의 변호입니다. 여기 이단이라는 단어(haireseos)당파’, ‘파벌이라는 의미이며 이 단어에서 영어의 heresy(이단)가 유래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들이 말하는 나사렛 이단의 추종자임을 밝히나 자기는 도를 좇는 사람이지 이단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믿고 율법과 선지서에 기록된 것을 믿고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유대인들이 가진 것과 같다고 변호합니다(14-15).

 

그리고 세 번째 고소 내용인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에 대해서는 바울이 완강히 부인합니다. 그들의 고소 내용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17-18절의 말씀입니다. “17 여러 해 만에(4-5)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나는 예루살렘에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왔고 아시아와 유럽에서 거둔 구제금을 가지고 왔으며 정결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이 다 보았다는 것입니다. 언제 내가 성전을 더럽혔느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공회 앞에서도 옳지 않은 점을 말한 것이 없고 나는 그때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는 이야기만 했다고 진술합니다.

 

마지막 문단에는 총독의 재판 유예와 바울과의 대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22-27).

 

이처럼 더둘로의 고소 내용에 대해 바울이 논리정연하게 사실 그대로 변호하였고 이제 총독이 유, 무죄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재판의 결과는 분명히 바울의 무죄였으나 총독은 천부장이 오면 처결하겠다고 합니다. 이미 글라우디오 루시오가 바울의 무죄를 천명했고(23:29) 공회 역시 바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23:9) 변사 더둘로도 바울이 죄인이라는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총독은 여기서 무죄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연기한 것입니다. 총독은 판결을 연기하고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라고 했습니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자기 아내를 데리고 바울을 찾아왔습니다(24). 그의 아내는 유대 여자 드루실라라는 여자입니다. 드루실라가 유대 여자였기 때문에 총독이 하나님에 관한 것을 많이 들어서 익숙했을 것입니다. 드루실라는 헤롯 아그립바 1(야고보를 칼로 죽인 사람)의 딸이며 헤롯 아그립바 2세의 누이로, 당시 20세의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전 남편과 결혼 생활 1년 만에 이혼한 상태였고 후에 벨릭스와 재혼을 한 것입니다. 이들 부부가 바울에게 찾아와서 예수 믿는 도에 대하여 듣게 되었습니다.

 

이 권세자 부부 앞에서 바울이 강론한 것은 무엇입니까?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직설적으로 벨릭스 부부에게 가장 적당한 말씀을 강론했던 것입니다. 여기의 의는 칭의를 말하는데 곧 구원받는다는 의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절제는 성령을 힘입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마지막의 심판은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말하고 반대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소망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하여 강론했을 때 벨릭스는 두려워하며 바울을 물립니다. 이 벨릭스는 자객을 시켜 대제사장 요나단을 살해했으며 뇌물을 탐하는 자였고 남의 아내인 드루실라를 겁탈하여 강제로 빼앗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바울의 강론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뇌물을 좋아했다는 것은 26절 말씀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싶어서 자주 그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결국 죄 없는 바울을 감금시켜 두는 것은 뇌물을 받을까 해서입니다. 바울이 가지고 온 구제금을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그에게 친구가 많으니까 그들이 보석금이라도 모아서 가지고 올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모르긴 하지만 이 구절에서 탐욕스러운 벨릭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도를 듣고자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뇌물을 받으려고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하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야비하고 이리같이 교활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여기에서 바울이 벨릭스에게 뇌물을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이 쉽게, 일찍 풀려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세속적이고 악한 방법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가이사랴 감옥에서의 2년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한 주석가가 벨릭스의 이같은 모습 속에서 부자와 권력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첫째 그들은 스스로 삶을 제어할 수 있는 것처럼 과시함으로써 자신들의 불안을 감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두려워했지만 그는 자신의 일정을 조절하는 힘을 통해 불안을 털어 낼 수 있었습니다. 둘째 만족할 수 없는 탐욕이 부자와 권세자를 자주 조정하고 그들은 이 탐욕을 표현하는 편리한 방법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벨릭스는 의와 절제와 심판을 예고했던 사람 앞에서 뇌물을 바랄 정도로 탐욕에 눈이 어두워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는 정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유지하고 사회에서 번창하려면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기 때문에 실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메시지를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총독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를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환심을 사고자 했던 유대인들이 로마에 가서 그의 잘못을 고발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부자들과 권력자들도 성경 당시의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은 부의 속임에 대하여 부자들에게 경고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리스도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 세대의 부한 자들에게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고살아야 하겠습니다(딤전 6;17).

 

벨릭스는 우유부단한 태도로 뇌물을 받을 생각과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판결하지 않고 가이사랴 감옥에 무려 2년이나 가두어 두었습니다. 마지막 구절을 보십시오.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27). 바울의 가이사랴 구류 2년을 보통 주후 59-61년 사이로 봅니다. 바울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헤롯 왕궁 지하 감옥에 머물게 됩니다. 혹자는 바울이 2년 동안의 세월을 허송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이때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의 과로를 풀 수 있었고 또한 로마 전도 여행을 꿈꾸며 기도할 수 있었으며 그리고 누가와 많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이 시기에 바울을 통하여 사도행전을 쓰는 데 필요한 많은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벨릭스의 후임으로 보르기오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그는 벨릭스에 비해 선량한 정치가이며 고상한 인격과 온순한 성품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네로에 의해서 주후 60년에 유대 총독이 되었고 2년 후에 죽고 맙니다. 벨릭스는 도처에 일어난 소요들을 진압하지 못하여 유배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변사 더둘로를 앞세워 바울을 고소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아사랴까지 왔습니다. 그는 바울이 소요를 일으켰으며 나사렛 이단의 지도자이고 성전을 더럽힌 자라는 내용으로 고소를 했습니다. 세 가지 다 근거 없는 이야기이지만 아무튼 그들은 고소내용을 유창하게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따른 바울의 변호는 사실에 근거한 정직하고 바람직한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소요를 일으킨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이 말하는 이단의 도를 믿는 자이나 이단은 아니라고 강력히 변호합니다. 기독교가 너희들의 신관과 성경관과 내세관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덧붙여 합니다. 또한 너희는 내가 성전을 더렵혔다고 하지만 나는 결코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정결 의식을 행하고 있었던 것을 유대인들도 본 바라고 지적합니다.

 

결국 여기서도 바울은 적대적인 유대인 고발자들, 잘 훈련된 변호사, 공의보다 자기의 탐욕을 채우려는 냉소적인 재판관 앞에서 법적 능력과 인격적 진실성으로 자신을 잘 변호합니다.

 

이 같은 명백한 바울의 변호에도 우유부단한 벨릭스는 바울의 무죄를 판결하지 않았습니다. 헤롯 궁에 가두어 두고 가끔 바울을 불러다가 믿음의 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벨릭스는 부인과 함께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하여 바울의 강론을 듣고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울에게서 돈이나 받을까 해서 바울을 구류하여 둡니다.

 

바울은 자기변호의 기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파하였습니다. 벨릭스 부부 앞에서도 믿음의 도에 대하여 강론하였습니다. 결혼을 세 번이나 한 벨릭스와 멀쩡한 남편을 버리고 이와 재혼한 드루실라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강론을 바울은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세상적인 권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니면 우리가 법정에 서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를 공격하고 유능한 검사들이 우리의 죄를 지적한다면 그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든지 기꺼이 진실을 말하고 복음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과 새 생명과 소망을 분명하게 전할 용기와 담대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들 앞에서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말해야 합니다.

 

벨릭스 총독 앞에서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한 바울처럼, 우리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합시다.

 

 

 

찬송/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길

기도 제목/ 어떤 상황이나 어느 누구 앞에서도 복음의 향기를 드러내며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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