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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5 05 주일설교 <사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다. 이정현 목사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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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9:20-31절 개역개정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455일 사도행전 9:20-31 사울이 다메섹에서 전도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다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알았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다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도 신성을 모독하고 저주받아 죽은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또한 사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데 가담했던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집사였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증인들의 옷을 자기 발 앞에 두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어쩌면 스데반을 죽여도 좋다는 증인들의 좌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울은 그가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겼다’(8:1)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는 계속하여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서 가두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습니다”(8:3). 또한 다메섹에 올라간 것도 그 이유에서입니다. 예수쟁이들을 잡아 오라는 대제사장의 공문까지 받아서 그는 살기등등하게 다메섹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앞 부분에서,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교인들을 색출하여 잡아 오기 위하여 해외 출장까지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덕에서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기는 예수가 저주받아 죽어서 마땅히 지옥에 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 하늘나라에서 밝은 빛으로 자기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님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는 말씀을 듣고 바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지금까지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울은 완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아나니아의 안수기도를 통하여 건강이 회복되고 성령 충만을 받고 이제는 복음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미워하고 핍박하던 예수님과 교회를 전하고 세우는 자가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렇게 변화된 사울이 곧장 다메섹에 들어가서 전도를 하는 장면과 사도들과 교제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은 사울은 즉시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 합니다. 회당은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교육을 하던 장소인데 사울은 이제 이곳을 이용하여 전도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안드레는 그 즉시로 그의 형인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예수님을 전했고, 빌립이 예수를 믿고 곧장 친구인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전도하였습니다. 이것처럼 사울도 주님을 만나 변화 받은 즉시로 성안의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여기서 행한 바울의 설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즉 사울이 다메섹으로 올라올 때만 해도 그는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전파한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 되신다는 말은 예수가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시며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사울은 다메섹 사건으로 예수님에 대한 생각과 말과 행동과 신앙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기가 알고 믿게 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한 것입니다. 각 회당에 들어가서 동일한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듣던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20-21절에 보시면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사울의 변화는 순간적이었습니다. 그는 불과 1주일 만에 신자들을 대적하던 자가 이제 회당에서 예수를 가르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더 힘을 얻어서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했습니다. 더 힘을 얻었다는 말은 육체적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힘과 능력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한 것입니다. 그랬을 때, 유대인들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길에서 자기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전파하는데,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은 예수님이 구세주, 메시아라는 뜻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가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라는 뜻입니다. 이 둘을 하나로 묶으면 사울은 지금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은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의 역할을 하심으로 메시야이심을 선포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이런 말씀을 들었던 유대인들은 다 놀랐으며’(21), ‘당황스러워 했고’(22), 이제는 분노한 나머지 사울을 죽이겠다’(23)고 모의하게 됩니다. 그들은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다 사울의 추종자들이었으며 사울을 존경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고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여기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기독교인을 박멸하고 있으니 장래가 총망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완전 180도 바뀌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고 전파하고 있으니 당황하고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성난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 위하여 밤낮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로 사울을 바깥으로 피신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했으나 다메섹의 기독교인들은 사울을 빼돌려서 보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제의 동지는 지금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어제의 적은 오늘 동지가 되어 그를 지켜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복잡한 문제를 하나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9:22절과 23절 사이의 시간 차이와 25절과 26절 사이의 시간 차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7-18“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바울의 이 3년의 아라비아 피신 기간이 22절과 23절 사이에 들어가느냐 아니면 25절과 26절 사이에 들어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주석가들마다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23절의 여러 날이 지나매를 오랜 기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과 아레다 왕의 수하가 유대인과의 마찰을 없애기 위하여 사울을 체포하라고 했다면 3년 기간이 22절과 23절 사이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32-33(32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33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을 근거로 할 때도 이것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다시말해서 다메섹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무리들(아레다 왕의 신하+유대인들)을 피해 관리의 왕이 통치하는 아라비아 왕국으로 피해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아라비아로 피신한 3년의 기간은 22절과 23절 사이에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다메섹 도성에서 사도행전 9:22까지 설교를 하고 아라비아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3년 동안 지내고 다시 다메섹에 돌아와서 23절부터 25절까지의 사건을 당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간신히 피하여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메섹에서 도피한 사울은 회심한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를 주후 38년경으로 봅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예루살렘을 떠난지 3년이 경과 하였습니다. 사울의 1차 예루살렘 방문은 약 15일 정도 되었습니다(1:18). 그의 예루살렘 방문 목적은 사도들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과 교제를 갖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환영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비록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 기독교인들은 사울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울을 박해자로 기억하고 회심자로 기억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바나바가 나서서 사울과 예루살렘의 제자들 사이를 잘 연결시켜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제자들의 불신을 만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울을 위해,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난 것과 주께서 그에게 분부하신 말씀과 그가 다메섹에서 담대히 전도한 사실을 사도들에게 상세히 입증해 주었습니다. 27절 제일 마지막 단어인 말하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원뜻은 상세하게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사울에 대하여 사도들에게 건성으로 대충 말한 것이 아니라 상세하고도 구체적인 설명을 열정적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울은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과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1:18-19).

 

이렇게 하여 사울은 자유롭게 예루살렘을 출입하면서 사도들과 교제할 수 있었고 또 주 예수를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복음에 관하여 변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들은 사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이미 다메섹에서도 일어난 바 있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헬라파 유대인들은 못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도 보면 자기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제외되었다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원망과 불평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입에 늘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것 같고 본문에서는 논쟁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복음은 논쟁의 주제가 아니라 믿고 받아들여야 할 주제인 것입니다. 이들이 사울과 논쟁을 하다가 불리하거나 지니까 억울해서 이제 사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2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그래서 바울이 위기와 위험에 처한 줄을 알고 형제들이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려가서 그곳에서 다소로 피신을 시킵니다. 여기의 가이사랴는 북쪽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가 아니라 지중해 근방에 있는 항구 가이사랴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소까지는 육로도 있고 해로도 있는데 아마도 해로로 바울을 이송시켰던 것 같습니다. 다소는 사울의 고향입니다(9:11). 이제부터 그는 이곳에 깊이 묻혀 있으면서 자신의 신앙을 정비하고 훗날 하나님의 일을 준비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고향이니까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1:21-23).

 

사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자기의 고향인 다소로 가게 된 것은 비단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주님의 환상을 보고 떠났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22:17-18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주님이 속히 이곳을 떠나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울이 예루살렘을 피하여 고향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회심 이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15일 간 머물다가 자기 고향인 다소로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장장 10년 동안 머물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1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 때가 14년 후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가 다메섹에서 변화가 되어 아라비아에 3년을 유하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와서 그곳에서 1차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15일을 머물렀고 곧장 다소로 갔다가 그곳에서 10년 동안 체류한 이후, 바나바의 권고로 안디옥에 와서 1년을 가르치고 2차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4년 후에 동역자인 바나바와 영적 아들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사울은 자기 고향에 10년 동안 머물면서 영적으로 무장하고 경건 생활에 전념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31절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 갔다고 하였습니다. 팔레스틴의 아래쪽이 유대 지역이고 그 위쪽이 사마리아이고 그 위쪽이 갈릴리인데 이런 지역에 흩어진 교회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는 것입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는 말에는 박해와 핍박이 수그러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를 잔멸하려는 일들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가 칼리귤라(주후 37-41년 재위)인데 이 황제가 자기의 형상을 각지의 신전에 안치해 놓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도 그의 통치 하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의 예루살렘 성전에도 칼리귤라 황제의 흉상을 갖다 세워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용납하지 않고 결사반대 해서 소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41124일에 황제가 갑자기 암살되므로 그 문제가 일단락 되었습니다. 권력 싸움으로 정치가 혼란하다 보니 로마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일차적인 목적은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창조와 구속의 목적이 예배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제일로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후원으로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수가 더 많아지니라는 말씀은 수적인 증가로 외적 부흥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120명으로 출발을 해서 500명으로 늘어나고 3,000, 5,000명으로 늘어나서 이제는 믿는 자의 수가 더욱 더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같은 부흥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후원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결론

 

본문은 예수님을 만난 사울이 곧장 다메섹 성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 것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도들과 교제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한두 가지 교훈을 찾고자 합니다. 먼저는 주님을 믿고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곧장 복음 전도자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갑자기 주님이 만나주심으로 즉각적으로 회심하여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 이후 그는 세례를 받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로 그는 복음 전도자로 나섰던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는 잠잠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께서 주장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고 느끼고 받고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울처럼 주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한 복음 전파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의 교훈은 교회 안에는 사울 같은 사람도 필요하지만 바나바와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재산을 바쳤던 헌신자입니다. 뿐만아니라 그 이름 뜻처럼 위로’, ‘격려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그를 가리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일평생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위로와 격려의 사람이었듯이 우리도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면 바나바는 그의 동역자로서 위로와 격려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들을 생각하면서 자기 임무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는 목사의 직무, 장로는 장로의 임무, 안수집사는 안수집사의 일, 권사는 권사의 사명, 교사는 가르치는 일, 각부서의 부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충성을 다하면 그 교회는 건강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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