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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1 22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이정현 목사 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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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22:34-40절 개역개정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3115일 마 22:34-40,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1월의 주제가 사랑입니다. 지금까지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한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독생자까지 주심으로 영생을 얻게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그 사랑은 어떤 피조물이라도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3주 동안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측량할 수 없는 지고한 하나님의 사랑을 살펴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숭고한 사랑에 대하여 성경 몇 구절을 통하여 살펴본 것입니다. 이런 것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부터 두 주간에 걸쳐서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제는 우리가 그 성품을 본받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의 성품을 듣고 배우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우리가 실제로 사랑하며 살 때에, 그때서야 비로소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배웠으면 이제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사랑해야 대상이 누구이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겠습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뿐만아니라 마가와 누가복음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면밀하게 살펴볼 때에 성도가 누구를 사랑해야 하며 어떻게, 어느 정도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경청하시므로 깨닫고 은혜받고 실천할 수 있는 소망의 식구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리 사랑이며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하나님의 사랑도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우리에게 먼저 사랑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 사랑은 자기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희생적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이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흘러 내려왔고 또한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신 희생적인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관계는 영원불변의 관계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이 관계를 깰 수도, 무효화시키지도 못하며, 끊을 수도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5-39).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이 사랑의 관계가 한번 맺어지기만 하면 그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율법사가 나오는데 이는 유대교의 회당을 관리하던 사람이며 뿐만 아니라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며 이들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었고 율법 준수를 강조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를 시험하고자 예수께 찾아와서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경 중에 율법이 적어도 613개 있다고 자기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많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제일 큰지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질문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가 이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를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런 애매한 질문을 해서 알지 못할 때 망신을 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이 명확하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1.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

 

첫째 되는 계명의 내용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신명기 6:4에서부터 9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 구절이 들으라라는 명령형 동사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것을 쉐마라고 합니다. 쉐마에 해당되는 이 말씀은 한분 밖에 안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인데, 너희들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도 잘 가르쳐서 이 말씀을 지키도록 하고 네 몸에나 집에다가 이 말씀을 잘 부착하여 항상 교훈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 말씀을 듣고 눈이 시릴 정도로 이 말씀을 보고 읽는 것입니다. 딸딸 외우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실 이것보다 더 좋은 교육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고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봅니다.

 

이 말씀이 신약에 와서 주님이 율법사의 질문에 대답하시며 다시 부각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인생들이 해야 할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중요한 사항은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크고 첫째 되다는 말은 그 필요성과 범위와 지속성에 있어 최대일뿐더러 그 성격과 순서와 시간과 증거에 있어서 첫째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계명이야말로 주님이 여기시는 최고와 최선의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까?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신명기 6장에서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라고 되어 있고 본문에서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로 되어 있고 마가복음 12:30에서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마다 약간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그 의미만큼은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온 마음을 다하고 내 모든 표현을 다하여 내 삶의 모든 에너지를 다 동원하여 내 전 인격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것보다 더 간단한 표현은 전심전력하여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이렇게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시하게 쩨쩨하게 적당히 사랑하지 말고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순도 100%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만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구원주이시며 환란 중에 만난 큰 도움이시고 영원한 선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같은 다른 신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이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어떤 나라의 법도 왕을 사랑해야 된다고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인 알렉산더 대왕을 그처럼 흠모하고 사모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을 사랑하라는 법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습니다. 그런가하면 몽고 사람의 피에는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이 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기스칸을 사랑하라는 글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만을 전심전력으로 제일로 사랑해야 할까요? 세상의 각종 우상은 헛된 것들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 우리의 아버지를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계명 중 1-4계명은 한 마디로 하나님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1)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2)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3)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20:1-11). 이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전심전력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거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런 사람은 1-4계명까지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 여려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둘째 되는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

 

여기서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주님이 밝혀주셨듯이 강도 만나서 고통 중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우리의 도움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을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만을 말하지 않고 영적으로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까지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못 먹고 못 배우고 헐벗고 소외당하고 질병으로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내 이웃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탄과 더러운 귀신으로부터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의 이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네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 있어서,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영혼의 이웃이 있는데 우리 영혼의 이웃은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주님의 몸인 교회(1:18)를 사랑함이 이웃사랑 중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육신의 이웃이 있는데 우리 육신의 이웃은 가정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생업의 이웃이 있는데 우리 생업의 이웃은 직장이라고 했고 마지막은 생활의 이웃인데 이는 우리들의 마을이라고 했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가까이 사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이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우리는 우리의 이웃인 교회와 가정과 직장 동료와 동네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셨나요?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최고로 사랑할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로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끔찍하게 사랑합니다. 얼마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을 사랑합니까? 건강에 좋고 정력에 좋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태국에까지 가서 곰을 잡아먹고 뱀까지 잡아먹겠습니까? 아마 지구상에 뱀을 수입해서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몸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실제적으로 사랑합니다. 철학적으로 자신의 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철학적으로 자신의 몸을 사랑하면 배가 고파서 죽고 맙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합니다. 졸음이 오면 자야합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체력이 떨어지면 운동을 합니다. 몸이 조금만 불어도 밥을 안 먹습니다. 돈을 들여가면서 수영도 하고 에어로빅도 합니다. 테니스도 하고 등산도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자신의 몸을 예쁘게 하기 위해서 성형외과를 찾아가서 수술을 받습니다. 속 눈썹도 달고, 희미한 사람은 아예 그곳에 진하게 문신도 새겨 넣습니다. 들창코 납작코도 최명길 씨의 코처럼 만들어 놓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운동을 하고 좋은 보약을 먹고 몸을 가꾸고 돌봅니까? 다 이게 뭡니까? 자기 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실제적으로 몸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이웃을 사랑하되 실제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내 몸을 사랑하듯 실제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사랑하기에 수백만 수천만원의 돈을 투자하고 수백만원의 돈을 들여 수술을 받고 자기 몸의 건강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자기의 시간과 물질과 힘과 재능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이웃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말로만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시간을 드려야 하고 물질을 써야 하고 힘과 재능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이웃사랑을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수입니다.

 

앞에서도 10계명을 말씀 드렸지만, 이웃사랑과 관계된 계명은 5-10계명입니다. ‘5)네 부모를 공경하라, 6)살인하지 말라, 7)간음하지 말라, 8)도적질하지 말라, 9)네 이웃에게 거짓증거 하지 말라, 10)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1-4계명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그런 사람은 5-10계명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이웃에게 거짓증거 하지 않고 이웃의 집을 탐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다고 말하면서 이웃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고 거짓말로 손해를 입힐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은 이웃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둘째 계명과 첫 번째 계명 사이의 관계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되고요 또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의 신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넬료는 온 집안으로 하나님을 잘 경외한 사람이었고 항상 기도하고 구제에 힘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넬료의 신앙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이웃사랑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웃사랑 행동이어야 합니다. 또한 이웃을 이처럼 사랑하는 것을 볼 때에 아 저 사람은 하나님도 저처럼 사랑할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씀도 기억해야 합니다. 강도 만난 불쌍한 사람을 돌아보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겁니다.

 

요한일서 4:20-21에도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반드시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에서 주님은 이 두 가지 계명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이요.’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약 전체의 율법을 613개라고 주장하며 이것을 10가지로 요약한 것이 10계명이라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이 이 10계명을 둘로 요약하여 1-4계명까지는 하나님 사랑하라는 것이고 5-10계명까지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요약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두 방향 즉, 하나님과 이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이요 선지자의 강령이라는 말은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 전체를 이루는 것이고 또한 모든 선지자들이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된 메시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대상과 방향을 정확하게 정해 주셨습니다.

 

어느정도 사랑해야 합니까?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몸과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예로서 우리에게 십계명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1-4계명까지를 잘 지키게 될 것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5-10계명까지를 잘 준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10계명을 잘 준수하는 사람이고, 또한 이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잘못된 신앙이고, 반대로 이웃은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틀린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으로 이웃을 지극정성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8:17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 사랑을 더 풍성히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한마디로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이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 율법사의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큽니까?’라는 질문에, 주님이 답변하신 것을 잘 기억하고,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입니다.

 

소망의 모든 식구들은 첫째와 둘째 계명을 잘 지키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따라하겠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당신도 사랑합니다.”

 

 

찬송/ 314, 서로 사랑하자(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기도제목/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내 자신같이 사랑하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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