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목사설교

  • 홈 >
  • 예배 · 설교 >
  • 이정현목사설교
이정현목사설교
2022 07 31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이정현 목사 2022-07-31
  • 추천 0
  • 댓글 0
  • 조회 496

http://isomang.net/bbs/bbsView/13/6122894

[성경본문] 누가복음15:1-7절 개역개정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5:1-7,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누가복음 15장은 예수님의 세 가지 비유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비유는 100마리 가운데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말하고(15:1-7), 둘째 비유는 한 개의 드라크마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여인에 관한 비유이고(15:8-10), 셋째 비유는 앞의 비유보다 더 길게 기술이 된, 소위 탕자의 비유입니다(15:8-10).

오늘 제가 정한 본문은 1-7절까지의 첫 번째 비유의 말씀이지만, 오늘 이 시간의 설교는 세 가지 비유 전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 비유 중에서, 저는 세 가지 공통점을 찾아서 설명함으로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가지 비유 가운데 첫 번째 공통점은, 하나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나가 있습니다. 본문의 잃다라는 말은 아폴뤼미인데, 이 말은 양이 연약하고 무지하고 미련하여 목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양떼에서 벗어나서 방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00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4). 어떤 여자에게 10개의 드라크마(고대 그리스의 화폐단위)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개를 잃어버렸습니다(8).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둘째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이 둘째는 자기의 재산을 다 챙겨서 집나갔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24절과 마지막 구절에서 아버지는 분명히, ‘내가 잃었다가 얻었다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이 아들도 잃어버린 하나입니다(32).

하나를 잃어버린 것은 분명한데, 어떤 사람은 100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고 어떤 사람은 10개 중에 하나를, 또 다른 사람은 2개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똑같은 하나이지만, 거기에는 가치와 소중함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보다 드라크마가 더 중요한 가치가 있고 드라크마보다 사람이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 비유에서 점차적으로 더 중요하고 귀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함으로,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한 사람이 다른 그 무엇보다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주인에게 있어서 그 하나는 다 소중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궂이 비교하여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따지자면, 그것은 잃어버린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잃어버린 하나, 잃어버린 한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재물을 모아서 먼 나라로 가 버린, 잃어버린 한 사람은 예수를 믿다가 시험에 들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낙심해서, 지금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버지를 멀리 떠난 사람이거나, 하나님의 선택함은 받았으나 아직 주 앞에 나오지 않은 불신자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본문을 근거로 말하면, 1절에 나와 있는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보통 죄인으로 취급하는 간음하는 자, 속이는 자, 세리 목자, 행상인, 피혁공 등등을 말한다고 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잃어버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믿다가 낙심한 사람도 많고 시험에 들어 쉬고 있는 사람도 많고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이 있고 여전히 죄악 속에 파묻혀 사단의 종노릇하며 살고 있는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1년에 천명을 전도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1년에 70명을 전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달에 한명씩 전도해서 년 12명을 전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정도는 못해도 1년에 1명은 전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목표를 각각 한 명만 잡아 봅시다. 잃어버린 이 한 명을 전도하는 목표를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수십 명을 전도하는 목표를 세우는 것도 좋겠지만, 올해는 기본적으로 평균적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명씩만 전도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위에 분명히 잃어버린 한 명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가족 한 명이 없을까요? 잃어버린 친구 한 명이 없을까요? 잃어버린 이웃이 한 명 없을까요? 우리 주위에도 분명 잃어버린 한 명이 있을 것입니다.

세 가지 비유 가운데 두 번째 공통점은 모두가 잃어버린 하나를 힘쓰고 애써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를 소중한 것으로 여깁니다. 비록 그들이 불안에 떨고 있고 상처 나고 근심 걱정하고 아파하고 낙심하고 우울해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한 사람은 소중한 것입니다. 아흔아홉도 소중하지만 하나도 큰 가치를 둡니다. 그래서 열심히 찾아 나섭니다. 찾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는 것입니다(4). 8절에도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드라크마 열 닢을 줄에 꿰어서 사랑의 증표로 주면 여자는 그것을 머리에 장식을 하고 다닌답니다. 열 개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장식구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긴답니다. 그러니까 결혼한 여자에게 있어서 열 드라크마는 결혼반지처럼 돈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렸으니 등불을 켜고서 찾을 때까지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비유에서는 비록 아버지가 집나간 아들을 열심히 찾았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나와 있지 않지만, 정황적으로 봐서는 부지런히 찾았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의 자식이 재산을 다 챙겨서 가출을 했다면 여러분은 배신감도 가질 수 있을거고 깊은 실망감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가출한 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궁금 정도이겠습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나중에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고 찾지 않겠습니까? 여러 날 찾아다니다가 못 찾으면, 그때부터는 집안의 문도 잠그지 않고 음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혹 남자들은 화만내면서 이놈의 자식 들어오기만 해라, 자식 하나 없는 샘 칠거야-그러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습니다. 식음을 전패하고 찾고 기다릴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그 마음으로 이런 자들을 찾아나서야 하겠습니다. 백방으로 뛰어 다녀야 합니다. 부지런히 찾아나서야 합니다.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내가 찾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는 긴박한 마음으로 찾아야 합니다. 언제까지 찾아야 합니까? 찾아낼 때까지 찾는 것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속히 준행해야 하겠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가서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신 주님의 심정으로 잃은자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가시에 찔리고 상처 나고 모욕을 당해도, 잃은 한 마리 양을 마음에 품고 찾는 것입니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찾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국내 뿐만아니라, 외국에서도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선교사님 9가정을 파송하였습니다(대만, 일본, 키르키즈스탄, 인도, 멕시코, 필리핀, C). 우리 교회도 경제적으로 어렵지만은 많은 기도와 물질을 드려서, 저들이 잃은 양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공산권, 이슬람권, 흰두권과 각 종 우상의 소굴에서도 한 사람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방문했던 키르키즈스탄 선교지의 조용진 김희진 선교사님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전도하여 그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하여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로 잘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 10여 명의 청년들이 중앙아시아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들로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

 

세 가지 비유 가운데 세 번째 공통점은 잃어버린 하나를 찾았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이 크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이렇게 말합니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6)

 

그리고 잃은 드라크마 하나를 찾았을 때의 기쁨은 9절에서 말합니다.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또한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의 기쁨은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는 말씀에서 나타나고, 계속해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라는 말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풍악을 울리고 춤추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이 성경의 핵심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중심 메시지가 목자와 여인과 아버지의 기쁨에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너무 기뻐서,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온다고 했습니다. 양은 끌고와야 하는 동물인데, 어깨에 둘러메고 온다는 것은 그 양의 가치와 찾은 기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중동지방의 양에게는 지독한 역겨운 냄새가 나기 때문에 가까이만 가도 다 토할 정도랍니다. 그러나 목자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친구들과 이웃을 초청하여 함께 잔치를 벌입니다.

주님은 각 비유에서 거의 동일한 결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7, 10, 32절에서 한 사람이 회개하여 돌아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 하늘의 기쁨은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가 하나님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사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3:17).

우리가 전도하여 한 사람이 회개하여 돌아오면, 하나님이 이렇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전도에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여기에 있습니다. 읽은 하나를 찾았을 때, 목자와 여자와 아버지는 동일하게 기뻐하였는데, 이 개인의 기쁨이 한 공동체의 기쁨으로 이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목자도 양을 어깨에 울러 메고 집에 들어와서 자기의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모아서 함께 즐겼으며(6), 한 여인도 마찬가지로 그리했고(9), 아버지도 살찐 송아지를 잡은 것과 풍류와 함께 모여 춤추며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분명 이웃들을 초청하여 함께 즐거워하였다고 봅니다. 잃어버린 하나를 찾았을 때, 그 기쁨은 주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 공동체의 기쁨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적용을 해 보면 지난주에 교회에 등록한 새가족들이 4명이었습니다. 그러면 네 명의 귀한 분이 우리 교회에 나와서 등록을 하고 우리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기쁜 소식입니다. 4명 중에 누가 전도하여 오시게 되었다면, 전도한 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감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전도한 그 기쁨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온 교회의 기쁨과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4명이 누구의 전도를 받아서 소망교회에 등록을 했다는 것은, 전도자뿐만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과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여 등록시키는 일에 무관심해서도 안되고, 시큰둥해서도 안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이 일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정말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청년 때 영등포 역에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이니까 롯데 백화점같은 것이 없었고 지하도가 있었고 전철은 지하층에 출입구가 있었습니다. 저녁 때즘 되어서 지하도로 내려가는 그 입구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젊은 청년이 그 지하도에서 힘없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저 청년에게 전도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5분만 시간을 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승낙을 받고, 거기에 서서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던, 4영리의 전도 책자를 꺼내서 1원리에서 4원리까지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하시겠느냐고 물었더니, 예수님을 믿겠다고 해서 영접 기도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청년이, ‘사실 자기는 인천에 사는데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영등포 역에 내려서 걸어서 한강에 가서 투신자살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살 이유가 생겨서, 저쪽으로 가지 않고 이쪽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인천방향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그 청년이 고맙다고 하면서, 다시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너무 기뻤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을 오늘 나에게 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앙생활 잘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기도를 한 후 하늘을 쳐다보니까 초 저녁 별이 떠 있는데, 그 별이 나를 향해서 반짝 반짝 거리는데, 마치 하나님이 정현아 너 참 잘했다라고 칭찬해 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러분, 전도하면 자기도 기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처럼 기뻐하십니다. 그 한 사람 지금 50대 후반 정도 되었을 텐데, 어떻게 신앙생활 하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결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지상에 계실 때 주님은 그 사명을 감당하셨고 이제 우리를 통하여 그 일을 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받아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주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며 잃은 자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인 엘머 타운즈라는 사람이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처음에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유형별로 연구했답니다. 달리 말해 누구의 전도를 받고 나왔는가라는 것입니다. ‘친구나 친지를 통해서 나오게 된 사람이’ 86%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조직적 복음 전도를 통하여’ 6%, ‘목회자를 통하여 나오게 된 사람이’ 6%, ‘광고를 통해 나온 사람2% 정도였답니다. 그러니까 가장 효과적인 전도의 대상은 친구와 친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친구와 친지에게 열심히 전도하여, 올해는 기필코 좋은 전도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약 잃어버린 자를 열심히 찾아 나서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면, 어떤 결과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1)내가 삽니다. 전도는 다른 사람도 살리지만 내가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도가 영적 운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도하면 육체적으로도 건강해 지고 영적으로도 근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우리에게도 기쁨이 있고 영적 만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2)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주님이 마지막 대 명령을 하시면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28:19-20)고 하셨는데, 전도하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심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난다’(12:3)고 하셨음으로, 하나님이 전도자를 영적 스타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많은 은혜와 복을 주시고, 전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높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혹시 이 세상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하늘에서는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올해는 전도를 많이 해서 이런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라고 전도한 사람도 기뻐하고 교회 공동체도 함께 기뻐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그 날(사망의 그늘에 앉아)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2022 07 31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운영자 2022.07.31 0 528
다음글 2022 07 24 그리스도의 향기 운영자 2022.07.24 0 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