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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7 17 빌립집사의 전도 이정현 목사 20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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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8:1-8절 개역개정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경본문] 사도행전8:34-40절 개역개정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8:1-8, 34-40, 빌립 집사의 전도

 

사도행전 7장의 내용은 굉장히 길지만,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스데반의 설교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순교하는 장면입니다. 초대교회의 7곱 집사 중 한명이었던 스데반은 공회원들 앞에서 유명한 설교 한편을 하고 죽게 됩니다.

 

그는 성령에 충만하고 은혜와 믿음이 충만했으며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였던 인물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아주 귀한 분이며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는 공회원들의 분노 앞에 순교의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교회는 평신도 그룹에서 가장 귀한 한 인물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 이어 오늘 본문인 8장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교회는 더 심한 핍박을 받게 되지만 그 가운데서 복음이 사마리아까지 전파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환란과 핍박 중에도 복음이, 인근 지역에 널리 널리 전파되었고, 저 멀리 에디오피아까지 전파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자, 외부적으로 볼 때 교회가 부흥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나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교회에 핍박이 일어나자, 교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1절에,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말씀이 나옵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맞물려, 사울이라는 사람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던 사울입니다.

 

그는 유대에 일어난 핍박의 주동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 핍박의 특심한 자가 사울이 됩니다. 이는 3절의 말씀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가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다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의 지성인이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율법의 이론자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무식한 박해자가 아니라, 논리적이며 이지적인 박해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훨씬 무서운 박해자인 것입니다. 조직적이고 이론적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박해는 그렇지 못한 자의 박해보다 훨씬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는가 하며는, 결국 복음 때문에 당한다는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그리스도 때문에, 진리 때문에, 교회 때문에 당하는 핍박이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그 예수님을 전파한다는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핍박과 환란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잔인해지고 조직적이며 전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을 믿고 전하다가 이처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외치고 가르치다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진리를 말하다가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앙을 지키다가, 이 사실을 전하다가 매 맞고, 재산을 빼앗기고 쫓겨나고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흩어지는 역사는 결국 복음의 확산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지면서, 가슴에 복음을 안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통하여 흩어짐의 역사가 나타나므로, 오히려 복음이 더 힘차게 증거 되었습니다. 핍박과 환란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이제 사마리아 지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를 박해해도 복음의 생명력은 더 강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또한 복음의 생명력은 점차 유대주의를 극복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에 국한되지 않고 이제는 그 울타리를 넘어 사마리아 지역까지 가게 됩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빌립이 전파했던 내용의 주제는 그리스도입니다. 그 설교와 표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영적 문제뿐만 아니라, 육적인 문제도 해결 받았다는 말입니다. 결국 빌립에 의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됨으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게 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이 같은 역사는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며, 그 역사로 복음이 전파되면 거기에는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기쁨을 주지만, 성에도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사로잡혀, 어두움과 시기와 분노와 다툼만 있었던,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켜 기쁨이 넘치는 성이 되게 하였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에 의해서 사마리아는 혼혈족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이 찍힌 지역이었습니다. 유대인과 서로 상종하지도 않았고, 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한 사람의 전도자 빌립 집사님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복음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 절에서 언급된 소외된 불구자들의 쾌유와 악령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온 성의 기쁨은 복음이 수용된 곳에서 일어나는 마땅한 결과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1:8) 복음이 전파되어 놀라운 결과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성도 한분 한분이 현대판 빌립이 된다면, 배곧과 시화성 안에도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2000여명의 소망교회 성도들이 각자 있는 처소에서, 한두 사람에게만 복음을 전하여 전도를 한다면, 분명 이 성안에는 복음으로 인한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 전도는 한 개인이나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분명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일을 목표로, 이번 3/4분기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복음전파로 인하여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26절 이하에서 또 다른 새로운 선교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빌립이 성령의 지시를 받아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에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국경을 넘는 전도 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초자연적 능력이 가시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은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전도 길을 떠납니까? 빌립은 주의 사자의 지시를 받았는데, 이때의 주의 사자는 성령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립에게 지시하는 자가 주의 사자에서(26) ‘성령으로 바뀌어 언급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26절은 빌립에게 가시적으로 천사가 나타났으나 본 절은 음성이나 영감을 통해 명령이 주어졌기에 누가가 성령이란 표현을 사용했을 것으로 봅니다.

 

다음은,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현현(顯現)주의 사자가 나타난 것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다는 유대인들의 사상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립에게 내려가라고 지시한 사자나 본문의 성령은 동일한 분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은 자기 마음대로 전도지를 결정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지시를 받아 전도하러 가는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하니 그 길은 광야라”(26). 예루살렘에서 가사까지의 거리는 약 70km 정도이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도중의 중요한 길목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은 보통 두 개가 있었는데 북쪽 길은 해안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고 서쪽 길은 헤브론을 통해 내려가는 사막 길인데 아마도 빌립이 이용한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지금 빌립은 사마리아에 있기 때문에 사마리아에서는 가사까지가 더 험난하고 멀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 멀고 험한 길을 성령의 명령과 인도를 받아 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의 종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내시가 읽고 있었던 성구는 이사야 537-8절이었습니다. 성령의 지시로 병거 가까이로 다가가서 읽는 것을 깨닫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내시가 중요한 말을 한마디 합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가르치는 자, 즉 성경 교사가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느냐는 말로, 성경 교사의 필요를 제시하는 말입니다.

 

내시는 빌립을 마차 위로 청하고 자기가 읽고 있었던 성경을 제시하며(53:7-8의 자유로운 인용) ‘도대체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은 누구를 가리키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빌립은 성경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됩니다. 중요한 말씀이 35절에 나타납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그 말씀은 선지자 자신을 가리킨 것도 타인을 가리킨 것도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 53장 뿐만아니라 구약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내는 것입니다(24:27, 44). 빌립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성경을 풀어 예수를 가르친 것입니다.

 

여기서 빌립은 집사이지만 당시 유대인으로서 성경을 잘 알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내시에게 접근했을 때 내시가 읽고 있었던 성경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성경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성경을 뒤적이며 저 본문이 어디 있지, 또는 주석을 찾아서 저게 무슨 뜻이지 이렇게 알고 해석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본문이라고 할지라도, 듣고 알 수 있는 능력과 그리고 그 본문을 근거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씀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성경을 풀어 헤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자는 적어도 빌립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해야 합니다. 빌립은 교역자가 아니라 안수집사인데, 집사가 이정도였다면 우리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의 이 같은 전도 결과로 내시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고백(구원) 이후에 받는 것임으로, 말씀을 듣고 예수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부흥을 뒤로하고 이 광야까지 성령이 내 모신 목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모하는 영혼을 만나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8장 마지막 두 구절은 많은 것을 상상케 하는 말씀입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39-40). 내시는 기쁘게 자기 길을 갔지만 빌립은 주의 영이 이끌어 갔습니다. 그리고 아소도에 갔다 두었습니다. 가사에서 아소도(가사와 욥바의 중간위치)까지의 거리는 약 34km 정도되는 상당히 먼 거리를 성령님이 순간 이동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또한 여러 성을 다니며 전도하다가 가이사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빌립에 관한 기록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다가 사도행전 21장에 가서야 그에 관한 마지막 기사가 나타납니다(21:8-14). 바울의 제3차 마지막 전도 여행 때에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의 집을 방문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때까지도 빌립은 이곳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네 명의 딸을 영적으로 잘 키운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론

스데반의 순교 이후 핍박으로 인하여 교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핍박을 피하여 간 것이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각 곳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유대 윗 지역이며 갈릴리 아랫 지역이었던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 빌립입니다.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대단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온 성안에 기쁨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갑자기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서, 부흥하고 있는 사마리아를 뒤로하고 광야 길로 가게 됩니다. 영문도 모르고 갔지만, 그곳에는 예비 된 한 영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 정도로, 사모함과 열정이 있었던 에디오피아의 높은 관원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을 때, 그가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설에는 그 내시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여왕에게 전도하여 여왕을 믿게 했고, 여왕은 나라 전체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위하여 한 사람 빌립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사마리아 지역의 첫 선교사 빌립을 누가 인도하시고 사용하시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빌립의 역사를 바라볼 때에는 항상 그와 함께 역사하셨던 성령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명하였으며(8:26).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셨으며(8:29)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갔다(8:39)고 했습니다. 이 성구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령님은 전도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로 부르시는 분, 전도의 강한 도전자, 전도의 인도자, 입에 말씀을 주시는 분이 바로 주의 사자, 즉 성령이십니다. 선교의 주체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도는 그 분에게 겸손히 순종하며 쓰임을 받는 것뿐입니다. 이럴 때, 거기에 놀라운 구원의 결과가 있게 됩니다. 핍박 중에도 성령께서는 전도자를 통하여 복음의 역사를 계속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교에서 설교학 시간에 설교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학생이 처음 실습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순서가 되어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긴장이 되어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어떨결에 입을 연 그는 여러분,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모든 청중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 학생은 여러분이 모르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하고 내려왔습니다.

노발대발한 교수는 다음 시간에도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또 할 말을 잃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학생들이 웃으면서 다 압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그 학생은 여러분이 다 아는 것을 제가 말할 필요는 없지요라고 말하고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 화가 난 교수가 그 다음 시간에도 다시 그를 강단에 세웠습니다.

다음날 강단에 올라간 이 학생은 또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제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아십니까?” 이때 학생들은 웅성웅성 하면서 안다는 학생도 있었고 모른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 때 이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 주십시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이 말이 그 학교의 전도 표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아는 사람은 예수를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를 전해 주자.” 이것이 전도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빌립 집사님이 박해 중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 안의 사람들과 성 밖의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고 큰 기쁨 중에 살아가게 했던 것처럼, 예수님을 알고 믿는 소망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모쪼록 한 사람이라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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