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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 26 성도다운 성도 이정현 목사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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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전서4:7-11절 개역개정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제공: 대한성서공회

벧전 4:7-11, 성도다운 성도

 

9월의 주제는 다움회복입니다. 그래서 첫째주에는 목사다운 목사’, 둘째주에는 장로다운 장로’, 셋째주에는 집사다운 집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이어 오늘은 베드로전서 4장의 말씀을 근거로, ‘성도다운 성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교회의 일꾼들 가운데, 특정인에 대하여 말씀을 전한 것이라면, 오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이 말씀을 들어야 하고, 자기의 삶에 적용시켜야 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인 베드로전서는 베드로 사도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대부분 신앙 때문에, 환란과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로마의 핍박으로 인하여, 순교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 편지의 수신자들, 또는 독자들의 이같은 상황을 기억하며,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성도다운 성도는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목사로 사는 것, 장로로 사는 것, 그리고 안수집사로 사는 것도 중요하고 가치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삶은 성도답게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 장로, 안수집사라는 자격을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지만, 성도라는 이름으로는 천국에 못 갈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주제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성도다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7).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여기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궁극적인 마지막이 임박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한 인류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적인 마지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앞에 만물의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아서, 우주적인 종말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의 마지막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파괴되고 멸망하고, 심판받을 때가 가까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실 날이 임박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까이 왔다는 말은, 시제가 완료시제이기 때문에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거나, 기약이 없는 가상의 일이 아니라, 곧 일어나게 될 임박한 것이며, 확실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박해를 받고있는 성도들에게 이것을 알려줌으로, 곧 다가올 그 날을 대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대비책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정신을 차리고 지금 즉시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기도하기 위하여 각별히 정신차리고 있으라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기도 중에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말을 앞뒤로 바꾸나 바꾸지 않으나, 그 의미는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독자들이 환경에 따라 요동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잘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을 흔히 말세다, 또는 종말이 가까이 왔다라는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는 말로도 표현을 합니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만 보더라도 말세가 된 것 같습니다. 과거보다 더욱더 잔인한 테러가 많이 일어나고 있고, 화산폭발이나 도처에서 강진이 발생하고, 기상이변으로 태풍, 폭우, 폭설, 폭염 등등이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전쟁의 소문도 많고, 지식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종말의 현상이기도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는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징조들은 왜 분간하지를 못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오시는 발자국소리가 들리는데, 아직도 세상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희희낙락하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그리고 즉시로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지금 즉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권면을 잘 받아들이고, 정신을 차리고, 지금 즉시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 성도다운 성도인 것입니다.

 

2. 서로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8-9).

 

8-9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간에 가져야 할, 바람직한 신앙의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했는데, 여기의 뜨겁다는 말은 열렬히’, ‘깊게’, 그리고 끝까지라는 뜻입니다. 성도들끼리 미온적으로 미지근하게 사랑하지 말고 뜨겁게, 열렬히 사랑하고, 형식적으로 사랑하지 말고, 깊고 진지하게 사랑하고, 일시적으로 사랑하지 말고 할 수 없다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고 하신 것처럼, 주님이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준으로 끝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랑은 세상에 없는 사랑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성도들끼리 이런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랑함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은, 내가 이 세상에서 형제들을 열렬히, 깊게 끝까지 사랑하면, 결국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죄 용서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심판대 앞에서 죄용서 받는 것을 소망하면서, 이 땅에서 피차간에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사랑의 행위로 인하여 죄용서를 받는다는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랑의 행위조차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많이 사랑하는 자는 많은 죄를 사함받는다”(7:47)고 말씀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잠언 10:12의 말씀을 근거로,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지혜로운 솔로몬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린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5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10리를 가 주고, 속옷이 필요한 사람에게 겉옷을 주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런 뜨겁고 진지하고 끝까지 사랑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9절에서는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대접하다는 말은 나그네사랑하다는 말의 합성어로,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풀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에는 나그네를 대접하다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디모데전서 3:2과 디도서 1:8인데, 두 곳에서 동일하게 감독은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여야 한다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당시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숙박 시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핍박을 피해서 이리저리 옮겨 다닐 때가 많았었는데, 바로 그런 나그네들을 잘 대접하라고 하였다고 보여집니다. 핍박 중에도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피해 다니는, 그 신앙의 나그네들을, 너희들이 잘 영접하고 후하게 대접하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주후 1세기 경 소아시아 지역의 문화적 관행에 따르면, 나그네를 집에 들이고 음식을 대접하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3일 정도면 족하다고 했습니다. 3일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한편 이런 후한 대접을 하다 보면, 비용이 많이 들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러날이 되고, 한두 사람이 아니라 가족들이 찾아올 때면, 더 많은 부담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런 경우를 고려해서도, 다시 말해서 신앙의 동지들을 대접하는데, 기간이 길어지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비용이 많이 들어도, 원망 없이 이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힘든 가운데서도 너희가 원망 없이 나그네를 대접하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행위이고, 그 사랑의 행위는 곧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 재림 때에 그런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그네와 이웃을,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신앙의 동지들을 돕는 데에, 힘들고 기간이 오래가고 대상자들이 많아도, 원망 없이 해야 하겠습니다. 결국 이런 행위들이 이웃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고, 깊이 사랑하는 것이고,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소망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런 행위로 인하여, 성도다운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은사에 따라 청지기로서 봉사해야 합니다(10-11).

 

10절의 말씀은 은사대로 봉사하라는 종합적인 말씀이고, 11절은 은사의 종류를 두 가지로 분류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0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은사라는 말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맡기신 영적 선물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언, 병고치는 것, 방언과 같은 특별한 은사가 있고, 더 나아가서 남들에게 가르치는 것, 권면하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 신앙 공동체를 섬기는 것 등등의 일반적 은사들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각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다는 것이고, 성도들은 그 은사를 다 받았음으로, 그것을 따라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은 자들은 교회의 일을 하는데, 구경꾼이 되거나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은사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봉사를 위한 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11절에는, 은사의 범주를 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첫째는 말하는 것과 관계된 것이고, 둘째는 봉사와 관계된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성도들이 말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설교를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거나 또는 교회에서 말을 할 때, 신탁을 전하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처럼, 신중하게 정확하게 그대로를 전하는 것처럼 해야하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함이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를 다 담아서 말하는 사람들은, 신탁의 말을 전하는 것처럼 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들, 즉 목사나 교사, 인도자들, 치리하고 권면하는 자들은 항상 말을 신중하게 해야하고, 정직하게 말하며, 상대편에게 유익이 되고 덕이 되는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봉사와 관계된 것으로,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봉사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 봉사자들에게 주시는 능력을 말하는데, 원문에는 하나님은 그 힘을, 충분히 주시고, 지속적으로 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말씀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봉사자들을 세워서 그 일을 맡겨 주실 때에는, 그들의 필요를 충분히 공급해 주시고, 또한 한두 번만 그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봉사자는 자기의 힘이나 능력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자들은 교회의 일에 봉사하면서, 자기의 힘과 능력과 지혜로 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하고, 또한 그로 인한 교만한 마음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충분히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껏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자훈련이 잘 되어 있는 교회 중의 하나가, 평택대광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4-5천명 모이는 큰 교회인데, 교역자는 담임목사님과 여전도사님 1명 뿐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들은 다 평신도들이 나누어 감당하고 있습니다. 차량운행, 교회 행정, 청소, 주일학교 설교, 심지어 애경사, 장례식과 심방, 예배 인도 모두를 훈련된 제자들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전부 무급 봉사자들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평신도들이 담당한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일들을 진행하고 처리하는 수준이, 웬만한 목사들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맡은 일에 봉사할 때,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고, 생색내지 않으며, 교만한 마음도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권면을 잘 지키고 있는 교회라고 보여집니다.

 

사도는 이 모든 권면을 마치면서, 즉 말세의 성도는 정신을 차려서 기도하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은사를 따라 봉사하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이렇게 살아야 하는, 한 가지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이런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고,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본문은 말세를 만난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곧 성도다운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도다운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1)어렵고 힘든 환경 중에도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기도하기 위하여 정신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속에 빠져서 희희낙락할 때가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2)서로 뜨겁고 깊고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하셨고, 나그네를 대접하되 원망 없이 해야합니다. 이것이 성도다운 성도의 삶입니다.

 

3)은사를 받은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봉사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풍성히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그 힘과 능력으로, 끝까지 충성스럽게 봉사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권면의 말씀을 잘 지켜나가는 성도다운 성도들이 됨으로, 하나님 앞에서 상 받고 칭찬받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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