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무엘상7:12-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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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4월 18일 삼상 7:12-14,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사무엘상 4장에 보면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두 번의 전쟁을 치루게 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첫 번째 전쟁은 이스라엘의 대패로 끝이 났습니다. 무려 이스라엘의 군인이 4천명이나 죽었습니다. 두 번째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을 때,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성막에 있었던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전장에 나갔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나가면 반드시 이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전쟁에도 이스라엘이 패하여, 보병만 3만 명이 죽었습니다.
실패한 원인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가지고 나아갔는데 전쟁에 패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패배의 원인은 바로 실로에서 사역하던 악한 제사장들 때문이었습니다(Amold).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예배를 멸시했고, 악한 일을 했던 홉니와 비느하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미신적인 논리에 의해서, 법궤가 전쟁터로 오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법궤를 마치 액운이나 쫓아내는 부적으로 간주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영토나 지켜주는 수호신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전쟁에서 실패했던 것입니다.
첫 번째 전쟁보다 두 번째 전쟁의 결과는 더 비참했습니다. 전장에 가지고 나갔던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했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장에서 죽었고, 이 소식을 들었던 엘리 제사장이 의자에 앉았다가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또한 비느하스의 아내가 출산을 하다가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이름을 가진 아들을 낳고 죽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모두가 초토화가 된 것입니다.
한편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는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다가, 이것 때문에 블레셋이 너무 많은 재앙을 당하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이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암소 두 마리가 이끄는 수레에 실은 법궤는 벧세메스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쳐다 본 고로 70명이 죽고 맙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법궤를 기럇여아림으로 옮기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다음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12-14절이지만 실제로는 7장 전체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을 몇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함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1-4)
하나님의 법궤가 기럇여아림에 있은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원래 법궤는 실로에 있는 성막 안에 안치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못하고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오래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것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고 했는데, 여기의 사모하다는 말은, 애곡하다 슬퍼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애곡하였다는 뜻입니다. 이같은 애곡함은 지속적으로 블레셋과의 전쟁실패와 그들의 억압으로 인한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과 가난과 불안으로 인한, 부르짖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엘리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사무엘이었기 때문에, 그가 나서서 그들에게 말합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3). 사무엘이 백성들의 애곡하는 눈물을 보고 회개하라는 것이고, 그리할 때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방신들을 제거하고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이방신을 버리는 것은 ‘회’에 불과하고, 여기에 하나님께로 전적으로 돌아가는 ‘개’가 었어야 참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참 회개가 있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재난 가운데서 건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사무엘의 이 권면의 말씀이 있자, 거의 즉시로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가나안 여신의 우두머리)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4)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로 제거할 것을 제거하고, 오직 여호와만을 섬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것과 함께 적당히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만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마 6:24, 롬 6:16, 고전 10:21, 약 4:4). 우리는 하나님 여호와만 전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전심으로 여호와만 따르고 사랑해야 합니다.
2. 영적 부흥을 시도하다가 블레셋의 공격을 받게 됨(5-12)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자 사무엘 선지자는, 이 참에 이들과 함께 전 민족적으로 영적 부흥운동을 전개하게 됩니다. 선지자가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5)고 말합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13km 떨어진 곳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사사시대 때 이스라엘 지파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였습니다.
이 영적 대각성 집회, 기도회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회개가 철저한 회개였다는 것을, 다음의 두 가지 상징적인 행동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다’고 했습니다. 물을 길러다가 하나님 앞에 부었다는 것은 분명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여기서 물을 붓는 행위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아프고 절망적이기에, 생명 연장의 가장 기본 요소인 물을 마시는 것도 절제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일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적, 현실적 상황이 모두 부도 위기에 와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이스라엘의 슬픔을 말한다고 봅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우리의 삶이 부도 위기임으로,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는 바로 여호와뿐이라는 것입니다. 물을 한번 쏟아부으면 다시 주어담을 수 없듯이, 다시는 과거의 죄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철저한 회개를 뜻한다고 합니다.
둘째로, 그들은 금식했습니다. 금식은 금식하는 자의 생명 보존에 가장 중요한 것(먹는 것)을 박탈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고백하거나, 사는 것과 죽는 것이 여호와께 달렸다는 것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백성들이 금식하는 것은, 첫 번째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으로, 징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이사야 58: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들은 결국 영적 집회의 시간에, 물을 여호와 앞에 붓고 금식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그들은 종일 금식하며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에 의해 주도된 영적 집회는, 은혜 가운데 잘 진행이 되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철저히 금식하며 회개하였고, 전심으로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간 것입니다. 미스바에서의 영적 부흥 운동은 분명히 훌륭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즘에 좋지 못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저들이 미스바에 모여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지금 이곳으로 침략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올라온지라’는 말은 블레셋 군사들이 빠른 속도로 공경해 왔다는 뜻입니다.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악한 마귀가 틈타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으로 오랜만에 영적 부흥을 경험하고 있는데, 그 틈을 타서 블레셋의 침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침략 소식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난날 두 번씩의 전쟁에 실패한 것 때문에, 이들은 더더욱 불안해하고 두려워 떨었을 것입니다. 지난날에는 전쟁을 어느 정도 준비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날에는 서로 흩어져서 적의 공격을 방비할 수 있지만, 지금은 미스바라는 곳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곳에 몰려있기 때문에, 적의 공격을 피하기는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두려워했던 백성들이 선지자에게,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선지자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때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부탁했던 부르짖는 기도는, 보통 기도하고는 다릅니다. 여기서의 부르짖는 기도는 ‘짜아크’라고 해서, 마음을 쥐어 짜내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는 기도도, 마음을 비틀어서 짜내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치 옷감을 세탁하여 몇 번 돌려서 물기를 짜내듯이 말입니다.
기도요청을 받은 사무엘이, 먼저 어린 양 한 마리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짜아크하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습니다(9). 짜아크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도응답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10절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 구절은 참으로 입체적인 말씀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저 위에서 땅의 두 무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을 치려고, 대오를 지어 사기충전, 용기백배하여 가까이 나오는 것을 보시고, 그 때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가서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블레셋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2차 전쟁에 실패하여 법궤가 빼앗겼을 때, 아무도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지만, 하나님 홀로 블레셋의 신들과 싸워 그들을 부셔버리고, 독한 종기 재앙으로, 온역으로 사람을 쳐서 죽이신 것입니다. 그들이 사망의 환란을 당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5:11). 그때도 아무도 블레셋과 싸우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 홀로 그들과 싸워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제도 하나님이 홀로 블레셋의 철기 부대와 싸우신 것인데, 이번에는 큰 우레를 발하셔서 진중을 혼비백산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보통 우레가 아니라 큰 우레라고 했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이겨놓으신 전쟁을,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참여하게 해서, 승리를 맛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11). 혹자는 이것을 가리켜 ‘이스라엘은 길거리에서 승리를 주워 담았다’고 표현했습니다.
2)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미스바 전쟁 이후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국권도 회복되고, 명예도 그리고 국토도 회복되었고, 이웃 민족들과 화해와 평화도 회복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밝고, 희망차고, 소망도 있었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일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기쁨, 감격, 은혜, 능력, 사랑도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개인, 가정, 자녀, 공부와 직장, 생업과 사업에도 우여곡절이 많이 있었고, 삶의 굴곡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적들과 방해꾼들의 공격을 막아 주셨습니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많은 은혜와 사랑과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과 어른들을 보내어 주셔서, 교회가 성장하여 든든히 서게 해 주셨습니다.
근심, 불안, 공포에서 해방되어 두려움이 없이 평강을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기도 제목/ 이곳까지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앞으로도 동일하게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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