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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2 16 - 합당함에 근거한 간청이 아닌,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믿음 이정현 목사 202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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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누가복음7:1-10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7:1-10, 합당함에 근거한 간청이 아닌,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믿음

 

오늘부터 두 주 동안은 믿음에 관하여 설교하려고 합니다. 믿음이라는 주제의 설교는 대단히 중요하기도 하지만, 또한 평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너무 자주 듣는 말씀이라서, 가볍게 듣고 넘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가 나오면 또 저 소리야, 결론은 잘 믿으라는 얘기겠지, 좀 더 확실한 믿음으로 살라는 얘기겠지라고 속단해 버리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평범하게 백부장의 믿음을 말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은혜와 깨달음이 많은 성경 본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누구의 설교를 듣더라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의 집중하여 들으면 은혜가 됩니다. 성경은 항상 살아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의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교 제목이 조금은 생소하지만, 본문 4절과 6절에 있는 것을 연결시켜서, ‘합당함에 근거한 간청이 아닌,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믿음이라고 잡았습니다.

 

본문이 전개되는 장소는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 북쪽에 바로 인접해 있는 마을입니다. 갈릴리의 경제 중심지이고 무역이 성행한 도시였고, 로마의 영이 아니었지만 이곳에 로마군대가 주둔해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가버나움 회당도 있고, 베드로의 집도 있고,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마을을 중심으로 사역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익숙한 장소였습니다.

 

이 동네에서 본문의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의 발단은,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자기 밑에 100명의 부하가 있는 로마 부대의 장교입니다. 로마 황제는 이 지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자기의 군인들을 이곳에 파병한 것입니다. 그런 로마 군인이 유대의 예수님을 알고 믿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로부터 훌륭하다고, 좋다고 평가를 받는 군인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에게는 부하병사들도 많았을 것이고, 아울러 종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2절에서 병든 사람은 그의 종이라고 했고, 7절에서는 하인이라고 했고, 10절에서는 다시 종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 종은 분명 자기 밑에 있는 병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단순히 자기 집에서나 군 막사에서 일하는 종일 수 있습니다. 수십 명의 종들 가운데서 한 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사실 백부장은 이 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요? 당시의 종이나 노예는 하나의 물건이나 노동력으로 취급되어 매매가 되었던 시대입니다. 더더구나 이 사람은 분명 로마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와 상황 속에서 로마 군인 장교가, 그 노예가 병들었다고 관심을 가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병행구절인 마태복음에서는 이 종의 병이 중풍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8:6). 당시의 중풍병은 분명 불치병이었습니다.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이 종을 보며, 그처럼 사랑하고 애처로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백부장에게 있어서 남다른 종이었을 것이고, 또한 단순히 사람에 대한 백부장의 애정이 깊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다른 성경에서는 백부장이 하인을 가리켜 내 아이’(my boy)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그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백부장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 소문은 물론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신 능력이 있다는 소문일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로마 관리의 아들을 고치신 사건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예수께 부탁하기 위하여 유대의 장로들을 보내게 됩니다. 여기 백부장이 직접 예수님께 가지 않고 장로들을 보낸 것이나, 6절에서는 자기의 친구들을 보낸 것은, 나 같은 사람이 예수님을 뵙기가 어렵다는 그의 겸손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은 자기 종에 대한 애절한 사랑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한 겸손한 마음까지 소유한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절에 보시면, 몇 사람이 등장하는데, 겉으로 보면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가지 목적으로 위하여,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3). 유대인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는 사람은 백부장이지요, 보냄을 받은 장로들이 나오지요, 종을 구해달라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장면입니다. 그러니까, 백부장, 장로들, 병든 종 그리고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이 네 그룹의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릴 수 없다는 얘기는, 백부장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기 위하여 온 점령군이고, 장로들은 유대인 중 원로로서 로마 사람들을 싫어하고, 병든 종은 그 누구로부터도 귀하게 여김을 받을 존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미워하고 불신하는 사이이며, 특히 유대 장로들은 로마 장교의 말을 듣고 심부름을 갈 사람이 아니며, 그것도 미천한 노예의 문제로 가라고 보냄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유대 장로들을 책망하셨을 때가 많은데, 자기들을 책망하신 주님에게 어떤 부탁을 하기 위해 간다는 것도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협력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로마군인과 유대 장로와 노예 사이의 관계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특이한 관계입니다.

 

장로들이 예수님께 가서 이렇게 간절히 간구합니다. “4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장로들이 예수님께 간구한 것을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많으니까, 당신은 그의 종을 마땅히 고쳐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한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도움을 받기에 합당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됨됨이와 공로를 칭찬하면서, 당신이 그의 청을 들어주어야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의 합당하니이다’(악시오스)라는 말은 가치 있는’(worthy)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당신이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 속에는, 장로들이 예수님을 하찮게 여기고, 높고 위대한 분, 메시야이시며 창조주로 여기지 않는 그들의 교만한 마음들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찮게 취급하고, 오히려 백부장의 업적을 높이며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훌륭하고 큰일을 행하였으니, 당신은 당연히 이 일을 해 주어야 합니다라는 식의 간구였습니다.

 

사실 로마 군인 장교가 점령지 유대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회당까지 지어주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이 사실이 만약 로마에 알려지면 황제로부터 변절자, 개종자라고 문책을 당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민족을 사랑하고 회당을 건축해 주었다 할지라도, 그런 것이 우리 주님 앞에 간청할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공로가 많고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께 간청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이후 인간은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큰 공로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간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장로들의 간청을 듣고, 그들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백부장의 집에 가까이 갔을 때, 이제 백부장은 자기의 벗들을 보내서, 예수님께 이런 말을 전달하게 합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6). 처음에는 오셔서 자기 하인을 좀 고쳐달라고 했다가, 이제는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직까지 백부장이 그리스도 앞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백부장이 그리스도 앞에 나서지 않고, 그리스도를 자기 집에 모실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 것은, 그의 겸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주님이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단적으로 말하면, ‘나는 주님을 모실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앞에서 말한 장로들은 그는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He is worthy)라고 했으나, 여기의 백부장은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I am not worthy)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장로들은 예수님 앞에서 백부장을 높였으나, 백부장 자신은 예수님 앞에서 자기를 이렇게 낮추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누가는, 당시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랍비 정도로만 보았다면, 이방인 백부장은 예수님을 랍비 이상으로, 적어도 신적인 능력을 가진자로 알았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주님을 생각한 것과 백부장이 주님을 생각한 것에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마치 세례요한이 나는 주님의 신들매를 풀기에도 감당할 수 없다고 하신 것처럼, 백부장은 나는 주님을 내 집에 모실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한 세리와 같은 심정으로, 백부장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7절 앞부분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는 말씀과 같은 뜻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백부장의 고백은 주님이 내 집에 들어오시는 것도 감당할 수 없고, 내가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도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높이고, 자기를 지극히 낮추는 겸손의 모습입니다.

 

백부장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구절은 주님에 대한 백부장의 확실한 믿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내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씀만 하여 내 하인을 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처음에서 오셔서 종을 구원해 달라고 했다가, 이제는 제 집에 들어오지 마시고, 말씀만으로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대단한 믿음의 사람으로 바뀐 것입니다.

 

자기는 군인이기 때문에 말의 위력, 명령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백부장 본인도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서 이곳까지 온 것이고, 내 밑에도 부하들이 많은데 그들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권세자는 말만 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처럼, 예수님에게는 절대적인 말의 권세가 있음을 믿었던 것입니다. ‘되라 그러면 되고, 안되라 그러면 안되고, 이렇게 되라면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라면 저렇게 된다는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있으라 그러면 있고, 없어지라고 하면 사라지고, 살아나라고 하면 살고, 죽으라고 하면 죽는다는 예수님의 말의 권세를 믿었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자기 종이 병에서 나을 줄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이 백부장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었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말씀 한마디로 공간을 초월하여, 환자를 치유할 수 있는 분으로 믿은 것만은 확실합니다. 백부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만을 굳게 믿은 것입니다.

 

백부장의 아름답고 멋진 신앙고백의 말을 들은 예수님이,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놀랐다는 표현은 두 번만 나오는데, 그 가운데 오늘 9절에 한번 나온 것입니다. 이 단어(에크 플레소)정신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한 대 얻어맞고 어리벙벙한 상태가 되었다, 어리둥절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라는 백부장의 신앙을 듣고 주님이 충격을 받아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수준 높은 믿음에 주님이 강한 도전과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9). 오래 전부터 대를 이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배우고 전수받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는 이런 믿음의 소유자를 만나지 못하였는데, 오늘 이방인 군인에게서 대단한 믿음을 보았다고, 주님이 인정하시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크다고, 믿음이 좋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잘 들어나지 않았던 이방인 중에서, 이런 믿음은 보았다고 주님이 감격 중에 칭찬을 하셨던 것입니다.

 

백부장은 주님으로부터 인정과 극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그의 종이 나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에서 온전히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의술로는 완치가 불가능하였지만, 주님은 환자가 있었던 현장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그 사람을 온전히 낫게 하신 것입니다. 불트만이라는 신학자는 주님의 이 이적을 텔레파시 치유라고 말했습니다(7:24-30, 수로보니게 여인의 어린 딸도 같은 방법으로 낫게 하심). 그렇습니다. 주님은 공간을 초월하여 당신의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말씀만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주님이, 얼마든지 그런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본문은 백부장의 대단한 믿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아울러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실 수 있는 분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하인을 치료해 주신 주님은, 하늘나라로 승천하시기 직전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성령(예수의 영)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사,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체는 지금 보좌 우편에 계신 것이 확실하지만, 동시에 그분은 우리 안에 성령으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신다는 사실이, 여러분은 좋고 기쁘고 감사한가요, 아니면 두렵고 귀찮고 쪽팔리고 거추장스러운가요?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통하여 언제든지 역사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그분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백부장처럼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다 됩니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마음대로 역사하시려면, 나에게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합당함을 근거로 한 간청이 아니라, ‘나는 감당할 수 없으나 말씀만 하시면 된다는 믿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역사를 일으키고, 믿음이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백부장 같은 사람이, 주님의 긍휼과 은혜와 사랑과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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