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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1 19 -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식하라 이정현 목사 202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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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빌립보서2:5-8절 개역개정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8,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식하라.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미스 유니버스 미인대회에서 세라 로즈 서머스라는 미국대표가 베트남과 캄보디아 대표로 참가한 여성에게 영어를 못한다고 조롱을 하고 심지어 불쌍하다고 하면서 무시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세라는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대표인 세라가 얼마나 잘 생겼는가 해서 얼굴을 검색해 보았더니 베트남 대표가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지난 주간에 전주 KCC소속 농구 선수 라건아(31)가 자기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로부터 너무 많은 흑인 비하 발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라건아 씨에게 뿐만아니라 가족들과 심지어 자기 엄마에게 욕을 하기도 하고 네가 정말 스타라고 생각해?”라고 묻기도 하고 프로농구(KBL)에서 뛰는 다른 외국인이 라건아보다 낫다너희 나라로 가라고 분노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도 유색인종 아닙니까? 우리도 백인들 사회에 가면 똑같이 흑인 취급당합니다. 우리가 지나가면 마늘 냄새 싫다고 노골적으로 코를 막고 다니고, 개고기 먹는다고 비웃고 조롱합니다. 농구선수 라건아는 한국인들이 매일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름다움과 사람됨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얼굴이고 외모이고 신체적인 조건이고 그것도 아니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까? 그것을 보아서 그 사람이 아름답다, 그 사람이 된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답고 맑고 깨끗하고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이 얼굴로 드러난 사람이 진짜 미인이고, 진짜 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얼굴과 신체적인 부분은 성형의술이 발달되어 고치기가 가능하고 어떤 분은 아예 얼굴자체를 다른 얼굴로 바꾸는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이 거의 없는데 강남에 가면 비슷비슷한 미인들이 여럿이 다닌답니다. 비슷한 사람들은 같은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성형외과 의사에 따라서 사람이 비슷비슷해 지는 것입니다. 요사이 천국 입구에는 줄이 길게 서 있다고 하는데, 원본과 수술본을 대조 해 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얼굴은 성형수술로 바꿀 수 있지만, 마음은 그렇게 쉽게 고쳐지거나 수술이 어렵습니다.

 

오늘은 마음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것도 주님의 마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에게 주님의 마음은 이렇다고, 두 가지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은 자신을 무한히 낮추신 겸손입니다.

 

6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은, 예수님이 본질적인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셨다는 뜻인데, 곧 참된 신성을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6절의 본체라는 말과 7절의 형체라는 말은, 같은 헬라어 낱말을(몰페) 씁니다. 이 단어는 본질을 담아내는 틀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잘 들어내신 틀이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흉내 내거나, 겉만 하나님과 비슷한 분이 아니라, 겉과 속이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동등함에 집착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포기하셨다는 말입니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성육신 이전에는, 하나님의 본체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포기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7) 이 한 문장을 세 문장으로 쪼개서 말하면, ‘자기를 비었다.’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인카네이션 하셨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기를 비었다는 말을, NIV 성경에서는 자기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셨다는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비었다고 해서, 자기의 신성까지 비운 것은 아닙니다. 신성은 여전히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종의 형체를 가졌다는 것은, 종의 본질적 속성을 다 취하셨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권위나 이익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시고, 종으로서 섬김의 삶을 살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영광을 받으실 왕이, 종의 형체를 가지고, 섬기는 삶을 사시다가, 자기의 몸을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겉으로만 사람의 모습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사람들과 똑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람의 탈을 쓰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처럼 죄인이 되었다는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참 하나님이신 그 분이 참 인간이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주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진짜 인간이 되셨습니다.

 

7절에 이어서 8절에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셨다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했고 이제는 자기를 낮추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거부와 자기부인을 뜻합니다. 하나의 거룩한 겸손입니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그 자리까지 낮아지심을 말한다. )어느 선교사님이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썼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16개월 후에 후속편으로 더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도 역시 잘 팔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사람이 아무리 내려놓고 내려놓고 비우고 비운다 할지라도 주님의 낮아지심만 하겠습니까? 아무리 내려 놓는다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의 수준에서 낮아지는 것이고 비우는 것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자리를 비우고, 이 땅의 사람으로 낮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아폴로 15호 조종사였던 제임스 어윈이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달 위에 두 발을 딛고 선 후, 끝없이 펼쳐진 저 광활하고 거대한 우주가 단 하나의 질서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더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쯤 인간이 달 위를 걷고 있다고, 또 다시 대서특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구에 오셔서 지구 위를 걸으셨다는 것은, 이보다 더 큰 사건임을 나는 지금 달 위에서 통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지구에서 저 달까지 빛의 속도로 가려면, 불과 1.2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빛의 속도로 저 우주 끝에까지 다다르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빛의 속도로 200억년을 가도 다다를 수 없다고 합니다. 인간이 달에 간 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만, 그리스도가 주 우주 너머 하늘나라에 계시다가, 이 작은 지구 한구석에 오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인 것입니다. 이 온 우주를 만드신 그분께서,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상상이나 되십니까? 그것도 말구유에 오셨고, 머리 둘 곳이 없이 사셨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도대체 얼마나 자기를 낮추신 것입니까?  

 

주님의 마음은 무한히 자기를 비우고 낮추신 겸손한 마음입니다

 

2. 예수님의 마음은 죽기까지 복종하신 마음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첫째 아담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려는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결국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를 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고,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순종하셨는데,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다 버리고, 인간이 되사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아담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주님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오셔서, 아래에 있는 비참한 인간들을 위로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주사 피를 흘리시고 살을 찢으신 것은, 완전한 복종이며, 절대적 순종입니다. 자기의 몸을 대속 제물로 주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우리도 주님처럼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고, 조심하라면 조심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의 신호등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십계명도 지키고, 152주 한 번도 빠지지 말고 주일을 잘 지키고,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열정적으로 전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령 충만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하고, 언행을 조심하고, 경건생활에 힘을 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으면 좋겠습니다그리고 예전보다 올해는 순종의 폭이 좀 더 넓어졌으면 좋겠고, 좀 더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았으면 좋겠고, 인간이 순종하기 어려운 일에도 죽기까지 순종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소금가마를 지고 물속에 들어가라고 해도 들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면, 소금이 물속에 들어가면 다 녹아서 없어질 것인데,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주인의 의도는, 그 사람의 마음 중심이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가 아니하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그만큼의 소금을 잃어도, 주인에 대한 그 사람의 마음을 보기 원하는 것입니다. 소금가마를 지고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기름을 들고 불속에 들어가라면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지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8:2).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사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를 알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 앞에 순종의 마음을 갖는지, 불순종의 마음을 갖는지 알기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두 가지로 배웠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곧 자기를 비우고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며, 동시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이 마음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자신을 비워야 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하고, 주님의 마음을 담아, 끝까지 순종하며 살아야 하고, 올해는 순종의 폭을 좀 더 넓히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같은 예수님의 마음에 비해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우리의 마음의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마음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선민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많은 제물을 드렸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을 내가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교적인 형식으로 예물을 드렸지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이처럼 마음이 멀다는 말로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또한 마음(양심)에 화인 맞았다’(딤전 4:2)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믿음에서 떠난 자들의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마음이 딱딱하고 굳어져서 무감각하게 되고 말은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완악하다, 완고하다는 표현도 여러번 나타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입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말씀이 주어지는 대도 계속하여 마음을 완고하게 함으로 결국 패망하고 맙니다. 뿐만아니라 미워하는 마음도 있고 거짓된 마음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음식물이 입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그 사람 마음에 있는 것이 사람을 추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육신의 생각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온갖 더럽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이고 믿지 못하는 마음, 시기하고 질투하고 정죄하고 남을 비방, 비하하고, 옹졸하고, 나만 알고 음란한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홍수 이전의 사람들에게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고 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의 마음이 항상 악한 생각들로 가득차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구정물이 가득찬 드럼통을 며칠만 가만히 두면, 윗물은 제법 맑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커다란 막대기로 바닥까지 휘저으면, 즉시로 온갖 더럽고 지접분하고 냄새나는 것들이 다 올라 옵니다. 그게 나의 마음이 아닙니까? 겉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은 좀 깨끗하게 보이고 좀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탄이 내 마음을 한 번 뒤집어 놓으면, 그 안에 잠재되어 있던 온갖 더럽고 추한 것들을 막 뛰 섞여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저와 여러분들의 마음이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 심히 부패했다고 말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 마는”(17:9). 이런 추악한 마음을 치료하고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의 일부분을 고치거나 오려내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부패하고 전체가 더럽고 지저분하니까 일부분만 고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조금 회개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런 우리의 마음을 싹 바꾸어보자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고쳐보자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가 다 망가졌는데 조금만 치료해서야 되겠습니까? 위를 들어내고 인공 위를 넣든지 해야 합니다. 심장이 다 망가졌으면 다른 심장으로 갈아 끼워야 하는 것입니다. 피를 1주일에 몇 번씩 투석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장을 이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은 어찌해야 합니까?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하여 지저분하다면, 그 마음도 이식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 마음을 때어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해야 합니다. 그리해야 우리의 마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회복될 수 있고 치료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교만하지 않고 주님처럼 자기를 비워 낮은 자리에까지 내려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이식되지 않으면 결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가지고는, 자기를 낮추고 끝까지 순종하며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비우고 낮추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복종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나에게 이식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식이란 살아있는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붙여주는 의술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붙여지면,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말씀이라도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목사입니다. 그 부흥은 바로 빌립보서 2:5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다시 제 구실을 하고 제 역할을 하려면 저부터 시작해서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리더십도 필요하고, 어떤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아무리 큰 예배당을 짓고 수천 수만의 사람이 모이고, 깜짝 놀랄만한 이적이 일어나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않고 예수님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주님과 아무상관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지금 당장, 여러분의 더러운 마음을 잘라 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하셔서, 평생토록 겸손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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