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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24 - 교회의 일꾼을 세웠더니 이정현 목사 201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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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6:1-7절 개역개정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6:1-7, 교회의 일꾼을 세웠더니...

 

구약 성경에 약속되어 있었던 성령 충만이, 드디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이제 예루살렘을 벗어나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무려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계속하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을 썼더니,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되어, 그 수가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걷게함으로 예루살렘은 또 한번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이 일로 사도는 공회에 잡히게되지만, 복음은 계속하여 퍼저 나가게 되었습니다. 환란과 핍박으로 인하여 그들이 다시 한 번 더 모여서 기도함으로 재차 성령 충만을 받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기의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서로 통용하는 놀라운 기독교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둠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게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좋지 못한 마음으로 자기도 밭을 팔아서 구제하겠다고 했다가, 결국 성령 하나님을 속인 결과 그 자리에서 부부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속이면서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했던 잘못된 것들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거룩하게 지키신 성령의 역사라고 봅니다. 잘못된 구제로부터 교회를 보호하신 하나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거짓되고 위선된 구제가 생김으로 교회의 성결이 깨질뻔 하였습니다.

 

이런 사건 이후, 이제 또 다시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가 성장해 가면서, 이번에는 구제의 불균형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앞에서는 거짓된 구제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구제가 균형 있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작으면 조용할 수 있지만 반면에 성장하면 이런 저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죄악 된 인간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임으로, 그 사람들이 모이면 이처럼 구린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불평, 원망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이어 6장에도 초대교회의 이런 문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에 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여기서, ‘제자가 더 많아졌다는 말에서, 제자는 12사도를 말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협의적으로는 제자라는 말이 12제자를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신자를 일컬어 제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마태와 마가는 주로 협의적으로 이 단어를 쓰고 누가와 요한은 광의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의 사도행전도 이 단어를 넓은 의미로 즉, 제자는 믿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가 더 많아진 것입니다.

 

그러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짐으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어를 주로 쓰는 유대인을 말하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주로 쓰는 유대인을 말합니다.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외국에 살다가, 메시야의 도래를 열망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교포출신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이런 사람들로 점점 커지니까, 불공평한 구제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에게 공평하게 구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어떤 과부에게는 구제금이 가고, 어떤 과부에게는 구제금이 가지 않음으로 불평이 생긴 것입니다.

 

이 문제는 사도행전 5장에서 생긴 사건하고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앞장에서는 사탄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가득하여 이 일을 하게 했지만, 6장은 교회 안에서 사람이 많이 생김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난 일입니다.

 

이 문제를 사도들은 어떻게 해결합니까? 성경을 살펴보면 사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면, 상당히 지혜로우며 지극히 모범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놓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가 누구로부터 왔는지, 그 책임자를 색출하여 인책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헬라파 과부들에게 구제하지 않았느냐? 왜 이런 소리를 듣느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우리도 구제하는 이 일에 가담하여 열심히 했는데, 해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이 소홀해 지더라고 말합니다. , 구제하는 일에 전념하다보니까, 하나님의 말씀 전하고 가르치는 일이 소홀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사도들은 말씀선포와 가르치는 일을 젖혀두고, 구제와 접대와 재정출납에 집중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문제 해결의 방안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3-4절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말합니다.

 

집사를 세워서 구제하는 일은 그 사람들에게 맡기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집사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앞의 접대라는 말과 사도행전 218절에 일곱 집사라는 말을 근거로, 일곱 사람을 집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사들을 세워서 구제하는 일을 그들에게 맡겨서, 구제의 불균형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2절의 접대를 일삼는 것’(디아코네인 트라페자이스)이라는 말은, ‘먼지 속을 달리는 자또는 밭에서 일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집사는 먼지를 마시며 그 속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처럼 자기의 임무를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집사의 자격과 목적을 명확히 말합니다. 집사가 되기 위한 자격조건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5절에 보면 믿음 충만도 나옵니다. 성령, 지혜, 믿음이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은 그 사람의 영적인 면을 말하는 것으로, 날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성령님의 온전한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지식을 사용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행하여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믿음 충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만 의존하여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칭찬 듣는 사람은, 사회적인 면으로 교우들과 이웃 주민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 되어야지 집사가 될 자격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담당해야 할 일은 구제이고,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사역을 명확히 제시해 준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들과 집사들이 차이가 있는데, 세우는 자가 다르고 이들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이 직접 세우시나, 집사는 교회에서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사역이 주 임무이나, 집사들은 공궤하는 일(봉사하는 일)이 주 사역입니다.

 

이런 제의에 교회의 성도들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 7곱 명을 뽑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7곱 명을 사도들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회중에게 뽑아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격에 맞는 사람 7곱을 선택합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5).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니골라, 이상 7곱 명은 헬라파 유대인을 대표하는 지도자인 것 같습니다. 이들 중에서 스데반과 빌립의 지도력과 카리스마는, 사도들의 영적 권위와 거의 같은 수준의 사람들입니다. 회중은 이들을 사도들 앞에 세웠고, 사도들은 회중의 결정을 존중하여 그들에게 안수하여, 성경 최초의 안수집사를 세우게 됩니다. 신약교회 사상 처음으로 교회의 조직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님이 세우신 사도가 있었고, 사도들에 의해서 교회마다 장로가 있었고, 여기에 이제 안수집사까지 세우게 된 것이니, 장로교회서 흔히 말하는 항존직이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세워진 목적에 따라 그들의 임무를 다하게 되는 것을 성경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간단하게 중직을 세우는 과정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세우는 목적과 필요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안수집사님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서 일꾼을 세울 때에는, 교회가 크게 부흥되어서 일할 일들이 많아져야, 그 일을 맡길 사람을 뽑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크게 성장하여, 일할 것들이 많아져서 귀한 일꾼들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목적을 가지고 세움을 받았으니, 자기에게 주어진 그 임무에 충성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심방과 치리, 안수집사님은 재정출납과 봉사, 권사님은 심방과 기도하는 일에만 열심히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직분을 탐내거나 깔볼 필요가 없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충성함으로 좋은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입니다. 월권해서도 안 됩니다. 협력하거나 조력할 필요는 있지만, 월권은 하나님의 교회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2)일꾼의 자격을 제시합니다. 은혜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고,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때의 타인은 교인일 수도 있지만, 교인이 아닌 여러분 주변에 사는 이웃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남다른 은혜가 있어야 하고 교회 밖에서도 주민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여기에 주일성수와 십일조 사항이 더 들어갔는데, 사실은 이런 것은 기본이기 때문에, 마땅히 100% 준수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례 받을 때 서약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일성수와 11조 헌금생활과 교회의 관할과 치리에 복종하겠다고 서약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만 받아도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데, 중직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런 규정이 성경에 있느냐고 묻는 사람은, 아직 신앙의 초보에 머물고 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3)그 자격에 합한 사람들을 성도들이 뽑는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목적과 이유와 자격을 얘기하면, 그 기준에 맞추어서 성도들이 성도들 중에서 뽑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사도들이 말한 목적과 이유와 자격기준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합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공동의회를 열어서 이런 사람들을 놓고 투표를 하지 않습니까? 그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표하면 되는 것입니다.

 

4)사도들이 안수하여 그들을 교회의 일꾼으로 세운 것입니다. 성도들이 뽑은 7명을 사도들에게 제시했더니 사도들은 그들에게 안수하여 항존직의 일꾼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움을 받은 이들은 자기들을 세워준 목적을 기억하며 그 일에 헌신하고 충성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최초의 분쟁거리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전화위복을 이루게 됩니다. 그 결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의 문제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자격 있는 집사를 세우고, 그 집사들은 봉사의 일을 다하고,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니까, 놀라운 결과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 있게 사방팔방으로 전해지니까, 그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직분자를 세워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가 사명을 다하니까, 교회가 크게 부흥을 한 것입니다. 안수집사를 세웠더니 이제 구제의 불균형 문제도 해결이 되었고, 사람이 널어나니까 여러 가지 봉사하고 섬겨야 될 일이나 재정 출납의 일들을 안수집사님들이 충성스럽게 감당하니까, 이제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이 봉사하거나 구제하는 일에 나서지 않아도 척척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더욱더 부흥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직분자를 세워 놓고 그 직분자들 때문에 교회가 어려워지거나 시험에 들거나 퇴보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직분자를 세웠더니 더 말이 많아, 더 일은 안 돼, 원망과 불평이 더 커졌어, 조금 하다가 힘들고 어렵고 시간 빼앗긴다고 안 한데,,,그러면 그 교회는 직분자들 때문에 오히려 퇴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구경꾼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을 감독관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을 일꾼으로 봉사자로 섬기는 자로 세운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세워진 직분자들 때문에, 말씀이 왕성해지고 믿는 자의 수가 더 많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말씀에 순종했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입니다. 그런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했다는 것은,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믿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는 제사장들이 유대교의 성전을 버리고 이탈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것은 유대교의 성전 중심 체제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교회도 교회의 일꾼들을 세웠음으로,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각계각층의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교회에서 일꾼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일 때문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 자신의 명예나 직분을 원함이나 교회의 재정적 필요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그 직임에 맞는 일꾼을 뽑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꾼 선정에 있어서 그 자격요건이 중요합니다. 만약 초대교회처럼 성령과 믿음과 지혜가 충만하고 타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 선정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인물로 양육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고, 세움을 받는 본인도 자리를 탐하기보다,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그쳐 일꾼을 세우면, 반드시 그 일꾼들의 분업을 통하여 교회는 성장,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전 7:17). 주님이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은사대로, 각 사람을 그 직분으로 부르신 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고, 장로님은 교인들을 심방하고 치리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시고, 안수집사님은 재정출납과 봉사의 일에 충성을 다하시고, 권사님은 당회의 지도를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심방하는 것과, 기도의 어머니로서의 사명에 충성과 헌신을 다하심으로, 우리 교회가 지금보다 더욱더 평안히 든든히 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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