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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6 -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정현 목사 20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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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1:28-30절 개역개정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11:28-30,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황성주 박사가 오래 전에 스트레스는 인생의 양념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나쁜 스트레스도 있고 좋은 스트레스도 있다고 말합니다. 나쁜 스트레스는 고혈압, 심장마비, 위궤양, 불면증, 알콜 중독증, 각종 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런 것은 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인병의 원인의 80%는 이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그런 반면 좋은 스트레스는 음식의 양념처럼, 인생의 활력을 주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성공을 위한 위대한 자극제가 되기도 한답니다.

요새 미국이나 한국에서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려고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레크레이션, 취미생활, 오락, 여행, 등산, 사교활동 등 수많은 프로그렘을 개발하지만, 이런 노력들로는 인간의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혹자는 심한 스트레스를 이겨보려고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거나 심한 운동을 하거나 심지어 놀음을 하기도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결코 그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두 종류의 사람 즉, 얌전이와 덜렁이 타입이 있다고 합니다. 얌전이는 가정에서도 착하고 말 잘 듣고, 학교에서 모범생입니다. 그러나 덜렁이는 실수도 많고, 까불고, 공부도 못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누가 더 잘 할까요? 얌전이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서 고민하다가 우울증에 걸려 고생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고, 덜렁이는 공부는 못해도 사회생활은 잘 합니다. 스트레스도 잘 해결합니다. 그래서 오래 살고 건강합니다.

 

의사들이 통계를 내어보니까, 제일 빨리 죽는 사람이 얌전한 목사들이랍니다. 그보다 더 빨리 죽는 사람들이 얌전한 사모님들이라고 합니다. 목회자 가족들이 목회를 하면서 수명이 단축 될 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얌전한 목사가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데도 오래 살아서, 의사가 물어보았답니다. 무슨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느냐고? 그 목사님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답을 했답니다.

 

안 받을 수 없는 인생의 스트레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항상 감사하며 살므로 해소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빨리 죽을 사람도 더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지난 20052월에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25살에 자살로 인생을 끝마쳤습니다. 아마 처음에 이름도 없을 때는, 과잉노출 영화에도 출연했나본데, 유명해지고 나니까, 그게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었던지, 우울증에 걸렸다가, 견디다 못해서 결국 자살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30대의 젊은 모 은행 지점장도 자살했습니다. 이유는 그 직장 업무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서, 결국 못 견디고 자살로 삶을 포기했습니다. 직장 생활하는 샐러리맨들도 마찬가지로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무서운 경쟁의식을 가지고, 메마른 인간관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의사들도 의과대학에서부터 무슨과 전문의가 되어야 돈을 더 많이 버느냐 하는 것 때문에, 교수들끼리도 진료나 수입실적 같은 것을 공개하면서 경쟁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세상에 스트레스를 안 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현대인은 환경오염을 피할 수 없듯이, 정신 오염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를 가나 우리는 스트레스를 점점 더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인생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수고하다는 말은 육체적으로 곤하여 지치다, 감정적으로 용기를 잃고 낙담하다는 뜻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여러 가지의 인생살이로 인하여 지치고 낙담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한두 번 지치고 낙담한 상태를 말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하여 지치고 낙담 중에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지를 다 알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의 유혹에 빠졌던 하와에게 찾아 오셔서,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3:16)고 하셨는데, 아담에게는 네가 땀을 흘리고 네 평생 수고하여야 땅의 소산을 먹을 것이라’(3:17-19)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부터 인간들에게는 수고로 인하여 쉽게 지치고 낙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인간의 수고는 슬픔뿐이며 그의 마음은 밤에도 쉬지 못한다’(2:23)고 하였고, 더 나아가서 인간이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도 가져가지 못한다’(5:15)고 전합니다. 모세는 인새의 연수가 70이고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모든 인생의 년 수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으로 와서는 주 안에서 수고한 것은 하나도 헛되지 않다’(고전 15:58)고 말했고,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 )는 말과 복음을 위하여 수고했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하여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겠다는 말과 성령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하노라’(1:29)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3)장에서는 주님이 인생들의 수고를 그치게 하시고 쉬게 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게 주어진 수고가 결코 만만하지 않지만, 그래도 주 안에서 수고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과, 언젠가는 주님이 우리의 수고를 그치게 하실 것이며, 위로와 쉼을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일차적으로 이 짐은 마귀가 인간들에게 지운 죄의 무거운 짐을 말한다고 봅니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었고, 그 죄의 삯인 죽음의 짐을 모든 인간들에게 지운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들은, 죄와 죄의 형벌인 죽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 죄짐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의 유명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는 일생동안 참으로 대단한 고행을 한 사람입니다. 결혼직후 처자식을 남겨 두고 수행에 들어가서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된다고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처 놓고 10년 동안이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혼자 외롭게 거하며 8년 동안 눕지 않고 앉은 자세로 잠을 자며 수양을 쌓았습니다. 그는 16년간 솔잎 가루와 쌀가루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남긴 시한수가 있는데, 그 시의 한 부분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미천 죄업 과수미라.’ 즉 하늘에 가득찬 죄업이 수미산보다 높구나라는 말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뼈가 으스러지도록 피가 마르도록 살이 찢어지도록 고행을 하고 수도를 했건만 그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느낀 것은 미천 죄업 과수미라는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고행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죄악을 청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의 빚은 사람의 힘으로 값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죄악된 인간은 결코 죄의 그 무거운 짐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워진 또 다른 한 가지 무거운 짐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요구한 무거운 율법적 관행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한다”(23:4)고 책망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은 지키지도 못하는 율법을 일반 백성들의 어깨에 얹어 놓고, 그것대로 지키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자기도 지지 못하고, 남들도 지지 못할 무거운 짐을 성도들 위에 얹어 놓은 것입니다.

이 무거운 짐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어깨위에 지워진 무거운 짐이었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그들은 오랫동안 괴로움과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또한 다윗은 내 죄가 무거운 짐 같아서 감당할 수 없다’( ), 죄악의 무거운 짐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고 있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오늘 우리 역시 그것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 있으며, 힘에 버거운 종교적인 짐을 지고 있으며,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며, 각종 병과 인간관계와 경제적인 고난과, 사회생활로부터 각종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지치고 너무나 낙담하여, 삶을 포기하고 싶은 극한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런 인생들을 향하여 주님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부한 자들을 초청하신 것이 아니고 마음이 지친자들을 초청하신 것이고,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을 초청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로 낙심하고 한탄하는 사람들을 초청하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누구에게로 가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해 줄 자를 소개해 주신 것이 아니라, ‘나에게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를 흙으로 빚은 창조주 나에게 오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치료하는 만병의 대의사인 나에게 오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보호자와 인도자가 되는 나에게 오라는 말입니다. 너희의 생명이요 소망이 되는 나에게 오라는 것입니다.

 

오기만 하면 내가 오는 모든 사람을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들에게 참된 안식과 쉼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에게 오는 모든 지치고 곤한 죄인들에게, 반드시 쉼을 주시겠다는 강한 의지가 내포된 말씀입니다. 진정한 안식, 진정한 영적 쉼은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안식도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저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다 포함하는 의미의 쉼과 안식입니다. 이런 안식은 사람이 줄 수 없고, 돈이 줄 수 없고 명예가 줄 수 없고, 이 세상이 결코 줄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약속하실 있고, 주님만이 약속대로 실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29절과 30절에서는 마음의 쉼을 얻는 다른 한 가지를 더 말씀하셨습니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하다는 말은 친절하고 너그러운 태도를 말합니다. 산상수훈에서도 주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땅을 차지하려면 권모술수를 쓰거나, 악착같은 욕심을 부려야 땅을 차지할 수 있는데, 주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온유를 가르쳐 주신 주님은 스스로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겸손은 자기의 지위와 신분을 낮추는 겸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주님은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셨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왕중 왕이시지만 종으로 한평생을 사셨습니다. 남들의 종으로서 사셨고 섬기며 사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즉,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께서 인생살이에 지치고 낙담하여 있는 자들을 찾아가셔서, 다 네게로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앞에서는 주님께로 가기만 하면, 주께서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이 구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의 멍에를 매고 주님께 배우면, 마음의 쉼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운다는 말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지운 무거운 율법적 행위들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 백성들에게 율법의 613가지를 다 지킴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은, 그들에게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 많은 율법을 다 지킵니까?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하고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멍에와 짐은 유대주의자들의 그것과는 달리, 주님의 구속적 은혜에 근거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원리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무거운 멍에이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는 쉽고 가벼운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마지막 구절에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의 멍에는 무거우나 그리스도의 멍에는 가벼운 것입니다.

 

이 구원의 멍에, 이 영생의 멍에, 이 십자가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며 나아가면, 그 마음에 쉼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멍에는 주님과 함께 메고 가며 배우는 것입니다. 어미 소와 이제 갖 코뚜레를 한 새끼소가 함께 멍에를 지고 밭을 갈고 있습니다. 말 못하는 미물의 짐승이지만 어미 소가 밭가는 법을 새끼소에게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주인님이 왼쪽으로 가라고 하시면 몸을 이렇게 돌려서 가야하고, 오른쪽으로 가자고 하시면 몸을 이렇게 돌려서 가야하는거야. 주인님이 빨리 가자고 하면 이렇게 힘을 줘서 가야하고, 멈추라고 하시면 이렇게 가만히 서 있는 거야. 새끼소는 모든 게 불편하고 힘들지만 엄마소를 따라서 밭을 다 갈았습니다. 그런데 엄마소는 얼마나 힘을 썼는지, 멍에 맨 곳이 쑥 들어갈 정도였고, 숨을 가쁘고 쉬고, 콧등에는 땀이 송글 송글 맺혔습니다. 사실 같이 멍에를 매긴 했지만 엄마소가 새끼소를 다 이끌어 주었고 도와줌으로 엄마소가 밭을 다 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매면 어렵고 힘들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이 함께 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주님이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결코 어렵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 나와 함께 멍에를 지고 가시기 때문에, 그 멍에는 참으로 메기가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매고 주님에게서 배우면, 역시 마음의 쉼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과 비추어 주님이 주시는 쉼이라는 것은, 피곤에 지친 심령이 상쾌하게 되는 것이고, 연약한 심령이 만족함을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와 함께 멍에를 매고 배우게 되면, 이런 은혜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작가로 유명한 영국의 윌리암 카우퍼는 6살 때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에 평생에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는 여러분 자살을 시도했고 급기야 33살에는 18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요양을 하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로마서 325절의 말씀을 일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말씀을 읽자 마음속에 굉장한 감동이 왔습니다. 항상 그는 죄책에 짓눌려서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영원히 버림받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고통을 당했는데 이 말씀이 태양빛 같이 비취면서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이 다 사라져 버리고, 광명한 빛이 비취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일을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 말씀을 읽는 순간 의의 태양이 내게 비취었고 나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기쁨과 감격에 겨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사랑과 경외감에 잠겨 하나님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릴 따름이었다.” 그는 그날로 새사람이 되었고 정신병도 깨끗이 나아서 정신병원에서 퇴원해서 남은 여생 수많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찬송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258, ‘샘물과 같은 보혈은 임마누엘 피로다. 이 샘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할렐루야. 윌리엄 쿠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자 그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었고, 구속에 대한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한평생을 살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상처입은 심령은 주로 말미암아 상쾌함을 얻었고, 우울증과 자살하고픈 그의 연약한 심령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참 만족과 안식을 얻었습니다.

 

결론

 

우리는 다 무거운 짐진자들입니다. 죄의 무거운 짐, 각종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자들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고 지쳐있으며 낙심되는 일이 많으십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실 자는 주님뿐이시며, 이 짐들을 벗겨주실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다 벗겨주시고 참된 안식을 주실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이 오라고 하셔서 왔으니,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울며 가슴을 치며 회개하오니, 나의 죄를 깨끗이 씻겨주셔서 정결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죄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셔서 이제는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 나의 마음을 치료해 주셔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주옵소서.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게 해 주옵소서. 주님의 멍에를 매고 주님께 배우며 살게 해 주시고,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한결 같이 우리를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해 주옵소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여, 우리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옵소서. 피곤에 지친 사람들에게 육신적인 안식을 주시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자들에게 영적, 정신적, 마음의 쉼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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