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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7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이정현 목사 2019-01-27 추천 0 댓글 0 조회 1275
[성경본문] 히브리서3:1-6 개역개정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3:1-6,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했고, 베르너는 생각하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했고,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생각하고 반성하고 고칩니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고 영원을 사모합니다.
 

그러나 짐승에겐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없는 사람은 짐승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은 뇌의 기능에 속합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등 어떤 충격으로 뇌의 기능이 정지된 것을 의학용어로 뇌사상태라고 말합니다. 뇌가 생각하지 못하고 판단능력을 상실하면 손발이 움직여도 죽은 사람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후서 1장에서 당시 교인들에게, 이런 말을 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의 생명이 끝날 때가 된 줄 안 베드로가,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긴다라고 했습니다(벧후 1;12-13). 아무튼 베드로는 흩어진 교인들이 살아가면서 진리가 생각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너의 생각을 예수님에게 고정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눈을 예수님에게 고정시키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시야를 예수님의 속성과 사역에 집중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생활에서 방황하거나 표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주님에게 고정시키지 않고, 자꾸 세속적이고 악한 것을 보고 생각하면 유혹에 빠지게 되고, 그런 것이 반복되면 결국 믿음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 12장에서 이 주제를 반복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12:2-3). 여기서도 오늘 본문에서처럼 믿음의 주 예수를 바라보자, 죄인들의 거역을 참으신 예수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앉으나 서나 예수만을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예수님에게 고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떤 유혹과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기자가 누구에게 이 말을 하는 것입니까? 이 글을 읽는 독자가 누구입니까?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합니다. 기자와 청중들이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말합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부르심의 목적지를 밝혀주는 것입니다. 그곳은 하늘의 성소이자 하늘 도성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늘은 부르심의 근원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근원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고,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어 그의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그의 영원한 안식에 함께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거룩한 형제들은 예수님을 주로 믿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기독교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말하고 오늘날 교회를 말한다는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의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거룩함을 입었기 때문에, 성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바로 흩어져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도라는 말입니다. 한문으로 거룩할 자와 무리 자를 써서 거룩한 무리라고 합니다. 제가 예언을 하나 하겠습니다. ‘목사와 장로들 중에는 천국에 못 갈 사람은 많아도 성도들 중에는 천국에 못 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목사라도 믿지 않고 이상하게 믿는 자들도 많음으로, 성도라는 무리에 들지 못할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한 무리 속에 들어 온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제일 좋은 이름이 성도이기 때문에, 자기의 직분이 권사인데 권사라고 불러주지 않고 성도라고 한다고 삐지고 시험에 드는 사람이 많은데, 잘 못 알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도라고 불림을 받는 것이 최고의 영광으로 아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에게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 예수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그 분을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십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도 많이 사용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너는 사람을 보내어 내가 너희들에게 줄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13:2)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서 사람을 선택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보냈습니다. 이 때 분명히 12명은 모세에 의해서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또 다른 예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고 70년의 포로기간이 끝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1, 2차 귀환이 이루어지고, 이제 3차 귀환 때의 일입니다. 3차 귀환은 느헤미야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때의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고국인 유다가 멸망하고 폐허가 된 상태로 놓였다는 얘기를 들은 왕이,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고, 네가 이곳에서 유다까지 가려면 많은 어려움과 적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음으로, 내가 너와 함께할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겠다는 하였습니다. 이방 왕이, 느헤미야를 안전하게 호위하라고 군대장과과 마병까지 보내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때의 군대 장관과 마병은 왕의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누구에 의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냄을 받은 자를 신약적인 용어로 사도라고 합니다. 신약의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마태복음 1040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왜 보내셨습니까?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성경은 분명히 밝혀 줍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15:24). 주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7)고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 4:9)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명한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를 살리려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보냄을 받으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전파하셨습니다. 또한 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사역을 완벽하게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심으로, 하나님이 그를 보내실 때 하신 모든 것을 주님은 완전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주님은 보냄을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사셨고 보냄을 받은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죄와 지옥에서 구원하시고, 죽었던 영혼을 살려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사도로 사셨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로 신실하게 사셨습니다. 요약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이십니다.

 

예수님 외에도 신약에는 사도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12사도도 있고요, 그 다음에 바울과 바나바도 사도이고요( ), 실라( )도 사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교회사적으로 그 이후로 속사도들도 많이 있지만, 이 많은 사도들 중에 가장 위대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의 보냄을 받으사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시고 전파하시고, 약한 것과 병든 것을 고쳐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사명을 완수하심으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가 되셨습니다. 사도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십니다.

 

앞에서는 사도로서의 그리스도를 말했다면, 이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주님이 사도로서 사역을 하셨고, 또한 대제사장으로서 사역을 하셨다는 말입니다. 사도의 역할과 대제사장의 역할은 서로 다릅니다. 사도는 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 반면 대제사장은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사역을 한다면, 대제사장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역할을 하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리스도가 사도로서 사람들 앞에 하나님을 나타내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사람을 나타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사도는 예수님의 지상사역에 적용되고, 대제사장은 그의 하늘 사역에 적용 된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는 인간 가운데서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시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대변자가 되기도 하신다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그 사역의 구분점을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맞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역은 단회적이면서 영원한 효력을 지니는 사건이나, 우리를 위한 그분의 중보사역은 지금도 계속되는 반복적 사역입니다.

 

히브리서만 보더라도, 예수가 대제사장이라고 하는 증거는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히브리서 2:17/ ‘예수는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자비롭고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시다.’

3:1/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의 대상인 대제사장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4:14/ ‘예수는 승천하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시다.’

4:15/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는 우리와 같은 유혹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다.’

5:5/ ‘예수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셨다.’

5:9-10/ ‘예수는 우리 구원의 주로서 하나님이 대제사장으로 부르신 분이다. 그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시다.’

6:18-20/ ‘영원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확실하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셔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이다.’

7:26/ ‘예수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대제사장이시다.’

8:1/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는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9:11/ ‘예수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셨다.’

 

적어도 10곳 이상에서 그분은 대제사장이신데, 어떤 대제사장이시며, 어떤 역할을 하시는 대제사장이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높은 권위적인 인물이 대제사장으로 알았습니다. 자기들 사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물이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신성모독죄인으로 취급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예수를 구주로 믿고 사도로 믿는 사람들은 그분이 대제사장이심도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며 그분의 통치에 잘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산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과 생각을 그분에게 고정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뿐만 아니라 4장에서도(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으로, 하나님의 집에 아들로 충성하신 분이십니다.

 

본문 2절 이하 마지막 절까지, 계속하여 저자는, 주님이 모세보다 어떤 면에서 우월하신 분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여기서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여 놓은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 예수님

 

선지자로 섬겼다.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섬기셨다.

종으로 충성하였다. 하나님의 아들로 충성하셨다.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백성들을 인도하였다. 죄의 노에 상태에서 사람들을 인도하셨다.

율법을 집행하셨다. 율법을 성취하셨다.

범죄 하였다. 결코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

죽어 장사되었다. 죽으셨으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정죄만 할 뿐 결코 구원할 수 없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의와 영원한 구원을 줄 수 있는 사역을 감당하셨다.

일시적인 영광을 누렸다. 영원한 영광을 누리고 계신다.

 

이런 비교를 통해 볼 때, 예수님은 모세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존귀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그의 집 맡은 청지기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기서의 집은 성막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 곧 하나님의 가족을 말합니다.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충성을 다하였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관리자로서 극진히 충성을 다하였지만, 그리스도는 우주를 만드셨고 그 집의 건설자이시며, 아울러 그 집의 아들로 충성을 다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들로서 충성을 다하셨다는 말은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는 죽은 자 가운데 살아 나사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아울러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만국을 통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모세보다 그리스도가 훨씬 더 우월하고 중요하심으로, 그분을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결론

 

옛날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애굽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사람을 구원해 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세상에서 고생하는 인류를 구원해 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고, 예수님에게 침을 뱉고, 예수님을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시오 대제사장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도라는 말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전파하신 분이며 우리의 연약함을 치료해 주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라는 말은, 우리를 위해 대속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위해 지금도 중보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와 선지자들과 모세와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우월하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라 할지라도, 예수님과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창조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충성을 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그 예수에게 자기의 시야와 관심과 생각을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성품과 사역에 집중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예수님에게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세상을 향한다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향한다면, 우리는 쉽게 그리고 빨리 신앙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누구를 깊이 생각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짐에 따라서, 우리의 인격도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든 소망교회 식구들은 앉으나 서나,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우리가 믿는 사도가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시고, 모세보다 우월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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