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누가복음15:1-3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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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눅 15:1-32,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올해는 전도를 많이 해서, 이런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라고, 전도한 사람도 기뻐하고 옆에 있는 사람도 기뻐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2월의 4주 동안에 이 기능들에 대하여 한가지 씩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고자합니다. 지난주에는 예배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전도와 선교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설교를 듣기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첫째로 축복에 대한 설교를 듣기 원한다고 46%가 대답을 했답니다. 두 번째로 상한 심령과 병고침에 대한 설교를 듣고 싶다가 28%로 대답을 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설교를 들을 때 제일 짜증이 납니까? 이 질문에 첫째가 회개하라는 설교이고, 둘째가 전도하라는 설교이고 셋째가 헌금하라는 설교였다고 합니다. 이 통계를 보면 전도설교가 성도들에게 인기가 없고, 짜증나게 하는 설교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라는 것은 중요한 성경의 메시지이고, 교회가 해야 하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아무리 성도들이 싫어하는 설교라 할지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 설교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은 어떤 설교를 하든지, 다 좋아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줄 믿습니다.
개혁교회에서는 전도와 선교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을 합니다. 전도는 같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면, 선교는 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모든 내용은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과 바울은 전도와 선교를 별도의 것으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와 선교를 같은 개념으로 보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세 가지 비유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비유는 ‘양 100마리 가운데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말하고, 둘째 비유는 ‘한 개의 드라크마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여인’에 관한 비유이고, 셋째 비유는 앞의 비유보다 더 길게 기술이 된, 소위 ‘탕자의 비유’입니다.
이 세 가지 비유 중에서, 저는 세 가지 공통점을 찾아서 설명함으로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 시간에 말씀 드린 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모함으로(간절함으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아멘으로 들음으로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 가지 비유 가운데 첫 번째 공통점은, 하나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나가 있습니다. 양 100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4). 어떤 여자에게 10개의 드라크마가 있었는데, 이때의 드라크마는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하던 화패의 단위입니다. 그 중에 한 개를 잃어버렸습니다(8).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둘째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물론 이 둘째는 자기의 재산을 다 챙겨서 집나갔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24절과 마지막 구절에서 아버지는 분명히, ‘내가 잃었다가 얻었다’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이 아들도 잃어버린 하나입니다(32).
하나를 잃어버린 것은 분명한데, 어떤 사람은 100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고, 어떤 사람은 10개 중에 하나를, 또 다른 사람은 2개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잃어버린 똑같은 하나이지만, 거기에는 가치와 소중함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보다 드라크마가 더 중요한 가치가 있고, 드라크마보다 사람이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 비유에서 점차적으로 더 중요하고 귀한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함으로,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한 사람이, 다른 그 무엇보다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주인에게 있어서 그 하나는 다 소중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궂이 비교하여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따지자면, 그것은 잃어버린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잃어버린 하나, 잃어버린 한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재물을 모아서 먼 나라로 가 버린, 잃어버린 한 사람은, 예수를 믿다가 시험에 들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낙심해서, 지금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아버지를 멀리 떠난 사람이거나, 하나님의 선택함은 받았으나 아직 주 앞에 나오지 않은 불신자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본문을 근거로 말하면, 1절에 나와 있는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잃어버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믿다가 낙심한 사람도 많고, 시험에 들어 쉬고 있는 사람도 많고,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이 있고, 여전히 죄악 속에 파묻혀 사단의 종노릇하며 살고 있는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1년에 천명을 전도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1년에 70명을 전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달에 한명씩 전도해서 년 12명을 전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정도는 못해도 1년에 1명은 전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목표를 각각 한 명만 잡아 봅시다. 잃어버린 이 한명을 전도하는 목표를 세워 보시기 바랍니다. 수십 명을 전도하는 목표를 세우는 것도 좋겠지만, 올해는 기본적으로 평균적으로 한사람도 빠짐없이, 한명씩만 전도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위에 분명히 잃어버린 한 명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 가지 비유 가운데 두 번째 공통점은, 모두가 잃어버린 하나를 힘쓰고 애써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를 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를 소중한 것으로 여깁니다. 비록 그들이 불안에 떨고 있고, 상처 나고, 근심걱정하고, 아파하고, 낙심하고, 우울해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한사람은 소중한 것입니다. 아흔 아홉도 소중하지만 하나도 큰 가치를 둡니다. 그래서 열심히 찾아 나섭니다. 찾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는 것입니다(4). 또 8절에도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그리고 마지막 비유에서는, 비록 아버지가 집나간 아들을 열심히 찾았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나와 있지 않지만, 정황적으로 봐서는 부지런히 찾았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의 자식이 재산을 다 챙겨서 가출을 했다면, 여러분은 배신감도 가질 수 있을거고, 깊은 실망감도 가질 것입니다. 하지만 가출한 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궁금 정도이겠습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나중에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고 찾지 않겠습니까? 여러 날 찾아다니다가 못 찾으면, 그때부터는 집안의 문도 안 잠그고, 아들 방에 따뜻하게 불도 넣어놓고, 따뜻한 밥과 구수한 된장찌개도 끓여놓고 기다리지 않겠습니까? 혹 남자들은 화만내면서 이놈의 자식 들어오기만 해라, 자식 하나 없는 샘 칠거야-그러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습니다. 식음을 전패하고 찾고 기다릴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그 마음으로 이런 자들을 찾아나서야 하겠습니다. 백방으로 뛰어 다녀야 합니다. 부지런히 찾아나서야 합니다.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내가 찾지 않으면,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는 긴박한 마음으로 찾아야 합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속히 준행해야 하겠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가서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신 주님의 심정으로 잃은자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넘어지고 가시에 찔리고 상처 나고 모욕을 당해도, 잃은 한 마리 양을 마음에 품고 찾는 것입니다. 열정적인 마음으로, 찾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국내 뿐만아니라, 외국에서도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선교사님 6가정을 파송하였습니다(중국, 일본, 키르키즈스탄, 인도, 몽골, 멕시코). 우리교회도 경제적으로 어렵지만은 많은 기도와 물질을 드려서, 저들이 잃은 양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공산권, 이슬람권, 각 종 우상의 소굴에서도 한 사람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도폭발훈련을 만든 제임스 케네디 박사가, 오래 전에 이런 통계를 내적이 있습니다. 만약 유능한 부흥사가 하루에 1000명을 전도한다면, 세계를 복음화 하려면 몇 년이 걸리겠는가? 인구증가율을 생각하지 않고 10000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한 사람이 1년에 단 한명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을 한다면, 전 세계를 복음화 하는데 몇 년이 걸리겠는가? 32년 걸린다고 했습니다. 전자로(1000명, 2000명, 3000명, 4000명)는 세계복음화가 불가능하지만, 후자로(2명, 4명, 8명, 16명, 32명)는 세계복음화가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한명을 전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을 한다면, 교회의 부흥은 물론, 세계 선교는 앞당겨 질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한 사람씩만 열심히 찾아다니며 전도해서, 꼭 그리스도의 제자로 양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찾아다니면 주님이 준비된 자를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열심히 발로 뛰면 주님이 열매를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동네 저 동네를 누비며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애를 쓰셨듯이, 우리도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찾아다녀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한 사람을 만나고 찾게 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나이가 많은 여 집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이분은 작년 4월에 등록을 하신 분인데 몇 주 전에 호반 3차로 이사를 오셨습니다. 이 분은 모든 예배를 빠지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집사님은 1주일에 월, 수, 금요일에는 반드시 전도를 합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닌데 자발적으로 전도를 하십니다. 하루에 아파트 두개 동을 돌면서 주보를 꽂으며 전도를 합니다. 그리고 노방전도도 하는데, 주보만 주면 안 받으니까 자비로 쓰레기 봉투를 사서 그것과 함께 주면서 전도를 하십니다. 하루는 아파트 문이 조금 열려있어서 들어가서, 아주머니에게 전도를 했더니 반응이 별로 없어서, 그 집 초등학생을 전도해서 지난 주일에 데리고 와서 등록을 시켰다고 합니다. 열심히 찾아다니니까 하나님이 아주 귀한 어린이를 찾아내게 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열심히 찾아다니니까 한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세 가지 비유 가운데 세 번째 공통점은, 잃어버린 하나를 찾았을 때 그 감격과 기쁨이 크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이렇게 말합니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6)
그리고 잃은 드라크마 하나를 찾았을 때의 기쁨은 9절에서 말합니다.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또한 집 나간 둘 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의 기쁨은,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는 말씀에서 나타나고, 계속해서 ‘살진 송아지를 잡고,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라는 말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풍악을 울리고 춤추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이 성경의 핵심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목자와 여인과 아버지의 기쁨에 있습니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 너무 기뻐서,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온다고 했습니다. 양은 끌려와야 하는 동물인데, 어깨에 둘러메고 온다는 것은 그 양의 가치와 찾은 기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중동지방의 양들을 어깨에 메고 올 수 있겠습니까? 제가 볼 때에는 여러분 중에는 그 양을 메고 올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양에게는 지독한 역겨운 냄새가 나기 때문에, 다 토합니다. 그러나 목자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친구들과 이웃을 초청하여 함께 잔치를 벌입니다.
주님은 각 비유에서 거의 동일한 결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7절, 10절, 32절에서 한 사람이 회개하여 돌아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 하늘의 기쁨은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여 한 사람이 회개하여 돌아오면, 하나님이 이렇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전도에 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2사람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만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총각 때 영등포 역에 누구를 만나기 위해서 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이니까 롯데 백화점같은 것이 없었고 지하도가 있었고 전철은 지하층에 출입구가 있었습니다. 저녁 때즘 되어서 지하도로 내려가는 그 입구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젊은 청년이 그 지하도에서 힘없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저 청년에게 전도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5분만 시간을 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승낙을 받고, 거기에 서서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던, 4영리의 전도 책자를 꺼내서 1원리에서 4원리까지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하시겠느냐고 물었더니, 예수님을 믿겠다고 해서 영접 기도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청년이, ‘사실 자기는 인천에 사는데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영등포 역에 내려서 걸어서 한강에 가서 투신자살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살 이유가 생겨서, 저쪽으로 가지 않고 이쪽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인천방향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그 청년이 고맙다고 하면서, 다시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마음이 너무 너무 기뻤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을 오늘 나에게 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앙생활 잘하도록 도와 주옵소서.’ 기도를 한 후 하늘을 쳐다보니까 초 저녁 별이 떠 있는데, 그 별이 나를 향해서 반짝 반짝 거리는데, 마치 하나님이 ‘정현아 너 참 잘했다.’라고 칭찬해 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러분, 전도하면 자기도 기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이처럼 기뻐하십니다. 그 한 사람 지금 50대 후반정도 되었을 텐데, 어떻게 신앙생활 하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결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지상에 계실 때 주님은 그 사명을 감당하셨고, 이제 우리를 통하여 그 일을 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받아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주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는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며, 잃은 자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인 엘머 타운즈라는 사람이,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처음에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유형별로 연구했답니다. 달리 말해 누구의 전도를 받고 나왔는가라는 것입니다. ‘친구나 친지를 통해서 나오게 된 사람이’ 86%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조직적 복음 전도를 통하여’ 6%, ‘목회자를 통하여 나오게 된 사람이’ 6%, ‘광고를 통해 나온 사람’이 2% 정도였답니다. 그러니까 가장 효과적인 전도의 대상은, 친구와 친지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친구와 친지에게 열심히 전도하여, 올해는 기필코 좋은 전도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약 잃어버린 자를 열심히 찾아 나서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면, 어떤 결과가 우리에게 있을까요? 1)내가 삽니다. 전도는 다른 사람도 살리지만 내가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도가 영적 운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도하면 육체적으로도 건강해 지고 영적으로도 근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우리에게도 기쁨이 있고 영적 만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2)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의 도우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주님이 마지막 대 명령을 하시면서,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고 하셨는데, 전도하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심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난다.’(단 12:3)고 하셨음으로, 하나님이 전도자를 영적 스타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과천교회의 김기동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아침마다 회사에 출근할 때 자동차의 시동을 걸어 놓고 기도를 하는데, 그가 운영하는 두 개의 회사를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그가 특별히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기도는 ‘오늘도 전도할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기도를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빨간 신호등이라 멈춰 서 있을 때 뒤에서 차 한대가 와서 ‘꽝’ 하고 그의 차를 받았습니다. 그는 순간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전도하라고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차에서 내려서 부딪힌 부분을 살펴보니 범퍼가 상당히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차를 받은 상대방은 미안해하며 보상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걱정하시 마십시오. 범퍼는 원래 찌그러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고는 상대방의 명함을 받아 출근을 했습니다.
그가 차의 견적을 내보니 100만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는 전화를 해서 “아침에 받친 사람입니다. 범퍼는 당장 교환하지 않아도 되니까 점심이나 한 끼 사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먹으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차를 받았던 그 사람은 한 외국회사의 부사장으로 미국에 있을 때는 교회를 다녔었는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다니고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전도를 받아들여 다시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 후 김기동 집사님의 회사가 어려울 때 그 친구의 도움으로 회사의 어려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은 지금 목사님이 되셔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100만원 보상을 받은 것이 이득이 되었습니까? 전도하는 것이 이득이 되었습니까? 전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올해는 전도를 많이 해서, 이런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라고, 전도한 사람도 기뻐하고 옆에 있는 사람도 기뻐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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