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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롬5:6-11)
이정현 담임목사 2017-04-09 추천 0 댓글 0 조회 1496
[성경본문] 로마서5:6-11 개역한글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5:6-11,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

 

오늘 설교 제목을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잡았습니다. 이 제목은 본문 바로 앞 절인 5절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다.’

 

제목의 뜻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마음에 부어진 그 사랑이 무엇인지, 그 사랑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알아봄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본문을 둘로 나눈다면, 먼저 6-8절까지를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고, 다음 9-11절까지는 그 사랑의 결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은, 영적으로 전적 무능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고, 전혀 경건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약대로라는 말은, 정해진 때, 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로 작정한 때,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경건치 않은 자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2:1), 또는 본질 상 진노의 자식’(2:3)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절의 말씀은,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하여 스스로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로 그때, 하나님이 정하신 그 시간에, 그리스도께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죄인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때는, 우리가 전혀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었던 때라는 것입니다. 가치 제로의 인생, 전적으로 무능한 인생, 하나님의 진노의 1순위 인생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다음 구절에서는, 의인과 선인을 위해 죽는 것조차도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의인을 위해 죽는 자가 있기는 하지만, 아주 드물다는 얘기입니다. 선인을 위해 대신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의인과 선인을 위해 죽는 일도 매우 드문 일인데, 하물며 불의한 자를 위해 죽는다는 것이 가당치나 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의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건치도 않은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의인을 위해 죽는 자도 많지 않은데, 주님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죄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연약하고 경건치 않은 자이고, 죄인들이고 원수들이라는 말은 나를, 우리를, 인간에 대한 가장 정확한 진술이 아닙니까? 무조건적 불가능한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어 입증해 주셨습니다. 십자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만 보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고 높은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여기 확증하셨느니라.’는 말은 드러내고 계신다.’ ‘입증하고 계신다.’는 뜻인데, 우리말 성경에는 과거 시제로 번역을 했지만, 원문의 시제는 현재 능동형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지금도 계속하여 능동적으로 보여주고 계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계속하여,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의 그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그 사랑, 아가페적인 그 사랑이 십자가를 통하여 지금도 여전히 보여 지고 있습니다. 나타나고 있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 앞부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부어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맺어진 그 사랑을 아무도 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심지어 하늘의 그 어떤 것도 이 사랑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끊어지지 않고 계속 부어지는 이 사랑을, 풍성히 맛보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이제는 두 번 째 부분으로 넘어가서, 그 사랑하심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은,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9절에서 말하는 진노하심,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형벌을 말하는 것입니다(3:7, 3:7).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순서를 보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고 하셨고, 의롭게 된 자가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여 구원을 받을 자는, 예수님의 피를 믿는 자들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어진 결과는 진노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10절에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비로소 화목과 구원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9절과 10절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는 미래형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 즉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2:8). 또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그리고 바울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8:24)라고 말함으로 구원을 과거 완료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본문에서는 바울이 미래형을 쓰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받은 구원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통과 죽음을 당하여야만 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아직 완전한 구원, 영광스러운 구원에 이르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미래형을 쓰고 있다고 봅니다.

 

성경에도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벧전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장에서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얻고 있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 이 같은 성경에서는 분명, 지금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고, 먼 미래에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미아직사이에 끼어서, 성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은바 되었을 때, 주어진 첫 번째 결과는 진노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결과는 11절에 있습니다.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한다는 것은 그 즐거움이 세속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나, 세속적인 즐거움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이고 신령한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다 좋은 것인데, 그 중에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주어진 기쁨은 더 할 나위 없는 은혜이며 전천후 즐거움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32:11)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과 그 대답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즐거워하느니라는 말은, (현재 분사이기 때문에) ‘항상 즐거워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즐거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즐거움이고, 또한 미래의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예수로 인하여 기뻐한다는 말이고, 또한 미래에 주어질 천국의 영광을 바라보면 현재를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즐거움이 한 순간의 것이 아니고, 항상 지속된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61:10) 베드로 사도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벧전1:8)고 했습니다. 참된 기독교인의 표지는 주 안에서 항상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은 종려주일이고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받으시고, 잡히시고, 십자가를 지시는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는 주간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이 한 주간을 금식하며 특별새벽기도회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자녀를 위한 20일 부모기도회가 진행 중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계속하여 이어집니다. 고난주간이자 부모기도회 주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여 기도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뿐만 아니라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녀를 위하여 울며 기도하는 한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당신의 그 크신 사랑을 쏟아부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가, 죽기 몇 년 전에 미국에 살았습니다. 그때 어느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답니다. ‘바르트 박사님, 박사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질문을 받은 바르트가 한참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이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하고 정확한 답변을 했지 않습니까? 인생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가, 진노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고, 또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이 같은 구원과 기쁨의 은혜를 더욱 더 풍성히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리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04(레만)

1.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화목제물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후렴)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위에 영화 쇠할 때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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