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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델교회 (사도행전 2:42-47)
이정현 목사 2016-09-04 추천 0 댓글 0 조회 623
[성경본문] 사도행전2:42-47 개역한글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러분은 신앙인으로서 본받고 싶은 분이 있습니까? 저 사람의 훌륭한 신앙생활을 본받고 싶은 모델이 있습니까? 목사들은 거의 다, 본받고 싶은 목사님이 한 두 분 정도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하는 사람들에게는, 본받고 싶어 하는 모범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본받고 싶은 목사님으로는, 학자요 목회자요 저술가인 박윤선 목사님이십니다. 박 목사님은 제가 신학교 다닐 때, 1년 반 동안 가르쳐 주셨습니다. 인격적이시고 실력이 있으시고 열정적인 목회자이시고, 대한민국 최초로 신구약 성경 주석을 쓰신 분이시고,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시고, 마음이 따듯한 분이시고, 미래를 내다보고 인물을 키우는 리더십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을 닮고 싶고요, 평생에 걸쳐 그분의 훌륭한 면들을 본받고 싶습니다.

 

또한 제가 본받고 싶은 교회가 있는데, 평택대광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개척한지 33년 정도 되었고, 지금 예배인원이 2000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얼마나 교육과 훈련이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교회에는 유급 교역자가 담임목사님과 여전도사님 한 명뿐입니다. 그 외는 전부 달란트를 가지신 분들이 자원 봉사하는 것입니다. 행정이든 전도든 봉사든 교육이든 심방이든... 모두 자원해서, 자기 돈으로 교회 일을 합니다. 각 교육 부서에도 교회 지원비가 없고, 차량운행도 전부 자원 봉사이고, 식당에서 밥하고 배식하고 설거지하는 것까지 전부 다, 자기들이 돈 내서 봉사 합니다. 그래도 시시하게 하지 않습니다. 부족하게 촌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깔끔하게 풍족하게 세련되게 일들을 합니다. 일하고 나서 건방 떠는 사람도 없습니다.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안하겠다고 발 뼘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교회는 시간이 없다는 남성들을 위해서, 새벽 3시에도 제자훈련을 하는 교회이고, 몇 개의 중보기도실에는 24시간 성도들이 돌아가며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주일 낮 예배와 오후 예배와 수요일 예배의 참석인원이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교회이고, 대부분 불신자들이 전도되어 등록하는 교회이고, 등록만 하면 새벽예배 출석을 체크 하는 교회이고, 구역인도자들이 구역원들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이고, 목사님의 목회 방침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교회이고, 그래서 한국교회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로 손꼽히는 교회입니다.

 

이 정도의 교회라면 우리가 본받고 싶은 교회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 교회보다 더 훌륭한 모델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교회입니다. 저는 이 부분의 성경을 읽을 때마다, 가슴에 벅차오르는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솟아오릅니다.

 

본문을 통하여,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생활 모습을 들여다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이번 시간에 말씀을 잘 깨닫고 은혜를 받아서, 우리교회도 모델교회, 은혜로운 교회, 건강한 교회로 발전되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먼저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던 교회입니다.’ 사도들은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침은 주님이 중요시 한 사항일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해야 할 주 임무였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예수님의 그 명령에 순종하여 가르친 것입니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가르침입니다. 가르치되 사도들은, 자기의 사상이나 철학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복음만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가르친 것입니다.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

 

배우는 사람입장에서는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고, 여기에 주의 집중해서 배워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공부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성경을 공부해야,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평안히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함이 없이 어떤 은사를 강조하거나 신유를 강조하면, 잘못된 신앙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잘 배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은사도 사용하고 성령운동을 해야,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특징 중 제일 첫 번째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았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배우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도 새가족 성경공부, 양육반, 기도학교, 예배학교, 제자훈련 등등이 있음으로, 잘 배움으로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예루살렘교회는 서로 교제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제는 동창회원들이 모이는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그런 세속적 교제를 말하는 것 아닙니다. 또한 이성들끼리 교제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야욕을 채우기 위한 정치적 교제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교제는 사도신경에도 있는 것처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간의 이 교제는 본질적이고 필연적입니다. 이 말은 성도라면 기본적으로 교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가족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여러분이 가족이 되었습니까? 부부가 만날 때에는 어느 정도 합의하에서 만나 가족을 이룬 줄로 앎니다. 그러나 자식들은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부모들도 자식을 계획대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되었을 때는, 서로 교제해야합니다. 서로가 싫을 때도, 서로가 싸웠을 때도, 서로가 미울 때에도, 서로가 부족할 때에도, 서로는 교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라면, 우리는 가정이라는 태두리 안에서 서로서로, 본질적으로 필연적으로 교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다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한 하나님의 영적 가족이 된 것입니다. 서로가 원해서 가족이 되지 않았다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로얄 페밀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싫든 좋든, 서로 교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교제에는 정신적인 교제와 물질적인 교제가 있습니다. 성도들끼리 영적으로 서로 교제를 나누어야하고, 또한 물질도 서로 나누며 교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측면의 교제를, 마음 내키면 하고 안내키면 안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제를 할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종, 민족, 지위, 학벌, 빈부격차, 남녀노소, 심지어 성격조차도 차별을 무시해야 합니다. 영적인 가족이 되는데 이런 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면, 교제하는 대도 이런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는 차별 없이 교제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멋진 교제가 우리 안에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떡을 떼는 일입니다.’ 떡을 뗀다는 말은, 성찬을 말하기도 하고 애찬을 말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는 성찬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성찬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성찬은 은혜 받는 수단으로,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갖는 예배의 두 기둥 중의 하나입니다.

 

성찬은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살로 인하여 구원 받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저 사람도 동일한 은혜 가운데 이 자리에 서서 함께 감사하며 이 성찬에 임하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에 감사하며 이 성찬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감동과 감사가 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성찬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서, 주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이고 동시에, 함께 참예한 성도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음을 감사하며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찬이 있을 때마다 이런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그런자에게 새로운 믿음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쓴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기도를 빼놓고 신앙생활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디든지 기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오순절 성령 충만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며 기도하다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능력을 행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여, 귀신도 쫓아내고 병든자도 낫게 합니다. 환란과 핍박을 당해도 기도함으로, 그것을 이겨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초대교회는 기도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힘쓰니라.’는 말은, ‘계속하여 전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기도에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실제로는 앞의 네 가지 사항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도 계속하여 전념했다는 말이고, 서로 교제하는 일에도 힘썼고, 성찬을 참예하는 일에도 계속적으로 전념했고, 기도하는 일에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전념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교육, 교제, 성찬, 기도에 지속적으로 전념했던 교회였습니다.

 

43절에도 이 교회의 특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이 말씀은 앞뒤의 문장을 바꾸어 보면, 더 이해가 쉬어집니다.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람마다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놀라운 이적이 일어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고, 귀신이 떠나가고, 각종 병자들이 벌떡 일어나면, 사람들이 영적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이 같은 분위기가 교회 안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에서는, ‘성도들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의 재산을 팔아 나누어 줬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전부 유무상통했다는 말입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의 소유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표현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했는데, 여기의 모든 물건은 ‘모든 것’을 말함으로,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까지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평생에 걸쳐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남을 도와 본적이 있는가요?

 

유무상통의 이 모습을 본 따서, 소련의 공산주의가 강제적인 폭력에 의해서 재산을 공유하도록 했으나, 결국 소련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공산주의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북한만 남았는데,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공산교라서 그렇습니다. 공산교라는 하나의 종교가 되어있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무너져서 복음이 전파되고, 그곳에서도 마음껏 예배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나라에 강제적으로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재물을 자발적으로 팔아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필요대로 나누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극진한 이웃사랑의 현장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기 이전에도 그들은 이런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강림이후에도, 성전에 날마다 모여 기도하고 찬송했던 것입니다. 자주 모이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고,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그것도 마음을 같이하여 자주 모이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이단은 자주 모이는데, 교회는 자주 모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자주 모여서, 열정적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이런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으면, 그 교회는 성장하지 못한답니다. 교회에 조집사 주집사가 많으면 그런 교회는 성장을 하지 않는답니다. 예배 때 조는 사람, 기도 때 주무시는 사람.... 반대로 신집사, 정집사가 많은 교회는 성장한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 정이 많은 사람을 말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마집사와 이집사가 많아야 한답니다. 마음이 이쁜 집사님들을 말합니다. 우리교회는 신앙도 좋고 정도 많고, 마음이 이쁜 분들이 많이 있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키르키스탄 칸트은혜교회-10명/ 300만원

 

그리고 성전에서는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들었지만, 이제 집에서는 떡을 먹고(애찬을 했다는 것이지요) 같이 순전함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유대관계가 좋았습니까? 성전에 모이면 성전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집에 모이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에서나 집에서 교제를 통하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말과 행동에 의해서 상처주고 상처를 받기가 일수인데, 그들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교제하니까, 불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불화가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친교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영락교회를 설립한 한경직 목사님이, 서울에서 이북 사람들을 중심으로 목회를 하는데, 많이 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다가 또 멈추고 성장하다가 멈추고 그러더랍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해 보다가, 한 가지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려면 이것 하나만 하면 된다. ‘싸움만 안하면 된다.’ 시기, 질투, 싸움, 불화가 없이 순진한 마음으로 서로 나누고 교제하면, 그런 교회는 성장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마지막 47절 전반부의 말씀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앞에서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성도들이 모일 때에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가정에서나 야외에서나 예배당에 모일 때에, 기도와 찬송이 빠질 수가 있습니까? 그들은 모일 때마다 하나님을 찬미했고, 온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모일 때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은, 오히려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보다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온 백성들, 특히 가까이에 있는 이웃 주민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웃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했으면, 이런 칭송을 받았겠습니까? 가정에 가면 가정에서도 칭찬을 받고, 직장에 가면 직장에서도 칭찬을 받고, 학교에 가면 학교에서도 칭찬을 받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훌륭한 성도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몇 구절의 말씀을 통하여,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의 신앙생활을 단적으로 수직적인 면과 수평적인 면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수직적인 면은, 기도에 힘쓰는 일이고 하나님께 찬송하고 말씀을 배우고 성찬에 참예하는 것이지만, 수평적으로는, 교제하고 음식을 나누고 애찬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이웃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입니다. 저들은 수직적인 측면에서도 신앙생활을 잘했고, 수평적인 측면에서도 정말 잘 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두 모습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모범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델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주어졌습니까? 마지막 부분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 당시 구원 받은 사람들이 날마다 있었습니다. 한 달 단위나, 일주일 단위가 아닙니다. 우리교회도 매 주일마다 사람들이 등록을 합니다. 가끔 수요일에도 등록을 합니다. 그러나 날마다 등록하는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등록하려면 적어도 매 새벽예배 때에도 등록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는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이 더하여 졌습니다. 수시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 받는 사람’이라고 할 때, 시간 제약을 받지 않고 구원 받는 사람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시간에 제약 받지 않는 구원의 역사가 교회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역동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교회의 성장은 인간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체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께서’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 교육과, 기도생활이 열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뿐만아니라, 교회 내에서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교회를 본받아, 멋진 교회,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시간제약 없이,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여 주시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처럼, 전 세계에 거룩한 영향을 끼치는 소망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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