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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마태복음 23:23)
이정현 목사 2016-08-28 추천 0 댓글 0 조회 860
[성경본문] 마태복음23:23 개역한글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마23장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옵니다. 13절, 15절, 16절(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23절, 25절, 27절, 29절입니다. 그래서 마23장을 ‘화 선언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본문은 주님의 4번째 화 선언이신데, 바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11조 생활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십일조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십일조란, 우리가 얻은 소득의 1/10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1년 농사지은 것 중에서, 1/10을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사과 10궤짝을 수확했으면 1궤짝을 드리면 되고, 돼지가 새끼를 10마리를 낳았으면 1마리를 드리면 되고, 소를 팔았으면 그 중에 1/10을 하나님께 드리면 되고, 가을에 쌀농사 20가마니를 수확했다면, 2가마니를 하나님께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산업사회에서는 월수입의 1/10을 드리면 됩니다. 보너스를 받으면 보너스에서도 1/10을 하나님께 드리고, 사업을 하는 사람도, 월 소득 중에서 1/10을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대신 요사이는 월급 중에서 또는 사업을 해서 번 돈 중에서, 자기가 빚진 것, 대출 받은 것을 갚거나 이자를 내고나서 11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다 제하고 나니까, 11조 할 것이 없다고 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월 소득이 없다면 몰라도 월 소득이 있으면, 아무리 적고 많고를 떠나 11조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이 돈과 물질을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무엇인가 부족해서 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11조와 헌금을 드리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헌금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11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나, 사람이 씁니다. 십일조를 비롯한 그 어떤 헌금도 사람에게 드리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쓰기는 사람이 쓴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그 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것을 통하여, 너희들에게 주어지는 이 모든 것이 누구로부터 오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한 달 월급이, 한 달 사업수익이 누구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재우시고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기원은 창세기 14장에 나와 있는 아브라함입니다.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이 소돔과 고모라를 침략해 와서, 그곳을 초토화 시키고, 많은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갔습니다. 아울러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잡혀가고, 많은 여인들도 사로잡혀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서 훈련된 318명을 거느리고, 저 북쪽 단까지 쫓아가서 야밤에 그들을 기습해서, 빼앗겼던 모든 재물과 조카 롯과 부녀와 친척들을 다 찾아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그돌라오멜의 연합군과 싸워 대승하고 돌아올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나와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나는 11조에 관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이때의 아브라함은 단지 순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11조를 드린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군사적으로 생각할 때, 318명을 가지고 그 강대한 연합군을 쳐서 이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 때문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도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네 대적을 너의 손에 붙이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이 이 전쟁에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자기들이 노력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전쟁을 했습니다. 그랬지만은 전쟁에 승리하여 사람들과 재물을 되찾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거기에 대한 감사함으로, 다시 찾아온 재물 중에 1/10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드린 것입니다. 최초의 11조는 감사한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에 이어, 28장에도 한 번 더 11조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야곱이 자기 외삼촌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으로 가면서, 벧엘이라는 곳에서 잠을 잡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너의 후손들에게 줄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킬 것이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에서 깬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주시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고, 이곳에 하나님의 집을 세울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1-22)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에서, 11조를 반드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한 것입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과 야곱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십일조를 드린 반면,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11조를 명령하십니다. 레위기에서는(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게 되면, 소산물 중 1/10은 여호와의 것임으로,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에서는(14: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토지소산의 11조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11조를 어디에 쓸 것인가를, 민수기에서 말씀하셨습니다(18: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레위 자손들은 전적으로 회막과 성전에서 봉사했기 때문에, 그들의 양식으로 11조를 사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오직 성막에서 제사장 직무만을 감당하는 레위인들의 생계를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소산의 십분의 일을 드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당연히 성막에서 봉사하는 자들을 위해 소득의 1/10을 내야만 했습니다. 사사시대를 거쳐 왕정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솔로몬 이후에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 지파 사람들을 위해, 11조가 더 많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땅히 땅을 분배 받지 않고, 오로지 성전에서만 봉사하는 그들을 위해,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예배하는 그들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소득의 11조를 드려야만 했던 것입니다.

 

11조에 대한 구약의 마지막 언급이, 말라기에 나옵니다. 말라기 3장은 십일조를 하지 못하고 있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이고, 너희들이 만약 지금부터라도 돌이켜서 온전한 11조를 하게 되면, 하나님이 이렇게 복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말 3:8, 10/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도둑질 한 게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이처럼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지만, 지금이라도 회개하여 온전한 십일조를 해라. 그러면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것으로 나를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늘문을 여시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되, 여러분의 호주머니에, 여러분 가정의 창고에, 여러분 개인 통장에, 여러분의 금고에, 자녀들의 가정에, 사업장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토지소산을 해치는 메뚜기도 있지만, 가정을 좀 먹는 메뚜기도 있고요, 건강을 갉아먹는 메뚜기도 있고요, 사업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메뚜기도 있고요, 인간관계를 갈라놓는 이간질하는 메뚜기도 있고요, 교회를 파괴시키려는 이단과 사이비의 메뚜기들이 있고요, 사고의 메뚜기도 있고, 사기의 메뚜기도 있고, 질병과 실패의 황충도 있고요, 우리의 신앙을 좀 먹는 황충들이 있는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런 메뚜기들을 금하여(막아주셔서), 너희를 복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온전한 11조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러면서 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도 도둑질하면 법에 따라 심판을 받는데, 하나님의 것을 내 마음대로 쓰고, 평안히 살 자가 있겠습니까? 도둑놈들이 다리 쭉 뻗고 살 수 있습니까? 정신 차리시고 지금이 회개할 때인 줄 아시고, 회개하여 여러분들의 신앙을 바로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약속된 복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신약으로 넘어와서, 본문은 예수님이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11조 생활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들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렸습니다.’ 여기서의 박하는 향료식물이고, 회향은 미나리과에 속하는 양념의 향료이고, 근채도 미나리과에 속하는 향기가 짙은 식물입니다. 전부 다 식물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이들이 십일조를 안했다는 말이 아니라, 하기는 했습니다. 이런 것들의 11조는 드렸습니다. 물론 성경에서의 11조는 기본적으로 곡식, 포도주와 기름이었기 때문에 이런 향료나 식물은 성경에 거론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기본적인 것 뿐만아니라, 더 철저하게, 사소한 것까지 11조를 드렸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종교적 열심이 있었는데, 주님이 이것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외면하였기 때문에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더 중요한 바는 행하지 않고, 거기에 비해 사소한 것을 형식적으로 행하였다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정의는 공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A. L. Williams은 공의를, ‘자기 이웃에게 올바르게 처신하며, 말이나 행실에 있어서 어떤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긍휼은, ‘불쌍한 사람과 고통 받는 자를 보고서, 그들을 향해 베푸는 친절이나 호의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자비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또한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확신’을 의미합니다.

 

이런 세 가지는 신자의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일찍이 미가 선지자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하나님은 외식적 종교적 제의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와 긍휼과 믿음을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같은 율법의 근본정신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율법적 11조 준수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결론으로,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둘 다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십일조도 하고, 의와 인과 신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 다 행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다운 예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11조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로, 마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단어인 ‘할지니라.’(에데이)는,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11조를 부정하면서, 이것은 유대인들의 의식법이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후에는 다 성취가 되었음으로, 11조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만, 주님은 본문에서 ‘할지니라’를 미완료과거형으로 말씀하심으로, 당연히 해야 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11조는 세상 끝 날까지 당연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조를 당신이 살아계실 동안만, 일시적으로 한정적으로 인정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계속 하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신약성경에 보면, 11조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바리새인이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면서 11조 얘기를 합니다. 그 바리새인은 세리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월, 목),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자신의 의를 드러내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의 기도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십일조에 대한 신약의 마지막 진술이 히브리서 7장인데, 여기에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11조를 드린 것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주로 멜기세덱을 설명하면서, 그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고 하면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11조를 드리고 복 빎을 받은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 11조를 드리고, 그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11조에 관하여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바울의 주장은 10/10, 모든 것을 다하여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고 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모든 물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만약 바울은 한 번도 11조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음으로 11조 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은, 바울의 말대로 10/10을 드려야 합니다. 왜지요? 바울은 모든 것을 드려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바울은 헌금을 드릴 때에 자원함으로, 감사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힘껏, 힘에 지나도록 헌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헌금의 액수가 적고 많음을 따지지 말고 헌금 할 때, 그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소득의 11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 9/10는 내 마음과 내 뜻대로 육체의 만족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 아니라, 9/10까지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10을 드리면, 그 속에는 나머지 9/10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겠다는 헌신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바울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선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11조는 최소한의 헌금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과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헌신의 표로, 자원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예배당을 유지하고, 교회에서 수고하고 애쓰는 목사님들과 직원들의 사례비를 드리는 것이고, 아이들 교육하고, 학생들 장학금 주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데 쓰고, 구제와 봉사하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천 성산교회에 김용성 안수집사님이라는 분이 있답니다. 개인과 가정의 살림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5/10를 하나님께 드렸답니다. 월급의 반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것도 한 달 두 달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을 붙들고, 오랫동안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먼저, 쓸데없는 곳에 돈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하시더랍니다. 병원비로 나가지 않게 하시고, 사고수습비로도 나가지 않게 하시고, 아이들에게도 불필요한 돈이 나가지 않도록 막아 주시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지혜롭게 키워주시더랍니다. 당시 남들은 고액과외는 못해도 몇 십 만원짜리 과외는 다 했는데, 자기 큰 아들에게는 돈이 없어서 만원짜리, 오즈의 마법사라는 영어테이프를 사줬는데, 그 아이가 그 테입을 천 번을 들으면서 영어공부를 했는데, 영어 듣고 말하기 평가에서 고교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과외비를 투자하지도 못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지혜롭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물질적인 복을 받아서, 동네에서 내노라 하는 부자가 되었답니다. 심지어 부자들도 자기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온다고 합니다. 이웃들에게 꾸어주고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답니다. 교회 일에 헌신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영적으로도 많이 성장해서 교회의 장로님이 되어서, 전 예배를 다 드리고, 교우들로부터 존경 받는 장로로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은, 하나님의 복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죽하면 시험해 보라고 하셨겠습니까? 소망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않음으로, 약속된 복을 다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인천공한 근처에, 신도, 시도, 모도라는 섬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간에 있는 섬이 시도인데, 그곳에 시도감리교회가 있습니다. 마을 주민이 100여명 정도 되는데, 거의 다 주일예배에 나오고요, 100% 십일조를 한답니다. 이 교회는 작은 농어촌 교회이지만, 100% 주일성수, 100% 십일조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다른 농어촌 미자립 교회를 무려 50군데 이상 도와주고 있습니다. 모범된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터넷에 쳐 보면 ‘작지만 큰 교회, 시도 감리교회’라고 나옵니다.  

 

소망교회 성도들도 100% 주일성수하시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100% 11조 생활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자들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이웃 사랑에도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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