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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름으로 (요한복음 16:23-24)
이정현 목사 2016-07-31 추천 0 댓글 0 조회 531
[성경본문] 요한복음16:23-24 개역한글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름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오노마’입니다. 이 말에는 ‘인격, 사역, 평판, 존재자체’는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 예수의 이름 또는 사람의 이름과 사물의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때 이름에 해당되는 단어로 오노마(히, 쉠)를 썼을 때, 거기에는 네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이름, 주의 이름’이 나왔으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에 대한 평판, 하나님 존재자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이라고 했을 때도, 그리스도의 이성 일인격적인 성품(신인), 그의 죽으심과 부활, 그분에 대한 평가, 그리고 예수님 존재자체를 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름에도 마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완용 그러면, 이완용이의 인격, 이완용이가 한 일들, 이완용에 대한 평판, 그리고 결국 이완용 그러면 그 사람 존재자체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세종대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종대왕의 인격, 그가 한 일, 그에 대한 평가, 그리고 존재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름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들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면 이름에 걸맞게 생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이름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이, 내 이름에 걸맞게 사는 것입니다. 내 이름이 ‘성도’이기 때문에, 항상 세상과 구별되게 거룩하게 사는 것이, 내 이름답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두 가지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는 예수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오셨으며,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인데, 이 의미를 이름 속에 담아 주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예수라는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분은 나의 구원자이시다.’ ‘그분은 나와 항상 함께 계신다.’라는 사실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조하여 수백 번 그 이름을 외쳐도 지나치지 않는 이름이, 바로 예수 그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와 유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모릅니다.  

 

오늘은 예수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와 유익을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강하게 임하였을 때, 성령의 은사로 말미암아, 각 족속의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외국어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민족의 언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들으니까, 이게 이상한 게 마치 술 취한 현상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독교인들을 조롱하면서 저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나서서 이 현상은 술 취한 게 아니라, 요엘서 2장에 예언된 말씀의 성취라고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중 인용한 구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행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바울도 복음을 로마사람들에게 전파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9-13)

 

바울은 구원의 도리를 분명하게 전하기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데,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든지 다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하면서, 다시 강조해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과거를 회고하면서,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뵈옵고 난 후,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자기에게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22:16)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이제는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으라.’고 권고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진실 되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데, 그러면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단순히, 나사렛 예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이렇게 그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것은 주를 믿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서(10:14)의 말씀에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와 대조시키는 말이 ‘믿지 않는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는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라고 한다면, 믿는자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곧 예수를 믿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제한이 없는 것입니다), 주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임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주의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은혜와 유익이 바로, 그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에 따라 오늘 우리는, ‘누구누구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라고 함으로 세례를 시행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외적인 표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인치는 것이 세례입니다. 세례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세례를 받았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물의 질이나 양에 따라서 세례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물이든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셨다는 요단강 물로 하나, 아니면 집의 수돗물로 하나, 아니면 도랑의 물로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물을 많이 해서 몸을 담그도 되고, 아니면 조금 적셔도 됩니다.

 

또한 시행방법이 많은데, 침수를 하든, 살수를 하든, 주수를 하든, 적수를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세례를 주면 효력이 있고, 또 다른 방법으로 세례를 주면 효력이 없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시행자의 경건이나 능력에 따라서, 세례의 효력이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세례 집례자가 유명한 목사나 신부라서 효력이 있고, 시골목사라서 효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세례에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물로 세례를 주거나, 어떤 방식으로 세례를 주거나, 비록 미 자격자가 세례를 준다할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면 그 세례는 유효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영세도 인정하는 것이고, 침례교의 침례도 인정하고, 군에서 받은 진중 세례도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세례를 받아서, 교회 공동체의 한 회원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은 하늘나라 백성의 무리인 성도가 되었다는 말이고, 이제부터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공동체의 지체가 되었다는 뜻이고, 천국의 신민권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돈 주고도 안 되고, 권세가 있어도 무력으로도 안 되고, 세상 지식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대단한 은혜와 유익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이름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와 중요함이 있는 것입니다.

 

3. 우리는 그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시편 44편은 고라 자손의 시인데, 거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5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이것은 두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적로는 한 뜻을 다른 표현으로 반복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의 대적을 누르고’라는 말과,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라’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누르다’라는 말은 ‘들이박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힘센 소가 뿔로 들이받아 넘어뜨리는 모습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밟으리라’는 말은 잔인하게 짓밟고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마치 전쟁에 승리한 군인들이, 패하여 쓰러져 죽은 적의 시신을 밟고 지나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시편기자가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물리칠 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라고 말함으로, 전쟁에 승리할 수 있게 되었고, 골리앗을 짓밟아 버린 것을 염두에 둔 말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시편기자는, 오늘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우리를 치러하는 수많은 적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들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침략해 올 때에,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그들을 들이받아 버리고, 그들과 싸워 완전히 짓 밟아버리고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신약으로 와서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믿는자에게 따를 표적이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예수를 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우리에게 이런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70명을 둘씩 짝지어 마을로 보내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이 전도하고 돌아와서 기뻐하며 주님께 보고를 하였습니다. “눅 10: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이 말씀을 들은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귀신을 제압 할 수 있는 권세, 뱀과 전갈을 밟을 수 있는 권세,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그 권세 있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시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의 나이가 약 40세였다고 하니까, 40년 동안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까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여 먹고 삽니다. 그것도 자기발로 나올 수 없으니까, 누군가가 그를 데려다 주어야만 합니다. 그는 구걸하기 정말 완성 마춤의 장소를 정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주 제사를 드리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러 성전에 가지요, 그 어떤 성전 문보다는 아름다운 문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성경은 가난한 사람,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구제하기를 인색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좋은 장소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앉은뱅이는 한 번도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예배해 본적이 없는 영적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어느 날 이 사람 앞에 베드로와 요한이 나타났습니다. 앉은뱅이는 평소에 하던 것처럼, 한 푼 날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보라고 하니까 무엇인가 얻을까하여 사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서 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곧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나,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걷게 된 것은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일어나 걷게 된 것입니다. 그 이름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너는 누구냐.’...

 

대단한 그 이름입니다. 능력의 그 이름입니다. 우리의 피난처와 방패가 되시는 그 이름입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그 이름입니다. 병자를 일으킬 수 있는 권세 있는 그 이름입니다. 그 이름으로 우리의 대적들을 누르고 짓밟으며,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우리는 그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본문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얼마나 은혜스럽고 감격스러운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요16:23-24/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구약 시대에는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는 드렸지만, 예수이름으로 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시대가 되어서는,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게 되고, 기도응답을 받게 됨으로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 이름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최대의 은혜요 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 말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전 인격과 전 사역을 의지하여 기도합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중보자 예수님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은행에 가서 돈을 청구할 때, 청구서를 쓰고 그 밑에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이름이라는 도장을 꽉 찍어서 하나님께 청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의 이름보고 주시는 것입니까? 거기에 찍힌 그 도장보고 청구대로 주는 것 아닙니까? 당신의 외아들, 인류의 구세주, 유일한 중보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 이름을 보고,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은, 기도할 때 자기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은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상홍은 자기 생일이 12월 1일인데, 이 날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중보자 그리스도라고 하니까, 다른 것은 안 봐도 이단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자주 진지하게 나아가서 기도함으로, 은혜와 응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특권을 많이 사용하시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 이름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에게, 다음과 같은 은혜와 유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약 5:14-15/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으시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받고, 고침 받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이같이 그 이름을 통하여, 놀라운 은혜와 유익을 얻은 우리들입니다. 평생에 걸쳐 그 이름의 능력을 사용하시기 바라고요, 그 이름으로 기도하여 많은 응답을 받으시고, 그리고 주의 이름을 크게 높이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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