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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물으며 산 사람 다윗 (사무엘상 23:1-14)
이정현 목사 2016-07-03 추천 0 댓글 0 조회 936
[성경본문] 사무엘상23:1-14 개역한글

1.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라 하신지라

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거민을 구원하니라

6.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었더라

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로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붙이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8.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 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9. 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 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 다윗이 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의 연고로 이 성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주의 종의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가 내려 오리라

12. 다윗이 가로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붙이리라

13.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혹이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14. 다윗이 황무지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황무지 산골에도 유하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과 두 번째 왕 다윗은, 처음에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깨어지게 되는 계기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인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백성들이 왕에게는 천천을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게 되니까, 사울 왕이 화가 난 것입니다. 사무엘상 18: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사울이 백성들의 말에 불쾌감을 느끼며 심히 노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놈 조금만 놔두었다가는, 내 자리를 치고 올라오겠네.

 

이때부터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기에 사울에게 악신이 들어갑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집어 던지는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 다니게 됩니다. 다윗은 아무런 잘못된 없고 왕에게 죄를 범한 것도 없는데, 장장 10년 동안 사울을 피해 다니는 것입니다. 이 10년을 1기 3년, 2기 3년, 3기 4년으로 나누는데, 바로 본문의 도피 생활은 제2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2차 피신시기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지금 다윗은 유대의 한 곳에 피신해 있습니다. 그때 누가 다윗에게 와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수확한 농작물을 빼앗아 갔다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왜 다윗에게 이 소식을 알리지요? 블레셋의 침공은 국가적인 일이고 나라의 큰일이기 때문에, 보고를 하려면 왕인 사울에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울에게 이 보고를 하지 않고 다윗에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울은 이미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신임을 잃고, 오히려 다윗이 백성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마땅히 그의 백성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었지만, 그것을 잘하지 못하여 결국 신임을 잃고 말았습니다. 

 

여기의 그일라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25km에 위치해 있는 농촌 마을입니다. 이 지역은 유다 지파에 속하여 있고, 블레셋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블레셋의 공격을 자주 받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동안 블레셋은 다윗과의 전투에서 패한 이후, 오랫동안 힘을 잃고 있다가, 사울 당시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군사적으로는 힘이 약화된 상태를 틈타서, 그일라를 침략하여 타작마당을 탈취한 것입니다.

 

그일라가 블레셋의 침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먼저 여호와께 물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기서 ‘이에’라는 말이 중요한데, 이는 앞의 사건과 본문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블레셋의 그일라 침공 사건과 관련해서, 다윗이 곧바로 취한 행동은 바로 여호와께 물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물은 것이 아니고, 다른 신에게 물은 것도 아닙니다. 그는 문제가 생기자 또는 나라의 위기가 생기자, 곧장 하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물었을까? 혹자는 우림과 둠밈으로 물었을 것으로 보지만, 그냥 보편적으로 기도함으로 물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다윗은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일라를 구원하기 위한 군사적인 행동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먼저 출전 여부를 물은 것입니다.

 

다윗이 무엇이라고 기도합니까?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다윗의 이 말은 블레셋 사람들을 격하시켜서 멸시하고 있는 어투의 말입니다.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주고 그들을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라고 부른 적이 있고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보고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삼상17:26).

 

다윗이 지금 적은 군사를 이끌고 쫓겨 다니는 신세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승리는 여호와께 달려있음을 확실히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얏보며 멸시하며, 내가 가서 저 놈들을 치리이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가서..치고..구원하라. 3개의 간단한 명령입니다. 어떤 특별한 군사적인 전략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가라고 치라고 구원하라고 명령하신 것 뿐입니다. 다윗은 이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여호와의 이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다윗은 승리를 맛보는 것입니다. 블레셋의 속박과 노략으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다윗의 추종자들이 출전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유다에 있는 것도 사울의 위협 때문에 두려운 상황인데, 그일라까지 올라가서 막강한 블레셋 군대와 전쟁하는 것은, 너무나 무모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는데, 이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두려우니 올라가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윗의 추종자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블레셋 ‘군대’라고 하지만, 2절에서 다윗은 그들을 멸시하는 투로, 내가 ‘저까짓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추종자들은 두려워 떨며 말하지만, 다윗은 저들을 얏보며 말하는 것은, 다윗에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4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그리고 다윗은 여전히 다시 물었다’라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에 없는 ‘여전히’(STILL)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추종자들의 불안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께 다시 간구한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기 신하들의 불신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추종자들의 방해에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전히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도했을 때도 하나님은 친절히 대답해 주셨습니다.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첫 번째 기도 응답으로는 ‘가서 치고 구원하라’는 말씀이었지만, 이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누가 주도하게 될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 너희는 내려가고, 치는 것은 내가 저들을 치겠다는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이 전쟁은 이스라엘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인 내가 하겠다는 것이며, 2절에서는 막연하게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셨지만, 여기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다윗의 손에 넘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이 적을 나에게 붙이면 승리하는 것이고, 나를 적의 손에 붙이면 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하나님이 이 블레셋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하셨음으로, 이 전쟁의 승리는 다윗에게 있는 것입니다.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5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몇 명이 갔지요?- 13절에 600여명)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다윗은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과 싸워 크게 죽이고, 그리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왔다.’고 되어 있지만, 원문 성경에는 그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가 그들의 가축을 끌어왔고, 그리고 그가 큰 살육으로 그들을 쳤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먼저 가축을 끌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쳐서 죽인 것입니다.

 

여기의 가축들은 누구의 것입니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데 하나는, 약탈한 곡식을 싣고 가기 위해서 블레셋 사람들이 몰고 온 가축들이라고 볼 수 있고, 두 번째는 그일라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간 가축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첫 번째 가축이라면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전리품이 되는 것이고, 후자라면 빼앗긴 것을 도로 찾아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적군을 죽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그들의 손에서 그일라를 구원하는 것이 먼저였다는 것입니다. 죽이는 것 보다 빼앗긴 것들을 도로 빼앗아 오는 것이 먼저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산이나 가축이나 곡식을, 귀중하게 취급하는 사람임을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왕이 자기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가축을 착취하는 모습을(8:10-18) 볼 수도 있는데, 이런 모습과는 반대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성경 기록자는, 본문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다윗이 그일라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고, 응답 받은 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생활하는 다윗이었습니다. 한번 묻고 응답을 받았지만, 또 다른 의견이 있으니까 또 다시 묻고 생활을 했던 다윗입니다. 다윗은 그일라를 구원했지만 나중에 이 그일라 사람들이 배신을 해서,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고 사울에게 고자질을 한 것입니다. 이때에도 다윗은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하나님, 사울이 나를 잡으러 여기까지 올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그래 사울이 내려온다.’ ‘그러면 하나님,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사울의 손에 넘기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래 그일라 사람들은 너를 넘길 것이다.’라고 응답을 하셨습니다. 다윗은 묻고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장면이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3장에만 다윗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표현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이는 그처럼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말렉이 유다를 침략해 와서 초토화 시켜놓고, 아내들과 자녀들을 사로잡아 달아났습니다. 이런 처참한 환경 속에서 다윗이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삼상30:8).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저 북쪽 브솔까지 쫓아 올라가서, 그들을 다 죽이고 빼앗겼던 것들을 되찾아 왔습니다.

    

삼하2: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삼하5: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은 전쟁을 할 때나, 무슨 일을 하기 전에 이처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응답을 따라 순종했던 것입니다. 자기 주관대로(자기 뜻대로, 마음대로, 판단대로) 살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 묻고 응답받고 행동했습니다. 

.

그러나 반대로 묻지 않아서 실패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9장의 사건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중앙전쟁을 하는데, 기브온 사람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여호수아 앞에 나와서, 우리가 당신의 종이 되겠다고 하면서, 우리와 언약을 맺자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준비해 온 음식을 먹고 하나님께 묻지 못하고, 그만 조약을 맺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묻기만 했더라면 하나님이 분명히 대답해 주셨을 것인데, 그들은 묻지 않음으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기브온은 두고두고 이스라엘의 화근이 되었던 것입니다. 묻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그런데 물어도 실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에게 묻는 사람입니다. 우상이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행하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오고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존재에게 내가 묻는다는 말입니까? 물어도 실패합니다. 아니 우상에게 물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어귀에 서서 점을 치되, 화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제물의 간을 살펴서 예루살렘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겔21:21). ...

  

호세아서에 보면(4:12),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 이런 우상에게는 아무리 물어봐야 대답해 줄 수도 없는 것들이며, 오히려 화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물어도 누구에게 묻느냐가 중요한데, 곧 우상에게 물어봐야 소용이 없고 오히려 저주이나, 하나님께 묻고 사는 인생이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 묻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업장에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묻고 응답 받아 사시기 바랍니다. 

 

길은 묻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길,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침마다 묻고 하루를 살아가고, 주일마다 나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묻고 한 주간을 살아가고, 정기기도회에 나오셔서 하나님께 묻고 한 달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진실 되게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응답을 받았으면 그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응답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응답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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