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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이시고 나는 누구인가? (누가복음 5:1-11)
이정현 목사 2016-03-06 추천 0 댓글 0 조회 395

스위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은, ‘신인식이 곧 자기 인식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그 다음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말입니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하신 일들을 알아야, 그 분 앞에 있는 나라는 존재를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로 자기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칼빈의 이 말은, 오늘 본문에서도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이제 그물을 씻으며 조업을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주님의 그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을 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동무들의 배에까지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이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그분은 누구’이시고, ‘나는 누구’인지를 비교해 봄으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도 역시 말씀을 귀담아 잘 들으심으로, 깨닫고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누구이시고 나는 누구인가?

 

1. 그는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나는 듣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항상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늘나라를 말씀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십니다. 산에서도 말씀하시고 바닷가에서도 말씀하시고, 회당과 성전에서도 말씀하시고, 길가에서도 말씀하시고 집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자체가, 가르치시고 선포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본문에도 보면, 1절에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주님이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무리들이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절에,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지에서 수많은 무리들을 가르치시니 거기에는 전파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배에 오르사, 자기에게 주의 집중할 수 있도록 하시고, 육지에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 또 말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셨다면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은 말씀을 듣는 입장입니다. 예수님이 어는 동네에서 전도를 하시는데, 마르다라 이름 하는 한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을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열심히 일하면서 예수님을 대접하는데,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한 여자는 봉사를 위하여 분주했지만 다른 한 여인은 한가히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언니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 지금 저 혼자 일하고 있으니, 내 동생을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너는 지금 많은 일로 분주하나 한 가지만 하고,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눅10:38-42). 언니는 봉사하는 편에 있었지만 동생 마리아는 말씀 듣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때도 주님은 말씀을 가르치는 입장이셨고 마리아는 듣는 입장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을 듣는 좋은 편을 선택하여야 하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이런 자세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 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옵소서. 우리가 듣겠나이다.’ ‘주님이 가르쳐 주옵소서. 우리가 귀담아 듣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늘 귀담아 잘 듣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요,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고요, 말씀을 듣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고요, 말씀을 듣지 않으면 결국 신앙생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설교를 듣되, 기도함으로 듣고,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사모함으로 듣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아멘으로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 밭이 길가와 같이 단단하면 안 됩니다. 돌이나 가시채가 뒤엉킨, 근심걱정이 많고 복잡한 마음으로 들어서도 안 됩니다. 부드러운 옥토와 같은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 이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나는 그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2. 그는 명령하시는 분이시고, 나는 순종해야할 사람입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이 말씀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밤새도록 허탕쳤지요, 이제 새벽에 그물을 씻고 정리하는 중이지요, 깊은 곳에는 그물을 쳐야 그 밑으로 고기가 다 뼈져나가기 때문에 어업법에 맞지도 않고, 자기는 목수고 나는 뱃사람인데, 나보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니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비전문가가 전문가에게 하는 명령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순종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 앞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자기가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허탕쳤다고 얘기한 후, 그러나 당신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6절 앞 부분에 보니까, ‘그렇게 하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너무나 중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말로만 해 놓고 안 한 게 아니라, 뒤로 미룬 것도 아니라, 그대로 곧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오늘은 포도원에 가서 일 좀 하라고 했더니, 첫째는 ‘예’하고 다른 데로 세 버렸습니다. 대답은 ‘예’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일하러 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는 ‘아니요’ 했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 먹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좀 더 바람직한 순종은, 아버지의 명령에 ‘예’하고 그것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뉘우치고 실제로 가서, 아버지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이 순종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실제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주의 명령에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군인들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장이시고 통수권자시고, 우리는 그의 군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군사는 상관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가 중요합니다. 그분이 명령권자이고,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 어떤 우상을 섬기지 말고, 오직 주 너의 하나님만 섬기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깨어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형제 우애하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교회 안에서 서로 짐을 지라’, 

‘고아와 과부들에게 네 손을 펴라’,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라’, ....

 

  이런 말씀들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니, 당연히 우리는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명령자이시고 우리는 순종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그는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고 나는 받는 죄인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대로 그대로 순종했더니,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한 배에 다 담을 수가 없어서, 동무의 배까지 불러서 두 배에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몇 주 전에, ‘순종은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린다.’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순종은 또 다른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의 순종은, 풍성한 축복을 가져다주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의 순종은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렸지만,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들의 순종은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준 통로였습니다.

 

  내 이성과 경험과 지식에는 안 맞지만은, 주님의 말씀이니까 그대로 순종했더니, 심히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두 배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전날 밤과 비교해 볼 때, 지난밤에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이제는 단 한번 그물을 던졌고, 밤에는 오랜 시간 고생했지만 이제는 짧은 시간만 고생했고, 밤에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은 것입니다. 완전 반대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풍성하게 하셔서 우리를 만족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공급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외아들을 주셨고, 그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까지 주셨습니다.

 

  여러분도 ‘가시고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이 고기는 수컷이 집을 만들어 놓으면, 암컷이 와서 교미를 하고 그 자리에다 알을 낳고 암컷은 죽습니다. 그러면 그 알을 수컷이 충성스럽게 보호를 합니다. 알에서 새끼가 부화를 하면 수컷도 죽습니다. 그러면 새끼 가시고기는 자기 아빠의 시체를 먹으며 자랍니다. 가시고기는 자기의 모든 것을, 새끼를 위해 주는 것입니다. 이 가시고기처럼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신 분이십니다. 당신의 생명까지 주시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유명한 F. B. 메이어(Meyer)라는 사람이,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베드로가, 이상한 반응을 보입니다. 8절에,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잡게 된 베드로는, 그만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위대하신 분이시고, 그런 분 앞에 서 있는 자기는 너무 초라한 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떠나달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 너무 거룩하신 분, 높으신 분이 있으면, 좀 더 가까이 하고 싶고, 오래있고 싶고 그렇습니까? 아니면 빨리 헤어지고 싶고, 쥐구멍이라도 덜어가고 싶고, 피하고 싶습니까? 저는 저보다 너무 지고하고, 깨끗하고, 능력이 많고 실력이 뛰어나면, 그 사람하고 오래 있고 싶지 않아요. 베드로가 그랬던 것입니다. 당신을 알고 보니 나는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알고 보니, 그 분 앞에 선 내가 누구인지가 보이는 것입니다. 당신의 능력을 체험해 보니까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신 분인데, 거기에 비하면 나는 무능력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신인식이 곧 자기 인식이다라는 말입니다. 신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 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이적을 경험 해 봐야, 그 때서야 자기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베드로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고 다 놀랐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4. 그는 부르시는 분이고, 나는 따르는 제자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주님이,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여,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베드로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베드로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순종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부르신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의 사도들을 부르신 주님이십니다. 지금의 택자들을 부르시고, 일꾼을 불러 세우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에로 불러주셔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무리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는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시험과 환란이 와도 그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를 전도자로, 교사로, 봉사자로, 목사로, 불러 세워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만을 섬기며, 그 분만을 전하고 가르치며, 그분만을 자랑하고 사랑하고, 그분만을 따르는 신실한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름을 받았으니, 성도를 넘어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본문을 통하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아야, 곧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주님은 말씀을 가르치시는 분이시고, 명령하시는 분이시고, 풍성히 주시는 분이시고 그리고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반면 우리는 말씀을 듣는 자들이고,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이고, 주시는 것 받는 죄인이며,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 지식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고 했습니다. 이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때의 ‘지식’ 또는 ‘앎’이라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을 말하지 않고, 경험적이고 체험적인 앎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체험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식적인 앎에서 그치면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지만, 경험적인 앎으로 나아가면,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님을 알 때, 본질적이고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아를 알 때, 그때부터 내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나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지고, 그 관계가 더욱더 깊은 신뢰감 속에서 성장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로 알고 더 깊이 앎으로, 우리의 신앙이 더욱더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하여 더 많은 은혜와 사랑과 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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