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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의 경배 (마2:1-12)
이정현 목사 2015-12-25 추천 0 댓글 0 조회 852

교회력은 대강절부터 시작이 된다고 했습니다. 메시야의 강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성탄절 이전 4주 동안을 말합니다. 대강절이 시작되는 주일에 제가 “메시야를 대망하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날 이후 오늘이 4주째가 된 것입니다. 4주간이 지나면 그 주간에 성탄절이 오는 것입니다. 올해는 이번 주 목요일이 성탄절입니다.이 같은 절기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날과 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대강절이나 성탄절의 그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강절과 성탄절의 그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교회력의 날은 정확히 모릅니다. 성탄절의 정확한 날과 부활절의 정확한 날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력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고안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나셨는지의 그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교회력을 지키지 않고, 그 의미만 받아 들였던 것입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장을 근거로, 동방 박사들의 아름다운 경배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먼 거리를 여행했으며, 이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21세기, 현대의 성탄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먼저, 동방 박사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본문 1절에,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한 구절은, 예수님이 어디에 태어나시며, 그 당시의 유대는 누구의 지배아래 있으며, 그때 누구의 방문을 받는지를 알려줍니다. 메시야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으며, 당시 유대는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으며, 유대는 헤롯의 통치를 받고 있었고, 출생 당시,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의 동방은 유대의 동쪽을 말함으로, 페르시아나 바벨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바벨론이라고 말합니다. 과거 유대를 침략하여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 제국을 말합니다. 그 바벨론에 근무하던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왔다는 말입니다. 박사라는 말을 영어로는 메이자이(Magi)라고 하는데 이는, ‘마술사’ ‘점성가’ ‘지혜자’라는 뜻이고, 또는 ‘천문학자’라고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이 박사들을 보통, 유대인이 아닌 종교적 점술가들이라고 봅니다. 본문의 ‘박사’(마고스)는 특히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가의 뜻이 강한 단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당시 사회에서 이들의 위치는 대단히 높았을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부와 권세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들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이는, 박사들은 소수민족의 왕들이라고도 말합니다. 이런 말들을 근거하여 볼 때, 그들은 상당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 땅에서 이상한 징조의 한 별을 본 것입니다. 박사들은 이 별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신 징조로 알고, 먼 길을 여행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행은 결코 만만한 여행이 아니며, 짧은 여행이 아닙니다. 직선으로 오는 길도 있으나 그 길은 험란한 길이므로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사이인 메스포타미아 지역을 통과하여 하란에서 다메섹을 거쳐 아래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합니다. 박사들도 이 길로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길로 오려면, 아무리 빠른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하더라도 적어도 4개월 내지 6개월 정도가 걸린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지역에서 유대 땅까지의 거리는 굉장히 먼 거리이고, 도처에 강의 위험과 산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이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들은 이 먼 여행을 한 것입니다. 오로지 한 목적을 위해서... 박사들의 여행 목적은 바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에게 경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구경을 위한 여행이 아니었고, 공무를 위한 여행도 아니라, 예배를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던 그들이, 이처럼 예배를 위해 여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동방박사들 말고, 예배를 위하여 먼 거리를 여행한 사람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된 에디오피아의 구스 내시입니다. 에디오피아는 애굽의 남부 지방에 위치한 곳으로, 그곳의 여왕 간다게의 국고 맡은 자입니다. 그가 예루살렘까지 예배하러 온 것입니다. 그의 먼 여행도 바로 예배를 위한 여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스가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다가 빌립에 의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고, 세례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먼 거리를 예배하러 찾아온 사람을 하나님은,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귀한 은혜를 입혀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박사들이 동방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올 때에 별 따라 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별 따라 오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박사들은 유대 땅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 왕궁을 찾았습니다. 만약 별 따라 왔다면 왕궁으로 올 필요가 없고, 곧장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 받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별 따라 오지 않았음으로 그들은 왕이 태어난다면 왕궁에 태어날 것이라는 추측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입니다.그리고 본문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예루살렘 왕궁에 들어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라고 물으면서,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의 별을 보고’를 더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그의 별을 보았고’라고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이미 몇 개월 전에 동방에서 그 별을 보았다는 표현입니다. 과거지사라는 것입니다. 현재도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보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 별을 따라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내용은, 박사들이 왕으로부터 얘기를 듣고 예루살렘 궁을 나올 때에,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문득 나타난 것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했다는 표현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9절의 ‘보던’ 이라는 말도, ‘보았던’ 이라고 해야 옳고, 그리고 박사들이 지금까지 별 따라 왔다면 그 별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별 따라 오지 않고 예루살렘까지 왔는데, 예루살렘부터 베들레헴까지는 별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박사들은 크게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박사들은 동방에서 별을 한번 보고, 무조건 예배여행을 합니다. 별의 인도가 없이 예루살렘까지 왔다가, 구주의 탄생이 베들레헴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왕궁에서 나왔을 때,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문득 나타나서, 그때부터 그 별이 박사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인도했다는 말이 됩니다.박사들이 왕궁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다고 했습니다. 소동하게 된 이유는 지금 유대를 다스리는 분봉 왕이 있는데, 다른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수군수군하여 어수선해 졌다, 뒤흔들었다, 흥분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당시의 왕과 그 지역의 유대인들의 심적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잘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소동했다는 것은, 지금의 왕인 헤롯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에돔의 후손이기 때문에, 새로운 왕의 탄생으로 인하여, 헤롯의 더 잔인한 학정이 시작되리라고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왕과 온 예루살렘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소동하고 있는 중에,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태어나면 어디에 태어나게 될 것인지는 너무나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가 태어나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야가 어디에서 탄생하실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어떤 분이고, 오셔서 무슨 일을 하실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태어나실 주님은, 다스리는 자이며 또한 이스라엘의 목자이십니다. 메시야의 탄생지와 메시야의 사역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이고 종교 지도자들이었지만, 정작 그 메시야가 오셨을 때, 그 메시야를 영접하거나 경배하지는 않았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메시야의 탄생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메시야를 경배하지 않았으나, 먼 곳에서 메시야에 대한 계시를 잘 알지도 못했던 이방인들은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물어물어 메시야를 찾아서 경배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헤롯은 큰 음모까지 꾸미게 됩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이것은 진짜로 아기 예수께 가서 경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아기를 찾아서 죽이기 위하여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헤롯왕은 잔인하게,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2살 아래의 모든 아이들을 죽이게 됩니다. 이제 박사들은 왕의 말을 듣고 나와서, 별의 인도를 따라, 아기 있는 곳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마굿간이 아니라, 집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마굿간이 안 나옵니다.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았을 때는 이미 호적이 다 끝났습니다. 복잡했던 주변도 정리가 되었고, 호적하러 온 사람들은 다 뿔뿔이 흩어져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 이후였습니다. 적어도 박사들의 방문을 받았을 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지 4개월 이상 지난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베들레헴까지 오는 시간이 그만큼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직도 마굿간에 누워 계시지는 않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계셨습니다. 11절에 “집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들어갔더니 그곳에는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이곳 현장에 없었고, 그곳에 있었던 분은 예수님과 마리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성경은 마리아보다 아기가 앞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중요 관심사가 마리아가 아니고, 아기 예수께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나옵니다. 이 아름다운 경배도 마리아에게 향하지 않고, 아기 예수께 향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박사들은 마리아에게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태어 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꿇어 엎드려 예배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는 대상이 분명했고 경배의 대상이 분명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어른이요, 귀한 분을 탄생시킨 어머니가 존경과 숭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박사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그리고 여기의 아기와 병행구절인 누가복음의 아기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베들레헴의 목자들의 경배를 받는데, 그때의 아기는 주로 베이비(baby, 브레포스)이지만, 마태복음의 아기는 약간 성장한 영 차일드(young child, 파이디온)입니다. 헬라어 원문에도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성장 정도가 서로 다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마태의 아기는 어느 정도 자란 아기라는 말입니다. 박사들은 그 아기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귀한 예물을 드립니다. 

 

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여기서의 황금은,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하고, 유향은 예수의 신성을 뜻하고, 몰약은 예수의 수난과 대속적 죽음을 말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예물들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선물도 아닙니다. 아주 신분이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이 가질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시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배우러 갈 때 많은 선물을 가지고 가는데, 그 중에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바여왕도 대단한 사람이고 또한 그것을 받는 솔로몬도 대단한 왕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런 선물들은 존경의 가치가 있고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주고받을 수 있는 예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이런 것을 동방박사는 아기 예수께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곧 동방박사들은 이 아기를 왕으로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들보다 더 권세가 있고, 더 높은 신분의 사람임을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너무 귀한 예물을 드림으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들어낸 박사들입니다.

 

이것이 옳다고 인정하고, 마태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면서, 복음서에 인용을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전체는 왕 되신 메시야를 피력하고 있으므로, 거기에 알맞은 박사들의 경배와 예물드림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탄을 맞는 우리들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을 동방 박사들로부터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들은 멀고 험한 거리를, 멀다하지 않고 오직 예배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께만 꿇어 엎드려 경배를 드립니다. 이어 가장 귀한 것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행위였습니다.우리 모두 이번 성탄절을 이렇게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버릴 수 있기 바랍니다. 나 중심으로 생활하거나, 개인의 욕망이나 채우고, 개인의 기쁨을 추구하는 성탄계절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경배하며,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시간이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가치와 신분에 걸 맞는 예물을 드리며, 온전히 엎드려 경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헤롯왕처럼 지켜서는 안 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처럼 지켜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 시민들처럼 지키면 안 됩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처럼 지켜도 안 됩니다. 성탄절은 동방박사들처럼 지켜야 합니다. 박사들의 아름다운 경배를 본받아, 일평생 이런 예배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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