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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 (눅17:11-19)
이정현목사 2014-11-16 추천 0 댓글 0 조회 414

본문에 나병환자가 나오는데, 나균에 의해 감염이 되면, 잠복 기간이 10년에서 20년 정도가 된답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고 3년, 자신이 알고 3년, 남이 알고 3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오랜 잠복기간을 걸쳐 있다가, 서서히 몸에 반점이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털의 색깔이 변하고, 환처가 우묵하게 들어가고, 고름이 생기고, 진물이 나고 감각이 없어진답니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빠지다가, 3기가 되면 코, 귀,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기도 해서, 사람의 모습이 추하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몸에 악취가 심하여,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나병에 걸리게 되면, 가족들과 같이 살 수가 없고, 저 동네 바깥으로 쫓겨나서, 깊은 산 속 동굴이나 자기들만의 마을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나병환자를 구약성경에서는, ‘쫘라아드’라고 하는데, 이는 ‘매, 회초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은 문둥병을, 하나님이 때리시는 병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것을 ‘천형병’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내린 형벌의 병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나병환자 10명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어느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이 마을을 방문하시는 것입니다. 12절에 주님이,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라는 말 속에는, 예수님의 분명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이 마을을 방문하신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마을에 접근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 마을이 문둥이들이 사는 마을임을 알았을 때, 오히려 피해서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의도적으로 그 마을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한없는 긍휼과,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엿보게 됩니다.

 

마을로 지나가시던 주님을, 본 10명의 나환자들이, 멀리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칩니다. 이들은 감히 주님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였습니다. 문둥병자들과 가까이 접하면 나균이 전염될 수도 있지만, 율법적 규정상 이들은 건강한 사람들을 가까이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멀찍이 서서, 선생님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들은 입이나 코나 귀가 다 불편하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낸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희망인냥, 주님께 간청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요청이 아닌 절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즉시로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간청에 귀를 기울이시고, 분명히 응답하십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는 소리든, 작은 신음소리이든, 우리의 간청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주님이, 아무도 찾지 않는 이 마을을 친히 찾은 것은, 저들의 이 간청을 듣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저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저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을 들은 주님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병과 제사장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당시는 제사장이 일종의 의사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이 발병하였는지, 안했는지도, 자기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여서 판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나병이 아니라 단순한 피부병이라면, 집으로 돌아가서 식구들과 함께 살 수 있었지만, 나병이라는 제사장의 판명이 났을 때는, 즉시로 격리되어 마을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나병에서 나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나병에서 완치되었는지 아직 안되었는지를, 제사장이 판가름해 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을 기준으로해서, 완치 되었으면 정결하다고 판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직 부정하다고 판단해 줍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10명의 환자들을 치료해 주시지도 않고, ‘너희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병에서 나음을 받았다는 것을 전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의 병이 나았으니,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고, 그것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이런식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것은 그들에게 상당한 믿음을 요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즉 자기들의 병이 나을 줄로 알고, 제사장에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갔습니다. 여기서 제사장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거리를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음을 옮기기가 어렵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다가 다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문둥병에서 깨끗이 나아, 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믿음으로 가는 그들로 하여금, 엄청난 믿음의 결과를 맛보게 하셨습니다.

 

여기의 ‘깨끗함을 받은지라’는 말씀은, 처참한 모습의 문둥병자의 살이 다시 돋아나고, 떨어져나간 손가락, 발가락이 다시 나며, 피부가 온전해 지고, 머리카락과 눈썹이 다시 남으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온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고름 나든게 안 나고, 떨어져 나간 손가락이 아물어서 나은 정도를 말하지 않습니다. 나환자가 정상적인 사람처럼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몸에서, 나환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 진 것입니다. 이들에게 실로 엄청난 이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썩어 만신창이가 된 이 몸을,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은 잠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제사장에게 달려가고 있으나, 이 사람은 자기를 낫게 해 주신 분이 누구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아 주님이, 말씀으로 우리를 낫게 해 주셨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제사장에게 먼저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 그리고 가족들에게 먼저 가는 것이 아니지라고 생각하고, 발걸음을 돌려,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려,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주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지내던 나를, 살려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 했을 것입니다.

 

이윽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이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다른 아홉 명은, 유대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평소 때에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던 그들은, 감사하러 오지도 않았는데, 평소에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마리아 사람만, 감사하러 주님께 왔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동일하게 큰 은혜를 입은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받은 은혜에 대해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안타까운 심정을,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란 표현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아홉 사람에 속합니까? 아니면 한 사람에 속합니까?

 

엄청나게 큰 은혜를 입었는데도, 감사하지 않고 제 길로 간 사람들 속에 속하십니까? 아니면 주님께로 돌아와 감사한 한 사람에게 속합니까?

 

 

제사장과 가족들에게로 간 아홉 사람에 속합니까? 아니면 나를 낫게 해 주신 주님께 돌아온 사람에게 속합니까?

 

은혜도 모르는 못된 사람에게 속합니까? 그래도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에게 속합니까?

 

소망교회 성도들은, 비록 다수가 은혜를 저버리고 배반한다 할지라도, 그리로 가지 말고, 소수라도 큰 은혜를 입은 자로, 감사할 줄 아는 편에 속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편에 서야 하고, 감사하는 편에 서야 하고, 엎드려 사례할 줄 아는 편에 서야 합니다.

 

솔맨(Warner Sallman: 1892–1968)이라고 하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된 젊은 나이에,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해줍니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을 앓고 있어,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유명한 가수로, 당시 임신 중이었습니다. 솔맨은 자기 아내에게 미안하거니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할 때, 더욱 죄스럽기만 합니다. 그가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내가 그를 위로합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3개월이 얼맙니까? 천금 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십시다. 오로지 3개월이나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는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감사하며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3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그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마친 한 점의 그림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솔맨의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보통 사람은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에, 대개 인자하신 분이나, 고난당하신 주님의 얼굴로 그리는데, 이분은 주님을 지도력이 있고, 강인한 인간성을 지닌 인물로 표현했습니다. 이 그림이 유명해서 수백만 장이나 인쇄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3개월이 어딥니까? 단 하루를 살아도, 감사가 넘치면 행복으로 풍성할 것이고, 장수를 해도 불평이 넘치면, 불행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감사가 행복을 부릅니다. 환경을 초월한 감사가 풍성한 행복을 가져옵니다. 

 

본문에도 한 사람 이방인이 주께 돌아와,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더니, 주님이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서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은, 모든 인류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의 질병이 완케 되었음을 선언하는 말인 동시에, 구원자 하나님으로서의 영적 구원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문둥병자를 낫게 하신 그리스도는, 그의 영혼의 구원자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 나환자는 육체의 질병에서 나음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는데, 영혼의 구원을 받고는 어떻게 감사하고 찬양했겠는가? 물론 그 뒤의 말씀은 없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이 사람은 아마 한참동안, 예수님 앞에서 꿇어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앞에서의 감사보다, 더 깊고 진실하고 감격 중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가 감사해야 할 진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병에서 나은 것, 감사해야 합니다.

 

자식들이 무탈하여 잘 지내는 것, 그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돈 잘 벌고 사업이 잘되는 것도, 물론 감사해야 합니다.

 

승진하고 특별한 병 없이 지낸 것,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잘 본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육신적인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이런 감사거리는 여러분이 4-50년 만 지나면, 다 사라질 감사거리들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하고 영적인 감사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죄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의 시민권자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가 아닙니까?

 

여기 사마리아 사람은 병 고침 받은 것을 감사했더니, 영혼 구원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고침 받은 육신은 죽겠지만, 그 영혼은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받은 자로서, 이것을 깊이 있게, 계속하여, 끝까지, 크게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는, 우리의 영혼이 구원 받은데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후 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바울사도는 항상 교인들을 위하여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시고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인하여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영원히 멸망 받아야 할 자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에 감사할 수 잇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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