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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에서 찬송해야 하는가? (히 13:15, 2:12)
이정현목사 2014-09-07 추천 0 댓글 0 조회 960

9월의 주제는, 찬양입니다. 찬양에 관한 말씀을 한 달 동안 잘 들으시고, 이번 달 만큼이라도 말씀에 따라, 더욱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양이란 무엇입니까? 찬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노래입니다. 찬양이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원래의 뜻은, ‘칭찬하다’, ‘갈채를 보내다’, ‘존경하고 인정을 표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이란, 노래로 하나님을 높이고 칭찬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1)찬양과 찬송을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영어로 찬양을 praise이라고 하고, 찬송을 주로 hymn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찬양을, 순수하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광, 거룩, 전능하심, 영원하심을 높이는 일입니다. 그런 반면 찬송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노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복에 대하여 감사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찬양대가 부르는 노래를 찬양이라고 하고, 회중이 부르는 노래를 찬송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볼 때는, 이 두 단어 사이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 같고, 같이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어의 praise와 hymn을 같이 사용해도 되고, 우리말 찬양과 찬송도 같이 사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한글 성경에서 찬양이라는 말은, 105번 나오지만, 찬송은 225번 나타남으로, 합하여 330번 나오는데, 이렇게 빈번히 출현하는 것은 그처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2)그러나 이런 말과, 복음송(성가)라는 말과는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성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같이 부르는 음악으로, 여기에는 자기의 신앙체험도 있고, 이렇게 이렇게 살라는 권고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오로지 하나님이 그 찬송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과 찬양, 그리고 찬미라는 말은, 특별한 구별이 필요 없지만, 이 말과 복음성가는 서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 세 개의 단어 즉, 찬양, 찬송, 복음성가를 노래로 구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찬양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2’-이런 것이 찬양입니다.

 

그리고 찬송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의 노래임으로, 16장과 같은 찬송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공석한 장로님의 동생 공석준 장로님이 작곡한 곡입니다. ‘은혜로신 하나님 우리 주 하나님, 우주만물 만들고 우리를 택하여, 사랑하는 자녀로 삼아주신 것, 그 은혜가 고마워 찬양합니다. 아멘.’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찬양과 찬송은 그렇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복음성가입니다. ‘기도하자 우리 마음 합하여...전도하자...바라보자 주님 계신 천국을’-이것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성도를 향해 권면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주로 집회 때 많이 부르는 복음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과 복음성가는,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사실입니다.

 

3)예배에는 여러 가지의 요소가 있는데, 이것을 둘로 나누면, 상향적인 요소가 있고 하향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상향적인 요소라는 말은, 우리에게서 하나님에게로 올려드리는 요소이고, 하향적인 요소란 그 반대를 말합니다. 상향적인 요소 중에는 기도, 헌금, 찬양, 고백 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찬양은 예배성이 강한 예배의 요소입니다. 예배성이 강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요소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의미를 잘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중에 찬송이 가장 의미 있고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4)주님은 찬양을 불렀습니까? 아니면 찬양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유대인이시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시편찬송을 많이 불렀을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시편을 암송하여 노래를 불렀음으로, 주님도 당연히 그랬을 것으로 봅니다. 또한 마태복음에(26:30),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는 말씀을 볼 때,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찬송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찬송을 받으셨고, 받으셔야할 분입니다. 그의 마지막 사역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소리를 지르며 찬송했습니다.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7-9)

 

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상예배에서도 보면(계 5:12),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존귀와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인 줄 알고, 마음으로 큰 소리로, 모든 악기를 통원하여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찬송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언제 찬송해야 하는가? 이것은 찬송의 때를 묻는 질문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언제 찬송을 했는지 살펴보니까, 다음의 몇 가지 예가 나왔습니다.

 

역대상의 말씀(23:30)에 보니까,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때를 말하기를, 아침과 저녁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전의 찬양대원들이, 제사장들이 아침저녁으로 제사를 드릴 때마다, 같이 하나님께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이때의 찬양대원들은 레위인들로, 무려 4천 여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루의 시작과 마지막을,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새벽에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한다고 했습니다(시 57:7-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내가 찬송하기로 작정하고 작정했사오니, 비파와 수금으로 새벽을 깨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새벽부터 찬송하는 데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9월에 서울의 명성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는 것을 잠깐 보았습니다. 그 넓은 예배당에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어린아이들은 강단 위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다 같이 그 새벽부터 힘차게 찬송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리아이들로부터 어른,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이 모여서, 새벽부터 찬송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2500명의 여선교회원들이 흰옷을 입고, 아름답게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교회도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작자 미상의 한 시편기자는, 나는 살아있는 동안, 평생 동안 노래하리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시편 104편 33절에,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각오와 결심입니까? 공 장로님은 ‘평생 동안 새벽 기도하는 것이’ 소원이시랍니다. 시편기자도 ‘나는 평생토록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34:1). 찬양하는 시간을 따로 정해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늘 여호와를 송축하고 찬송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시편에서는, ‘하루에 일곱 번씩’ 주를 찬송하겠다고 했고(시 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편 35편(:28)에서는,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라.’고 말하고 있으며, 42편에서는 ‘밤중에 하나님께 찬송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의 바울과 실라도, 감옥에 갇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도, 밤중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모진 고문과 채찍도 그들의 기도와 찬송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그 같은 최악의 조건과 환경에서도 그들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한 것입니다. 밤중에도,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시편기자는 개인적으로 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했을 뿐 아니라, 공중예배 시에도 성도들과 함께 찬송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22편에서는,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회중 가운데에서 찬송하겠다는 말은, 주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며, 하나님께 찬송하겠다는 말입니다.

 

시편 26에서는(:12), ‘내가 무리 가운데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라.’고 하셨고, 시편 149편에서는,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149: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바울도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고전 14:26)라고 하셨는데, 모일 때에 찬송시가 있었다는 말은, 예배 중에 찬송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회중이나, 무리나, 성도의 모임은 전부 공 예배를 표현하는 다른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배 가운데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13장(:12)의 말씀에, 예수님의 피로서 거룩함을 입은 우리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하였습니다. 구속 받은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께 찬송해야 하는데, 이를 가리켜 히브리서 기자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진심으로 항상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입술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여러 성경구절, 특히 시편의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오늘날 우리도 새벽부터 밤중에까지 항상 온종일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특히 공 예배 때에는 더 열정적으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찬양하겠다고 마음에 작정하고 작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어디에서 찬송해야 하는가? 이것은 찬송하는 장소를 묻는 질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였을 때, 다윗성에 있던 법궤를 메고 올라와서, 성전에 안치를 시켰습니다. 법궤를 성전 안으로 모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모셔드렸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레위 사람 아삽을 비롯한 많은 성가대원들이, 악기소리를 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나팔을 불고 제금을 치며 모든 악기를 울리며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그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했고 이것으로 인하여 제사장들이 능히 제사를 드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찬 것입니다. 아삽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멋있게 지어진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감동스러운 것은, 이 성전은 7년 동안 지은 것인데, 이 기간 동안 내내 찬송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역대상 6장에 보니까,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언약궤가 평안을 얻었을 때에, 다윗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찬송하는 직분을 맡긴 자들은 아래와 같았더라.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성전을 세울 때까지, 그들이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계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6:31-32).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기고, 그것을 찾아왔으나 기럇여아림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다윗 성으로 모셔 왔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본문에서 언약궤가 평안을 얻었다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후 다윗이 찬송하는 직분자들을 세운 것입니다. 이 성가대원들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7년 동안, 매일 회막 문 앞에서 찬송을 하는데, 24개 팀이 교대 교대로 찬송했다는 내용입니다.

 

남쪽 유다 왕 여호사밧 시대에, 모압과 암몬 나라가 침략을 해 왔습니다. 여호사밧과 온 국민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왕이 이렇게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이 큰 무리들을 쫓아낼 능력이 없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니,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 주셔서, 여호사밧 보고 전장에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저희와 마주보고 진을 치고 있으라. 그러나 너희가 싸우지는 말라. 전쟁은 내가 하겠다.’-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은 군대를 소집하여 전장으로 나갈 때에, 이런 말을 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너희는 그 선지자를 의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그리고 나서 백성들과 의논하여 성가대를 조직합니다.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서 나아가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했습니다. 이 찬양대원들이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라고 노래했을 때, 하나님이 복병을 두어, 모압과 암몬 사람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 전멸시키고, 유다가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대하 20:21-23)

 

 

우리는 유다 백성들이, 군대 앞에서 적진을 향해 진군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승리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외에도 성경은, 어디에서 찬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 누가복음 24장(:52-53)에 보면,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승천이후,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들이 찬송한 시간적인 면도 나오고, 또한 공간적인 면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늘 찬송했고, 성전에서 찬송했습니다.

 

히브리서 2장에서는 ‘교회 중에서’(히 2:12) 찬송했다고 했고, 시편에서는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시150:1)라고 하심으로, 교회와 성소와 궁창에서 찬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시편에서는(시 149:5), “성도들은 영광중에 즐거워하며, 그들의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지어다.”라고 하시면서, 침상에서도 기쁨으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시편에서는(시 113:1-3),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이 시편 113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 때에도 부르고, 특히 매일 아침 가정에서, 식사 전에 불려 졌다고 합니다. 여기 2절에,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찬양하라는 것이고, 3절의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는, 전 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공간(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말씀에도(42:10) 비슷한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위의 말씀을 살펴볼 때, 모든 피조물들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해야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결국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또는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는 말은, 전 세계 방방곳곳에서,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차안에서, 들판에서, 산이나 강에서, 골방에서, 광활한 대지에서, 주의 이름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언제, 어디에서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까?

 

때를 가리지 말고, 늘 찬송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루 종일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며, 그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물론이고, 싸움을 하러 나가면서도,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학교에서 가정에서 실내에서 야외에서, 어디에서든지 마음을 다하여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찬송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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