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9 7 <주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으로 살아야 하는가?>
- 운영자 2025.9.7 조회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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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12 : 37 - 50 | 개역개정
- 37.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 38.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 40.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 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25년 9월 7일 요 12:38-50 주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으로 살아야 하는가?
주님은 그동안 많은 말씀으로 하나님과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또한 대단한 이적들을 보이심으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결국 주님은 말씀과 이적들을 통하여 자기 계시를 하신 것입니다.
3년 동안이나 쉼 없이 이 사역을 공개적으로 하셨습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고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말씀과 이적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놀라운 이적을 베푸신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믿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고 오히려 그를 배척하였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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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길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크게 둘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이유가 무엇인지와 관원들이 왜 자기들의 신앙을 숨기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38-43).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말씀을 하시고 그들 앞에서 실제적인 이적을 보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여기의 ‘믿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의 불신이 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님을 믿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구약 시대의 자기 조상들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많은 말씀과 여러 가지 이적들을 보았고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도 그같은 일들을 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이사야 53:1에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 그대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불신했던 것처럼 지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예언된 하나님의 고난 받는 종은 유대인들로부터 불신을 당하신 예수님과 동일 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예언된 분이시고 그에 대한 불신도 예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 성취라는 것이고 이것을 위하여 주님이 유대인들로부터 거부, 배반, 배척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했던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눈과 마음을 굳게하셨기 때문 입니다(39-41). 요한은 구약 이사야 6:10을 인용해서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 말씀을 근거로 요한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이유를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완고함은 외적으로는 눈의 문제이고 내적으로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눈은 멀게 되었고 마음은 완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그들은 세 가지 좋지 않은 결과를 낳고야 말았습니다. 1)눈으로는 보지 못하게 되었고 마음으로는 깨닫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인지가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2)돌아오지 못한다고 하셨음으로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3)하나님이 그들을 치료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음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눈을 보지 못하게 하시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으로 인지 불가, 회복 불가, 치료 불가의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그리고 마음이 완악하여서 주를 믿지 않은 것인데 그 결과는 인지, 회복, 치료 불가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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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한 후 이제는 유대 관원들의 신앙 은폐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42-43).
어떤 관원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공개적으로 고백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 은폐, 즉 믿는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는 바리새인들이 관원들 중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없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7:48) 오늘 본문 42절에서는 ‘관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예수를 믿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 상류층 가운데서도 역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은 대표적인 유대 관원으로는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가짜가 아니었고 진실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 않고 숨겼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고백하다는 말은 ‘공개하다, 인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속으로는 믿었지만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고백하기를 계속 실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관원들이 이처럼 자기들의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두 가지로 밝히고 있는데 하나는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의 신앙을 감찰하고 있었던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지도자들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유대교는 정치, 행정보다 종교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관원들도 종교 지도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자기의 신앙을 떳떳이 밝히지를 못한 것입니다. 자기들을 지켜보고 감시하는 눈들 때문에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신앙 때문에 출교를 당하게 되면 결국 사회에서 추방을 당하는 것이므로 자기들의 관직에서 박탈당하고 현실적으로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곧 바리새인들로부터 출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관원들은 불이익과 사회적 추방을 당할까봐 두려워서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것들 때문에 여기의 관원들은 공개적으로 자기들의 신앙을 고백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회당 안에 머무른 기독교 유대인들’이라고 부리기도 하고 또는 ‘숨은 기독교인들’(Crypto-Christian)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당시 관원들의 신앙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도 요한은 여기서 이 관원들의 신앙 은폐에 관하여 아주 중요한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들의 영광을 더 사랑했다고 평가를 한 것입니다. 이들의 단점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이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영광과 인정을 받는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멸시와 그들의 출교로 인하여 자기들의 관직을 잃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들의 명예와 지위와 영광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 자기들의 이익을 우선 생각한 것입니다.
본문 앞부분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말씀을 주셨고 표적을 행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관원들은 그들의 믿음을 숨겼습니다. 첫 번째 그룹의 사람들은 기회는 많이 주어졌지만 아예 믿지 않은 사람들이고 두 번째 그룹의 사람들은 믿는다고는 하는데 공개적으로 ‘내가 예수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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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큰 두 번째는 예수님이 자신의 설교를 요약하신 내용입니다(44-50). 이 부분은 예수님이 공생애 3년 동안 하신 모든 말씀을 요약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좁혀서 말하면 요한복음 앞부분에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모든 것들을 요약 정리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44-45). 예수님은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그분은 ‘나를 보내신 분’이라고 두 번이나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보내셨다면 아버지는 보내신 분이고 나는 보냄을 받은자가 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예수님과 공존하시는 분이시고 예수님의 기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며 예수님은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분이시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유대 격언에 ‘보내진 자는 그를 보낸 자와 같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단적으로 ‘보내심이라는 주제에서 기록론과 신론의 만남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하시면서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설명하셨습니다. 그 두 단어는 ‘믿다’와 ‘보다’입니다. “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44-45).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조금 후에 빌립이 요한복음 14:9에서,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했는데 그의 요구에 미리 대답하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러니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면 안 되고, 나를 믿되 나와 아버지가 동등하심을 믿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시면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나를 믿는 것, 나를 보는 것, 그것은 곧 하나님을 믿고 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존성(영원한 공존성)을 말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긴밀성과 동등하심을 말씀하신 것이니다. 그러면서 불신앙자들인 유대인들, 그리고 신앙을 가졌다고는 하나 분명한 고백을 하지 않는 관원들에게 이것을 믿고 보고 고백하라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어서 ‘빛과 어두움’(46)에 관한 주제를 다루시는데 이것 또한 앞에서 이미 교훈하신 말씀을 정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앞에서도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 8:12)고 하셨고 여기서는 ‘나는 세상의 빛으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사람들의 빛으로 오셨다는 말씀이고 빛으로 오신 목적은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두움에 머물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둠에 머물지 않는다’는 말은 어둠에서 빛으로 이동한 것을 말하며 이것은 소속과 신분과 생활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는 자는 이제 빛의 나라에 속하여 있고(골 1:13, 벧전 2:9) 생명의 빛을 소유한 사람이고(요 8:12) 빛의 자녀가 되었고(요 12:36, 엡 5:8, 살전 5:5) 빛의 열매를 맺고(엡 5:9) 빛의 갑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롬 13:12). 이처럼 주님이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둠에 머물지 않고 이런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어둠에 머물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삶이고 빛의 갑옷을 입고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은 적극적인 삶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소극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빛의 열매인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엡 5:9).
또 다른 한 가지의 주제로 주님이 지금까지의 말씀을 요약해 주셨는데 그것은 ‘심판과 말씀’(47-50)입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의 이 말씀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 심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주요한 것은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양들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그에게 속한 양들은 그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잘 듣지도 않으며 지키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심판이 있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지 심판하기 위하여 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심판의 주체가 자기가 아니심을 말하면서 그 이유까지도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자로 오셨고 세상은 예수님의 구원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세상의 심판자가 아니라 구원자이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말씀을 듣지 않고 지키는 않는 자’는 나를 저버리며 나를 받지 않으며 나를 거역하는 자라고 하면서 그런 자를 심판하실 분은 곧 ‘내가 한 그 말씀’(48)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의인화된 것으로 예수님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듣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는 사람을 심판하시는가 하며는 주님이 지금까지 하신 그 말씀이 그들의 불신앙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너희를 심판하는 바로 주님이 선포하신 그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자의로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사람들에게 전파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만 전파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신적인 기원과 권위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두 분의 말씀은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 말씀의 심판에서 벗어날 자가 없습니다. 이 말씀만이 온 인류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주옥같은 말씀과 다양한 이적 앞에 유대인들의 반응은 주로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함으로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과 대단한 표적 앞에 관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바리새인들의 출교가 두려워서 자기들의 믿음을 공표하지 못하였습니다. 공개적으로 ‘나는 에수 믿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공개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빛이요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어두움에 다니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당시의 유대인들과 관원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을 수 잇는 마노은 기회가 있었고 다양한 사람,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복음을 들었지만 아직도 믿지 못하고 거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믿는다고는 하고, 주일에 출석은 하지만 아직 사람들 앞에서 식사기도 하는거 조차도 부끄러워하거나 주일에 교회 가는 것을 숨기고 다니거나 공개석상에서 ‘나는 예수 믿는다’고, ‘나는 소망교회 성도’라고 밝히지 못하고 회식 자리에서 상사가 술을 권할 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술을 먹지 못합니다. 대신 음료수로 주십시오’라고 말도 못하는 신자들은 없습니까? 중요한 거래처에 가서 상대방이 종교를 묻는 말에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분명히 답하지 못하거나 .... 신앙은 공표되어야 합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 앞에 여러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실 것입니까? 불신이 아닌 믿음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비판이 아닌 수용으로 받응하시기 바랍니다.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완고함이 아니라 부드러운 옥토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인 아멘이 아니라 진심 어린 아멘으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같은 자세와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면 이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항상 주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하며 믿고 지켜나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지막 인류를 심판하실 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말씀임을 기억하며 빛의 자녀로서 그 말씀을 잘 지켜감으로 빛의 열매인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기도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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