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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역사적 사실 운영자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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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일 고전 15:1-34,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정현 담임목사

 

교회력으로 말하면 이번 한 주간이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수모를 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쏟아주신 주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동안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다음 주일 새벽에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은 부활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과 다음 주일에 이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설교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고린도전서 15장 앞부분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의 확실성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하는 이유는 당시 고린도 사람들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사람의 육체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의 육체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유로운 영혼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영혼의 자유로운 활동을 시작하는데, 만약 부활을 한다면 그 영혼은 또 다시 육체 속에 들어가서 수감 생활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육체 부활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철학자들의 영향 때문에 고린도교회 안에서 조차도 부활 교리를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헬라 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활의 소망은 돼지의 소망이다. 육신의 더러운 장애에서 해방된 영혼이 결코 재수감 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 확실하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구절구절마다 상세하게 말씀을 드릴 수는 없고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문단이 1-11절입니다.

 

1.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은 사실이다(1-11).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내가 전한 복음에 관하여 얘기하는데,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파하는 좋은 소식을 말합니다(1:2-4). 복음은 발화 능력을 가진 언어 행위입니다. 이 복음을 진리의 말씀이라고 하기도 하고(1:5) ‘십자가의 도’ ‘진리의 말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것을 전하였고 전한 것을 들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듣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교인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을 믿는 것을 통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과거나 현재나 전혀 차이가 없는 동일한 진리요 복음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10:9). 그리스도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하셨습니다.


이 진리와 복음은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성경대로 되었다는 말은 구약 성경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예언되어 있는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일어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었다가 부활하실 것을 여러번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 26:19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라고 하였고, 다니엘 12:2에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16:10)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구를 베드로가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2:30-31).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스겔 37장에 마른 뼈가 다시 살아나서 여호와의 군대가 되는 환상도 결국 이스라엘의 집이라는 하나의 부활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밖에도 구약의 많은 성구들이 부활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구약을 해석하면서 부활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24:25-27). 주님이 설명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에 분명히 자신의 부활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에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22:29-32)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새로운 면을 가르쳐 주셨고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자신의 부활을 직접 예언하신 것도 세 번이나 됩니다(16:21, 17:23, 20:19). 자신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죽고, 죽은자 가운데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친히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성경의 예언대로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냄 바 되었다가 다시 죽음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성경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15:4) 것은 과거적인 사건이나 완료형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 살아나신 그분은 미래에도 변함 없이 살아계실 분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분은 2000년 전에 살아나셔서 지금도 여전히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이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얘기하면서, 그 증거를 대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실제로 본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나 당신의 부활체를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게바는 베드로를 말하는데, 주님은 다시 사신 예수님과 함께 음식도 같이 먹은 적이 있습니다(10:41),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확실하게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제자들에게도 주님은 자신의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10:40-41). 주님은 11명의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셔서 함께 식사를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이후에는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오백이라는 숫자는 대중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소수에게만 아니고 대중에게도 나타나심으로 부활이 확실하며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임을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3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야고보에게도 보이셨다고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주님의 동생이니, 그로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자기의 본래 형이신 사실을 더 잘 식별할 수 있었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바로 내 육신의 형이었던 예수인데,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도 내가 보았고, 무덤에 장사 되었던 그 사람이 바로 살아난 내 형이라는 것을 내가 확실하게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내 형이, 곧 삼 일만에 부활한 내 형임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해 줄 수 있었던 사람 중의 하나가 야고보였을 것입니다. 야고보는 부활하신 형님을 봄으로 완전 변화가 되어서 초대교회의 기둥과 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도들에게도 보이셨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였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고 인격이 전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됩니다.

 

바울은 지금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여러 사람에게 주님의 부활체를 보여주심을 통하여 확증하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이 문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친히 본 자들을 들어서 그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쓴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으면 그 일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이 사실이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증언하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불변의 진리이고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문단은 12-34절인데,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에 따른 결과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명확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인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없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고 만약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전도와 믿음이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써서 전도하고 선교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허사로 돌아갈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무의미한 것입니다. 전혀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허무한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거짓 증인이 될 거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고 먼저 죽은 그리스도인들도 망하였을 것입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부활이 없다면 이생 이후의 생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인에게도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라는 말은 LB에서는 창조물 가운데 가장 비참한 존재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같은 가상적인 일과 가상적인 결과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역사적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을 추수의 첫 열매로 설명을 합니다.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 15:20-25).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가 부활의 첫 열매임으로 이제 그에게 붙어있는 사람은 계속하여 부활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재림 시에 모든 신자들은 총체적인 부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확신할 수는 있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 있는 사람은 살리는 영의 의해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로 살리신 성령 하나님께서 양자의 영으로 믿는 자들을 전부 살리시는 것입니다. 마치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 성령의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살리시는 것처럼 죽은 자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신자의 부활은 결국 그리스도의 첫 열매와 연결된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몇 구절은 그러면 그동안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그의 통치를 반대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주님이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신다고 하셨고(24) 또 모든 원수를 그의 발 아래에 둘 것이며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사망을 죽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망이 멸망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고 그때부터 죄가 없는 영원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이 원수 마귀를 멸하고 인류의 적인 사망을 멸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을 주시고 주와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에서는(29-34)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29절 말씀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여기의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말을 학자들마다 수십 가지로 다르게 해석을 하지만 2-3가지 해석만을 소개하겠습니다. 1)거의 죽어가는 자가 그의 불신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더러 예수를 믿고 세례받으라고 한 부탁대로, 그 부탁받은 자들이 순종하여 세례받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죽어가는 자들의 부탁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입니다. 2)이것은 죽은 자를 위해서라는 말을 죽은 자 위에서(=무덤 위에서) 세례받음을 의미한다고 해석을 합니다. 3)또 다른 한가지 해석은, 여기의 죽은 자들을 위하여란 말을 죽은 자들(세례받는 자신도 포함시킴)이 부활할 것을 염두에 두고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해석 중에 어떤 것이 가장 합당한 해석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1번의 해석이 가장 유력하겠다고 보고 좀 더 확장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당시 그들의 관습을 있는 그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관습은 사람이 죽어서 침대 위에 있으면 그 시체 밑에 그 죽은 사람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을 자를 넣어 놓고 문답을 한답니다. 죽은 자에게 문답을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 밑에 있는 산 자가 대답을 하고 마지막으로 이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겠느냐고 물으면 거기에 산자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면 산자에게 세례를 줌으로 죽은 자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교리적으로 잘못된 관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희들이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은 그 죽은 자가 다시 살 것을 기대하고 대신 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냐라는 반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면서도 오히려 부활을 기대함으로 죽은 자들을 위한 대리 세례를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 절은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일부 고린도 교인들의 자기 모순적인 행위에 대한 바울의 비판인 것입니다.


어쨌든 바울은 세례받는 자들이 부활 소망을 가지고 받는다는 것은 그의 생각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사람들이 세례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부활 소망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30-31절에서는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합니다. 신자들이 의를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는 경우가 있는데, 왜 그들이 그렇게 하는가? 바울 자신도 늘 위험과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왜 이러고 있는 줄 아느냐? 사람들이 위험과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장래의 부활을 믿기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이렇게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부활이 반드시 있음을 믿기 때문에 그것을 소망하며 현재를 이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자기 개인의 삶을 두고 말합니다.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내가 불신자와 같이 부활 소망이 없는 자였다면 무슨 유익을 보자고 맹수와 더불어 싸웠겠느냐? ‘맹수로 싸웠다는 말은 하나의 은유로, , 악인들의 박해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나도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먹고 마시자라는 말은 에피크로스 철학 곧, 쾌락주의 철학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바울도 부활 신앙이 없었다면 그런 사람들처럼 쾌락을 추구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부활을 부인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속지 말라고 하면서 헬라어 극작가 메난더(Menander)가 쓴 타이스”(Thais)의 한 잠언을 인용합니다.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 바울은 이 세속적인 잠언을 통하여 부활을 부인하는 친구들과 사귀는 것이 참된 신자들을 타락시킬 뿐아니라 교회를 손상 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의 신앙을 파괴할 것임으로 너희들은 그들에게 속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권면하는 말은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입니다. 술에 마비된 상태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이며 영 벌에 처하게 될 뿐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진리를 모르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체를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고 확실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수 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가르치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래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며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으면 죄인이며 그 죄를 따라 믿지 않는 자가 가게 될 영원한 불 못에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부활과 그에게 접붙임을 받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가 전하는 것은 전부 가짜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헛것이고 우리는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확실하게 믿고, 그 부활 신앙으로 살아감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23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주님의 부활하심을 마음껏 찬양하고 전파하고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기도 제목/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을 믿고, 전파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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