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디모데전서1: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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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제공: 대한성서공회
조나단 에드워즈와 제1차 대각성운동
이 은선 교수
조나단 에드워즈는 성경 말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지속적인 기도를 통해 자신이 놀라운 회심을 체험하였고, 후에 노샘프턴 교회와 여러 지역교회들의 참된 부흥운동들을 체험하며 미국의 제1차 대각성운동을 이끌었다.
I. 조나단 에드워즈의 교육과정과 노샘프턴 교회의 담임 목회자 부임(1703-1729)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는 코네티컷 주의 이스트 윈저에서 티모시 에드워즈의 12남매 중 5번째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하버드를 졸업한 이스트 윈저 회중교회의 담임목사였고, 어머니는 에스더 스토다드였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당시 유명한 부흥사였던 솔로몬 스토다드였다. 에드워즈는 아버지로부터 글쓰기와 청교도적인 생활습관과 경건을 훈련받았다. 그는 13세 때인 1716년에 예일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여기서 로크와 뉴톤의 경험론을 받아들였다. 이들의 작품을 통해 오감이 우리의 지적인 통로라는 것을 깨달았고, 중생한 후에 영적인 새로운 감각이 생긴다는 것을 이해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와 함께 그는 대학에서 칼빈, 오웬, 에임스 같은 청교도들의 작품들을 공부하였다. 그는 172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1723년에 석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는 1721년에 딤전 1장 17절을 읽으며 회심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주장하며 알미니안주의를 경계하게 되었다. 그는 1722년과 23년 사이에 70개의 결심문을 기록하였고, 그것을 매주 읽고 자신의 삶을 점검하였다. 제1문은 나의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지금 당장이든지 아니면 지금부터 수많은 세월이 지나가든지 간에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말자. 이 결심문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에 합당한 영혼이 되기 위한 실천적 지침서였으며, 이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의지하였다. 그는 1724년부터 2년간 예일대학에서 가르친 후에 1726년 그의 외할아버가 목회하던 노샘프턴 교회의 부교역자로 청빙받아 1727년에 목사안수를 받았고, 외할아버지가 소천하자 1729년에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는 1731년 보스턴에서 “구속의 사역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God Glorified in the Work of Redemption)이란 설교로 훌륭한 목회자로 인정받았다.
II. 노샘프턴 교회의 부흥
에드워즈는 목회를 하면서 철저한 강해 설교를 하였다. 이러한 그의 강해설교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 20세기 최대의 강해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이다. 에드워즈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1734년과 35년에 노샘프턴은 전례 없는 강력한 부흥을 경험하였다. 이 부흥에 대한 기록이 놀라운 회심 이야기(A Faithful Narrative)로 출판되었으며, 이를 통해 에드워즈는 국제적인 인물로 성장하였고, 노샘프턴은 칼빈주의적인 부흥의 모델 마을이 되었다.
1. 조나단 에드워즈는 자기 교회에서 1734-5년에 일어난 부흥을 목도한 후에 그것을 기록하여 놀라운 회심이야기를 저술하였다. 뉴잉글랜드의 노샘프턴과 인근 뉴햄프셔 마을들에 있는 수백 명의 영혼들의 회심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대한 충실한 서술이다.
1) 새로운 각성이 시작되다.
1734년 말경에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무렵 몇 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알미니안주의로 인하여 잡음이 생겨났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신칭의에 관한 설교를 했다. 12월 후반에 하나님의 영이 비상하게 임하셔서 그들 중에 역사하기 시작하였다. 아주 갑자기 대여섯 사람이 어느 모로 보나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얻었다. 한 여인이 극적으로 회심한 일 직후에 마을 전체에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신앙의 위대한 일들과 영원한 세계에 대한 크고도 엄숙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이 역사가 진행되고 참된 성도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마을에도 영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하여 1735년 봄과 여름에 하나님의 임재가 동네에 가득해 보였다. 이러한 부흥은 주변 마을들과 군(county)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은 이렇게 군의 한쪽에서 다른 쪽까지 파급되어 코네티컷 주의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부흥운동은 확산되어 윌리엄 테넌트 목사와 길버트 테넌트 목사에 의해 미국 중부지역에서도 일어났다. 부흥 후에 그의 마을에서 성찬에 참여하는 숫자가 620명에 달했는데, 부흥기간 동안에 300명이상이 구원받았다. 이러한 부흥은 그들의 내면적인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 결과로 양적으로 놀라운 성장을 했다. 마을의 절대 다수의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에 이르는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성령의 비상한 역사는 각성과 중생의 영향을 노인과 아주 젊은 사람들 모두에게 미쳤다. 그리고 성령의 비상한 역사로 이 부흥운동은 아주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으며, 영향의 정도에서도 아주 비범하였다. 하나님이 그처럼 놀라운 방식으로 역사하실 때는 보통 때 같으면 일 년에 모든 힘을 다해도 이루기 어려운 일들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졌다.
2) 각성된 자들의 반응
성령의 역사의 방법을 살펴보면 회심의 방법은 다양하였으나 유사성도 있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이 타고난 비참한 상태를 의식하게 되었다. 영원한 멸망의 위험,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야할 필요성을 맨 먼저 깨달았다. 빨리 죄를 깨닫는 사람도 있고 서서히 깨닫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죄의 각성은 자신들의 죄악된 행실을 버리게 만들었다. 성령의 놀라운 부으심이 보편화되자 술집이 비고 다툼이 사라지고 매일이 안식일 같았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교회 예배와 사적인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은혜와 구원의 수단을 진지하게 사용하였다.
두려움과 고뇌의 정도는 구원이 가까워질수록 심해졌으며, 사탄이 역사하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었다. 때로는 절망하여 영적인 위기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의 죄를 깊게 깨닫게 만든다. 회개의 초기 단계에는 자신의 의와 능력을 의지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고통 아래 있을 때 사람들의 모습은 천차만별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말씀을 들어서 격려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정죄의 정당함을 깨닫고 겸비해진다.
최초로 은혜 받는 순간들은 기꺼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그리스도를 마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깨닫는 경우도 있지만 암시적으로 깨닫는 경우도 있었다. 주님을 영접함으로 참다운 회개가 이루어진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회심은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역사이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죽은 영혼에 생명을 주입하는 작업인 것이다. 최초의 은혜의 체험시간을 분명하게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분명한 회심을 체험한 자들은 공포에서 위로로 전환되었다. 성령의 회심시키는 영향은 기독교의 위대한 일들의 사실성과 확실성에 대한 비상한 확신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흔했다. 그들은 신성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확신을 가진 후에 신앙의 일들이 새로워 보인다고 말한다. 은혜 받은 자들은 겸손하게 오직 은혜, 오직 예수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인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회심한 사람들은 그 후 다른 사람들의 영혼들의 회심에 대한 지극한 소원을 가졌다. 구령에 대한 열정이 생겨났다. 회심한 자들에게도 부패가 남아 있어서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성령의 영향이 회복되어 은혜의 활발한 움직임이 되살아나면 의심과 두려움은 곧 사라졌다. 사람들은 종종 신앙적인 대화를 통해 영적 무기력과 어두움에서 벗어났다.
2.이러한 회심 과정에 대한 관찰은 주로 세퍼드의 회심론에 있어 핵심적인 내용, ‘회심에 이르는 네 가지 단계’, 혹은 ‘구원의 은혜를 받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네 가지 준비 단계’를 통해 이루어졌다. 1) 죄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Conviction of Sin), 2) 통회(Compuction), 3) 겸비(Humiliation), 4) 믿음(Faith)이다. 놀라운 회심 이야기에서 중요한 요점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회심이 청교도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다고 보았는데 반해, 에드워즈는 노샘프턴에서 성령의 역사로 놀랍게 빠른 속도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3. 결론적인 고찰
하나님은 여러 모로 이 일의 방식을 주관하셔서 부흥이 그 분 자신의 고유하고 직접적인 일임을 분명하고도 경이롭게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그 영광을 전적으로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과 주권적 은혜에 돌리셨다. 그 부수적 상황과 수단이 어떠했던 간에, 그리고 비록 우리가 아주 무가치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다. 에드워즈는 부흥은 성령의 비상한 부어주심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운 회심에 이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지만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Ⅲ. 성령의 역사 분별방법(The Distinguishing Marks of a Work of the Spirit of God)
이렇게 노샘프턴에서 시작하여 코네티컷 골짜기에서 1734-5년 사이에 일어났던 부흥운동은 그 이후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한 가운데 다시 1740년에서부터 1742년까지 코네티컷 전체와 함께 신대륙을 각성시키는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이 때 영국의 감리교 부흥운동가였던 조지 휫필드가 1740년 10월에 노샘프턴 교회를 방문하여 새로운 부흥을 일으켰고 그 해 겨울에는 장로교의 길버트 테넌트가 순회 전도여행을 하여 다시 이 지역에 부흥이 일어났다. 이 때 조다난 에드워즈도 순회설교를 하면서 엔필드에서 신32:35절을 본문으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유명한 설교를 하면서 오직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를 강조하였다. 그 후에 지나치게 열광주의로 기울어지는 데이븐포트의 부흥운동이 일어나 혼란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이븐포트가 예일대학에 열광주의를 퍼뜨려 혼란이 생겼을 때 조나단 에드워즈가 1741년 예일대학 졸업식에 참석해서 했던 “성령 역사 분별 방법에 대하여”라는 설교를 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부흥운동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방법에 대하여 1741년에 책으로 저술하였다. 그는 요한일서 4장의 목적은 영분별의 기준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는 설명에서 시작하여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소극적인 방법 9가지를 열거하고 적극적인 방법 5가지를 제공하고 있다.
1.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데 있어 소극적인 증거 9가지
1) 아주 비범하고 특별하게 일어난 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특별한 역사들이 있으나, 사람들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과 작용이 특별하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라고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특이하고 비범하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이 성경의 표지와 일치한다면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2) 몸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현상: 죄와 지옥에 대한 무서움을 깨닫는 것은 신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경과 이성은 진리를 깨달으면서 생기는 신체의 특이한 현상을 반대하지 않는다. 풍랑 속의 제자처럼 무서움을 느끼는 것은 신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열광주의자들이 가지는 인상이 보통 신체에 큰 영향을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로 신체에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을 반박하는 것은 경박한 행동이다.
3) 부흥시 발생하는 소동현상: 중요한 일을 공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영적인 일에 큰 감동을 받아도 세상에 소동이 일어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세상의 눈에 공개적으로, 공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4) 상상력에 큰 인상이 남겨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클수록 상상력도 커진다. 상상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기능이다. 성령의 역사로 인한 상상력의 결과로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 상상력을 통한 생생한 감각을 무조건 신적 계시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성령은 상상력을 통해 진리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주기도 한다.
5) 다른 사람의 모범을 보고 따라함: 모범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은 성경적인 방법이다. 모범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수행하는 것은 합리적인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잘못된 일이 아니다. 모범을 통해 영향을 받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말로 인한 감동보다 모범으로 인한 감동은 오래 지속된다. 부흥의 시대에는 모범을 통해 영향 받는 일이 많다.
6) 성령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여겨지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 속에서 보이는 비정상적인 행동들: 인간 본성의 연약함과 신자 속에 남아 있는 부패 때문에 신중치 못한 행동이 나올 수 있다. 고린도 교회는 신중하지 못한 일들을 범했다. 베드로도 실수한 적이 있다. 성령의 역사를 수행하는데 사용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회심 여부를 경솔하게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신사 속에 있는 어두움과 부패 때문에 실수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열심은 신앙에 있어 좋은 것이지만 지나친 열심으로 인해 실수를 범하는 수가 많다.
7) 은혜와 부패가 혼합되어 있음: 참된 성도의 마음 안에도 일시적인 동안 은혜와 부패,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의 나라가 혼합되어 있을 수 있다.
8)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생기는 경우: 부흥과 개혁의 시대에 모조품 즉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생기기도 한다. 성령 충만 하다고 여기지는 사람 중에서도 배교자가 생길 수 있다. 종교개혁 시대에도 배반자가 있었다. 부흥의 시대에도 배반자가 많이 있었다. 청교도 시대에도 배반자가 많이 있었다.
9) 많은 목회자들이 율법 설교, 지옥 설교를 하는 것: 실제로 지옥이 있다면 지옥의 무서움을 경고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지옥의 위기를 경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냉담한 태도로 지옥을 설교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율법은 복음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정당하게 설교되어야 한다. 설교의 내용과 전달 방법은 일치해야 한다. 겁을 주어서라도 지옥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2.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게 해 주는 적극적인 증거 5가지
1)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 예수님을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게 하는 영은 성령이시다. 시인한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것 이상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촉진시키는 영은 성령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인정하는 영은 성령이시다. 마귀는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높이지 않으므로, 예수님은 높이는 영은 성령이시다.
2) 죄에 대한 각성과 회개: 성령은 세상을 미워하도록 하며, 마귀는 세상을 사랑하도록 한다. 세상은 죄의 육신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한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도록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게 하시는 영은 성령이시다. 사단은 사람의 죄와 양심을 깨우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양심이 각성된 사람일수록 마귀에게 미혹될 확률이 적다. 양심을 깨우치고 죄의 악함을 깨우치는 영은 성령이시다. 죄의 비참함을 깨닫고 구원을 추구하게 만드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탁월함으로 인해 세상의 욕망을 버리게 만드는 것은 성령의 역사다.
3) 성경에 대한 높은 관심: 성령은 성경을 존중하게 하고, 성경을 사랑하도록 한다.
4) 건전한 교리와 신학: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진리를 드러내주고, 진리를 깨닫게 해 준다.
5)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 사랑은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중요한 표지다. 성령은 사람들을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으로 이끈다. 이기적 사랑, 교만한 사랑은 참된 사람의 모조품이다. 사랑과 겸손은 마귀의 영과 가장 반대되는 성령의 특징이다. 성령의 역사를 안전하게 구별할 수 있는 표지들은 마귀가 하려고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성령의 역사에는 구원하는 은혜의 역사 이외에도 일반적인 역사도 있다.
3. 실제적인 적용
1) 반부흥파에 대한 적용: 성경의 분별 기준으로 볼 때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부흥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함께 관찰이 필요하다. 사도 요한이 제시한 기준으로 볼 때 현재의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가 틀림없다. 부흥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을 직접 관찰하고 교제한 결과 나는 현재의 부흥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임을 증거 할 수 있다. 죄와 비참함을 깨달음으로 인해 생긴 고민은 정상적인 것이다. 죄와 심판에 대한 진리를 더욱 크게 깨닫는 사람은 더욱 큰 신체적인 영향을 받는다. 부흥으로 인해 잠시 예배가 중단되는 것은 혼란이 아니다. 구세주의 영광스러운 탁월함과 사랑에 압도당한 사람도 신체적인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라도 처음부터 완전하지만은 않았으며, 사단은 모든 것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2) 중립파에 대한 적용: 부흥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라
현재의 부흥에 대한 반대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사도 시대 때 성령의 역사를 부인한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 초림 때에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현재의 부흥에 대한 침묵은 곧 부흥에 대한 반대를 의미한다. 현재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걸림돌만 보게 될 것이다. 걸림돌을 계속 증가할 것이다. 현재의 부흥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령모독죄를 범하는 것이다.
3) 친부흥파에 대한 적용: 부흥의 불길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
부흥을 반대할 빌미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영적인 교만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반부흥주의자들에 대한 방어책은 겸손과 자기 부인이다. 내적 충동과 직통 계시에 집착하면 안 된다. 많은 부흥운동가를 이것을 오해하고 있다. 성령의 은혜와 은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은혜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것이지만, 은사는 불신자들에게도 주실 수 있다. 은혜는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게 하신다. 은사의 목적은 은혜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은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은사는 유익하지 않다. 목회자들은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동일한 은혜의 수준에서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성경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여부를 내가 판단해서는 안 된다. 유다의 경우, 다른 사람의 회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참된 성도들로만 구성된 가시적 교회를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라. 반부흥주의자들과 지나친 논쟁을 피하라. 본질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일반 관습을 따라 하는 것이 좋다.
Ⅳ. 균형잡힌 부흥론과 신앙적 감정과 기도합주회
데이븐포트가 1742년 5월과 6월에 코네티컷 강 주변 마을들과 보스턴에서 다시 열광주의를 퍼뜨리고 난 후에 부흥운동은 인간의 감정만을 고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찰스 촌시를 중심한 계몽주의자들의 반대가 일어났다. 그는 이러한 반대를 극복하기 위하여 1742년에 균형잡힌 부흥론(Some thoughts concerning the Revival)을 저술하였다. 균형잡힌 부흥론은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책의 근본적인 목표는 성령역사분별방법과 동일하다. 부흥을 옹호하고 부흥반대자들의 부흥에 대한 오해를 풀고, 열광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부흥 찬성자들에게 경고함으로써 부흥을 촉진시키고 지속시키려는 것이었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언급할 몇 가지 사항 가운데 첫째는 부흥을 반대하는 합리주의자들이 감정을 영혼의 저급한 원리를 보는 것을 거부하고 모든 참된 종교의 생명은 신앙적 감정(religious affection)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기쁨과 갈망과 죄에 대한 미움과 같은 것들은 분명히 감정이다. 둘째 에드워즈는 부흥반대자들이 부분으로 전체를 파악한다고 비판한다. 전체 부흥 중 어떤 부분은 인간의 부패와 연약함 때문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적인 것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셋째 에드워즈는 설교자들이 회중의 감정을 고무시키는 방식으로 설교하는 것이 정당할 뿐만 아니라 설교자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설교자는 회중들에게 기독교의 위대한 일들을 지성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게 만들어나 하나, 회중들의 감정을 높이 고양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교인들은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것보다 마음에 감동을 받는 것이 더 필요하다. 넷째 부흥의 때에 사람이 신앙집회에 너무 자주 참석하고 신앙적인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 세상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대해, 세상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영원한 일들이 무한히 더 중요한 것이므로 여기에 시간을 쏟는 것은 정당하다. 부흥 시의 세 가지 대표적인 오류는 영적인 교만, 직접 계시, 체험의 중시이다. 체험이 중요하지만, 반드시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올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신앙적인 감정(Religious Affection)은 당시까지 인간의 구조에서 이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경험주의의 이론을 수용하여, 인간의 구조에서 이성과 함께 의지를 포함하는 감정(affection, 정서)의 중요성을 논의한다. 특히 신앙생활에서 인간의 참다운 변화는 지식을 얻는 이성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을 통해 사람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정서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인간 속에서 생겨나는 신앙적인 감정 혹은 정서를 논하는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부흥에서 생겨나는 참된 신앙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다. 그는 성령 역사 분별방법과 부흥론에서는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과 구원적 사역을 구별하지 않았으나, 개인의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일반적 사역이 아닌 구원하는 사역의 본질과 표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감정의 본질과 중요성을, 2부는 참된 신앙 감정을 구별하는 불확실한 표지 12개를, 3부는 참된 신앙을 구별하는 확실한 표지 12개를 다룬다. 3부의 내용은 감정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첫째 부분은 신앙적 감정의 원천이나 토대에 대한 것이다. 신앙적 감정은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영향력과 작용이라는 원천으로부터 생기고(표지 1), 신적인 일들의 탁월하고 사랑스러운 본질(표지 2)과 신적인 일들의 도덕적 탁월성의 아름다움이라는 토대 위에서 발생하며(표지 3), 영적인 빛으로 조명을 받은 지성으로부터 나온다.(표지 4) 둘째 부분은 감정이 수반하는 것들에 관련된 표지들이다. 신앙적 감정은 영적인 확신(표지 5), 복음적 겸손(표지 6), 본성 변화(표지 7), 양같고 비둘기 같은 영과 기질(표지 8), 부드러움의 영(표지 9)을 수반한다. 이것은 성도의 성품과 관련된다. 마지막 부분은 감정 자체의 속성과 관련된 것으로 신앙적 감정은 균형과 비례라는 속성(10), 높이 고양될수록 더욱 갈망하는 속성(11), 반드시 실천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속성(12)을 가진다. 이것은 신앙적 감정의 근원과 그에 수반되는 성도의 성품의 변화와 신앙적 감정 자체의 특성이다.
기도합주회는 에드워즈가 스가랴 8장 20-22절에 근거하여 쓴 책이다. 제목은 『성경에 준하여 기독교의 부흥과 지상에 그리스도 왕국의 확장을 구하는 비상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분명한 일치와 가시적 연합을 증진시키기 위한 하나의 겸손한 시도』이다. 에드워즈는 이 책을 통하여 신자에게 요구되는 긴박한 두 가지 기도를 말하는데, 첫째는 교회의 부흥을 위한 기도이며 둘째로는 영적 각성과 세계의 복음화 곧 선교의 종결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 대하여 에드워즈는 하나의 겸손한 시도라고 말하는데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은 마치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빚을 갚는 식으로 기도의 응답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부흥과 세계 복음화의 은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에 달려 있기에 우리는 겸손하게 엎드려 간구할 뿐이라는 것이다.
Ⅴ.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운동의 현대적인 적용
1.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믿는다. 에드워즈는 당시에 일어난 부흥운동에 대해 1741년 42년에 기록한 저술들을 통해 부흥운동 가운데 문제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부흥운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으며 사역하였다.
2. 하나님의 말씀의 강론 속에 성령의 역사로 일어난다.
3. 성령의 역사를 통한 강력한 죄의 회개를 통한 회심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는 신앙감정론을 통해서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중생한 사람들 속에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생겨나서 그들의 정서(affection)가 변화되고 그에 따라 전인격이 변화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부흥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에드워즈는 부흥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죄악된 생활을 철저하게 깨닫고 회개하여 영혼이 거듭나는 것이며, 그러한 거듭한 영혼이 하나님의 신적인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4. 성령의 놀라운 부어주심을 통하여 그 지역교회와 사회가 완전히 변화된다. 이 부흥은 확산되어 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부흥운동이 확산되어 가는 과정은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는 가운데 주변의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역사회가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흥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성도들과 교회들과 지역사회들의 변화된 모습이다. 참된 부흥은 교회 안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영적인 각성을 체험하여 외부로 확산되어 나가는 것이다.
5. 부흥을 사모하여 공동체가 연합하여 합심하여 기도한다. 에드워즈는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지만 사모하는 곳에 임한다고 하였다. 에드워즈는 20대에서부터 늘 성경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며 철야기도를 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였고, 그렇게 깊은 은혜를 체험하며 이신칭의의 분명한 복음을 전파하였고, 그러한 가운데 그 교회에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임하였다. 그리고 그는 1748년에 기도합주회를 저술하여 부흥을 위해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기도할 것을 제안하였다. 기도합주회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시간을 정하여 끈질기게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부흥을 임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져오실 부흥을 사모하며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기도하여 부흥의 계절이 오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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