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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3 15 <나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이정현 목사 2026-03-15 추천 0 댓글 0 조회 48
[성경본문] 사도행전5:1-6 개역개정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6315일 행 5:1-5, 나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마다 사도신경에 대하여 조금씩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재림과 연계하여 재림 전의 몇 가지 징조들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고 이같은 징조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깨어 경성해야 하고 경건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끝까지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재림하실 때 버림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접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세 번째 위인 성령님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성령님을 믿는다고 할 때 성령님의 무엇을 믿습니까? 그것은 성령님의 인격과 성령님의 사역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 두 가지 사항에 관해서 살펴봄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나는 인격적인 성령님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감화력이나 능력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님을 ’()로 생각하기도 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령님을 강한 영향력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입니다. 물론 성령님이 감화력과 능력과 기를 다 가지고 계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렇게 추상적이고 부분적이고 비인격적이고 피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선 알고 믿어야 할 것은 성령님은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은 지정의, 곧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2:1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정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5;30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분명히 성령의 사랑이라고 하시면서 성령님이 감정적인 부분을 소유하고 계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근심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

 

또한 성령님이 탄식도 하십니다(8:26). 우리가 사단에게 이끌려 죄를 짓는 것을 보실 때 성령님은 내 안에서 탄식하시며 기도하십니다. 이 같은 말씀은 곧 성령님께서 감정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11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성령의 은사에 관한 것으로, 각종 은사는 성령님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의지적인 결단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에 더하여, 성령님은 생각하기도 하시고(8:27) 또 말씀하시는(고전 2:13) 것을 볼 때에 매우 인격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

성령님은 인격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더불어 성령 하나님으로서, 3위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하나님과 동일 본질을 가지신 참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3위의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를 신학적 용어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 삼위 일체론은 하나의 신비에 속합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오늘 본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밭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부부가 상의해서 밭을 판 값의 일부를 감추고 일부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베드로 사도가 알고는 아나니아를 책망했습니다.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였다.” 여기서 분명히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성령님을 속였다고 말해 놓고 조금 뒤에 가서는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나니아의 거짓말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고 성령 하나님을 속인 것이어서 그 자리에서 영혼이 떠나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속여서 자기 이름을 한 번 내려고 하다가 무서운 저주와 심판을 즉시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3위 일체의 하나님을 태양에 비유했습니다. 태양이라는 본체가 있는가 하면, 태양은 온 세상을 밝힐만한 강한 빛을 발하고 온 세상을 따뜻하게 데울만한 엄청난 열을 뿜어냅니다. 본체를 성부 하나님에, 빛을 성자 하나님에, 열을 성령 하나님에 비유한 것입니다. 비록 이런 비유라 할지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인간의 지혜로는 가장 근사치로 설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인식론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한하시고 삼위가 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다 측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님의 인격성을 믿고 그분이 곧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먼저는, 성령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님을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감화력이나, 기나, 능력으로만 이해한다면, 성령님을 붙들어서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인격체가 아니고 더구나 하나님도 아니라면 우리가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내 소원이나 목적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인격적인 존재와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면, 이 같은 옳지 못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인격적인 존재요,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대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성령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능력의 소스나 강한 영향력으로 이해한다면 어떻게 그런 존재에게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존재는 예배나 기도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님은 매우 고상한 인격적 존재이시고 삼위일체 중 제3위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그분에게 합당한 영광과 감사와 경배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용할 조력자가 아니라 우리가 경배해야 할 대상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께 사랑과 믿음과 순종과 헌신과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도 사랑과 믿음과 순종과 헌신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찬송가 3장에 보면 성부 성자와 성령, 찬송과 영광 돌려 보내세. 태초로 지금까지 또 영원무궁토록 성 삼위께 영광! 영광! 아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령님께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성령님을 하나의 수단, 도구, 능력의 원천으로 생각할 수 없고 순종과 경배의 대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격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사정을 알고 체휼하고 진정으로 이해하고 도와주실 수 있기 때문에 성령을 인격체와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격체도 아닌데 어떻게 인격체인 인간을 도와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도 아닌데 어떻게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며 도와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정을 알고 도와 주시려면 그분은 인격적 존재여야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시고 우리를 아시며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를 제대로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인격적인 성령님을 믿는데 그분은 바로 전능하신 3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이렇게 믿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기 때문이고 성령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고 우리의 사정을 알고 체휼하고 진정으로 이해하고 도와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령님을 인격적 존재로, 그리고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2. 나는 성령님의 사역을 믿습니다.

 

우리를 위한 성령님의 특별한 사역이 무엇인지, 간단히 여섯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다 죄인입니다. 죄인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죄를 짋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거듭나게 됩니다.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이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지혜와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들 안에 오셔서 복음을 듣게하고 믿게하여 거듭나고 구원을 받게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하여서만 거듭날 수 있고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2)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4: 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또한 생각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에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중요한 사역을 하시는데 그것은 곧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고 장래 일을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지나가십니까? 아니면 누구에게 물어봅니까? 그것도 아니면 책을 찾아보십니까? 그것도 아니면 성경이 어렵다고 아예 책을 덮어 버립니까? 그런데 참고 도서를 읽어도 헷갈리는 본문이나 또는 주석에도 해석되어 있지 않은 본문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럴 때 저는 성령님께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인도해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이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가르쳐 주옵소서.’ 그럴 때 신기하게도 그 말씀이 이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습니다.

 

본문이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은 나의 미련함과 어리석음 때문이지 성령님의 연약함 때문은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시고 전도할 때 할 말을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 각자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3)성령님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이를 밝혀 주는 분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26).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성령이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나타내는 성령의 중요한 사역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16:14-15)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따라서 예수만을 나타내고 드러내고 증거 하는 분이십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고 그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예수만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만을 높이고 예수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자랑할 것이 많이 있었지만 결코 자기의 학벌이나 경험이나 열심이나 업적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의 예수만 자랑했습니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예수만 높이고 자랑하는 영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시는 여러 사역들 가운데 하나가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항상 살아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이것과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기도와 같이, 성령님의 중보기도에 관한 것도 동일하게 로마서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6-27).

 

로마서는 대단한 뉴스, 충격적인 뉴스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는 내용입니다. 그것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빌 바를 모른다는 것은 기도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얘기가 아니고 기도해야 할 내용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련하여 무슨 내용으로 기도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잘 분간하지 못합니다. 어떤 것이 거룩한 것이고 어떤 것이 정욕적인 것인지 잘 모릅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것 같은데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너무 우둔한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탄식 소리는 내 귀로 분명히 들을 수 있는 언어는 아니더라도 영적으로는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하염없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통곡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천상에서 기도하시나 성령님은 지상에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밖에서 기도하시나 성령님은 내 안에서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시나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5)성령님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하십니다.

거듭남의 보증으로 와 계시는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히 내주하여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 안에 있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말과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이 우리안에 계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이 제자들 가운데 주어진 그 날에 성령님이 제자들 안에 있고 제자들이 성령님 안에 있는 그 날에는 성자가 제자들 안에 있고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제자들 안에 있는 것은 주님이 영적으로 제자들 안에 있는 것과 같다는 얘기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그의 영으로 제자들 안에 오셔서 영원히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6)성령님은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능력있게 감당하게 하십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말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모두 다 거듭남과 구원과 관계된 표현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그 믿는 자 속에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위하여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임으로 우리가 기도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사모하며 갈급한 심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불신자들은 술취하여 방탕한 삶을 살지만 신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함을 대조하여 말한 것은 그 결과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술 취하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술 기운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하면 자의대로 행하지 않고 성령의 지배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 충만 하라 또는 충만을 받으라(프레루스데)는 동사는 현재, 명령형,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지금 현재 그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말씀인데 일회적으로 끝나지 말고 계속적으로 채움을 받으라는 명령입니다. 그리고 복수로 되어 있는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이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은 술 취하여 방탕하게 살고 23차 간다 할지라도 너희는 그렇게 살지 말고 거기에서 돌이켜 항상 성령에 충만하여 살라는 뜻입니다.

 

몇 년 전에서 유명한 젊은 가수가 그러더니, 요사이 TV 뉴스에 만취상태로 운전을 하여, 큰 낭패를 당한 한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단 운전 뿐이겠습니까? 술 취하면 방탕하게 되고 그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할 인생이 아니고, 그렇게 방탕하게 세월을 허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성 령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의 지혜로, 성령의 은혜로 효과적으로 삶을 살고 능력있게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중직자들과 교사들과 목자들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맡은 일을 효과적으로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역을 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사모하고 갈급한 사람들에게 충만히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게 하십니다.

 

결론

 

저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이 부분 즉, ‘성령을 믿사오며를 힘주어 크게, 확신 있게 말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성령이 역사해 주셔야만 예배에 원수가 역사하지 않고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뿌려진 말씀을 원수가 빼앗아가지 아니하고 성령님이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심으로 우리가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힘 있게 고백합니다.

 

나는 인격적인 성령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비인격체인 강한 영향력이 아니라 지정의를 갖추신 인격체이시며 바로 제3위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분께 합당한 감사와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나는 성령님의 사역을 믿습니다.

1)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2)성령님은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3)성령님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을 하십니다.

4)성령님은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기도하십니다.

5)성령님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하십니다.

6)성령님은 사모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능력있게 감당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격과 사역들을 믿습니다. 이것을 믿는 여러분들 모두가 이제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매 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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