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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8 31 <예루살렘 올라가신 예수님은 들려야 한다.>
이정현 목사 2025-08-31 추천 0 댓글 0 조회 28
[성경본문] 요한복음12:12-36 개역개정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

제공: 대한성서공회

25831일 요 12:12-36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들려야만 한다.

 

우리는 84주 동안 요한복음 11장과 1211절까지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11장에서는 예수님이 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12장 앞부분에서는 마리아가 귀한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은 유월절이 다가왔을 때 예수님께서 찬송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부분은 인자가 영광을 받기 위하여 들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모습입니다(12-19).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유대 지방에 살고있는 사람들 뿐만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였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내신 날을 기념하는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입니다. 요셉푸스라는 역사가에 의하면 이런 명절에는 많이 모이면 100만명 정도가 예루살렘에 운집한다고 하니까 대단한 절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 곧 나귀 새끼를 타고 성으로 입성하시는데 수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영하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라’(13)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전쟁터에 나가서 개선한 장군이나 새로운 왕이 대관식을 위하여 행진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마리의 말들이 끄는 황금 마차를 타고 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져 나귀 새끼, 그것도 빌린 짐승을 타고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그분의 겸손과 평화를 상징하는 행렬이었습니다. 이같은 모습을 통하여 주님은 이 세상에 속한 왕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 많은 군중들의 외침에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호산나라는 말은 도우소서,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분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군중들의 이 외침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라는 찬양이요 간구였고 고백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이분을 이스라엘의 왕이라며 찬양을 했는데 이것이 구약성경 스가랴 9:9의 메시아 예언의 말씀으로 알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혹시 그들이 이 예언을 모르고 불렀다 할지라도, 이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이 지금 예수님에게 그대로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모인 군중들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은 주의 이름으로 오신 이스라엘의 왕이심이 선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같은 모습으로 즉, 나귀 새끼를 얻어 타고 가는데 환영을 받고 찬송을 받고 칭송을 받으며 입성하는 것을 보았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일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16).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이러시는지, 왜 이런 방법으로 입성을 하시는지를 전혀 깨닫지를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그 전모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의 주님이 영광을 받으신 후라는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후를 말합니다. 그 두 사건을 통하여 주님이 영광을 얻으신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야 이것이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이같은 열렬한 반응을 보였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제자들은 당시에는 이 일의 의미를 전혀 몰랐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장에서 죽었던 나사로를 주님이 살리셨는데 그 때 그것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이 무리가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환영하는 이유를 그가 놀라운 표적을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저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칭송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을 늘 부정하며 대적하던 바리새인들은 시기하는 마음으로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른다’(19)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안식일 범죄자로, 신성모독죄로 잡아서 죽이려고 하는데, 봐라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지 않느냐?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그를 따르며 칭송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자를 잡아 죽일 수 있겠느냐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두고 그의 제자들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였고, 나사로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적 때문에 저분이 이런 환영을 받는다고 했고 바리새인들은 시기심으로 온 세상이 그를 따른다’(19)고 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가랴서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왕, 평화의 왕으로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을 하신 것입니다. 단순한 왕으로서가 아니라, 메시아로 예언된 말씀의 성취자이신 참 이스라엘의 왕으로 입성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문단은, 인자가 영광을 얻기 위하여 들려야 한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20-36).

 

20절에 헬라인 몇이 나오는데 이들은 유월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헬라인이지만 유대인으로 개종을 하였는지, 아니면 예수를 믿어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뒤에 나오는 빌립과 안드레와 같은 고향인 갈릴리 벳새다 출신임을 근거로 성경의 수로보니게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7:26에서 귀신 들린 딸을 위해 그리스도에게 왔던 여자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하여 믿게 된 그 지역의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명절에 예루살렘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헬라인이기 때문에 성전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이방인의 뜰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참여하였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왔다’(20)고 했는데 동사의 시제가 현재이기 때문에 이들은 지금까지 늘 그렇게 해 왔다는 것입니다. 한두 번 온 것이 아니라 절기 때마다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유대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실한 신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칼빈도 이것이 바로 그들이 예수님을 경외하는 증표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빌립에게 찾아와서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21)라고 요청을 합니다. 빌립이 안드레와 함께 예수님께 가서 이들이 주님을 뵈옵고자 한다고 전했지만 주님은 여기에 대한 반응은 없으셨고 조금은 엉뚱한 말씀만 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23). 예수님이 자기의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그의 어머니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했을 때, 주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2:4)고 하셨고 그리고 공생애 중간에도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7:30)고 기록 되었는데 여기서는 주님이 친히 내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의 때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구원 역사 완성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여기의 때는 주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때가 바로 주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0-31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주님이 성찬을 나누어 주실 때에는 이미 주님이 영광을 받으셨고 아버지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실 요한복음 12장을 예수님의 영광에 대한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절에서는 마리아가 그에게 기름을 부어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였고, 12-19절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무리들이 이스라엘 왕으로 찬송하며 영화롭게 하였고, 또 헬라인 몇이 그를 뵈옵고 영화롭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20-33).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영광받으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음 구절들의 말씀을 볼 때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조금 후에 있을 그의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창조의 법칙이며 농업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창조하신 것이고 모든 농업인들은 이것을 과감 없이 믿고 파종을 하여 수확합니다. 이같은 농업의 근본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농사지을 수 없고 지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의 한 알의 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곧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을 말하고 그것을 통하여 많은 영적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수 많은 택자들을 천국의 알곡으로 드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53:10의 예언 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라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속죄적 희생은 많은 열매를 맺는데, 곧 그를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희생이 없이는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의 십자가 없이는 절대로 영생의 열매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어서 주님을 믿는 자들이 지켜야 할 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잃을 것이고 자기 생명을 미워하면 영생한다’(25)고 하셨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라는 말은 자기 힘으로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생명을 잃을 것이지만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듯이 주님만 믿고 따라가면 그런 사람은 생명을 보전한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말씀은 자기 자신을 따르지 말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따라야 한다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어진 생명이 보전된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너무 귀하고 가치 있고 은혜스러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섬김의 규칙과 섬김의 보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25절의 사람이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것, 여기서는 주님을 따른다는 말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섬기는 자가 주님을 따르는 자인데, 그런 사람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자는 주님과 함께 고난도 받으며 주님이 계시는 곳에 그들도 같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이 계신 천당에 그를 섬기는 자들도 주와 함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 보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귀하게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이고 창세로부터 예비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27절과 28절은 예수님이 갑자기 당신의 마음이 괴롭다고 하시면서 하나님께 이 때를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십니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롭다’(27)는 것은 그의 인성이 당하실 속죄의 죽음의 고통을 느끼시고 탄식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죄가 없는 참 인간으로써 죽음의 실제를 맛보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모든 인간들은 죄의 결과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만 주님은 무흠하신 분으로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야 하고, 무엇보다 그 순간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버림을 받으시기 때문에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절규하는 것입니다. ‘27...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처음에는 이 고난과 죽음의 잔을 면하게 해 달라고 하셨지만 후에는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주님이 세 번씩이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힘쓰고 애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결국 주님의 기도의 초점은 아버지의 뜻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 십자가를 지시고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에 하늘의 하나님이 직접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28).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그리스도가 한 일과 그의 말씀을 통하여 나를 영화롭게 하셨고 앞으로는 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관된 삶의 목표는 아버지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기쁨, 아버지의 영광만을 추구하며 사셨던 것입니다.

중요한 두 구절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린다는 말은 민수기 21장에 근거한 말씀입니다. 거기에 보면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21:8-9)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요한복음 3장에서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1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의 들리다’(휩소세나이)라는 말은 요한복음에서는 항상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되어 사용이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광야에서 장대에 매달린 놋뱀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산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로 주님이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속죄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만국에서 그의 모든 백성을 모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그의 십자가를 통하여 만국에서 그를 믿을 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희생은 사람들을 끌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흠과 티가 없으시며 전연 허물과 죄가 없으신 하나님 아들의 속죄하시는 죽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그 죽으심으로 신자들의 경배의 대상이 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 안에서만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시어 택함받은 모든자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들리지 않으시면 안됩니다. 반드시 예언대로 그분은 십자가 높이 들리셔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통하여 사람들을 당신에게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그분의 은혜로 성령에 이끌림으로 지금 주님 앞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들려야 우리가 주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인데,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35절과 36절에서만 이라는 단어가 무려 5번이나 나타납니다. 그런데 앞에 나오는 4개의 빛이라는 단어에는 전부 정관사가 다 붙어 있고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빛에는 관사가 없습니다. 이 말은 곧 앞의 4개의 빛은 바로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마지막의 빛은 빛되신 주님을 믿는 신자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온 세상의 빛이십니다. 여기서는 그 빛이 있을 동안에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도록 하고 그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그 사람은 빛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인자는 영광을 얻기 위하여 반드시 들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육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스리시는 참된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 참된 왕이신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자기 자신에 관하여 분명한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인자가 들려야 하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을 나에게로 이끌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당신께서 대속 제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수많은 택한 백성들을 생명과 구원에로 이끌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는 절대로 영광은 없는 것이고 십자가 없이는 우리의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로 그리스도에게 나올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고, 놀라운 은혜 입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 그 이후의 삶이 어떠해야 합니까? 이제 빛의 자녀가 되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단 한 가지를 각오해야 합니다. 주님이 고난을 받으시며 동시에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주와 함께 받는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 그 길은 고난의 길이었고 그 마지막은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26).

 

비록 그리스도를 섬기고 따르는데 어려움이 있고 애 많은 소리도 듣고 비방도 받고 손가락질도 받을 수 있고 때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기며 따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5의 말씀입니다.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난 자들이라면 어떤 어려움과 시련 중에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주어진 약속이 아무것도 없지만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 중에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약속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이 계신 곳에 함께 거하게 되며 하나님으로부터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고난과 역경 중에도 굳굳이 주님을 섬기며 따르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과 영광과 은혜입니다.

 

 

찬송/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나는...(1, 2)

기도 제목/ 좀 더 열정적인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따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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