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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15 <나는 세상의 빛이라>
이정현 목사 2025-06-15 추천 0 댓글 0 조회 38
[성경본문] 요한복음8:12-20 개역개정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68일 요 8:12-20, 나는 세상의 빛이라

기독교는 듣는 것부터 출발하는 종교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도 우리가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더욱 큰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면 잘 들어야 합니다. 경청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고, 은혜 주시고, 믿음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으면 우리 안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사모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들으면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말씀을 경청함으로 은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12).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첫날에 빛이 있으라고 하심으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빛으로 말미암아 혼돈 가운데 있었던 것이 비로소 질서 있는 우주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만들어지는 모든 생명체 피조물들은 이 빛 때문에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본문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은 영적으로 세 가지 작용을 의미합니다. 먼저 밝혀 주어 알게 하는 역할입니다. 이것은 주로 계시하여 줌으로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구원하여 준다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건져준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은 깨끗하게 하는 역할입니다. 성결과 성화의 역할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심으로 주님은 이 세 가지 사역을 주로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봅니다. , 계시, 구원, 성결의 사역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포괄적이며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그것은 구약 성경에 메시아를 빛과 같다고 한 예언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시고 성취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 빛으로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가 곧 자기 자신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몇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9:2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사야 49:6의 말씀입니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여기에서 말하는 빛이나 이방인의 빛, 큰 빛은 바로 메시아를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을 성취하실 분으로 자신을 빛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신약성경인데 예수님이 태어나셔서 처음으로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 시므온이 이 아기가 메시아임을 알아보고 이렇게 찬송하였습니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2:30-32). 이것은 앞에서 예언된 말씀을 근거로 하여 어린 메시아에게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주의 구원이시고 이방을 비추는 빛이시며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모든 말씀을 근거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자기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따르는 자는 예수님 밖에 다른 데는 어두움만 가득한 줄 확신하고 전적으로 그 분만을 의지하고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신앙의 방향을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만을 믿고 따르는 자가 되었으면 이제 우리는 무지와 죄와 불행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생명을 주는 빛을 얻어서 그 빛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생명을 주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생명의 떡을 생명을 주는 떡으로, 생명수를 생명을 주는 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본문의 생명의 빛도 생명을 주는 빛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 , 빛은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의 선물인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생명의 빛을 얻는다는 말을 빛은 진리를 아는데 인도하고, 진리는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뜻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어떻게 해석을 하더라도 그 의미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여기서 강조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어서 그 빛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올해의 표어가 제자도를 익히고 실천하는 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에 다녀서는 안 되고 생명의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도는 빛의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의 빛인 줄 알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제자도를 잘 익혀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증언이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셨습니다(13-18).

 

이 이야기를 들었던 바리새인들이 나서서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다’(13)고 말합니다. 자기에 대한 자기 증언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증언이나 증거물로 받아 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다’(14)고 하시고 또한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15)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남들을 외모(육체)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므로 판단(심판)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누구든지 판단하실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은 일반인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처지에서 그는 그들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실 필요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왔는데 왜 심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율법에 두 사람의 증언이 필요하다’(17:6, 19:15)고 하는데 나에게도 두 증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18). 나를 위하여 나와 아버지께서 증언하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의 말씀에 보면 어떤 일이 확증되려면 두 세 사람의 증인과 증언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율법에 따라 두 분의 증인을 제시한 것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증언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그 입에 거짓이나 간사함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그의 말은 항상 진실하고 그 증언은 항상 참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무엇에 관하여 말씀하셨다면 그것이 최종적인 결론이며 권위를 가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옳다면 옳은 것이고 예수님이 아니라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토 달거나 이유를 달 필요도 없고 달 수도 없는, 최종적인 결론인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증언도 있으니 완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증언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성경의 말씀이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두 분이 무엇을 증언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만이 세상의 빛이십니다.’ 이 사실을 두 분이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사실이고 참이고 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 빛이 없는 흑암 중에서 길을 찾고 헤메는 사람들, 어두움 같은 죄와 타락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술과 마약에 찌든 사람들, 음란한 죄와 도박 중독에 빠져있는 사람들, 우울증과 폐쇄 공포증과 공항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빛 되신 주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빛으로 인하여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빛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식물과 동물에게는 마땅히 빛이 있어야 그 생명을 유지하고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의 죽은 영혼과 메마른 영혼이 살려면 빛 되신 예수께로 나와야 하고 그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살고 더 이상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를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19-20).

 

예수님이 자기를 위하여 나의 아버지께서도 증언해 주신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과거에도 예수님이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 때문에 듣는이들이 신성모독을 했다며 죽이려고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들은 예수님의 아버지, , 참 하나님을 모르는 처지에서,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중보자이십니다(5:38, 14:7, 11:27). 그 주님이 분명하게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19)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습니다(11:27). 아버지도 그 아들을 알지만, 아들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아버지를 알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진리의 계시를 밝히 드러내 주시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20). 이 구절은 두 가지 내용을 가르쳐 주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성전 출입구에 놓여 있는 헌금함 앞에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갑자기 생뚱맞게 헌금함 이야기를 하는지 아십니까? 이 헌금함이 어디에 놓여져 있는가 하며는 바로 여인의 뜰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적어도 약 13개의 헌금함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 중의 한 헌금함 앞에서 주님이 이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이 바로 이곳에 있었는데, 그 여인의 사건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여인도 살려주셨고 또한 이곳에서 자기가 세상의 빛이라고 선포하셨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적이며 역사적인 이야기라고 요한은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13개의 헌금함 이야기를 더 하면, 우선 굉장히 많다는 것인데 이처럼 여인의 뜰에 찾아오는 여인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절기 때에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명이 모여서 축제를 즐기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제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 많은 여인들이 헌금을 하는데 둘로 나누어서 헌금을 했습니다. 13개 헌금함 중에 9개에는 율법에 따라 11조를 드리고 나머지 4개에는 자원하여 감사헌금을 드렸다고 합니다. 11조는 거의 100%을 드렸고 감사헌금은 자원하는 사람만 드렸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가르침을 주실 때에 이 헌금함 앞에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아직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인의 뜰에서 산헤드린 공의회가 모이는 방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그 근처에서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잡지 않은 것입니다. 공회원들과 바리새인들은 지금 격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통하여 예수님을 책 잡으려고 했던 것이 무산되었고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니까 신성 모독죄로 잡아 죽여야 하는데 잡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하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때를 따라서 이 세상에 오셨고 때에 맞추어 일하셨고 때에 맞추어 죽으시고 때에 맞추어 살아나시고 때에 맞추어 승천하시고 때에 맞추어 성령을 보내주셨고 또한 때에 맞추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아직 자기의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저들에게 잡혀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때에 맞추어 자신을 저들에게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이스라엘의 빛이요 온 세상의 빛이십니다.

이는 주님이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성결하게 해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신 예수를 믿고 따르면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십니까? 진실로 그분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생명의 빛을 얻었습니다. 생명의 빛은 생명을 주시는 빛이라는 뜻입니다. ..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어두움 가운데 살고 세상의 참 빛 앞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 빛 앞에 나온 우리 보고 너희만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빛을 받은 우리는 흑암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빛을 비추어 주는 빛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5:8).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을 한 사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정말 어둠 가운데 살다가 빛의 자녀가 되어 빛 가운데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은 354년 오늘날의 알제리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북아프리카의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였으나, 어머니 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카르타고에서 공부를 하려 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잠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370년 집안의 사정이 나아지자 아버지는 16살의 어거스틴에게 수사학을 배우게 하기 위해 카르타고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자신과 같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반대로 마니교라는 이단에 빠져서 10여년을 보내게 됩니다. , 이 시기(371)에 열 입곱 살에 그는 한 젊은 여성과 동거생활을 시작하여, 그가 정혼하기 전까지 14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들을 하나 낳기도 합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이러한 아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들과 절연을 선언합니다.

 

어거스틴은 후에 카르타고, 로마, 밀라노 등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밀라노의 주교인 성 암브로시우스를 만났습니다. 그의 강론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아 그를 따르기로 결심 했습니다. 어느날 그가 밀라노의 한 정원에서 집어들고 읽으라! 집어들고 읽으라!”(Tolle lege, Tolle lege)라는 어린 아이의 노랫소리를 듣고, 로마서 13:13-14을 읽으며, 회심하였습니다.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 앞에 회개한 것입니다.

 

그 이후 어거스틴은 히포의 주교가 되어서 마니교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고 구원론에 있어서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게 정의하였고 후 시대의 개신교 선구자인 루터, 츠빙글리, 칼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피난민들을 돌보는 사랑의 사람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76세의 나이로 소천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을 통해 분명히 하나를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는 젊었을 때는 어둠 속에서 방탕하며 살았습니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게 살았고, 어릴 때 여자와 동거 생활을 하였고, 이단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말씀 앞에 무릎 꿇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온전히 빛의 자녀처럼 살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교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기도 제목/ 어두움의 일을 벗고 생명의 빛을 얻어서, 이제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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