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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6 <생명 주시고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사역>
이정현 목사 2025-04-06 추천 0 댓글 0 조회 35
[성경본문] 요한복음5:19-29 개역개정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2546일 요 5:19-29 생명 주시고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사역

 

앞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7일째 되는 날에 안식을 하셨습니다. 이는 창조의 완성을 기념하는 의미의 안식이라고 봅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은 안식일이라도 당신이 만드신 만물을 보호하시고 유지하시고 공급하시고 보호하시고 통치하시므로 계속 일을 하십니다. 안식일, 지금의 주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예수님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안식일이라도 주님은 38년된 병자를 고치심으로 전인적인 인간 회복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히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안식일이라도 얼마든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 규정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 소와 짐승이 구덩이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도 건져 내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짐승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안식일이라도 낫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이어서 이제 예수님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일을 연속적으로 하시게 됩니다.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님의 사역은 아버지의 사역처럼 생명을 주는 일과 심판하는 사역입니다. 본문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생명과 심판) 살펴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 두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본다는 말은 부자 일체에서 보는 것을 말하고 이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되는 일입니다. 이 말은 아들이 천상에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것을 다 보았고 이제 지상에서 아들이 천상에서 보았던 그대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복된 행위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자의 일체적 행위를 한다는 것인데 곧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일이 실행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은 곧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동등한 신적 권능과 탁월성으로 그의 일을 수행하시는 것입니다.

 

훌륭한 주석가 존 브라운은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아버지로부터 나오고 모든 것은 아들에 의하여 행해진다. 아버지로부터 세상이 만들어졌다면 그렇다면 아들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아버지께서 우주를 떠 받치고 계시는가? 그러면 아들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의 구세주라면 아들이 그런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행하시면 아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모든 것을 행하신다. 그런 분이시니 그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다.’

 

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자기의 일을 보여주셔서 아들로 그것을 행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의 보여준다는 말은 아버지가 무지한 아이에게 가르쳐준다는 말이 아니고 또한 여행길을 잘 모르는 여행자에게 안내자가 길을 가르쳐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무한한 완전성, 친밀성을 서로 공유한다는 의미합니다. 이런 뜻으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계시하여 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시는 일보다 더 큰 일을 아들에게 보이사 그 일을 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큰 일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38년 병자를 고치신 일보다 더 큰일을 말하는데 곧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시는 일이나(9)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시는 일(11)입니다. 이런 일들을 종합해서 한마디로 말하면 21(다음 구절)에 나오는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큰일을 보는 사람들은 다 놀라게 될 것입니다. 38년 병자를 살리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일이므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분명히 사람들은 크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다음 구절에서 주님이 크게 놀랄 일에 대하여 언급을 하셨습니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이 말씀에서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이어지는 일은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는 일입니다. 여기의 일으켜 살리다는 말은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시체로 머물러두게 하지 아니하고 일으켜 살리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고 일으켜 살리는 운동은 신자들이 현재 소유할 수 있는 영적 생명을 가리키기도 하고 재림 때에 신자들이 받을 몸의 부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생명과 미래의 부활까지를 포함해서 죽은자를 일으켜 살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이 일을 하신 것처럼 아들도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사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주님이 누구를 일으켜 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세상에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간절히 원하는 사람을 살리시겠다고 하셨나요? 아닙니다. 주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하심으로 살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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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주님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맡아서 생명, 영생을 주는 일을 말씀하셨다면 이제는 심판하는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22절은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맡은 것은 심판하는 권세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심판하는 권세를 위임받아서 이제 그것을 실행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사람을 살리시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본래 정한대로 두시는 그 행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섭리 중에 어떤 사람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시면 자동적으로 선택받지 아니한 사람은 유기가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과 사람을 심판하는 권세를 받아서 택함받은 사람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일으켜 살리셨다면 나머지 사람은 자동적으로 유기가 되어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진 심판의 권세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아들에게 생명을 주는 일과 심판하는 일을 맡기셨는데, 이렇게 하신 이유는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처럼 사람들로 공경을 받도록 하려 하심입니다(23). 성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처럼 아들도 동일하게 신적 영광을 받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23).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들을 공경하는 자를 아버지께서 귀하게 여기십니다(12:26).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결국 아버지를 공경하는 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생명과 심판의 권한을 행사하시는 아들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곧 아들과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아버지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높이시는 것입니다. 23절의 공경하다는 말은 요한복음 12:26귀하게 여기신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결국 이런 권세자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자는 곧 성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이며 그런자를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아들이 주시는 영생은 부활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24-25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성경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셨기 때문에 2중 강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자가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영생을 얻기 원하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이 한 길밖에 없고 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듣는 것부터 출발하는 종교입니다. 말씀을 경청하지 않으면 믿음이 생길 수 없고 믿음이 없으면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는 이 표현은 요한이 자주 쓰는 실현된 종말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말과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주와 함께 영원히 살아가는 자들이 심판을 받아 지옥 갈 수 없으며 그런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임에 분명한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8:1). 이미 주님이 대속자로써 십자가 위에서 정죄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더 이상 지옥의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결코 나쁜 결과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었다는 말과 생명으로 옮겼다는 말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25절의 죽은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지금 살아난다고 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이중적인데 현재적이면서 미래적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지금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대단한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음성만이 죽음의 장소까지 꿰뚫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살아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곧 이때라고 하시면서 지금 현재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신자에게 미래적인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은 마지막 날에 육체의 부활과 함께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6절과 27절은 예수님의 사역 두 가지를 요약하신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예수님은 생명의 원천이시고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심판하는 권한을 가지셨습니다.

마지막 두 구절은 부활의 두 종류를 말하고 있습니다. “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주님의 그 음성을 다 듣게 됩니다. 주님의 초림은 계시를 받은 몇 사람만 알았지만 주의 재림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보고 그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은 미래적 종말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군 천사들을 대동하여 다시 오실 때에는 선한 사람 즉,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다 행함이 있습니다. 곧 믿음과 행함이 있는 자들임으로 주님의 인정을 받아 그 날에 생명의 부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착한 일을 행하심으로 부활하신 것처럼(10:38) 신자들도 그의 선행으로 생명의 부활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 오실 때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미워하고 거역했던 그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불순종의 행함이 있는 자는 믿음을 증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심판과 멸망의 부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본문의 마지막 두 구절을 통하여서 영생과 심판의 현재적 실시와 세상 끝 날의 실시를 병립해서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적 영생과 미래적 영생을 같이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가서도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40)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현세에도 벌써 영생을 소유한다는 사실과 또한 그들이 종말 때에도 부활의 형태로 영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핵심은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곧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또 사망의 심판을 하셨듯이 예수님께서도 생명과 심판의 권한을 가지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제까지 일하시니 주님도 지금까지 생명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사역으로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영생이 있으므로 지옥 심판이 없습니다.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영생을 얻은 자들로 부활의 영생을 바라보며(소망하며) 이 땅에서 항상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듣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자는 먼 미래에 부활의 영생을 누릴 줄 확실히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 이 세상을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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