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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8 07 사울이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다 이정현 목사 202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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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9:19-31절 개역개정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8월 첫째주 설교 행 9:19-31, 사울이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 전도하다.

 

본 장은 사울이 변화되는 사건이 기술된 것으로 매우 유명한 장입니다. 부르스는 본 장의 이 사건을 가리켜, 오순절 이후 그리스도교 사건에서 또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성도들의 기념일은 순교일로 잡지만 사울 만큼은 그의 회심의 날로 잡고 있습니다(125). 사울의 회심은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사와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지금도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사건은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는 중요한 발단이 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바울의 회심으로 인하여 이제 복음은 유대인을 넘어 전 세계 이방인에게까지 전파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나타나신 것과(9:1-9), 사울이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를 받음으로 건강이 회복되고 영적으로 충만해지는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9:10-19). 이 사건이 있고 난 이후에 오늘 본문이 전개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렇게 변화된 사울이 곧장 다메섹에 들어가서 전도하는 장면과 이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도 복음 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 충만과 세례를 받은 사울은 즉시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증거 합니다. 회당은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교육을 하던 장소인데 사울은 이제 이곳을 이용하여 전도를 합니다. 여기서 행한 바울의 설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한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즉, 사울이 다메섹으로 올라올 때만 해도 그는 예수를 저주받은 자로 알았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여 잡아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전파한 것입니다.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 되신다는 말은 예수가 구약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시다, 메시아이시다라는 말입니다.

 

사울은 다메섹 사건으로, 예수님에 대한 생각과 말과 행동과 신앙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기가 알고 믿게 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한 것입니다. 각 회당에 들어가서 동일한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듣던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20-21절에 보시면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울은 더 힘을 얻어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언했습니다.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사울은 성령의 감동하심과 유대인들의 회심으로 더욱더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본에는 말씀 안에서’(엔 토 로고)라는 단어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말씀 안에서 더욱더 힘을 얻어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랬을 때, 유대인들은 당황하게 되었고 또한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다 사울의 추종자들이었으며 사울을 존경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고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여기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기독교인을 박멸하고 있으니 장래가 총망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완전 180도 바뀌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고 전파하고 있으니 당황하고 죽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성난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 위하여 밤낮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보호하고 지지하고 후원했던 자들이 이제는 돌변하여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로, 사울을 바깥으로 피신시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사울 죽이기로 공모했으나 다메섹의 기독교인들은 사울을 빼 돌려서 보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제의 동지는 지금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어제의 적은 오늘 동지가 되어 그를 지켜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사울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이후 온전히 변화가 되어, 그때부터 공장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심을 전파하였습니다. 핍박자가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도 변화된 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도 진정으로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때부터 예수가 구원자이심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결코 뒤로 미룰 일이 아니고, 특별한 사람이 전도하는 것도 아니라, 지금 즉시 해야하는 일이고, 구원 받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전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곧장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고 증언해야 하는 것입니다.

˃

이제 다메섹에서 도피한 사울은 회심한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가 주후 38년 경으로 봅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서 예루살렘을 떠난지 3년이 경과하였습니다. 사울의 1차 예루살렘 방문은 약 15일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1:18). 그의 예루살렘 방문 목적은 사도들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과 교제를 갖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환영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비록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은 여전히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 기독교인들은, 사울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울을 박해자로만 기억했지, 회심자로 기억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바나바가 나서서 사울과 예루살렘의 제자들 사이를 잘 연결시켜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제자들의 불신을 만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울을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난 것과 주께서 그에게 분부하신 말씀과 그가 다메섹에서 담대히 전도한 사실을 상세히 입증해 주었습니다. 27절 제일 마지막 단어인 말하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원뜻은 상세하고 말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는 사울에 대하여 사도들에게 근성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울과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과 친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1:18-19).

 

이렇게 하여 사울은 자유롭게 예루살렘을 출입하면서, 사도들과 교제할 수 있었고 또한 주 예수를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다메섹으로 파송한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담대히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복음에 관하여 변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들은 사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다메섹에서도 일어난 바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헬라파 유대인들은 못된 사람들 인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도 보면 자기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제외되었다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원망과 불평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입에 늘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것 같고요,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는 논쟁을 좋아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복음은 논쟁의 주제가 아니라 믿고 받아들여야 할 주제인 것입니다. 이들이 사울과 논쟁을 하다가 불리하거나 지니까 억울해서 이제 사울을 죽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2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그래서 바울이 위기와 위험에 처한 줄을 알고, 형제들이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려가서 그곳에서 다소로 피신을 시킵니다. 여기의 가이사랴는 북쪽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가 아니라, 지중해 근방에 있는 항구 가이사랴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소까지는 육로도 있고 해로도 있는데 아마도 해로로 바울을 이송시켰던 것 같습니다. 다소는 사울의 고향입니다(9:11). 이제부터 그는 이곳에 깊이 묻혀 있으면서 자신의 신앙을 정비하고 훗날 하나님의 일을 준비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고향이니까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1:21-23).

 

사울이 예루살렘을 떠나 자기의 고향인 다소로 가게 되는 것이 비단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 만이 아니라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주님의 환상을 보고 떠났던 것입니다(22:17-18). 사도행전 2217-18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주님이 속히 이곳을 떠나라고 하셨기 때문에 사울이 예루살렘을 피하여 고향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사울은 회심 이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15일 간 머물다가 자기 고향인 다소로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장장 11년 정도 머물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1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차 예루살렘 방문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 때가 14년 후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1차 방문 후가 아니라, 다메섹을 향하여 예루살렘을 떠난 이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다메섹에 가서 3년 유하다가 1차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15일 머물었고 곧장 다소로 갔다가 그곳에서 11년 동안 채류 한 이후, 2차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4년 후에 동역자인 바나바와 영적 아들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사울은 자기 고향에 11년 동안 머물면서 영적으로 무장하고 경건생활에 전념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31절을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히 든든히 서 갔다고 하였습니다. 팔레스틴의 아래쪽이 유대지역이고 그 위쪽이 사마리아이고 그 위쪽이 갈릴리인데 이런 지역에 흩어진 교회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는 것입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는 말은 박해와 핍박이 수그러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를 잔멸하려는 일들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가 칼리귤라(주후37-41재위)인데 이 황제가 자기의 형상을 각지의 신전에 안치해 놓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틴도 그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의 예루살렘 성전에도 칼리귤라 황제의 흉상을 갖다 세워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용납할 리가 없지요. 그들이 결사반대를 해서 소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41124일에 황제가 갑자기 암살됨으로 그 문제가 일단락 되었습니다. 권력싸움으로 로마의 정치가 혼란하니까 이런 입장에서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평안히 든든히 서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일차적인 목적은 주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일차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제일로 경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심으로 주를 경외하게 되고, 아울러 성령의 위로로 복음을 전하게 되면, 교회는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가 더 많아지니라 말씀은 수적인 증가로 외적 부흥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120명으로 출발을 해서 500명으로 늘어나고 3,000, 5,000명으로 늘어나서 이제는 믿는 자의 그 수가 더욱더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부흥은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후원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결론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을 만난 사울이 곧장 다메섹 성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 것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사도들과 교제하며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한 가지 교훈을 찾고자 합니다. 먼저는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로 곧장 다메섹 성으로 들어가서 예수가 구원자이심을 전하였고 예루살렘에 와서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처럼 주님을 믿고 은혜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곧장 복음 전도자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을 받았다면, 성령 충만을 받았다면, 곧장 복음 전도자로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즉시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전도할 때가 안 되었다고 말하며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복음을 전할 만한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여 전도를 못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담대함이 없어서, 또는 굳이 내가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진짜로 구원을 받은 신자라고 한다면 그 어떤 이유가 핑개를 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받은자라면 당연히 그 복음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았다면 때를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곧 영원히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때와 상관없이, 내가 아는 것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상황이 좋건 나쁘건 상관없이, 복음을 전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1-2).

 

에스겔 선지자의 말입니다.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3:11)

 

사도들도 이렇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5:42).

 

본문의 사울은 주님을 만나 변화된 이후, 곧장 각 지역으로 나아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하였던 것처럼, 이번 한 주간도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그 날

기도제목/ 때와 상관없이 항상 복음전파에 힘을 써는 우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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