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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06 14 - 은혜, 메시야와 그의 사역 이정현 목사 2020-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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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11:1-6절 개역개정

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614일 마 11:1-6, 은혜, 메시야와 그의 사역

 

주님이 12제자를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여 하늘나라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셨고, 가서 먼저 그 집의 평안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과 핍박이 있을 때 끝까지 인내하라고 하셨고, 함께 고난 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사항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당부해야 할 말씀을 다 마치신 주님이, 또 다른 동네로 가서,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기 위하여 거기를 떠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우고 파송하시고도 주님은 쉬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기 위하여 애를 쓰셨습니다.

이때 감옥에 갇혀 있던 요한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제자들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죄도 없었지만 지금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당시 헤롯 안디바라는 왕이 자기 제수와 결혼을 했는데, 요한이 그의 뻔뻔한 죄를 공개적으로 책망했다고,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둔 것입니다. 그 요한이 감옥에 있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고 있었던 일, 주님이 행하신 이적과 설교를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물은 것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3). 세례 요한이 메시야에 대하여 헷갈렸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는 참으로 오실 그분인가?’ 요한은 예수께서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으로 알았고, 쭉정이와 알곡을 구분하실 분으로 알았습니다(3:11-12). 요한은 메시야가 오시면,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5:4)는 말씀도 알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나라는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12:17)는 말씀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메시야는 죄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이런 일을 하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또한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회복하시고, 다윗 왕국의 영광을 재현하실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 같은 메시야 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요한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유대인들의 공통된 견해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께서는 불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뿌리를 뽑는 일도 하지 않으시고 또한 로마에 대항하여 싸우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온화하게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병든자를 낫게 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사역만을 주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정말 오실 그 메시야가 맞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메시야인지는 잘 몰라서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주님이 세례요한의 잘못된 메시야 관을 수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4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주님의 대답이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과는 동떨어진 대답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라고 말하면, 주님은 그래 그렇다’, 아니면 나는 메시야가 아니다라고만 대답을 사시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이 맹인이 본다, 앉은뱅이가 걷는다, 문둥병자가 낫는다, 귀머거리가 듣는다, 죽은자가 살아난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 된다고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째보면 동문서답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은, 분명히 내가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통하여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임을 알라고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미래에 메시야가 오시면 이러이러한 일을 행할 것이다라는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115절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음에 나오는 6가지 사항은 메시야가 할 구체적인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1. 맹인이 본다(29:18b, 35:5a, 42:7a, 18b).

2. 못 걷는 사람이 걷는다(35:6a).

3.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는다(X).

4. 못 듣는자가 듣는다(29:18a, 35:5b, 42:18a).

5. 죽은 자가 살아난다( 26:19).

6.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61:1c).

 

이사야서의 예언과 예수님의 실제적인 행위를 비교해 보면 다른 부분이 나타납니다. 먼저는 이사야 35:6b절에는 말 못한 자가 말하는 것을 언급하셨지만, 예수님이 이런 기적을 행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이사야서나 다른 구약성경에서 메시야가 오시면, ‘나병환자를 깨끗이 낫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없지만, 본문에서는 나병환자가 깨끗이 치료를 받는다고 하셨고, 실제로 주님은 나환자들을 낫게 하셨습니다.

 

결국 메시야로서의 주님의 사역은, 위에 기록된 6가지에다가 한 가지 즉, 벙어리가 말하는 것을 더하여, 7가지 사역이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구약에 예언 된 대로 똑같이 그대로 행하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예언대로 그대로 행하는 것을 보아서, 내가 메시야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에게 내가 오리라고 한 바로 그 메시야이다라고, 주님이 대답을 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언대로 이것을 성취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내가 메시야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나 예수는 너희가 바라는 불로서 심판하는 심판주 메시야이기 이전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고, 너희를 치유하고 너희를 회복하고, 너희를 살리는 메시야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젠가 때가되면 심판하실 것이지만, 동시에 너희를 치유하고 살리는 메시야임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는 다 했기 때문에 여기서 설교를 끝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과 은혜라는 말을 연결시켜서 좀 더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5절의 말씀에 다시 한번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맹인이 보게되는 것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간의 능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걷는다는 것도 현대 의학으로 불가능합니다. 나병환자가 치유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말하고 듣는다는 것도 불가능하며, 더군다나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마지막 부분의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여 지지만, 빈자가 주님으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일들을 능히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걷지 못하는 사람의 다리를 고쳐주셨습니다. 주님은 여러 명의 나병환자를 깨끗이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귀먹은 사람이 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친히 살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병이나 귀신들림까지도 주님은 고유한 능력으로 그들을 치유하시고 온전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하시려고, 이들을 그 가운데서 해방시키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고 하셨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분이, 맹인들에게, 앉은뱅이들에게, 나병환자들에게, 벙어리와 귀머거리에게, 죽은 자에게,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인간들 입장이나 은혜를 받은 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이지 않습니까?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원래는 비참한 상황 속에 처하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놓임을 받고 치유와 회복과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노력이나 공로로 된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다 영적 맹인들이었고, 우리는 다 영적으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고, 우리는 다 영적으로 부정한 자들이었고, 우리는 다 영적으로 벙어리요 귀머거리였고, 우리는 다 완전히 죽었고, 우리는 다 영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이었는데, 우리 같은 존재가 보게 되었고, 걷게 되었고, 깨끗하게 되었고, 말하게 되었고 듣게 되었고, 살게 되었고 부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입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정말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극빈자들에게 주는 강냉이 죽을 먹으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10리 길을 가방도 없이 책보를 울러 매고 도시락은 항상 빈 도시락을 가지고 가서 점심때가 되면 강냉이 죽을 받아서 손에 굵은 소금을 주면 그것을 죽에 넣어서 숟가락으로 어깨서 후루룩 마시면 한 끼를 때우는 것입니다. 그것도 배가 고프면 한 그릇을 더 먹으려고 빨리 가서 수돗물로 도시락을 씻어서 제일 뒷줄에 서 있다가 한 그릇을 더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그것도 비오는 날과 눈 오는 날이면 눈, 비를 다 맞으며 다녔습니다. 제일 부러운 것은 학생들이 버스토큰을 내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입니다. 당시 학생 토큰이 40원 하였는데 그 토큰 두 개가 없어서 눈비 다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서글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한창 예민할 고등학교 1학년 때 도시락 반찬은 항상 김치니까 창피해서 친구들하고 같이 밥을 먹지 못하고 혼자 먹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 나마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도시락을 제대로 싸 가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같이 가난하고 지지리도 못난 시골 촌놈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시골 우리 동네에는 예수 믿는 사람도 없고 교회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 동네에 복음이 들어와서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목사가 되었고 아울러 신학공부를 15년 이어서 함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었습니다. 외국으로 박사학위 공부를 하러 갈 때도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 준 논 400평을 팔아서 돈 400만원 가지고 비행기 표를 사서 유학을 갔습니다. 그 복음이 저를 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복음이 정말 가난한 시골 촌놈을 오늘 목사가 되게 했습니다. 그 복음이 나를 복음전파자로 세웠고, 복음을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복음의 은혜가 아니면, 가난한 자가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고 교수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낸 온 것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로마서 5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5:6-10).

우리는 과거에 다 연약한 자였습니다.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놈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량없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내가 연약할 때, 내가 죄인 되었을 때,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 나 좀 구원해 주세요, 예수님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 주세요. 그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까? 우리는 그런 거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은혜를 입을 만한 공로를 쌓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친히 아들을 십자가 위에 보내 주셔서 그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용서 받았고 나음을 입고 치유 되었고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 은혜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태어난 존 뉴턴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11살 때부터 아버지의 배를 타고 다니면 이곳 저곳을 항해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도 이 다음에 커서 아버지와 같은 선장이 되겠다고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선원이 된 뉴턴은 거친 세상 속에서 신앙을 잃어 버렸고 무신론에 빠졌으며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믿음의 친구들을 타락시키며, 노예 무역선의 선장으로서 세상의 온갖 죄악을 다 저지른 죄인 중의 죄인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죄는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영국에 갔다가 파는 흉악한 노예 상인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잡아다가 팔아서 이익을 남기는 악독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때 그는 자신이 노예로 전락하는 위기를 맞게 되기도 하지만,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둔 북대서양의 폭풍우속에서 결국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바울의 고백처럼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회개하고,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되어 윌버포스의 노예무역폐지 투쟁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가 흉악한 노예 상인에서 거듭남으로, 구원 받은 자가 되어서, 노랫말을 지어 찬송을 부르게 되는데, 그 찬송가가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존 뉴턴은 이 찬송 외에 시온성과 같은 교회”, “지난 이레 동안에등에서도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회개하고, 자신을 죄악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가련하고 비참한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 붙잡혀 끌려온 사람입니다. 그것도 율법에 정통한 사람, 외식된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붙잡혀 온 것입니다. ‘이런 여자는 모세의 율법에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예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8:7)고 하시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다 물러가고 그 여자만 남았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고 하시니, 그 여자가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어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11)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기 처참한 죄인의 모습으로 돌에 맞아 죽을 직전에 놓여 있는 이 여인이 누구입니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이리저리 질질 끌려 다니며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곧 이런저런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비참하게 죽어야 할 이 여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이고 나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으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일어나 가라고 하심으로, 우리는 죄 용서와 새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인생이 예수님 때문에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게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입은 우리들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은혜를 매우 강조하여 말합니다. ‘나는 은혜로 택함을 받았다’(11:5), ‘나는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았다’(3:24), ‘나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2:5), ‘하나님은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1:15), ‘나는 은혜로 일꾼이 되었다’(15:16), 그러면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고 고백하였고,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라’(고후 6: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4:16)고 권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랍니다. 그 보좌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풍성히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주의 일꾼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입은 자에게, 이제 은혜가 더하여지기를 바라고, 은혜가 넘쳐나기를 바라고, 은혜가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은혜로 살고 은혜로 행하며,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전파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GS/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기도제목/ 맹인이었던 우리를 보게 하시고, 못 걷는 우리를 걷게 하시고, 나병환자처럼 저주 받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듣지도 못하는 자를 듣게 해 주시고, 죄로 인하여 죽은 자를 살려주시고, 가난한 우리에게 복음을 주셔서, 영적으로 부한 자가 되게 하신 것은,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니, 그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 나에게 주어진 은혜가 이렇게 많고 위대하다고, 자랑하며 살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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