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6: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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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마6:1-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1. 그리스도인들은 구제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먼저 구약성경에서는 구제를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한글 성경에서 ‘구제’라는 단어가 제일처음에 나오는 곳이 에스더 9장인데, 그곳에 보면 유다 백성들이 포로지에서 생명을 건짐 받았을 때, 감사하며 잔치를 버렸는데, 이때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에스더 9:22).
이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구제하라’는 말씀은 주로 잠언서에 많이 나타납니다. 이때의 말씀은 주로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면, 하나님이 보상해 주신다는 말씀이 따라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언 11장 24-25절에의 말씀입니다.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흩어 구제하며 구제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부하게 되며 풍족하게 되게 윤택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잠 28:27)고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실 된 마음으로 구제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만, 가난한 어려운 이웃들을 보고서도 도와주지 않으면 저주가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구제에 대한 이 같은 직접적인 말씀은 아니더라도, 구약 여러 곳에서 가난한 자, 특히 고와와 과부와 나그네를 배려하고 대접하고 도와주라는 말씀은 수십 군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신명기에 많이 나타나 있는데,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9)는 말씀입니다. 기업이 없는 레위인이나 성중에 거하는 객이나, 고아와 과부들을 굶기지 말고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저들을 위하여 추수할 때 이삭을 남겨두고, 과일도 다 따지 말고 남겨두고, 저들을 위하여 구제의 11조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도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사회적인 약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압제하지 말고 저들을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그들을 구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 하나님은 어려운 이웃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최소한의 양식을 먹을 수 있도록, 진심어린 마음으로 구제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의 말씀도 마찬가지로 구제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본문에서 구약의 말씀에 이어서, 구제하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행하면 하나님이 갚아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눅 11:41)는 말씀을 하셨고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 12:33)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구제를 마치 하늘나라에 저금하는 것처럼, 진정한 구제는 하늘에 둔 다함이 없는 보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구제를 성실하게 실천한 두 사람을 소개하는데, 한사람은 도르가라는 여 제자입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 도르가는 여자의 몸으로 옷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구제를 했는데, 그의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장에는 이달리야부대의 백부장인 고넬료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사람이 점령지에 와서 그 백성들을 구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하나님이 그 구제를 기억하실 정도로 성실하게 구제하였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들리게 되는데,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행 24:17). 사도가 여기서 내 민족을 구제할 제물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빌립보교회를 비롯한 마게도냐 교회성도들의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성도들을 돕기 위하여 가져온 것을 말합니다. 당시 빌립보교회는 극한 가난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바울 손에 맡겨서 예루살렘에 전달하게 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기의 서신서에서 구제에 대하여 몇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롬 12:8)하라고 하셨고,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고 하셨고, 감독의 여러 자격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 중의 하나로 감독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는 자’(딤전 5:10)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들을 살펴볼 때, 오늘 우리는 어려운 이웃들, 가난한 이웃들, 불쌍한 이웃들, 사회적인 약자 계층의 사람들을 배려하고 구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구제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이 명령을 외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참된 구제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외식하는 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의 원래의 뜻은, ‘연기하는 배우, 무대의 연기자’를 의미합니다. 배우들은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주어진 역할에 따라 연기를 할 뿐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마음과 행동이 다른 것을 외식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런 위선자들을 강하게 책망하신 말씀이 복음서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마태복음 23장입니다. 거기에 보면 7번이나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만큼 그들의 외식적인 생활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2절의 이 ‘외식하는 자’를 ‘사람에게서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자’라는 말로 표현을 했고, 1절에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를 행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식적인 구제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구제, 그리고 사람의 영광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행하는 구제를 말한다고 봅니다. 이것은 비단 구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본문 뒤에 나오는 기도와 금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장 5절과 16절에도 동일하게 ‘사람에게 보이려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구제, 기도, 금식은 외식적인 것이며, 결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은 의식하지만 하나님은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있는가를 보아서 구제를 하지만, 하나님이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들은 결국 시간과 장소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니까, 저들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위선적으로 구제하는 사람들은,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한다고 했습니다. 많이 모이는 장소이며 또한 좁은 골목거리에서도 그들은 항상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외식하는 바리새인들 중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호주머니에 구멍을 뚫어 놓고, 그 속으로 동전 하나를 떨어뜨린답니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땡그랑하고 나면 지나가는 사람이 그 동전을 주어서, ‘선생님 동전이 떨어졌습니다.’라고 말하면, ‘그것이 뉘 손에 있는고?’ ‘제 손에 있습니다.’ 그러면 ‘자네 것일 새.’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한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자선을 자랑하며 다녔고,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구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구제할 때 시장 바닥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나팔을 불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이는 사람들에게 구제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본문에서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구제, 위선 된 구제의 결과는, 이미 자기 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의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는 말은, 이미 너희는 영수증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미 지불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영수증 처리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과시적으로 구제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다른 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상을 받을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위선적 구제와 다른 참된 구제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친히 말씀해 주시기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구제를 왼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처럼 비밀리에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구제를 하고 나서, 그 구제의 행위를 기억하지 말고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렵고 힘들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도와주고 나서, 노트에 그 사실을 기록하지 말라는 것이고, 내 머리 속에 남겨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 앞에서 하는 참 구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구제를 받는 사람의 자존심도 지켜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성전에는 ‘침묵의 방’이 있었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어떤 물건을 그 방에 가져다 놓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와서 보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것입니다. 누가 갖다놓았는지, 누가 무엇을 얼마를 가져갔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어야 하는데, 한 끼에 1500원 정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돈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굶는 학생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식당 한 쪽에다가 작은 바구니를 하나 매달아 놓으면, 조금 여유가 있는 학생들이 식권을 몇 십 장 씩 사다가 몰래 갔다 넣어 놓습니다. 그러면 돈 없는 학생들이 그 식권을 가져다가 밥을 먹는 것입니다. 누가 그 식권을 갖다 두는지, 누가 몇 장을 가져다가 밥을 먹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런 것이 진정한 구제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른 구제이고, 참 구제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구제이고,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의 구제인 것입니다.
3. 참된 구제 자에게 하나님이 은밀히 갚아주십니다.
위선적으로 구제하는 자에게는 이미 상이 주어졌지만, 참되게 성실하게 진실 되게 순수하게 구제하는 사람에게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6, 18절에 반복되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을 하면,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은밀하게 갚으시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밀하게가 수식하는 말이 ‘보시는’이 아니라, ‘갚으리라’는 말씀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보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갚아주신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밀히 갚아주신다’는 말은, 곧 공개적으로 갚아주신다는 뜻입니다. 만인이 알 수 있도록 공공연히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공개적으로 떠벌이며 구제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관심도 없으시지만, 은밀하게 구제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공개적으로 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도 살펴 본 것처럼, 구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부하고 풍족하고 윤택하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상을 주시는 것이 됩니다.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나, 오히려 흩어 구제하면 풍족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바른 마음과 태도로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내가 가진 것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면, 하나님이 풍족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내가 맡긴 물질로 내가 원하는 곳에 물질을 너무 아름답게 사용하니까, 그 일을 더 많이 하라고 더 많은 물질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또 맡겨진 물질의 청지기로 사시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진 어느 여자 집사님이, 사업을 크게 하다가 망하고 다시 성경을 공부해서 성경적인 경제 원리에 따라서 사업을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이 사업을 하는 목적 중의 한 가지는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반경 5km 이내에 가난한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15장 11/ “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자기 동네 근방의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구제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은혜와 복을 주기지 않겠습니까? 작년의 년 매출이 .... 원 이었다고 합니다.
신명기 15장 10절에,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까운 마음으로 구제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주면 하나님이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잠언서 19장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제는 돈 낭비하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고, 하나님은 빚지고 사실 분은 절대로 아니십니다. 꾼 것은 반드시 몇 10배로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는 여러분의 작은 구제가, 때로는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것이고, 아프리카의 아이들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수도 있고, 그들의 인생을 재건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작은 이웃 사랑이 전도와 선교의 통로가 되기도 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자선과 구제와 봉사는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상급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나 자기의 영광을 위한 구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순수하게 구제를 함으로,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은혜와 복 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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