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마태복음25:14-3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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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마25:14-30, 나는 유익한 종인가 아니면 무익한 종인가?
여러분 나무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열매가 중요합니까? 나무가 있어야 잎도 피우고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나무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유실수에는 열매가 있어야 그 나무의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열매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요? 마태복음 7장에서 명확하게 대답하셨습니다.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고 하신 말씀에서는 나무가 중요한 것 같고, 그 반대로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는 말씀에서는 열매가 중요한 것처럼 말씀 하셨습니다. 결론은 둘 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는 그 열매로 나무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무도 중요하고, 열매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1년 동안을 지내면서 무슨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점검해 보시고, 열매가 있었다면 열매 맺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혹시 하나님이 기대하신 열매가 없다면 열매 없음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주인이 먼 곳으로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소유를 맡겨주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5 달란트와 2 달란트를 맡은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열심히 일해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러지를 못하였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많은 결과를 남긴 사람에게는 칭찬을 하셨고, 남기지 못한 사람에게는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미래에 관하여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주고자 하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주인은 자기의 소유를, 종들의 재능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14-15절).
옛날 이집트와 앗시리아에서는 많은 재산을 소유한 주인이나 귀족들이, 먼 나라로 여행을 가면서, 종들에게 이렇게 물질을 나누어주고, 돌아와서는 그 원금과 이자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본문은 이런 사실에 근거한 비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이 자기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주인은 각 종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준 것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종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종들은 내가 많이 받았다고 해서 교만할 것도 없고, 적게 받았다고 불평할 이유도 없습니다. 각 사람에게 가장 적당히 분배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어떤 불평불만이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금 1 달란트는 34kg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것은 한 노동자가 20년 벌어야 벌 수 있는 금액의 돈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200만원을 버는 사람이라면 1년이면 2천 4백 만원이고, 20년이면 4억 8천 만원에 해당되는 돈이라는 것입니다. 굉장히 큰 돈입니다. 5 달란트 받은 사람은 24억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주인이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적당하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이 달란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명 뿐만아니라 재능, 은사, 선물, 재물, 환경, 건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모든 것을 일컬어 달란트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우리의 재능에 따라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양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두 가 다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다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받은 분량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이 사명을 가졌음은 분명합니다.
2. 5 달란트와 2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5 달란트 받은 자와 2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장사하였다고 했습니다. ‘바로 가서 장사하였다’는 말은, 돈을 받자마자 그것으로 장사하기 위해 업무에 착수하였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 종들의 성실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인으로부터 받은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충성을 다하여 두 배의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5 달란트 받은 사람은 10 달란트가 되었고, 2 달란트 받은 자는 4 달란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두 종은 주인의 맡긴 것으로 열심히 장사해서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긴 것입니다.
그런데 1 달란트 받은 자는 앞의 종들과 반대로 행합니다. 그는 주인의 돈을 가져다가 땅을 파고 그것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장사하지 않았고 더 좋은 결과를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주인의 것을 땅에 묻어 둔 것입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는 말은 그 돈을 잃어버릴까봐 염려하여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한 푼의 이익도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이 두 부류가 있다고 봅니다. 맡은 자로서 충성과 헌신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는 반대로 주어진 사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명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받은 것으로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결과를 남기는 사람이 있고, 그와는 반대로 주어진 귀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많이 맡았는가, 적게 맡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얼마가 주어졌든지 간에 그것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느냐 하지 못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열심히 일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두고 말았습니다. 일하지 않았습니다. 재능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노력하거나 봉사하지 않았습니다.
3. 결산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종들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는 몰랐지만 먼 훗날 어느 때 갑자기 주인은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결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종들은 그동안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얼마의 이문을 남겼는지를 보고했습니다.
먼저 5 달란트를 받았던 자가 5 달란트를 더하여 10 달란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엄청난 수익을 남겼습니다. 이에 주인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2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이 사람도 두 배의 결과를 남겼습니다. 이에 주인이 5 달란트 받은 사람과 똑같은 칭찬을 하셨습니다.
주인은 이 두 종에게 동일한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잘하였도다.’라는 말은 마치 아이가 받아쓰기를 잘했거나 시험을 잘 보았을 때 엄마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잘 했어’라고 해 주는 것처럼, 주인도 많은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그렇게 해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것은 우수하고 쓸모 있고 정직하고 성실한 종이라는 칭찬의 말입니다. 주인으로부터 극찬을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인은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했습니다. 종이 보기에는 큰일이지만 주인이 보기에는 작은 일일 수 있습니다. 송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 오크우드인데 제일 높은 층에 올라가서 아래를 처다 보면 자동차와 사람이 조그마하게, 작게 보이는 것처럼, 주인의 입장에서는 작은 일에 불과하지만 너는 그 일에 충성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제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고 하셨고,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이 큰일도 충성할 수 있기 때문에 큰 것, 많은 것을 너에게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눅 16:10). 또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고 하신 것은 재림이후 주와 함께 누리게 될 영광과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이런 놀라운 칭찬과 영광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제 1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 앞에 왔습니다. 이 사람은 1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 와서 주인에게 내어 놓았습니다. 장사한 결과가 없었습니다. 그는 전혀 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인을 오해하였습니다.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종은 두 가지 면에서 주인을 오해하였는데, 먼저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굳은 사람이라는 것은 ‘뻣뻣하고 거친’, ‘강퍅하고 완악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종은 주인을 거칠고 강퍅하고 완악한 사람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또한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이 말은 투자도 하지 않고 많은 것을 얻으려는 게으른 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에게 작은 것을 주었다고 불평하는 마음까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 종은 주인을 강퍅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주인을 분명 잘 못 알았습니다.
하나의 수확물도 가지고 오지 않고 주인을 오해했던 이 종에게 주인이, “26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10 달란트와 4 달란트를 가져온 사람에게 하신 말씀과 정 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아니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고,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주인이 아님과 동시에, 차라리 내 돈을 은행에 넣어두었다가 이자라도 받지 그랬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주인이 종들과 결산하여 잘한 사람에게 칭찬을 하고, 못한 사람에게 책망을 하는 것은, 종말에 분명히 주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결산할 날이 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날에 맡은 사명을 성실함과 열심으로 일하여 열매를 많이 드리면 주님이 우리를 칭찬하시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열매가 없으면 책망을 받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칭찬과 책망에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는 주님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자가 되지만, 달란트를 전혀 남기지 못한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주와 함께 즐거워하는 자가 있는 반면, 쫓겨나 통곡하는 자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달란트 비유는 ‘재림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포항에 규모 5.4의 지진이 있었다고 대한민국 전체가 두려움과 공포에 빠졌었는데, 이 지구의 종말 때는 이런 지진 정도가 아닙니다. 이 땅은 체질에 녹아지고 하늘은 종이처럼 말려 없어지고 대유성 지구의 종말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종말이 반드시 역사 가운데 오지만,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종말이 오기 전에, 기회가 있을 때 너희들이 받은 달란트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나가서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이제 만민이 주님 앞에 서서 얼마의 달란트를 남겼는지 결산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나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4. 본문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종들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명과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능과 건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살아가는 데 온갖 좋은 것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5개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2 개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1개를 주셨다고 해서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은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무조건 같아야 공평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것은 공산당 식 공평이지 참다운 공평은 아닙니다. 진정한 공평이란 그 능력에 따라, 재능에 따라 적당히 주는 것이 공평인 것입니다. 다 사도입니까? 다 목사입니까? 다 교사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두는 각각 하나같이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이며 특별히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다고 자랑하거나 교만할거 아니고, 적다고 원망불평할 거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것들을 얼마나 잘 감당하였습니까? 사명과 중직의 직분을 잘 감당하였습니까? 물질과 은사를 잘 사용하여 좋은 열매를 맺었습니까? 재능과 건강을 다하여 선한 열매를 맺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까?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하여 더 많은 열매와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살았습니까? 하나님과 교회에 유익한 종이었습니까?
전도의 열매는 맺었습니까? 사랑의 열매는 맺었습니까? 감사의 열매, 기도의 열매는 어느 정도 입니까? 교육과 훈련의 열매는 얼마나 맺었습니까?
각 부서에서는 무슨 열매를 얼마나 맺었습니까? 찬양대원, 주일학교 교사, 각 봉사부서의 부원들, 여러분은 올 한해 동안 얼마의 달란트를 남겼습니까?
여러분은 착하고 충성된 종인가요,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까? 여러분은 유익한 종인가요, 아니면 무익한 종입니까?
주님은 분명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여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긴 사람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하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하셨고,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두 가지 예를 말씀드리고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서울대학을 나오고 동서고금의 모든 책들을 읽고 섭렵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의 아파트에는 책으로 가득 찰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그것도 모자라 도서관에 파 묻혀 살았습니다. 그는 입만 열면 어디에 무엇이 있고 역사적인 사건을 줄줄이 꿰기도 하며 성경을 비롯한 동서양의 모든 종교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5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관절염과 위장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다가 죽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는 세상 지식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높은 지식을 소유한 분이었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그가 소유한 지식으로 한 사람에게라도 바른 길을 제시하거나, 한권의 책을 써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과 변화를 가져다주는 일 없이 불쌍한 사람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그가 받은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간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인 인생을 살다간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안수현이라는 크리스찬 의사입니다. 그는 내과 전문의이자 삶의 1순위에 예배와 말씀에 두었고, 2순위에 학업과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획득에 두었습니다. 안수현 의사는 항상 주머니와 가방에 수많은 신앙서적들과, 찬양 테이프가 들어 있었고, 그는 늘 병상의 환자를 만나거나. 힘겨운 누군가를 만날 때면, 얼른 주머니에서 테이프와 책을 꺼내, 복음과 함께 선물해 주곤 합니다. 소아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의 기댈 어깨가 되어 주며, 대화의 상대가 되곤 합니다. 환자가 아프다고 할 때 그저 약 한 알 오더 내려 주는 의사가 아니라,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서 그의 손을 잡아 주며, 어깨라도 다독이는 의사로, 하루가 분주한 분이었습니다.
병원의 궂은일, 남이 꺼려하는 보직을 자원하여 그 일을 했습니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청하면서도, 환자들과 밤늦도록 기도하며 지냈던 바보 의사 안수현 씨였습니다. 언제나 양손에 먹을 것과 나눌 것을 들고, 짠~하고 나타나 사람들을 힘나게 했던, 베풂이 삶이던 바보 의사, 돌보던 환자가 임종하면 옷 갈아입고, 영안실 찾아가 함께 울어 주며,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서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었던 바보 의사였습니다. 치료 받거나, 검사 받을 돈이 없다고 병원을 도망치듯 나서는, 극빈자들을 쫓아가 자신의 카드로, 검사 비 내주며, 다정하고 친절하게 치료를 해 주었던 바보 의사입니다. 퇴원한 환자의 생일날을 기억해 두었다가 케익 사들고 찾아가, 함께 기뻐하며 복음을 제시했던 바보의사, 여친이나 결혼보다는 환자에게 복음 전함이 우선이라며, 여친을 만들지 못한 채 외로운 양치기로 살았던 바보 의사입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의 어려움을 내 어려움으로 끌어안고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도울 길을 찾아 다녔던 사람입니다.
살아생전에 남모르게, 헌혈을 300회나 하였고, 청소 하시는 아주머니, 구두 닦는 아저씨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던 의사였고, 죽을 래야 죽을 시간도 없었던 사람이었고, 어떤 불이익과 손해가 있더라도 타협치 않으며, 사람의[상사, 교수님, 선배] 평판보다 하나님의 평가에 더 신경을 쓰던 사람, 자기 몸 돌볼 시간까지 쪼개어 한명의 환자라도 더 고치고, 살리고, 영혼 구원하려 동분서주하던 바보 의사 안수현씨 입니다.
이렇게 살던 어느 날, 군의관으로 있으면서 병사들이 훈련할 때. 군의관이라는 특혜로, 앰뷸런스에 있어도 되지만 병사들과 함께 삶을 나누어야 복음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병사들과 어울리며 풀밭에서 훈련 받던 중에, 유행성출혈열이라는 병을 얻었습니다. 긴급으로 앰블란스에 수현 형제를 태워, 안암 고대 병원으로 후송하게 됩니다.
‘빈 베드 하나 부탁 한다’는 후배 의사의 부탁에, 바보 의사에게 전도를 받은 고대 병원 응급실 수간호사는 ‘환자가 누구냐’고 물었고, 후배 의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현 선배’라고 말할 때, 병원은 발칵 뒤집어집니다. 그날 이후, 수현 형제에게 수혈 할, 혈소판을 구한다는 광고가 나가자 병원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수혈자들이 자원하여 몰려왔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 병세가 잠깐 호전되었으나 그 이듬해 1월, 만 33세의 일기로 안수현 형제는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결혼식 같은 장례식을 통해 국립 현충원에 묻힘과 동시에, 하늘나라로 영광스럽게 입성하게 됩니다. 그의 장례식은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님 이후 가장 많은 조문객이 찾았다고 합니다.
그의 흔적은 그의 별세이후에 나타납니다. 그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책을 출간했고. ‘흔적’이란 이름으로 드라마도 만들었고 연극도 만들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그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했고 죽음이후에도 계속 달란트를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도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무익한 종이 아니라,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기는 유익한 종이 되도록 합시다.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좋은 열매 많이 맺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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