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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고 주를 섬기자 (히브리서 12:28-29)
이정현 목사 2016-10-02 추천 0 댓글 0 조회 822
[성경본문] 히브리서12:28-29 개역한글

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사랑과 은혜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을 찾아보니까, 사랑이라는 단어는 659회 나오고, 은혜라는 말은 307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낱말에 비해서는 은혜라는 말이 적게 출현을 하지만, 그래도 다른 낱말에 비해서는 많이 나오는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성경에서 은혜라는 말이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은혜란 무엇인가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받을 자격이 있다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습니다. 조건적인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은혜란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들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가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히브리 민족은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갖은 수모와 멸시와, 천대와 억압과 수탈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애굽을 탈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예들이 강대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 40년을 살아가게 되는데, 농사를 짓지도 않았지만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호수아는 평민들을 데리고, 기골이 장대하고 높은 성읍을 쌓아 놓은 그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 그 땅을 차지하게 된 것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남쪽 유다 백성들이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그곳에서 70년 동안의 비참한 포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해방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폐허가 되어 있는 그 고국 땅에서, 그들은 제2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제1성전에 비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성전이었고, 어려움과 방해도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성전건축을 완성한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18년 동안이나,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안식일인데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낫게 했습니다. 그때 회당장이,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때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이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눅13:16, 공동) 주님은 그 여자가 지금 18년 동안이나, 사탄의 사슬에 매여서 고통 가운데 있다고 하셨고, 그 여자에게 사탄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 그 여자가 병에서 놓임을 받고, 사탄의 손아귀에서 해방을 받아, 건강한 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약 성경에 사울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고, 가말리엘 밑에서 율법을 배운 사람이고, 세상 학문에 대하여 능통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장래가 총망 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하나님은 믿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하루는 열심히 특심하여 이 사람이, 대제사장으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아서, 다메섹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도상에서 밝은 빛으로 오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사울은 변화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고 믿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핍박자가 전파자가 된 것입니다. 완전 180도 바뀐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 하나님의 은혜로 사울이, 바울 사도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 드린 이런 일들은,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는 일들입니다. 자기가 노력한다고 성취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과 능력이 있어서, 자기들 힘으로 당시 세계 최강국의 애굽을 꺾고 출애굽하게 되었습니까? 자기들이 농사짓고 목축업을 해서, 40년 동안 식량을 조달해서 먹었나요? 자기들이 지하수를 파서, 물을 먹고 갈증을 해소 하였나요? 자기들 능력으로 적군을 막았나요? 자기들이 텐트를 쳐서, 한낮의 따가운 햇볕을 가리웠나요? 자기들 군사력으로 가나안을 점령했나요? 18년 된 환자가 자기 힘으로 사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요? 사울이 스스로 진리를 찾아서 믿게 되어, 사도가 되었습니까?

 

그런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저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무런 조건을 내 걸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우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천사보다 우월하시고, 아브라함과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온 큰 대제사장으로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분입니다. 아울러 구약의 많은 선진들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았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배교에 대한 경고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언약의 말씀을 버림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구약의 율법을 거역하여도 죽음의 형벌을 면치 못하였는데, 하물며 모세보다, 모세의 율법보다도 더 탁월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거나 복음을 멸시하면, 더 큰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버리면, 결코 용서 받지 못할 것임을 경고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고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는,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임하게 될 신천신지를 말합니다. 이 나라는 영원치 변치 않는 나라가 되고, 그 어떤 것에도 요동치 않는 나라입니다. 이미 다니엘서(7:14)에서는 ‘진동치 못할 하나님의 나라’라고 했고, 이것은 또한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엡2:8-9, 빌3:20/  그 나라를 우리가 받았다고 했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느 여전도사님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 전도사님도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인데,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 앞에서 간증을 한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과 똑 같이 앞을 못 보는 장애인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집이 불탈 때에, 그 속에서 지옥 불을 경험했습니다. 그 뜨거운 불 때문에 결국 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불속에서 내가 건짐을 받고 난 후에, 예수를 믿고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앞을 보지 못하면서 살다가, 죽어서도 지옥 불 속에 떨어지는 것은 정말 비참한 일입니다. 저는 비록 눈을 잃었지만 천국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조만간에 가게 될 그 천국에서는, 내 눈이 완전히 고쳐질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믿는 은혜를 받도록 하십시다.” 이렇게 그 여자 전도사님은 은혜로운 간증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이미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받은, 은혜 입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도, 은혜를 받자고 말합니다. 구원의 은혜 다음에 있을, 구원 이후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의 ‘은혜를 받자’라는 말을, 어떤 성경에서는 ‘감사하자’라는 말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원문과 문맥상 볼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진동치 않는 나라를 받았음으로 감사하자’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은혜를 받자’라는 말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이 번역을 그대로 따라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계속 은혜를 누리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 받은 자들임으로, 하늘나라 상속자답게 믿음의 삶을 살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리자는 뜻입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요동치 않는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가지고 산다면, 날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다 같이 한 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누리자.’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정에 끊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자식들에게 끊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사업장에, 우리 교회에 끊어지면 안 되고, 계속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끊어지면, 될 것도 안 되고 안 될 것은 더 안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를 계속 누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더 정확히 말하면, 성경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은혜 베푼다.’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19), ‘나는 은혜 베풀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풀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은혜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어떤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실까요?

 

하나님은,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 베풀어주십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 배고픈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 메마른 땅이 단비를 기다리듯,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리듯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주십니다. ‘여호와는 사모하는 자의 영혼을 만족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려고 기도하고, 은혜를 받기 위하여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으려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 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안주십니다. 은혜를 값싸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안주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귀하게 생각하고, 은혜를 사모하는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은혜를 간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욥기 33장의 말씀에, ‘욥이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니엘이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안고 기도하고 있는데, 천사장 가브리엘이 날아와서 ‘은혜를 크게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느니라. 이제 날이 이르면 이 민족이 해방되리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무릎으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아와야 합니다.

 

세 번째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이 은혜 받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두고 은혜를 논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기할 때, 그 말씀을 타고 우리에게 은혜가 전달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3절에,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설교하였을 때, 듣는 무리들 위에 큰 은혜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말씀 듣는 자들에게 작은 은혜가 아니라 크신 은혜를 주셨습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은 늘 사모함으로, 기도함으로,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 받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작은 은혜가 아닌 큰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15절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 모두가 다 은혜 받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신앙생활 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은혜에서 멀어지거나 은혜가 떨어지면 안 되니까, 이런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염려는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되면 어쩌나? 우리 식구들과, 구역원들, 내 반 아이들이 은혜에 이르지 못하면 어쩌나? 은혜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걱정하며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과 아울러, 쓴 뿌리가 나지 않도록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연결해서 해석을 하면 은혜가 없으면 그 마음속에 대신 쓴 뿌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조심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은혜가 떨어지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쓴 뿌리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쓴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 의해서 결국 또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영적으로 병들고, 교회를 멀리하고, 더러움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에서 떨어지고 마음에 쓴 뿌리를 가진 자는, 교회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뭐니뭐니 해도, 간절히 사모함으로, 열심히 기도함으로,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은혜가 풍성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은혜를 받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또 다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8절에,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하게 섬기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자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섬기자는 말입니다. 내가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자는 얘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섬기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경건함은,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경외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되, 가볍게 경홀히 섬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공포심이 아니라, 존중심을 의미합니다. 구원 받은 자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존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을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분으로 섬길 수 있고,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더 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 현장을 둘러보면, 은혜를 받지 않고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봅니다. 자기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도, 자기 열심으로 교회 청소도 하고, 식당 봉사도 하고, 차량 운행도 하고, 주일학교에서 봉사 할 수도 있고, 찬양대에 봉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열심으로 하는 사람은 오래 못갑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지 못합니다. 언젠가 자기 열심이 식어지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봉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연말이 되면 교사나 찬양대나 각부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 자기의 직분을 팽개치는 사람들이 많이 생깁니다. 이제는 쉬고 싶다. 너무 힘들다. 가족들하고 같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못하겠다.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맡아서 못하겠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혹자는 겸손한척 하면서, ‘저는 뒤에서 조용히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은근히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정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 한 가지는, 그 사람에게 은혜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오고 힘들면, 기쁨으로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이 나에게 짐이 되고, 섬기는 일이 고달파서 도망치고 싶어지면, 내 삶에 은혜가 떨어졌다는 증거로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자기를 바르게 경외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언젠가 불로 다가와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알지 말고, 공의의 하나님으로도 알라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홉킨스 박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로 알고 두려워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하나님을 섬기고, 은혜로 전도하고, 은혜로 궂은일도 하고, 은혜로 구역일 보고, 은혜로 교사하고, 은혜로 찬양하고, 은혜로 힘들고 어려운 일도 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예물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처럼 우리도 경건함과 경외함으로, 기뻐 받으실 만한 산 제물의 삶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이렇게 섬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 부흥하는 교회, 모범된 교회, 행복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 받아 하나님과 교회를 잘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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