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무엘하16:1-13 개역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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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사환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과 건포도 일백송이와 여름 실과 일백과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 왔느뇨 시바가 가로되 나귀는 왕의 권속들로 타게 하고 떡과 실과는 소년들로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곤비한 자들로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3. 왕이 가로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뇨 시바가 왕께 고하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저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비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4. 왕이 시바더러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시바가 가로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나로 왕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10.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
13.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부 색깔로 나누면, 피부가 하얀 백인이 있고, 피부가 누루스럼한 황인이 있고, 피부가 까만 흑인이 있습니다. 물론 요새는 피부색을 뛰어 넘어 결혼을 많이 해서, 중간 중간의 피부색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일을 중심으로 사람의 종류를 나눌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있고, 일만 만드는 일감이 있고, 일을 효과적으로 열심히 잘 처리하는 일꾼이 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직업과 연관시켜 15가지 사람의 종류를 말했습니다. 다 말할 수 없고 그 중에서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리면, 9번째로 ‘사교형 인간’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매사에 적극적이며, 능란한 사교술로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닌다. 활달하고 화술이 뛰어나며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빠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직업을 가질 때, 외교관, 심리학자, 사업가, 교육자, 카운슬러, 그 다음 목사가 되면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교형 사람이 아닌데, 목사가 된 것 같아서 고민을 좀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12번째로, ‘태평형 인간’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성격이 급하지 않고 서글서글한 낙천가로서, 매사를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며 별로 근심, 걱정을 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이런 사람은 붕어빵장수나 사회복지사가 적당하다고 했습니다.어떤 사람이 재미있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거기에 보니까, 이 세상의 사람들을 딱 부러지게 세 종류로 말하고 있습니다. ‘상품인생, 중품인생, 하품인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상품인생은 말을 안 해도 알아듣는 사람이고, 중품인생은 말을 해야 알아듣는 사람이고, 하품인생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소망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상품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주일성수, 십일조, 가족전도, 질서, 예의, 의리).
본문에도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1-4절에 보면 ‘시바’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5-마지막 절까지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오고, 그리고 본문 전체에 걸쳐서 ‘다윗’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에 관하여 살펴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 다윗이, 예루살렘을 다스리다가,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왕이 예루살렘을 버리고 피신해 가다가 당한 일입니다. 물론 다윗 왕은 얼마든지 군사를 일으켜, 자기 아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지킬 수가 있었지만, 아들 압살롬과 맞서 싸우는 것을 원치 않았고, 또한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의 칼날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을 가게 된 것입니다.
피신하여 가던 도중에 다윗이, 특이한 두 사람을 만나게 되는 데, 그 첫 번째가 시바라는 사람입니다.
다윗 왕이 피신 길에 올라, 예루살렘 왕궁을 떠나 이제 맞은편 감람산 꼭대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그의 신하들과 함께 왕국을 빠져 나가서 감람산 기슭을 오르는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15:30). 아버지는 아들의 반역을 피해, 이렇게 맨발로 울면서 신하들과 함께 피난을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길에서 시바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시바라는 사람은, 원래 사울 왕의 종이었으나,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의 명에 의해, 사울의 손자이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의 종으로 일하던 자였습니다. 그가 지금 나귀 두 마리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곤경에 처한 다윗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시바가 가지고 온 떡과 과일과 포도주는 피곤에 지친 다윗과 그의 사람들에게 최고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은 때 아닌 귀한 선물을 싣고 온 시바에게,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라고 물었더니, 시바가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고, 포도주는 가는 길에 피곤한 자들이 마시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왕의 말에 시바가, 선한 의도로 순수하게 왕과 신하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음식을 준비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의 말씀을 볼 때에 시바의 의도는, 전혀 순수하지 않았으며 정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이 또 시바에게 물었습니다.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이때의 네 주인은 엄격히 말하면 사울 왕이기 때문에 그의 아들은 요나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 못 해석하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어디있느냐 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아들이라는 말은 아들이라는 뜻과 손자, 후손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어디 있느냐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에는 ‘네가 섬기던 옛 상전의 손자 되는 분은 어디 있느냐?’라는 말로 번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다윗 왕이 므비보셋의 안부를 물어본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물론 다윗이 단순히 그의 안부가 궁금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자기가 요나단과 언약을 맺기를 그의 절뚝발이 아들 므비보셋을 평생토록 돌보아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자기는 지금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으니, 그의 안부가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이유는, 다른 신하들은 지금 누가 나의 편이고 누가 압살롬 편인지가 들어 났는데, 므비보셋의 의중은 들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다윗이 그의 종에게, 므비보셋의 안부를 물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므비보셋은 어느 편에 있느냐’라는 질문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시바가, ‘그가 지금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고 말했다고 왕께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시바는 우리 주인 므비보셋이, 지금 왕권회복, 왕위찬탈을 꿈꾸고 있다고 말을 한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전혀 그런 생각과 의도가 없는데, 자기가 말을 지어내서 왕에게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내 아버지의 나라’는 므비보셋의 말이라면 자기 아버지 요나단이 되는데, 요나단은 한 번도 나라를 다스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는 할아버지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의 할아버지 사울의 나라를 회복 하고자 한다고, 시바가 거짓말로 모함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므비보셋은 두 다리를 전혀 쓸 수 없는 불구자로서, 왕위에 오를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고, 사실은 왕권찬탈을 기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다윗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를 마치 자기 일처럼 슬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바가 이처럼 므비보셋을 모함한 것은, 그것을 통하여 자기의 더러운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자기의 이기적인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이용하는, 인간의 부패한 면과 시바의 간교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간악한 시바의 이 말에 속아 넘어 간 다윗은, 반역한 므비보셋을 징벌하고 공을 새운 시바에게 상을 내리는 의미로,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고 말해 버립니다. 사울 왕의 모든 재산이 므비보셋의 것이었고, 이제 그 모든 재산이 간사하고 욕심이 많은 시바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성경에서 볼 때에, 시바는 재물에 대해 욕심이 많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하고, 자기가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므비보셋의 재산을 탐하여, 거짓말을 꾸며서 사울가의 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기회주의자요, 사기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그에게는 이미 20명이나 되는 종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삼하9:10), 결코 적은 권세, 적은 물질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시바는 므비보셋이 다윗을 배반하였다고 말함으로, 다윗의 허락을 받아, 므비보셋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가로채려는 음흉한 저의를 가지고 있었던 기회주의자였습니다.
다윗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을 때, 지금까지 다윗에게 나온 사람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15장 25절에 제사장 사독이 나오고, 29절에 아비아달이 나오고, 32절에 다윗의 친구 후새가 나오는데, 이들은 모두 다 순수하게 다윗을 돕고 그를 추종하던 인물들이었는데, 거기에 반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바는, 다윗의 고통스럽고 어려운 환경을 이용하여, 선물 공세를 함으로, 자기의 이권을 누리려는 간악한 인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등록했습니다. 심방을 갔더니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의 경력과 식품들을 진열장에 있는 것을 보이면서 열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몇 개월 동안은 신앙생활을 잘 하였습니다. 설교도 잘 들었던 편이고, 설교보다 교회소식을 더 잘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이런 광고가 나갔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는 보험이나 건강식품을 강매하지 마시고, 교우들 사이에 돈 거래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필요해서 그 상품을 구입하면 되지, 구역 예배 때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게 소개하고, 강매를 한다면 성도들이 불편하니까,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워지니까, 이런 광고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그냥 줄 거 아니면 빌려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상습적으로 돈을 빌려가서 안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면 빌려준 사람도 시험에 들어서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지니까, 이런 광고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 광고를 듣고, 목사가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을 불러서, 나한테도 좋은 식품이면 하나 갖다 주세요 하고 카드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품을 가지고 왔는데 작은 병, 두병인지 세병인지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잘 먹겠습니다.하고 그 분이 가지고 온 카드 전표를 보니까, 2백 몇 십만 원이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비싼 건강식품을 사보았고, 먹지는 않았고 그냥 보관해 두었습니다. 이 분이 광고를 주의해서 듣는 이유 중에 하나가, 누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 누구 암으로 고생하고 있으니 기도해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을 찾아가서 이 건강식품을 먹으면 낫는다고 해서, 2백만 원치도 팔고, 어떤 위암 환자에게는 천만 원이 넘는 제품을 팔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도 교회를 비난하며 교회를 떠나가고, 그 식품을 사 먹었던 사람도, 먹어도 차도가 없으니까 믿는 사람이 사기쳤다고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남의 아픔과 고통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바와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그렇게 해서 돈 벌면 뭐하겠습니까? 기회를 엿봐서 남의 아픔을 이용해서, 자기의 재산이나 늘이려는,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12:2). 또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렘9:8)라고 말했고, 바울도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교훈하였습니다(고후11:3). 소망교회 성도들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아첨해서, 그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취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다윗의 피난길 여정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계속 도피하는 중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 시므이가 나타나서 다윗을 저주하게 됩니다. 이 시므이는 사울 왕의 친족 중 한 사람입니다. 사울 왕이 베냐민 지파 소속이기 때문에, 시므이도 베냐민지파 사람으로 게라의 아들입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충성을 다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사울 왕이 죽은 이후 자기의 출세 길도 몰락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멸망하게 된 것이, 결국 다윗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한 돌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사람을 저주하고 그 사람을 향해 돌까지 던지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극도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향해 이렇게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것은, 다윗이 사울 가문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윗 때문에 사울 가문이 망했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분노를 다윗에게 퍼 붓는 것입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는 말이, 7-8절에 나와 있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사울이 망한 것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버림을 받은 것인데, 여기서도 다윗 탓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가리켜 ‘피를 흘린 자’라고 말하고 ‘사악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면밀히 살펴보면, 다윗이 이유 없이 사울 가문의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악한 자라는 말은, ‘아무 쓸모없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뜻으로, 다윗에게 퍼붓는 가장 사악한 독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마치 죽은 개처럼 무가치한 자로 취급하여, 저주를 퍼 부은 것입니다.
심지어 네가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너의 나라를 네 아들에게 넘겼다고 하면서, 이는 네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을 멸시하는 가장 심한 독설을 퍼부은 것입니다. 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붓듯이, 안 그래도 아들의 반역으로 인해 가슴 아픈 아비인데, 거기에 네 아들에게 왕권이 넘어갔으니 꼴 좋다, 인과응보라는 말을 들었으니,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시므이는 남의 탓을 하는 사람입니다. 타인에 대하여 원망,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다윗 때문에 사울 가문이 망하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어렵게 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하게 된 원인과 이유가 다 다윗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다윗을 저주하고 돌맹이를 던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 갈라졌을 때, 북쪽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한 왕이 아합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온갖 악을 다 행하는데, 특별히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들여와서 전국에 퍼뜨린 것입니다.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빼앗고, 우상을 보급하여 숭배하게 했던 인물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사, 비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기근이 심하였는지, 모든 생물들이 아사 직전에 있었습니다. 이때 아합 왕이 선지자 엘리야를 만나러 가서, 그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이 괴로움과 고통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주범이 너냐? 아합은 자기 때문인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고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에, 이 같은 징벌과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선지자 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당한다고 한 것입니다. 아합이나 시므이는 똑같은 분류의 인간이었습니다.
시므이가 다윗을 이렇게 저주를 하니까, 이 소리를 듣다못해 왕의 신하 아비새가 나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다윗이 자신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시므이에게 어떤 제지도 가하지 않자, 곁에 있던 아비새가 나서서 저 놈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저 죽은 개 같은 놈을 내 손으로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만류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다윗은 이 문제는 나의 문제이니, 너희들은 상관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저가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나를 저주하는 것이니, 누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의의를 달자가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운영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받고 있는 괴로움과 고통과 수모는 이루 말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믿고, 다윗은 시므이로 하여금 저주하게 내버려 두고, 아비새 너도 신경 쓰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아들도 아비를 대적하여 왕권 쟁탈전을 벌이는 데, 하물며 저 베냐민 사람이 나를 저주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않느냐. 압살롬은 다윗의 셋째 아들로 남다른 미모를 가지고 있었고, 다윗으로부터 총애를 받던 아들이었는데, 그런 아들도 나를 배반하고 영모를 일으키는데, 시므이의 저주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심이니, 그냥 내버려두라.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보고, 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12절에서,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신다.’는 말씀은, ‘나의 눈물을 감찰하신다’는 뜻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여호와께서 나의 사악한 행동을 감찰하신다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다윗이 ‘원래 지은 죄인 바세바 와의 간음죄를 감찰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결국 이 구절의 말씀은,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의 분노라도 여겼으며, 인간의 범죄를 하나님이 결코 좌시하지 않으시나, 범죄로 인하여 고통의 시간이 경과한 후, 분명 그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군사적 힘으로나 정치적 세력으로 시므이의 저주를 억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고 고통과 어려움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그를 단련하신 후, 다시 왕권을 회복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보다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왕으로서 소임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을 얼마나 잘 경외하고 섬겼는지, 많은 성경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소망교회 성도들은,
시바와 같은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시므이와 같이 남 탓 하는 사람 되지 않기를 바라고,
고통과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고 산 다윗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기회주의자가 나를 이용하고, 나를 저주하고 나에게 돌맹이를 던지는 사람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인내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삶이 어려울수록 더욱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 앞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믿음으로 인내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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