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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떻게 찬송해야 하는가? (시103:1-5)
이정현목사 2014-09-21 추천 0 댓글 0 조회 1455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9월의 주제가 찬양이기 때문에, 찬양에 관하여 두 주간 동안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주에는 언제, 어디에서 찬양해야 하는가? 이 질문의 해답으로,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 주에는, 누가 누구에게 찬양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구원 받은 모든 신자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만 찬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찬송의 6하 원칙에서 지금까지 네 가지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왜 찬양해야하며,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에 주의 하셔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모하지 않으면 은혜 받을 수 없고요, 사모하면 은혜 못 받을 자가 없습니다. 사모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음으로, 한 사람도 그져 돌아가는 일이 없이, 깨닫고 은혜 받고 감동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왜 찬양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찬송해야 할 이유를 묻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찬양하는데, 왜 찬양합니까? 찬송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구원의 감격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430년 동안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애굽 땅에서 나와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 동안, 나라 없는 서러움에 빠져서, 온갖 수모와 억압과 고통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연합군의 승리로, 대한민국이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그 감격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그마치 430년 동안 종으로, 노예로 살다가 자유와 해방을 얻었으니, 그 감격과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을 출발하여 홍해를 건너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가운데,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뒤쫓아 오던 모든 애굽 사람들은, 수장되어 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간 이후, 너무 감사하고 기쁘고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출15:1-2). 높고 영화로우시며, 힘이요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같이 찬송을 했더니, 미리암이 다른 여인들과 함께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께 이어서 찬송을 드립니다.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15:21). 미리암도 역시, 높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것은 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홍해를 건넌 것은 집단 세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구원 받았음을 인치는 것이 세례인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받았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이후 모세와 미리암이 번갈아 가며 찬송한 것은, 구원의 감격 때문에 찬송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것 뿐만 아니라, 이 바다에서도 건짐을 받은 것에 감격하여,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8편(:46)에,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고 하셨는데, 이는 내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찬송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이들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그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인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시편 107편(:8)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인자하심은, 말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갚지 않으신 것도 그분의 인자이고요,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도 그분의 인자하심 때문이고요, 수십 년 동안 먹고 마시고 자고 타고, 지금처럼 살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고요, 기거동작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그분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인생에게 행하신 그분의 기적도 많습니다. 순간순간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은 그분의 이적입니다. 하늘도 안전하지 못하고, 바다도 안전하지 못하고, 땅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말레이시아 항공기처럼, 한순간에 로켓의 공격을 받아 잿더미로 변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내가 큰 유람선을 타고 항해를 하다가, 한 수간에 세월호처럼 침몰하여 수장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내가 자동차를 타고가거나, 아니면 길을 걷다가 한 순간에 씽크홀에 빠져서, 80m 아래로 추락할지 누가 앎니까?

 

 

 

육해공군 모두가 불안전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인도를 받으며 별 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이적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해야 할 이유가 분명한 것입니다. 무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감사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무 탈 없이 무사히 귀가하면, 감사하고 찬송해야 합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우리가 찬송해야 할 이유가 또 있습니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들 위에 높은 분이시기 때문에” 찬송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시113:4). 그러므로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은, 모든 나라와 하늘보다 높으시니, 찬양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외의 여러 성경에,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영원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에, 찬송을 받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정리해 보면, 왜 우리가 찬양해야 하는가 하며는, 구원의 감격 때문에 찬양하고, 그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들 때문에 찬양해야 되고, 여호와는 모든 나라들 위에 높은 분이시기 때문에,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영원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에,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이 모든 이유들을 하나로 정리하면, 우리가 찬송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때문이고’, ‘우리에게 이런 저런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소망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까? 소망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많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들이 충분한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마음껏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방법과 수단을 묻는 질문입니다. 시편 33편(:1-3)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시편기자는 여기서, 악기로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그것으로 딴 데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연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을 악기로 연주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사람들 앞에서 뽐내기 위해서 하면 안 되고, 하나님 앞에서 연주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연주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47편(:1)에 보면,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손바닥을 치며 찬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말과 ‘웃음치료’라는 말도 있습니다. 웃으면, 심지어 억지로라도 웃으면 그만큼 건강에 좋고, 치료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억지로라도 손바닥을 치면, 건강에도 유익하답니다.

 

 

 

어느 젊은 찬양사역자가 찬양집회를 인도합니다. 기타를 치며 약 2천 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청년은 손을 높이 들고, 어떤 청년을 가슴을 치며, 어떤 사람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찬양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간쯤에 앉은 한 청년이, 자기의 뺨을 때리며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찬양 리더가 찬양을 인도하면서, ‘참 안됐다,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을까?’-정신이상자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열광적인 찬양집회는 2시간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집회가 끝나자, 이 리더는 문쪽으로 가서, 오신 청년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손 바닥으로 자기의 뺨을 때리던, 그 청년이 나오는 것입니다. 앞에 와서 인사를 하는데 보니까, 한쪽 손이 없는 것입니다. 그 순간 이 리더는, 정신이상자로 오해했던 것이 너무 미안해서, 그 청년을 꼭 안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청년은 손뼉을 치며 찬양하고 싶었으나, 한 손이 없어서 자기 뺨을 치며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두 손이 멀쩡하시면, 손뼉을 치며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떠 나아가서 시편 68편(:4)에 보니까, ‘하나님 앞에서 춤추며 찬양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 ‘그 앞에 뛰놀지어다.’라는 말씀은, ‘그 앞에 기뻐 뛰놀라, 기뻐 춤추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좋으면 춤을 추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덩실덩실 춤을 추지 않습니까? 그처럼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너무 좋으니까, 하나님이 너무 좋으니까, 그 앞에서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법궤가 자기 궁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춤을 추다가, 바지가 내려가는 것도 몰랐잖아요. 몇 년 전에 우리교회에서 찬양대회가 있었을 때, 어르신들이,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이 노래를, 춤을 추면서 찬송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등수는 들지 못했지만, 참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몇 주전 금요기도회에서도, 조영애 권사님이 춤을 추며 찬양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춤을 추며,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손을 높이 들고 찬송을 하기도 해야 합니다(시134: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손을 드는 것은, 기도하거나 찬송하는 하나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 자세는, 정성을 다하여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린다는 상징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두 손 들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즐거운 소리와 큰 소리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시편 66편에서는, ‘즐거운 소리를 지르며’ 찬양하라고 했고, 역대하 20장에서는,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근심걱정 중에 찬송하지 말고, 평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심히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속으로 찬송하거나, 낮은 음으로 찬송하거나, 억지로 찬송하거나, 다른 사람 구경하지 말고, 중심으로 큰 소리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영국에 유명한 웨슬레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존 웨슬레이고 동생은 촬스 웨슬레입니다. 형은 감리교의 창시자이고 훌륭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부흥강사입니다. 반면에 동생 찰스 웨슬리는 훌륭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찬송이 우리나라 찬송가에도, 13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대표적인 곡으로는, ‘만입이 내게 있으면’(23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280장), ‘웬말인가 내 형제여’(522장),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595장) 등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찬송을 부를 때에는 이렇게 불러야 한다고 가르쳐 준 것이 있습니다. 촬스 웨슬레가 찬송을 부를 때에는, 첫째, ‘곡대로 불러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곡대로 부를 때에, 가장 은혜스럽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곡을 만들 때 그 사람들이 얼마나 기도하고 말들겠습니까? 제일 은혜스럽게 부를 수 있는 것이 이것이라고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곡대로 부르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일부러 느리게 부르거나 박자를 무시하고 빠르게 부를 필요가 없고요, 음정이나 악상기호를 잘 살려서 부르면 됩니다.

 

 

 

둘째는, ‘영적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부르라는 것은 가사에 내 마음을 담아서 부르라는 뜻입니다. 찬송에 있어서는 곡보다 가사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가사를 깊이 생각하며 그 가사에 내 마음을 얹어서 부르라는 것이며 이것이 영적으로 찬송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열정적으로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부르라는 것입니다. 가사에 집중해서 마음을 쏟고 힘을 다해서 찬송하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이, 낮은 소리로, 사모함도 없이 부르면 안 됩니다. 마치 올림픽게임이나 아시안게임에서처럼 응원할 때, 거기에 집중하여 힘을 다하고 목소리를 다하여 응원하듯이, 하나님을 향해 찬송하는 것입니다.

 

 

 

지난 여름 수련회 때 학생팀을 격려하기 위해 갔었는데, 우리교회 아이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서 손을 휘두르며, 펄쩍펄쩍 뒷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방방 뛰면서 오랫동안 찬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교회 오니까 그 찬양의 열정이 금방 시들어지더라고요. 우리교회의 모든 교우들은, 찬양할 때마다 열정적으로 힘차게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첫째는, 상당한 음악적인 지식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곡대로 부르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들이 둘째와 셋째는, 충분히 따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부르고 열정적으로 부르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찬송을 할 때, 영적으로, 열정적으로 찬양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은 왜 찬송해야 하는가를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찬송해야 하는 이유를, ‘구원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그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들 때문에, 찬양해야 되고, 여호와는 모든 나라들 위에 높은 분이시기 때문에,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영원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에,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보니까, 하나님이 내 모든 죄악을 사하셨기 때문에, 내 모든 병을 고치셨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만족시켜 주셨기 때문에, 날마다 우리의 삶을 독수리처럼 새롭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찬송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모든 악기로, 손바닥을 치며, 춤추며, 두 손 들고, 큰 소리로’ 찬송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본문에서는, 내 속에 있는 모든 내장들이 떨릴 정도로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열정적으로 찬송하라는 말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어느 집회에 참석을 했는데, 앞에서 찬송을 인도하시는 목사님의 오른 손목이, 잘려져 나가고 없었습니다. 그 몸으로 찬송을 인도하시는데, 얼마나 열정적으로 인도하시는지, 이렇게 탁자를 치며 박자를 맞추고, 나중에는 찍어서 박자를 맞추는데, 여기서 피가 흐르더라고요.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은혜와 감동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약 300명 정도 한국에 와서,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저를 초청해 주셔서 ‘예배 중 찬송에 대하여’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도 웨슬레의 찬송관에 대하여 말하면서, 찬송은 곡대로 영적으로 열정적으로 불러야 한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시범적으로 찬송을 불러보자고 했더니,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두곡 세곡을 연달아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강의하던 제가 오히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찬송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통계에 보니까, 찬송이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가 부흥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역으로 부흥된 교회를 조사해 보니까, 찬송이 살아있더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찬송이 살면 여러분의 심령도 살고,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찬송을 회복하시되, 왜 찬송해야 하는지를 정립하시고, 어떻게 찬송하라고 요구하시는지를 알아서, 성경대로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이 회복되고, 찬송이 살아있는,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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